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괴롭혔던 변백현5W. 백빠 변백현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게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더불어 그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정확히 사흘이 지나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변백현 생각으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변백현은 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게 내가 첫사랑이어서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나를 좋아해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쯤 그 질문에 답이 났을 것이다. 물론 답이 어떻게 났든 그 날 이후로는 내가 싫어졌겠지만. 그럼 나는 왜 변백현을 이토록 생각하는걸까. 그 날 상처를 준게 미안해서, 그래서 사과를 하고 싶어서? 아니면 나를 정말로 좋아했었는지 궁금해서? 것도 아니면… 내가 변백현을……. “……미친.” 혼자 중얼거리며 이불을 걷어찼다. 손에 쥐고 희미한 달빛에 비춰 한시간을 넘게 보았던 명함을 침대 옆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갔다. 독한 담배연기가 필요한 밤이었다. 오늘 역시 변백현은 찾아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분명 변백현은 내 눈물 섞인 부탁을 들어준 것일 뿐인데 난 왜 은근슬쩍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건지. 다른 손님들을 상대하다가도 네 생각은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다. 이렇게 잠시 대기실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을 때 조차. 아무 생각 하기 싫은데 왜 머리가 하얘지면 하얘질수록 네 얼굴은 더 선명해질까. 그때 옆에 두었던 내 휴대폰이 진동을 울려댔다. 그 진동이 울리는 순간조차 혹시 변백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일이 없을거라는 거 알면서도 말이다. 액정을 확인하니 [엄마]라는 생소한 이름이 떴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근 세달만의 일이었다. 생소하다고 표현하긴했지만 서로 싸우거나 사이가 안좋은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초반 아빠의 사업이 완전히 망하고 부모님은 갈라섰다. 호적은 엄마 쪽에 올라가있었지만 나는 누구와도 함께 살지 않았다. 내가 양아치로 살았던 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둘은 산더미처럼 불어난 빚을 갚느라 바빴고 나는 나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 삶을 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우면 그리울수록 더 밖으로 나돌았고 둘은 나를 낳아준 사람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님을 스스로 되새겼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엄마와 아빠를 사랑했다. 엄마는 재혼을 했고 새살림을 차렸고 새아들까지 낳았으며 아빠는 내게 단 한번도 연락한 적 없었지만 난 여전히 둘을 사랑했다. 나만 사랑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여보세요.”[에리야, 엄만데 혹시 최근에 나 찾는 사람들 너한테 찾아간 적 있니?]“네? 아뇨, 없어요.”[다행이다. 에리야, 엄마 말 잘들어. 몇달 간은 너네 집 들어가지말고 다른데서 지내, 알았지?]“갑자기 그게 무슨.. 뭔 일 있어요, 엄마?”[무슨 일은. 없어 그런거. 집 들어가지말고 아침에 일 나갈 때나 들어올때나 조심히 다니고. 응?]“그러니까 왜 그래야 되는데요.” 엄마는 다급해보였다. 잘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내게 갑자기 전화해 몇달 간 집에 들어가지 말고 일자리까지 조심히 다니라는게 무슨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2년 전 이 곳에 들어오고 나서 엄마에게는 보수가 괜찮은 일자리를 구했다고 했었는데 엄마는 아직도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모른 채 내 말만 믿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고 묻자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가 기나긴 침묵 후에 힘겹게 입을 떼는 듯 내게 물었다. [……저, 에리야. 너 혹시… 돈 좀 있니?]“얼마나요?”[구천…정도.]“네? 저한테 그렇게 큰 돈이 어디있어요...! 엄마 혹시 또 빚 졌어요?”[미안, 오랜만에 전화해서 이런 얘기나 하고… 끊자, 건강히 잘지내고 조심해서 다녀.] 