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 C
- 코로나 아스트레일스, 회의실
"...지금 며칠째?"
"저번주 부터였으니, 오늘까지 10일쨉니다."
"..."
K의 예상대로 H는 오늘까지 무려 10일째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않고있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계속 CB의 해커만 쫓아다니는 판에 걱정이 된 B가 방문을 두드렸으나, 돌아오는건 썩 꺼지라는 H의 앙칼진 데시벨 뿐. 회의실에서 보이는 H의 방문을 턱을 괴고 보던 Z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보스 S의 말에 결국 물 한 컵과 빵 두어개를 H의 방문 앞에 슬쩍 두고 온 B가 회의실로 들어온다. 회의, 시작하시죠.
"오는 11월 6일, 코로나 보리얼리스를 공격하려고 해."
"네?"
모든 이들이 놀랐으나, 유독 Z만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다는듯 흥분된 표정으로 책상을 빠르게 두들기는 Z를 보며 S가 픽 웃었다. CB 공격작전을 브리핑하며 모두가 경청하지만, '누군가'는 유독 표정이 심각하다. 마치, 제 집을 부수겠다며 그 계획을 설명하는 고양이를 주시하는-
겁 없는 쥐 마냥. 그는 누
구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보리얼리스보다 인력도, 물력도 뒤처지는게 사실이야."
"..."
"하지만, 우린 이미 그들을 이겼던 전적이 있어."
"...4월 1일."
-코로나 보리얼리스, 4월 1일
부대를 이끄는 순영의 옆으로 총알이 빠르게 튀었다. 재빨리 몸을 숨긴 순영은 살았으나 그 뒤를 따르던 부대원은 죽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숨긴 순영의 옆으로 힘없이 쓰러지는 형체를 보며 순영은 이를 바득 갈았다. 코로나 보리얼리스의 갑작스러운 침공, 아스트레일스는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조직원들의 생사도 모른채 뿔뿔히 흩어져 어디에선가 제 일을 하고있을 제 동료들을 생각하며, 순영은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으로 무작정 달렸다. 제가 죽어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은 그저 상황을 주도한 CB를 한 명이라도 더 없애는게 순영의 마지막 목표였다.
그와 같은 시간, 승관은 어렵사리 지킨 건물에서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제 동료들을 치료하기에 바빴다. 이미 제 손에는 수십명의 피로 흥건하게 적셔져있었지만, 치료하면서도 승관은 오직 제 동료들이 쓰러져 이 곳으로 실려오진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해커인 지훈마저 현장으로 나간 지금, 건물에서 생명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승관은 눈 앞이 아득해졌다. 옆에서 누군가가 힘없이 쓰러지는 제 몸을 받쳤고, 겨우 정신을 차린 승관이 다시 생명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와중에도 벌벌 떨리는 제 손은 멈출줄을 몰랐다. 승관은 그저 지금 이 상황이 끔찍하게 싫을 뿐이었다. 이 싸움을 시작한 코로나 보리얼리스를 저주하며, 승관은 제 동료의 심장을 열었다.
보스를 따라간 지훈 또한 정신이 아득했다. 제 포지션이 아무리 해커라한들, 전장에 서서 총을 드는 순간 이미 자신은 돌격병인것이다. 오늘따라 제 모니터가 많이 그리워지던 그 때, 급하게 자신을 끌어당긴 승철의 손과 함께 지훈의 앞으로 CB 요원이 뛰어갔다. 현재 그들의 위치는 CA 건물 잔해 속 조그만 틈. 이 틈마저 발각되면 지훈은 물론이요, CA 보스 승철마저 죽게되니 그야말로 CA의 끝이었다. 제가 죽더라도 보스만은 지켜야겠다 생각한 지훈이 총을 고쳐잡았다. 보스, 제가 주의를 끌테니 당장 안전한 곳으로 피하세요.
"뭐?"
"제가 나갈겁니다, 형은 도망치라구요."
".. 미쳤어? 너 권순영 아니야, 너 해커라고!"
"해커면, CA 아닙니까?"
총을 고쳐잡고 승철을 마주보는 지훈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 눈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던 승철은 말 대신 지훈의 총을 다시 잡아주었다. 서툴게 총을 잡은 그 하얀 손을 계속 응시하던 승철이, 결국은 지훈의 손을 놓았다. 승철이 손을 놓자마자, 지훈이 틈을 깨고 현장으로 달렸다. 총알을 뚫고 빠르게 뛰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승철은 마지막 모습이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랬다.
"아깝다, 직격탄이었는데."
