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Engel - lrsen's Tale
THE LAST : E
-코로나 아스트레일스 , 회의실
"성공 했나보군요."
"그럼, 내가 누군데."
지훈이 테이블 위에 파일 한 묶음을 올려놓았다. 읽어보라며 손짓하고는 제 의자에 털썩 앉아 기대어 눈을 감는 H를 보며 남은 조직원들이 모두 파일에 시선을 모았다. 보스, 읽어보시죠. 승관이 승철에게 파일을 건네자 벌떡 일어나 손에서 파일을 채가는 H다. 제가 뼈빠지게 수고했으니, 브리핑 또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할것이라며. 밤을 샌 탓에 정신이 말이 아닌듯한 H를 보며 조직원들은 말이 없다. 그저 어서 브리핑이나 시작하라며 손사래와 함께 박수함성 중.
"일단, 이 자식 이름은 도겸."
"도겸."
"3세계 내에서 굉장한 해킹실력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추정되며-"
"H보다 더 잘합니까?"
"조용히 안해?"
K가 실실 웃으며 H를 놀리자 정색을 하며 헛주먹을 날리는 H다.
"CB 소속 맞고, CA에 관련된건 크게 없어보임."
"CB에 왜 들어갔는지는, 나와있지 않아?"
"네, 그것까지는 정보 떠있는게 없었습니다."
"음."
"그리고- 가명을 쓰고 있는것같은데."
"가명?"
"네, 도겸이라는 이름이 제 본명은 아닌것 같던데요."
"흠.. CB의 특징인가."
"그럴수도 있겠네요, 워낙 영악한 놈들이라."
실제로, CB 내에서 본명이 아닌 가명을 쓰고있는 조직원들은 상당수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CA가 빈번히 사람을 놓치는것은 흔한 일. CB의 단독적인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때문에 CB 보스 또한 가명을 쓰고있는게 아니냐는 설이 돌 정도. 그만큼 CB는 치밀하고 교묘하다. 이러한 CB와는 달리 CA는 상당히 유한 편, 게다가 보스의 성격을 닮아 느긋하기까지 하다. 두 조직이 정반대인만큼 현장에서도 그 반대적인 모습들을 잘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4월 1일, 전원우-권순영의 포탄사건이라던가, 포탄사건이라던가. 끊임없이 상대방을 추락시키고 부숴버려 살아남는 CB와,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덤벼들어 함께 죽자는 마인드의 CA. 이 둘은 너무나도 다르다.
"- 이상입니다."
"수고했어, H. 당분간은 좀 푹 쉬어."
"예."
보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문으로 직행해 나가버리는 H다. 역시, CA 또라이! 추임새 왕 승관이 엄지를 들고 밖에 소리친다. 잠시 잠잠해진 회의실.
"아, 근데. H한테 표 안받았는데요."
"..."
- 코로나 보리얼리스, 연구실
"아."
조용하던 CB 메딕팀 연구실에 외마디 소리와 함께 흰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뚝 떨어진다. 반응 실험을 위해 제 손가락에서 피를 뽑아낸 N. 제 피로 아마 여기 있는 약들 절반은 반응 실험이 되었을거라며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피를 보관한다. 덕분에 N의 손가락 10개는 언제나 밴드 투성이. 다른 사람 피를 쓰면 된다고 생각할테지만, 어이없게도 가장 반응 실험에 많이 성공하는건 항상 N의 피. 어쩔 수 없이 N의 피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혼자 궁시렁거리는 N의 소리를 들으면서 버논이 혀를 끌끌 찬다. 반응 제일 잘 오는 그 쪽 피를 탓하시죠. 놀리는 소리와 함께 버논이 비커에 약물을 한 방울 떨어트린다.
쾅 -
"J, 비상사태입니다. 메딕팀 연구실에 폭발이-"
"..."
큰 폭발음과 함께 여주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보인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제 얼굴 위에서 울먹이고 있는 도겸의 얼굴. 눈을 뜨자마자 보인 그 얼굴에 깜짝 놀라 숨을 들이키니 제가 정신 차린 모습을 보고 더욱 서럽게 우는 D다. 좀 꺼져봐요, 하며 손으로 D의 얼굴을 밀어내자 이번엔 가만히 제 침대 옆에 앉아있는 W가 보인다.
"아, 버논-"
"..네 옆에."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돼 자신과 함께 있던 버논을 찾으니, 옆 침대에서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있는 V가 보인다. 아, 뭔가 또 크게 일이 터졌구나. 안 좋은 상황이었다는걸 예감한 N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병실 문을 열고 J가 들어온다.
"다행이네, 금방 일어나서."
"..보스, 죄송합-"
"아, 괜찮아. 많이 다친데 없어서 다행이다."
"..."
"V도 금방 일어날거야. 저렇게 붕대 감고 있어도, 크게 다친건 아니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당분간은 좀 쉬어도 되겠어. 음, 다 모였으니 여기서 회의 진행할까?"
J가 자신의 코트를 침대에 걸쳐놓고 자리에 앉는다. 얼떨결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물론 잠들어있는 버논은 제외.
"'그'가 방금 정보를 보내왔어."
"아."
"CA가 11월달에 우리를 공습하려고 계획을 세워놨었던것 같아."
"..."
"하지만, 실패."
"왜죠?"
"조직원들의 반대가 있었대. 알잖아, 4월 1일."
"..아."
"우리 쪽에서는 고마운 일이지, 아직까진 우리도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니까."
"..."
"일단 우리도 최대한 빠르게 조직 내부를 안정화시키고 공습에 들어갈거야."
"...벌써요?"