내가 뭐라고 말할 틈 없이 전화는 끊기고 말았다. 사실 9천만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가 놀라 전화를 끊을 뻔 했다. 엄마는 분명 재혼 후 돈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뭘 했길래 9천만원이나 필요한건지. 나의 매달 수입은 200만원 남짓한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사채까지 끌어다 빚을 막으며 한달에 이자 내기에도 힘겨워하는 아빠를 도와주기 위해 모두 아빠 통장으로 들어갔기에 별 달리 돈을 모을 수 없었다. 아무리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 것이다.나는 끊겨버린 화면을 보다가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응, 에리야.]“내가 물었잖아요. 엄마 빚졌냐고. 빚쟁이들이 나까지 찾아온다고 했어?”[……그래. 엄마 빚졌어.] 빚. 이제는 지긋지긋해질법도 한데 부모님은 항상 그 빚이라는 덫 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셨다. 나는 짜증이 났다. 아빠 그렇게 살고 있으면 됐지, 엄마까지 왜 이리 허덕이며 살고 있는지 답답했다. “아니, 대체 왜? 재혼하고 괜찮아졌다며.”[아들이 내 이름으로 보증을 선게 있어서….]“엄마 미쳤어? 아무리 아들이라도 무슨 보증을 서!”[어쩔 수가 없었어. 애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남편도 사업난이라 말도 못하고.]“..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건데요.”[너는 신경쓰지마, 에리야. 너는 내가 아까 말한대로 잠깐 집 들어가지말고 직장만 조심해서 다니면 돼. 알았지?]“…끊어요.” 전화를 끊고 벽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옛날 기억이 흐리게 떠오른다. 그때도 집에 항상 사람들이 찾아왔었지, 엄마랑 아빠는 어딨냐면서 집안에 온 물건을 던지고 때려부시기도 했고. 엄마와 아빠는 그들에게 언제나 애원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나가 술집을 전전하며 놀았다. 그때의 내 탈선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그랬었다고.엄마와의 대화를 잊어보려했지만 잊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람들이 찾아와 내게 협박을 하는 것보다도 엄마가 어떻게 9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만들지가 걱정됐다. 가뜩이나 신용불량자일텐데. 그 순간 변백현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내가 정말 많이 미웠다. 이제 변백현은 정말로 안오려고 마음 먹은 듯 했다. 거의 2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아니 사실 조금은 했을지도 모르지만 변백현이 보이지 않는 건 오로지 내가 자초한 일이니 아쉬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었다. 이젠 정말 안오려나보다, 하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어쩌면 변백현일거라고 생각했다. 바보처럼. “여보세요?”[한에리씨 되시죠?]“네, 누구세요?”[니 엄마 어딨어?]“…….”[니 엄마가 못 갚으면 니가 갚,] 받질 말았어야하는거였는데. 재빨리 전화를 끊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아까의 번호로 미친듯이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전원을 끄고 대기실에 앉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을 했다. 전화번호는 알아냈다해도 호적상에는 주소가 엄마 집으로 되어있으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찾아오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알아내기전에 짐이라도 빼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집 앞까지 택시를 타고 가지만 오늘은 좀 멀찍이 내려선 집 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설마 집까지 찾아왔겠어? 어떻게 찾아, 호적에도 안나와있는 집을… 하며 걷는데 저 멀리 내가 사는 빌라에서 대여섯명의 남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커다랗게 주절대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씨발, 이년은 어디로 토낀거야.”“애미가 안갚으면 얘가 갚아야되는데.”나는 재빨리 옆 골목길로 들어가 커다란 분리수거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 괜히 눈물이 났다.