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일어냐. 아줌마가 밥먹으래."
"..."
"야! 밥먹으라고!"
"너!! 하아.. 너..."
"빨리 나와."
"어.. 어.. 그래.."
밤새 뒤척거리며 힘든 꿈속을 지나왔던지 몸엔 땀이 가득했다. 찝찝한 몸과 더불어 너무나 찝찝한 마음이었다. 그 꿈속에 더 있었더라면 나는 결국 죽게 되었을까? 얼마나 뒤척였던지 근육들도 놀랐는지 몸에 알이 배겼다.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고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평소와 같이 몸에 물을 끼얹으며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 오른쪽 팔뚝에는 꿈에서와 같은 상처자국이 있었다.
"뭐.. 뭐야.."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 팔을 살펴봤다. 너무도 선명하게도 상처가 아문 자국이 있었다. 꿈이 아니었을까.
***
"야, 쟤들봐. 쟤네 친구 됐나보다."
"헐, 뭐야. 김태형이랑 박지민 자원봉사자냐?"
하루종일 우리만 따라 다니는 이녀석 때문에 우리를 보며 쑥덕거리는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걸리적 거리고 있다. 분명 자기들은 안들리게 한다고 한게 저렇겠지. 기차화통을 씹어먹어서 목소리가 태생부터 참 큰 가보다. 하하.
"저기 정국아?"
"왜? 지민아?"
"저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 혹시 우리들 중에 누구한테 관심있니?"
"응 당연하지."
"뭐?"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돌맹이에 맞아죽는건 김태형, 박지민인가. 뭐가 저렇게 당당해. 우린 싫다고 예전부터 그렇게 말했던걸.
"그래서.. 그게 누군데?"
"너희 둘 다. 내가 또 갖고 싶은건 가져야해."
"우리가 물건이냐?"
"아이 또 왜이렇게 까칠하시데? 같은 지붕아래서 잠도 잔 사이에."
"야!"
"뭐야? 지금 뭐야? 얘 어제 너네 집에서 잤어?"
"어? 어.. 그렇게 됐지. 누가 마음대로 들어와서 우리 엄마한테 허락까지 받았지 뭐야."
"혼자 자서 아쉬웠잖아."
"됐거든. 진짜로 들어가자 마자 다시 너희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
"그래 뭐. 그렇다고 해두자."
"헐 대박사건이네. 김태형이 누굴 자기 집에서 재우고"
"재운게 아니라 얘가 마음대로.."
"내가 좀 관심이 많아 너희에게 왜냐하면.. 갖고 싶은게 있거든."
"뭔데? 주면 떨어지냐?"
"글쎄? 그냥 뭐 나도 우정 놀이나 해보고 싶어서?"
"허.. 당당해서 무섭다."
***
(김석진 ver)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선배님이 자주 사가시던 붓꽃을 샀다. 형수님이 참 좋아하시던 라벤더 색의 붓꽃을 옆자리에 사뿐히 내려놨다. 행여 꽃 잎하나 떨어질까 포장 한 곳 구겨질까 조심히 운전하여 도착한 곳은 마지막으로 발견했던 사건 장소였다. 이제는 제법 눌렸던 풀들이 자라나고 생생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 곳에 고이 모셔온 붓꽃을 내려 놓았다. 숨을 크게 들이 마쉬고는 한 번에 후-하고 털어냈다.
"선배님이 좋아하시던 붓꽃 좀 사왔어요. 오늘 밤에는 이 꽃 들고 형수님 찾아가세요. 그냥 말 없이 이 꽃의 꽃말처럼 좋은소식 전해주세요. 그리고 저에게도요."
그 자리 옆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란 하늘이 하얀 구름과 조화를 이루며 섞여 있었다. 그 하늘에 취해 차가운 풀 위에 누웠다. 방금 본 하늘을 감은 눈 위로 펼치며 오래도록 감상했다.
"잠깐."
이거 뭔가 비슷한 것 같았다. 아직 확실하게는 무어라 말 할 수 없지만 사람의 직감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해뜨기 전의 새벽하늘이 이렇게 어두웠던가. 쇼가 시작하지 전의 커튼처럼 확실하지 않은 정확한 열쇠를 쥐게 된 것 같았다.
"여기 오길 잘한 것 같네요."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어번 바지를 털며 옷 정리를 하고는 차로 달렸다. 겨울인데도 따뜻한 기운이 맴돌았다. 가을 바람보다도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고 나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
"엄마 다녀왔습니다-"
"아들 왔어? 그런데 우리 아들. 요즘 무슨 고민 있니?"
"응? 고민? 아뇨.. 없는데.."
"엄마 눈을 못보는데?"
"진짜 없어요 엄마. 걱정마세요. 그런거 있으면 엄마한테 다 말하잖아요."
"우리 착한 아들. 딸 안부러운 딸같은 아들."
"아 엄마- 저 이제 고등학생이거든요? 엉덩이는 좀 그렇다."
"뭐? 엄마가 씻겨주고 다 키웠는데?"
"그래도요. 엄마 저 씻어요-"
"그래. 얼른 씻고 자."
"네-"
간단하게 씻고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바지를 갈아입고는 티를 집어드는 순간 전신거울에 비친 상처가 보였다. 도대체 언제 생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상처와 같았다. 순간 지나는 생각이 있었다. 똑같은 장면, 그리고 익숙한 장면이었다는것. 내가 너무도 잘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것.
