1.김태형
사람이 어벙해 보여도 어릴 때부터 수재 소리 다 들으면서 컸던 오빠임. 그런 오빠에게 흠은 딱 두가지임. 부모님이 없다는 것과 너탄이 하반신 불구인 장애인이라는 것. 조금만 빨리 알아차려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더라면 너탄은 하반신 마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음 고아원 원장은 아이들에게 무심했고 너탄이 아프다는 사실은 오빠만이 알고 있었음. 오빠는 여태까지 다 제가 무능력한 탓이라며 자기를 자책하면서 결국 의사가 됨. 그것도 소아과 의사. 적성에 잘 맞아 보였음. 오빠는 아기도 좋아하고 강아지도 좋아하고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거든. 오빠는 의사일하면서 실력도 인정받고 대학병원에서 고속승진으로 승승장구 중. 덕분에 우리는 좀 산다는 동네에 집도 사고 우리 둘이서 잘 살고 있음. 너탄은 하반신 마비지만 스스로 할 일 찾아서 지금은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음. 오빠가 집에 오는 날은 꼭 연락하고 오는데 오늘 갑자기 오빠가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옴.
"동생아. 오빠 왔다." 너탄은 방에서 작업하다 말고 놀라서 휠체어 끌고 거실로 나옴. 거의 일주일만에 보는 오빠 얼굴에 반가움에 앞서 몸을 움직였다가 휠체어에서 굴러 떨어져 버림. 혼자 일어날 수 없는 몸이라 오빠가 안아서 휠체어에 앉혀줌. 왠일이냐고 물으니 오빠는 아무 말도 없이 한 손 가득 들린 맥주캔을 흔들어 보이며
"내 집에 내가 오는데 왠일이라니. 술 마실래? 오빠 술 땡기는데." 너탄은 오빠 손에 들린 봉투를 들여다봄. 웬 걸. 안주는 하나 없고 맥주캔만 열댓개가 들어있는거임. 너탄은 안주 내오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가서 다른 집보다 조금 낮은 싱크대에서 안주를 만들어 가지고 나옴. 거실로 나오니 오빠는 이미 맥주 두 캔을 비웠음. 속상한 마음에 오빠 등짝을 때리며 "속 다 버린다고! 안주 먹어가면서 마셔. 또 왜 이러는데. 뭔 일 있었어? 병원장님이 또 뭐라 했어?"
"이 오빠가 그런 걸로 술 마실 사람으로 보이냐. 그냥...좀 속상해서..." 오늘따라 오빠가 평소보다 더 축 처져있어서 너탄은 오빠따라서 속상하기 시작함. 원래 집오면 말도 많고 너탄 못 괴롭혀서 안달이었는데 오늘은 말도 없이 술만 주구장창 들이 붓고 있었으니... 심지어 안주에 손도 안 댐. 빈캔이 늘고 늘어 8캔쯤 됐을 때, 이상한 소리와 함께 오빠 등이 들썩거기 시작함. 좀 졸린 상태였던 너탄은 졸고 있다가 이상힌 소리에 눈을 팍 뜨고 오빠를 바라 봄. 맙소사. 오빠가 울고 있음. 그것도 엎드려서.
"미안해...미안해...내가 수술하자고만 안했어도...그랬어도..." 너탄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함. 그도 그럴 것이 오빠가 운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서. 등이라도 토닥여주고 싶은데 오빠가 엎드려있어서 손도 안 닿고 너탄은 너탄대로 속상해서 왜우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봄. 그랬더니 얼굴 들면서
"아니야. 오빠 안 울어." 라고 말하는데 누가 믿냐. 그런데 너탄이 해줄 수 있는게 지금 없잖아 그래서 일단 들어가서 자라고 자고 일어나서 말하라고 많이 취했다고 하니까 순순히 방에 들어가서 누움. 그러더니
"동생아, 오빠가 많이 모자라서 미안해." 라고 말하더니 기절하듯 잠에 들어버림. 너탄은 한숨 푹 쉬고 오빠 이불 덮어주고 한참이나 오빠 곁에 머무름. 그런데 오빠가 갑자기 울면서 미안해 미안해하면서 허공에 빌기 시작하는거임. 너탄은 아무래도 오빠가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 오빠를 흔들어 깨움. "오빠 일어나봐. 응?"
"아...꿈이...었네...넌 왜 아직까지 안자고 있어. 얼른 자." 라고 하더니 돌아 누움. 너탄은 오빠 등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내일이 마감이었던 일러스트를 완성시키고 잠에 들었음. 다음 날, 오빠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해장라면을 먹고 있었음. 너탄은 왜 깨우지 않았냐고 깨웠으면 해장국이라도 끓여줬을 거라고 하니까 오빠는 씩 웃으면서
"우리 동생 곤히 자는데 깨울 수 없잖아. 그리고 해장은 라면이 더 좋기도 하고." 오빠가 라면을 다 먹고 너탄은 오빠가 먹은 자리를 싹 정리하고 오빠와 오후의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 근데 갑자기 오빠 핸드폰이 엄청 울리는 거임. 오빠한테 핸드폰을 가져다 주니까
오빠 표정 개심각함.