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집 앞을 계속 남자들이 지키고 있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고 결국 다시 가게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가게로 오자마자 휴대폰을 잠깐 켜보았지만 아니나다를까 무섭게 전화가 와 1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꺼야만 했다. 나를 찾아냈다는 사실보다 엄마와 연락할 수 없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내 마음 어디선가 빨간 비상벨을 울려댔다. 돈을 마련해야했다. 매니저는 전날과 옷이 똑같은 날 보며 물었다. “어제 외박했어?”“…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저, 혹시 매니저님.”“왜.”“……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매니저는 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왜, 뭔데 말해봐. 한번 더 나를 채근한 매니저에게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보았다.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나 해서요.”“돈? 얼마나?”“…빌려주실 수 있을만큼요.”“참나, 돈 엄청 급하나보다 너? 뭘 했길래 돈이 그렇게 필요해? 나 지금은 얼마 없는데.”“아, 아니에요. 그냥 꺼내본 말이에요. 친구 사업이 좀 잘 안되서. ” 여전히 매니저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내게 친구 따위 없는거 뻔히 아는 사람에게 별 같지도 않는 핑계를 댔으니. 나는 어색하게 웃고는 대기실로 들어갈 뿐이었다. 엄마가 어떻게든 돈을 구하고 있겠지, 신경쓰지말자, 잠깐만 숨어있으면 돼. 나를 위로하며. 퇴근하며 근처 공중전화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아빠에게 전화해보았지만 아빠 또한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자리에 주저앉아 그냥 눈을 감고 자버리고 싶었다. 이러다 내가 일하는 가게까지 찾아오는 건 아닐지 걱정됐다. 일단 집 안에 있는 짐을 챙겨 가게에 오자는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내려 집을 살피자 다행히 남자들은 없어보였고 눈치를 보며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집 문고리가 덜렁거렸다.집 안은 쑥대밭이나 다름 없었다. 가구들이 성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려있었다. 내가 가진 가방 중 가장 큰 가방에 옷가지들과 필요한 물건들을 구겨넣는데 문득 침대 옆 쓰레기통에 버려둔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변백현의 명함을 주워 내 주머니에 넣었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걸 챙겨야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가방에 옷가지들을 챙기는 것처럼. “…아니, 그 년 지금 아예 다른데서 살고 있는 거 아닐까요?”“모르지. 짐은 챙기러 한번은 올 거 아냐.”“통화기록 보니까 애미랑 연락한 흔적도 없고….수중에 돈 한푼도 없는 거 같던데.” 그때 밖에서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짐을 놔둔 채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 작은 방에서 숨을 곳이라고는 이 침대 밑 밖에 없었다. 침대 밑으로 트여있는 얇은 시야에 여러명의 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 숨을 꾹 참았다. “뭐야, 씨발. 이 년도 토낄라고 짐싸놨었나본데?”“근데 짐이 여기 그대로 있는데요?”“짐 싸다가 숨은거 아닌가 몰라.”“설마요. 숨을 데도 없는데.” 온 몸에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섰다. 나는 평소 잘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이럴때만 찾아서 미안하지만 제발 도와달라고. 남자들은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집안을 기웃댔다. “애미년은 꼴랑 오천주고는 잠수를 타고 딸래미는 집구석엘 안들어오고. 집안 알만하다. 참.”“그래도 반은 받아냈으니까.. 이 집 보증금 천만원은 되지 않을까요? 안되려나.”“이런 골방이 천만원이나 하겠냐? 한 오육백 하겠구만.”“이 기집애는 언제 집구석엘 겨들어오는거야. 애미를 찾아내든 돈을 갚든 둘 중에 하난 해야지, 딸이.” 무서웠다. 내 귀에 심장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들킬 것 같았다. 정말 무서웠다. 숨이 막혀와 최소한으로 숨쉬려 발버둥을 치고 두려움에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하는 데를 찾아가봐야되나. 얘 어디서 일하는지 아직도 못찾았어?”“술집 여잔가봐요. 그쪽 관련 일하는 친구가 어디서 본 것 같다니까 금방 찾을 것 같아요.”