나는 아버지 서재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잠결에 놓쳐버린 아버지의 책이 내가 봤던 그 페이지가 남겨진채 떨어져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그 책을 집었고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분명 어제 읽었을 때에는 도적이라는 자가 주인공을 죽이고는 자신도 자결하는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누군가 들어와 주인공을 도와주는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고 책장을 넘기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전의 꿈도 같은 내용이었다.
'만약 오늘 읽은 내용도 꿈 속에 나온다면 이게 진실이겠지.'
난 한 부분을 정해 정말 집중해서 잊지 않으려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반복되는 상황과 똑같이 나는 잠에 들었다.
***
(김석진 ver)
서에 들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물밀듯 밀려왔기 때문이다.
"하늘.. 눈을 감았고.."
감은 눈 위로 그 하늘이 그려졌..
"설마..!!"
떠올랐다. 왜 이 장면이 계속 날 흥분하게 만들었는지. 이 겨울에도 적도에 온듯한 후끈함을 느꼈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마치 데자뷰처럼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난 이 사실을 확인해야만 했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알아봐야 했다.
"전화 좀 받아라 태형아.."
***
눈을 떴다. 바람소리가 들렸다. 아니 사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였다.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새벽사이 이슬이 내린건지 비가 내렸던건지 기대있는 나무과 바닥이 축축했다. 몸을 일으켰다. 사방은 키의 몇배나 큰 나무들로 가득했고 아침이 오는지 각자 자신의 빛을 찾아갔다. 난 이곳에 왜 혼자 있는걸까. 왜 이런 곳에서 널부러져 잠이 들었던 걸까.
"...추워.."
내가 서있는 곳 위에는 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았다. 어스름하고 뿌연 안개들이 가득했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게 두려웠다. 어딘지는 몰라도 무작정 앞으로 걸어나갔다. 안개 때문에 내 눈이 뿌연 착각이 들었고 축축한 바닥에서 올라오는 칠퍽한 질감과 습한 냄새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 걸어갔을까.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난 빛 하나만 보고 달려드는 곤충같이 남은 힘을 모아 뛰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는 집이 하나 있었다. 이상했다. 이런 곳에 집이 있다니.
"저기.. 저기요..?"
조심히 다가가 안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불이 켜져있는걸 보면 분명 누군가 살고 있다는 증거같은데 그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자 생각 없이 손잡이를 돌렸고 그대로 열려 버렸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확인해볼까 하다가 그냥 쇼파에 앉았다. 아무래도 항상 이 집에 누군가 있던 것은 아닌듯 했다. 쇼파에 앉았을 때 폴폴거리며 먼지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난 잠시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두려웠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눈을 뜨면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듯 했...
"잠시만 이거 꿈속 세상인건가..?"
"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악!!!"
"뭐.. 뭐야.."
이 집은 특이하게 지하가 있었다. 이런 습지에 지하가 있다는 것이 너무 궁금했는데 마친 그곳에서 정체모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난 그 곳을 나갔어야 했는데.
"가만히 있어 좀! 안 죽일게. 그러니까 착하지. 조용히 입닥치고 있어. 내가 원하는건 네가 아니야."
"....그럼.. 누구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를 기둥뒤에서 멀찍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무슨 상황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잘 몰랐으나 저 여자가 위험한 상황인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이 집에 들어온 나도 위험해져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게 두려웠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이런 상황과 마주한다는게 얼마나 미칠지경인지 아마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르 감정이었다.
"빨리 나가야겠.."
"안녕?"
"하-어.. 어떻게.."
"너 벌써 알아버렸구나? 내 먹잇감?"
"뭐.. 뭐를.."
"모든 것을?"
"아.. 아니야.."
"뭐가?"
"꿈일거야.."
"그래 꿈. 이 곳은 꿈이지. 단지, 너가 알아버리지 말았어야지. 그냥 그렇게 살았어야지."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건데.."
"글쎄?"
무작정 뒤도 보지 않고 뛰어나왔다. 더이상 그 곳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갔다. 그 자식이 날 찾지 못하게.
"하아.. 하아.."
탁탁-
큰 나무 뒤에 숨었다. 계속해서 나를 따라오던 그 사람을 따돌린듯 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 두려웠다. 해가 떠도 이 짙은 숲 안에는 저녁하늘 같았다. 조금 있으면 이 곳엔 끝도 없는 암흑이 내릴 것이고 나를 제외한 밤에 눈을 뜬 동물들이 나를 노릴 것이다. 어차피 이 곳에 있으나 저 집 안에 있으나 나는 죽을 목숨이었나보다.
"하아.. 이게 뭐야.."
"여기 있었네?"
"아!!"
***
Rrrrrrrrr
"하.. 하아.. 하... 뭐.. 하.. 뭐야.. 하아... 지금.. 지금 나.."
꿈 속에서 깨어났다. 계속해서 꾸는 생생한 꿈들에 대해서 비밀을 푼 것 같았다. 허겁지겁 책을 폈다.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한 곳도 틀리지 않은 내용. 그 곳에는 아마도..
"아.. 여보세요?"
"어, 태형아. 김형사님이야. 이 새벽에 미안해."
"아니에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 내가 뭔가를 이상한게 있어서 연락했어."
"그게 뭔데요?"
"그게 글쎄.. 너희 아버지 책의 내용이 똑같이 꿈에 그려지더라고.."
"김형사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