CA 바로 앞에서 포탄을 날린 원우가 제대로 맞지 않은것에 아쉬워 하며 다시한번 포탄을 돌렸다. 아마 누군가 지나가며 그 장면을 보았더라면 인정도,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라며 욕을 했을것이다. 그만큼 전원우는 현장에서 강하며, 현장에서 투입되는 순간 제일 피해야할 인물 중에 한명으로 손꼽힌다.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그에게 누군가를 살려두는 일이란 세상에서 제일 가치없는 일이 될것이다. 포탄을 세게 돌린후 탄체에 기대 장전되기를 기다리던 그가, 갑자기 발목에 꽂히는 무언가에 통증을 느끼며 밑을 내려봤다.
"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싸이코한테는, 못 죽지."
"...."
"나도, CA에선 한 또라이, 하거든. 개-새끼야."
방금 전 원우가 밟아 무너트린 CA의 순영이, 제가 가지고 있던 칼조각으로 원우의 발목을 꽂은것이다. 통증이 느껴져 미간을 찌푸린 원우가 다른 쪽 발로 순영의 얼굴을 세게 걷어찼다. 그대로 쓰러진 순영을 보며 원우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순영의 손에서 작은 칼조각을 뺏어들었다. 제 피가 묻은 칼조각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원우가 픽 웃으며 다시 일어났다.
"네가 왜 한낮 CA겠어."
"..."
"이딴 거지같은 술수를 쓰니까, 니가 CA인거다."
"..."
원우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쓰러진 순영의 등 위에 칼조각을 튕기듯 던졌다. 제 발목에는 이미 피가 흥건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발목을 희생한 대가로 더 많은 CA 요원들을 제거할수 있다면. 제 발이 잘려나가도 아깝지 않은 그였다.
"...."
CA 근처 임시 텐트에서 치료를 맡은 여주가, 절뚝거리며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원우를 보며 경악한다. W, 발목 잘리고 싶어서 드디어 미친겁니까? 그도 그럴만 한것이, 원우의 발목이 피로 번지다 못해 제가 걸어온 흔적을 피로 남기며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를 너무 흘린 탓인지, 텐트로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지는 몸을 보며 N이 한숨을 쉬었다. 잽싸게 달려가 원우를 눕힌 N이 조심스레 발목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린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
"평생 절뚝거리면서 살았을겁니다, W."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원우가 피식 웃어넘긴다.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N이 톡 쏘아 묻자 원우가 한쪽 팔을 제 눈 위에 올리곤 또 한번 웃는다. 마치 재밌는 이야기가 생각난 마냥 끅끅대며 웃는 탓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N이 무슨일이냐 물으니 무섭게도 웃음이 뚝 그친다.
"나, CA 또라이를 봤어."
"...Z?"
"응, 정말 보기드문 또라이던데."
원우는 발목에 약이 들이부어지고있는것도 인지하지 못한채 아까의 상황을 생각하며 한참을 웃는다. 여주가 있는 약, 없는 약을 다 부어가는데도 고통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미친사람처럼 웃기만 하는 원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봐요, 또라이. 그만 웃고 얘기나 해봐요. 웃을 힘 있으면.
"그 새끼가, 내 발목에 칼을 꽂았는데."
"씁, 욕 하지 말구요, 걔가 이렇게 만든겁니까?"
"응."
"그럼 그 사람, 죽었겠네요."
"아니, 살았어."
"... 살려줬습니까?"
"아니, 난 죽였지."
"..."
"걔가 살아났을뿐이야."
쓰러진 순영의 등 위로 방금 제가 원우의 발목에 꽂은 칼조각이 튕기듯 떨어졌다. 여기서 죽으면,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영은 지금이 마지막인것처럼, 다시 한번 원우에게 달려들었다. 탄체에 기대 고개를 돌려 제가 지금까지 생활하던 건물을 완전히 부숴버리려하는 원우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가격했다. 얼굴을 얼얼하게 맞은 원우가 입 속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맛에 눈썹을 꿈틀거리곤 피를 뱉어냈다.
"아직."
"..."
"발악할 힘이 남아 있었나보지?"
원우는 지금 제가 가진 무기가 포탄밖에 없다는것에 안타까워 하며, 자신에게 주먹을 날리곤 곧장 제 앞으로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순영의 앞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곤 한손으로 순영의 얼굴을 잡아채 제 얼굴과 마주했다.
"여기서, 죽으면."
"..."
"누가 네 명성을 알아주지?"
"..."
"그 잘난 CA 요원이, 그토록 제가 경멸하던 CB 요원에게 죽으면."
"..."
"좋은 구경거리가 되겠어."
"...리."
"응?"
"누구요, Z 말입니까?"
"응, 내가 독을 꽂았거든. 그 친구 허리에."
"B, 긴급! Z가 왔어!"
붕대를 찢던 승관의 손이 멈췄다. 제가 잘못 들었으리라고 생각한 승관이 고개를 떨쳐내고 다시 붕대를 찢으려 힘을 주었으나, 다시 들려오는 급한 다그침에 자신도 모르게 붕대를 떨어트렸다. 새하얗던 붕대가 주인도 모르는 피에 적셔졌다.
Z, 숨을 안쉰다고, 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