“술집년이라고? 돈 못 갚으면 몸으로 떼우면 되겠네.”“술집년 아니라도 그렇게 해야죠.” 남자들은 지들끼리 낄낄 대다 애들아, 밖에서 기다리자. 하며 우르르 집에서 빠져나갔다. 문고리가 고장난 문이 덜렁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나는 짐을 챙겨 겨우 비상문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나왔고 나오자마자 미친듯이 달려 택시를 잡았다. 그제서야 손발이 떨리며 눈물이 났다. * 8년만에 마주한 그녀는 생각보다 초라했고, 생각보다 예뻤다. 웃을 때 들어가는 보조개도 여전했고. 저따위 기집앤 내가 아버지 회사만 물려받으면 가만 안뒀는데. 그래, 나는 분명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만해도 그렇게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미국 가서 경영공부를 하게 되면 저런 여자앤 널리고 널렸을거야, 라고. 그러나 그건 나의 커다란 착오였다. 나의 첫 연애가 늦은 덕분도 그녀이며 다른 사람들을 맘껏 사랑하지 못한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세월에 못이겨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8년을 가슴 속 한켠에 지니고 있었던 그녀를 막상 마주했을 땐 별 것이 없었다. 그렇게 반갑지도 새롭지도 감정에 확신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익숙함, 그것만은 선명했다. 8년만에 보는 그녀는 아직도 내게 익숙했다. 그때처럼 익숙하게 그녀를 보았고, 그녀와 말했고, 그녀가 예뻤고, 심장이 뛰었다. 빠르게. “부사장님, 내일 아침 일곱시에 회의있습니다.”“…….”“…부사장님?”“어.” 윤비서는 요즘 자꾸만 어떤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는 것 같은, 쉽게 말하자면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백현을 자주 마주했다. 말을 한번 하면 못알아듣고 일처리에 늦장을 부리는가하면 자꾸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누가봐도 한에리라는 여자를 만난 후로부터 바뀐 것 같았다. 그 술집에 가지 않은 게 일주일이 넘었고 백현이 저런지도 일주일이 넘었으니 말이다. 백미러로 슬쩍 본 백현은 역시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휴대폰은 업무 외엔 하루에 다섯번 미만으로 보는 사람이 말이다. 윤비서는 작게 한숨을 쉬곤 말했다. 내일 아침 일곱시에 회의있으시다고요. 백현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눈치 챌만큼 그는 모든 신경이 그녀에게 몰두되어 있었다. 좀처럼 다른 것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눈은 산처럼 쌓인 자료들을 읽어내려가고 있었지만 정작 머릿 속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우는 건 얼굴이, 백현이 읽고있는 리포트 위에 그려졌다. ‘난 너 진짜 싫어. 난 네 얼굴 보기가 힘들어. 불편해. 역겹다고.’‘너만 보면 내가 한심해서 견딜수가 없다고, 알아?’ 말들은 화살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 그러나 화는 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너무 가여워서, 불쌍해서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내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말하면 변백현은 웃을 뻔 했다. 그게 귀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라면 변태라고 생각하려나. 18살엔 단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지금와서 마주한 그녀는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새로웠다. 그때는 몰랐던 얼굴들을 그는 발견했다. 처음 그녀가 울며 그런 말을 했을 땐, 내가 나타나는게 그녀에겐 괴로움이고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들다면 더 이상 그녀 앞에 나타나지 말아야지 싶었다. 그녀가 첫사랑이기때문에 못잊었든 지금도 좋아하고 있어 못잊었든 그게 그녀에게 고통이라면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제 관심 가지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한지 일주일이 되는 날. 변백현은 확신했다. 자신은 한에리를 아직도 좋아하고 있음을.고등학교 시절 제 자신을 하루가 멀다하고 괴롭힌 여학생을 짝사랑하고 아직까지도 그 별같지 않은 짝사랑의 끈을 놓지 못해 허우적대는 남자, 변백현은 제 자신조차도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변백현은 도저히 그녀에 대한 관심을, 생각을, 애정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우는 건 싫은데.