"아 씨발..."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게 아니겠음? 너탄은 그저 멀뚱멀뚱하고 있다가 오빠 나가는거 배웅해주려고 현관에 있었음. 너탄은 주섬주섬 신발을 신는 오빠에 오늘 병원들어가면 언제 오냐고 물어봄. 오빠는 쭈그려앉아 내 무릎에 팔을 괴고 너탄을 올려다 봄.
"음...잘 모르겠어. 올 때 연락할게.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무슨 일 생기면 오빠한테 꼭 연락하고. 알겠지?" 오빠는 그대로 급하게 집을 나섰음. 너탄은 그저 병원에서 급하게 호출을 받았구나 짐작만 했을 뿐임. 아,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날 오빠가 울었던 건 오빠가 평소에 예뻐하던 꼬마환자를 수술하다가 수술대위에서 환자가 죽어버렸기 때문이었음. 게다가 첫 수술실패였기때문에 오빠의 충격이 어마어마했음. 이후에도 가끔 자다가 울면서 잠꼬대를 함. 2.정호석
사실 이 오빠 원래부터 공부를 잘하고 모범생이고 그러지 않았음. 개날라리였으면 개날라리였지 절대 그런 축에도 못 꼈음. 근데 어떻게 의사가 됐냐고? 그거야 정신를 차려서. 너탄은 오빠보고 원래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그렇다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깨달음. 오빠가 의사가 되기로 맘 먹은 건 정말 터무니없음. 동네에 새로운 약국이 오픈했는데 그 약국 약사 언니가 예뻐서. 존나 웃기지. 더 웃긴건 약사 언니 유부녀임. 뭐...약사 언니 덕분에 오빠 정신차린건 고맙지만 오빠는 번듯한 직업만 가졌지 아직도 사고치고 다니기 일쑤임. 병원에서만은 그러지 않길 바라는 중. 사실 너탄네 집은 아주 시골 촌구석에 있음. 근데 오빠가 의대합격하고 나서 부모님이 오빠랑 같이 살면서 오빠 감시도 하고 서울에서 공부하라고 서울로 유학보내심. 시간이 지나서 오빠는 대학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가고 너탄은 대학합격해서 대학다니는 중. 요즘 오빠는 응급실에서 일한다했음. 그래서 그런지 늘 올때마다 피곤에 쩔어있고 코피도 자주 쏟고 너탄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님. 원래 엄청 밝고 활발한데 요즘은 전혀...
"야, 나 왔다." 근 일주일만에 보는 오빠임. 역시나 오늘도 피곤에 쩔으셨음. 너탄은 오빠 빨랫감을 받아들고 세탁기에 모조리 쏟아부음. 근데 오늘은 왠일인지 오빠가 바로 침대로 안들어감. 원래 루트대로라면 나한테 빨랫감주고 바로 자러 들어가야되는데. 너탄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안 자? 이랬는데 오빠가 넋이 나가있는거임. 그래서 너탄은 오빠를 한 번 툭 침.
"동생아. 정말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 같아." 라는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거임. 이새끼가 이제 미쳐 처돌았나. 싶었는데 오빠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쾅 닫는거임. 너탄은 건들인 게 그렇게 기분 나빴나. 싶어서 몰래 방문을 여는데 너탄은 충격을 먹고 말았음.
오빠가 약을 한 움큼 집어 삼키는 거임. 너탄은 오빠가 나쁜 생각을 한 건줄 알고 울면서 달려가서 뱉으라고 등 치고 오빠 입 억지로 벌려서 손가락 넣고 별 지랄을 다함. 덕분에 오빠 바닥에다 토함. 오빠가 토해서 눈물 매달고 힘들어하는데 너탄은 울면서 왜 지랄이냐고 미쳤냐고 막 오빠 때림. 근데 이 미친놈이 씩 웃대?
"동생아. 오빠가 죽으려고 약 먹는 걸로 보였어? 아닌 척 하면서 되게 오빠 생각하네. 야, 이거 다 어쩔거야." 하면서 바닥 가르키는데 으응...바닥 존나 난리남. 근데 너탄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너탄한테는 오빠가 오늘따라 평소같지 않았고 약을 한움큼 집어먹는데 그런걸로 보이지 뭐로 보여. 너탄은 좀 속상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해서 아직도 울먹거리면서 그럼 뭐냐고 오빠 어깨 주먹으로 치면서 말함.
"별 거 아니야. 그냥, 오빠가 좀 힘들어서 먹는 약. 이거 많이 먹어도 안 죽으니까 걱정말고." 그게 더 이상해 라고 말하면서 너탄은 바닥 치우려고 걸레 가지러감. 아직도 자기가 너무 유난떨었나 싶으면서도 분해서 기분이 이상한 너탄임. 그 사이 방안에서
"그만 둘까...사람들 죽어가는 거 보는 것도 지친다." *악! 죄송해요! 악! 쓰차가 걸려있어서...악!ㅠㅠㅠㅠㅠㅠㅠㅠㅠ혹시라도 기다리신 분 계시면 정말 죄성해요...기다리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