"많이 늦었어, 우린 아직 휴전 상태야."
모두가 말이 없다. CB의 CA 공습계획 날짜는 내년 1월, 그 때까지 모든것을 끝내놓아야한다. 약 5개월이 남은 셈이다. 어쩌면 이 전쟁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다. 제 3세계의 군주를 결정하는, 혹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두 조직의 최후의 싸움.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아야한다.
"...당장 내일부터 메딕팀 준비하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 아직 버논도 힘들테니까."
"네."
"그리고 D, D는 당장 오늘부터 나와 같이 계획을 짰으면 좋겠어."
"아, 오케이. 알겠어요."
"그리고 W."
"..."
"W는 저번처럼 쓰러지지 않게, N이 집중적으로 치료해줬으면 해."
"..."
"네, 제가 맡겠습니다."
"W, 적장에서 네가 쓰러진다면-"
"알아요."
"..그래. 널 믿어."
"..."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메딕팀 모두 얼른 쾌차하길 바라고.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내 방으로 찾아와. 해산."
J는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고 친절하고, 하지만 쉽게 믿을 수가 없다. 묘한 이질감이 있다, 그에게선. 어쩌면 N 자신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겠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보스를 스스럼 없이 대하니까. 왜인지는 N 자신도 모른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느껴지는 그런저런 감정에 오늘도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N이다. 혹시 자신이 예전에 놓쳤던 기억이 있을까- 싶어.
모두가 병실을 나갔지만 W만이 멍청한 얼굴로 옆에 앉아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는 모습에 결국은 풀썩 침대에 누워버렸다. 누워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자신의 과거를.
- 제 3세계 슬럼가
"저기요, 저. 저 좀 살려주세요. 네?"
몸이 엉망진창이 된 여자아이가 슬럼가 앞을 지나가던 두 남자의 팔을 다급하게 잡아챈다. 추운 겨울이지만 여자아이가 입고 있는건 많이 헤져버린 검은색 원피스. 두 남자가 아이를 매몰차게 떨쳐내곤 가버리자 아이가 결국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도 못한채 하염없이 운다. 분명 좀 있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올것이다. 그 곳에는 정말 가고싶지 않다. 이 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곳에는 절대 가지 않을것이다. 나쁜 것들이 즐비해있는 그 곳. 그 곳은 지옥이자 제 인생의 오점이 될것이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아이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온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그에게 걸어본다.
"저기요."
"..."
"저, 저 좀 죽여주세요. 아무도 모르게요."
"..."
"..제발."
"예쁜 친구가, 그렇게 쉽게 죽여달라고 하면 어떡해."
"..."
"가자, 도망치고 싶은거지?"
"...네."
"도망가자,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게."
조슈아가 여자아이를 단번에 들어 제 품에 안고 순식간에 슬럼가를 빠져나왔다. 조슈아 자신에게도 지옥같기만한 슬럼가, 그 지옥같았던 장소의 피해자 두명이 제 발을 잡아채는 어둠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뒤도 돌아보지않고 도망친다. 여자아이는 무엇하나 미련두지 않고 빠져나왔다. 조슈아는, 제 친구를 그 곳에 두고 빠져나왔다.
"너, 이름이 뭐야?"
"...김여주."
"여주, 이름 예쁘네. 슬럼가엔 왜 갔어?"
"...."
"..알겠어, 안 물어볼게. 기억하기도 싫은거지?"
"...네."
"..그래, 나랑 가자. 나랑-"
"..."
"..새로운 곳을 만드는거야. 아무도, 아무도 못건드리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조슈아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여주는 제가 이 사람을 믿어도 되는건지, 이 사람을 따라가도 되는지 의심 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지옥같던 슬럼가에서 구출해준 단 한명의 은인. 그런 은인에게 제 목숨 하나를 바치는 일이야 그 어느것보다도 쉬웠다.
코로나 보리얼리스는 그렇게 시작했다. 조슈아와 김여주. 여주가 조금 더 자랐을 때, 조슈아는 누군가를 만나 심하게 맞은 흔적을 남기고 돌아왔다. 조슈아가 만난 사람은 자신의 옛 친구라고 했다. 여주는 처음으로 조슈아가 그렇게 서럽게 울 수도 있다는걸 알았다. 상처가 아파서 우는게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누군가에게 너무 미안해서 우는거라고 조슈아가 말했다. 여주는 과연 누가 조슈아를 이렇게 울릴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조슈아, 친구가 많이 화났어요?
"응, 그 친구가 많이 화났어."
"왜요?"
"내가 친구를 버리고 도망쳤어."
"..."
"내가, 내가 ...를 버렸어."
".. ...?"
"그가 많이 화났어. 난 이제-"
아, 그 이름이 누구였더라. 조슈아 친구의 이름이 아마도…
"N."
과거를 기억하다 어느새 잠들어버린 여주가 원우의 목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또 아무런 기억이 없다. 또 꿈을 잊어버린게 분명하다. 자신을 깨운 원우를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 테이블을 올린다. 밥, 안 먹어?
"..아. 밥."
"일어나, 얼른."
"먹을 기운 없는데."
"먹여주면 되지."
"..."
숟가락을 드는 W에게서 얼른 숟가락을 빼앗아들곤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맛도 안나는 밥을 먹으며 무심코 옆을 보니, 버논이 사라졌다.
"...버논, 어디 갔어요?"
"아, 깨어나서 방금 붕대 풀러 갔는데."
"...아."
- 코로나 보리얼리스 군병원, 옥상
"...D가 절 부르신 이유라면."
"..."
"찾으셨군요."
]
" 응, 상황이 꽤 재밌게 돌아가던데, 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