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서 일주일이 되고 또 일주일이 됐다. 겨우 2주 가량을 못 본것 뿐인데 눈 앞에 그녀가 아른거려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간 몇번의 연애를 하면서도 없었던 일이었다. 2주의 시간은 변백현이 8년 간 지녔던 18살의 서툰 감정을 잊게 하지 못하였다. 더 증폭시켰을 뿐. “나 잠깐 나갔다올게.” 그녀를 보지 못한 지 2주 하고 이틀이 지난 날. 결국 변백현은 회사에서 무작정 차키 하나를 들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비서실에 앉아있던 윤비서가 벌떡 일어나 어딜 가냐고 물었지만 변백현은 대충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그가 향한 곳은 당연히, 그녀가 일하고 있는 술집이었다. 당연하지만 모든게 그대로였다.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변백현이 들어가자 로비에 있었던 매니저가 놀란 눈치로 아는 체를 해왔다. “변사장님? 예약도 없이 여긴 어쩐일로?”“에리… 아니, 한나 어디있습니까?” 변백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그녀를 찾았다. 매니저는 급하게 그녀를 찾는 듯한 백현을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한나씨 그만 뒀는데?”“……예?”“한나 얼마 전에 그만 뒀어요, 여기.” ▼Oh Wonder - Lose It암호닉 ♡ (Ctrl+f 누르고 찾으면 더 쉬워용)우리니니 삼김 찰거머리 상콤한레몬 레몬사탕 큥들큥들 순댕이 빛나는 밤 야옹냐옹 쀼쀼 블루칵테일 한겨울밤 꽃이찬 큐이 버블티 증원 에이스에스 핫초코 곰국지색 복숭아 큐울 별다방커피 큥카프리오 올봉 말랑 센센 할렐루야 길피수 달로와요 라이또 호이호잇 알찬열매 끼룩끼룩 급똥 오렌지 복동 단이 동도롱딩딩 와대박 고사미 빵 산낙지 안나 구금 몽이 봄날같은백현 4랑둥이경수 고슈가 마요마 우주 우랴기 두둠두둠 슈로롱 이퓨 비바 클쓰마스 유라온 뿡뿡이용 융 큥큥큥 맙소사 백큥큥큥 차녈아난너뿐이야 에엑소오 지호 크러쉬온유 감자 여리 큥이랑슨이랑 김민석장326 쎄후냐 아도라 호빗 꾜미 뭉이 박변김장도오 돌하르방 박찬열치아세포 예찬 로카멜 움치킨 목욕가운 비쇼 0304ㅇㅈ 건포도 뿌뿌 버덕 널만난봄 백현아 지호 패러슛 거봉 버덕 에리나 콩콩 치킨첸 미세모 퓨어 아몬드 0616 갈치 맞춤법 초코칩 종이니니 9094워더 그뉵쿠키 미니롱 찰리 영원 변가락 미적 꼬꼬댁 열부 대아 열매점 쓰니워더 자킬 쁌쁌 하트 동원참치 꿀꿀이 첸쇼 물처럼 몽구몽룡 존느멋 시동 또렝 체니첸 자라 키득키득 꿀꿀이 민트초코 민슈프림 바자다가 아퀼라 1다다 미니언 바닐라라떼 치킨 죄송합니다수호입니다 킹콩홍콩 님 감사합니다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하나하나 읽으면서 주먹으로 입 틀어막는다능.. 감덩의 눈물 참느라..ㅜ사랑해여..제목에 변백현을 넣었지만 과연 백현과 이뤄질지는 의문입니다 여러분. 낄낄. +암호닉은 최근편에!♡++댓글은 작가의 힘입니다ㅠㅠㅠㅠㅠ추천은 작가의 에너지 흐흐
내가 괴롭혔던 변백현
5
W. 백빠
변백현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게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더불어 그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정확히 사흘이 지나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변백현 생각으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변백현은 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게 내가 첫사랑이어서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나를 좋아해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쯤 그 질문에 답이 났을 것이다. 물론 답이 어떻게 났든 그 날 이후로는 내가 싫어졌겠지만. 그럼 나는 왜 변백현을 이토록 생각하는걸까. 그 날 상처를 준게 미안해서, 그래서 사과를 하고 싶어서? 아니면 나를 정말로 좋아했었는지 궁금해서? 것도 아니면… 내가 변백현을…….
“……미친.”
혼자 중얼거리며 이불을 걷어찼다. 손에 쥐고 희미한 달빛에 비춰 한시간을 넘게 보았던 명함을 침대 옆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갔다. 독한 담배연기가 필요한 밤이었다.
오늘 역시 변백현은 찾아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분명 변백현은 내 눈물 섞인 부탁을 들어준 것일 뿐인데 난 왜 은근슬쩍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건지. 다른 손님들을 상대하다가도 네 생각은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다. 이렇게 잠시 대기실에서 눈을 감고 쉬고 있을 때 조차. 아무 생각 하기 싫은데 왜 머리가 하얘지면 하얘질수록 네 얼굴은 더 선명해질까.
그때 옆에 두었던 내 휴대폰이 진동을 울려댔다. 그 진동이 울리는 순간조차 혹시 변백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일이 없을거라는 거 알면서도 말이다. 액정을 확인하니 [엄마]라는 생소한 이름이 떴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근 세달만의 일이었다. 생소하다고 표현하긴했지만 서로 싸우거나 사이가 안좋은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초반 아빠의 사업이 완전히 망하고 부모님은 갈라섰다. 호적은 엄마 쪽에 올라가있었지만 나는 누구와도 함께 살지 않았다. 내가 양아치로 살았던 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둘은 산더미처럼 불어난 빚을 갚느라 바빴고 나는 나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 삶을 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우면 그리울수록 더 밖으로 나돌았고 둘은 나를 낳아준 사람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님을 스스로 되새겼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엄마와 아빠를 사랑했다. 엄마는 재혼을 했고 새살림을 차렸고 새아들까지 낳았으며 아빠는 내게 단 한번도 연락한 적 없었지만 난 여전히 둘을 사랑했다. 나만 사랑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여보세요.”
[에리야, 엄만데 혹시 최근에 나 찾는 사람들 너한테 찾아간 적 있니?]
“네? 아뇨, 없어요.”
[다행이다. 에리야, 엄마 말 잘들어. 몇달 간은 너네 집 들어가지말고 다른데서 지내, 알았지?]
“갑자기 그게 무슨.. 뭔 일 있어요, 엄마?”
[무슨 일은. 없어 그런거. 집 들어가지말고 아침에 일 나갈 때나 들어올때나 조심히 다니고. 응?]
“그러니까 왜 그래야 되는데요.”
엄마는 다급해보였다. 잘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내게 갑자기 전화해 몇달 간 집에 들어가지 말고 일자리까지 조심히 다니라는게 무슨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2년 전 이 곳에 들어오고 나서 엄마에게는 보수가 괜찮은 일자리를 구했다고 했었는데 엄마는 아직도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모른 채 내 말만 믿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고 묻자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가 기나긴 침묵 후에 힘겹게 입을 떼는 듯 내게 물었다.
[……저, 에리야. 너 혹시… 돈 좀 있니?]
“얼마나요?”
[구천…정도.]
“네? 저한테 그렇게 큰 돈이 어디있어요...! 엄마 혹시 또 빚 졌어요?”
[미안, 오랜만에 전화해서 이런 얘기나 하고… 끊자, 건강히 잘지내고 조심해서 다녀.]
내가 뭐라고 말할 틈 없이 전화는 끊기고 말았다. 사실 9천만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가 놀라 전화를 끊을 뻔 했다. 엄마는 분명 재혼 후 돈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뭘 했길래 9천만원이나 필요한건지. 나의 매달 수입은 200만원 남짓한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사채까지 끌어다 빚을 막으며 한달에 이자 내기에도 힘겨워하는 아빠를 도와주기 위해 모두 아빠 통장으로 들어갔기에 별 달리 돈을 모을 수 없었다. 아무리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는 끊겨버린 화면을 보다가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응, 에리야.]
“내가 물었잖아요. 엄마 빚졌냐고. 빚쟁이들이 나까지 찾아온다고 했어?”
[……그래. 엄마 빚졌어.]
빚. 이제는 지긋지긋해질법도 한데 부모님은 항상 그 빚이라는 덫 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셨다. 나는 짜증이 났다. 아빠 그렇게 살고 있으면 됐지, 엄마까지 왜 이리 허덕이며 살고 있는지 답답했다.
“아니, 대체 왜? 재혼하고 괜찮아졌다며.”
[아들이 내 이름으로 보증을 선게 있어서….]
“엄마 미쳤어? 아무리 아들이라도 무슨 보증을 서!”
[어쩔 수가 없었어. 애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남편도 사업난이라 말도 못하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건데요.”
[너는 신경쓰지마, 에리야. 너는 내가 아까 말한대로 잠깐 집 들어가지말고 직장만 조심해서 다니면 돼. 알았지?]
“…끊어요.”
전화를 끊고 벽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옛날 기억이 흐리게 떠오른다. 그때도 집에 항상 사람들이 찾아왔었지, 엄마랑 아빠는 어딨냐면서 집안에 온 물건을 던지고 때려부시기도 했고. 엄마와 아빠는 그들에게 언제나 애원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나가 술집을 전전하며 놀았다. 그때의 내 탈선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그랬었다고.
엄마와의 대화를 잊어보려했지만 잊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람들이 찾아와 내게 협박을 하는 것보다도 엄마가 어떻게 9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만들지가 걱정됐다. 가뜩이나 신용불량자일텐데.
그 순간 변백현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내가 정말 많이 미웠다.
이제 변백현은 정말로 안오려고 마음 먹은 듯 했다. 거의 2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아니 사실 조금은 했을지도 모르지만 변백현이 보이지 않는 건 오로지 내가 자초한 일이니 아쉬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었다. 이젠 정말 안오려나보다, 하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어쩌면 변백현일거라고 생각했다. 바보처럼.
“여보세요?”
[한에리씨 되시죠?]
“네, 누구세요?”
[니 엄마 어딨어?]
“…….”
[니 엄마가 못 갚으면 니가 갚,]
받질 말았어야하는거였는데. 재빨리 전화를 끊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아까의 번호로 미친듯이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전원을 끄고 대기실에 앉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을 했다. 전화번호는 알아냈다해도 호적상에는 주소가 엄마 집으로 되어있으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찾아오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알아내기전에 짐이라도 빼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집 앞까지 택시를 타고 가지만 오늘은 좀 멀찍이 내려선 집 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설마 집까지 찾아왔겠어? 어떻게 찾아, 호적에도 안나와있는 집을… 하며 걷는데 저 멀리 내가 사는 빌라에서 대여섯명의 남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커다랗게 주절대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씨발, 이년은 어디로 토낀거야.”“애미가 안갚으면 얘가 갚아야되는데.”
나는 재빨리 옆 골목길로 들어가 커다란 분리수거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 괜히 눈물이 났다.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집 앞을 계속 남자들이 지키고 있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고 결국 다시 가게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가게로 오자마자 휴대폰을 잠깐 켜보았지만 아니나다를까 무섭게 전화가 와 1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꺼야만 했다. 나를 찾아냈다는 사실보다 엄마와 연락할 수 없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내 마음 어디선가 빨간 비상벨을 울려댔다. 돈을 마련해야했다. 매니저는 전날과 옷이 똑같은 날 보며 물었다.
“어제 외박했어?”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저, 혹시 매니저님.”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매니저는 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왜, 뭔데 말해봐. 한번 더 나를 채근한 매니저에게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보았다.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나 해서요.”
“돈? 얼마나?”
“…빌려주실 수 있을만큼요.”
“참나, 돈 엄청 급하나보다 너? 뭘 했길래 돈이 그렇게 필요해? 나 지금은 얼마 없는데.”
“아, 아니에요. 그냥 꺼내본 말이에요. 친구 사업이 좀 잘 안되서. ”
여전히 매니저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내게 친구 따위 없는거 뻔히 아는 사람에게 별 같지도 않는 핑계를 댔으니. 나는 어색하게 웃고는 대기실로 들어갈 뿐이었다. 엄마가 어떻게든 돈을 구하고 있겠지, 신경쓰지말자, 잠깐만 숨어있으면 돼. 나를 위로하며.
퇴근하며 근처 공중전화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아빠에게 전화해보았지만 아빠 또한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자리에 주저앉아 그냥 눈을 감고 자버리고 싶었다. 이러다 내가 일하는 가게까지 찾아오는 건 아닐지 걱정됐다. 일단 집 안에 있는 짐을 챙겨 가게에 오자는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내려 집을 살피자 다행히 남자들은 없어보였고 눈치를 보며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집 문고리가 덜렁거렸다.
집 안은 쑥대밭이나 다름 없었다. 가구들이 성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려있었다. 내가 가진 가방 중 가장 큰 가방에 옷가지들과 필요한 물건들을 구겨넣는데 문득 침대 옆 쓰레기통에 버려둔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변백현의 명함을 주워 내 주머니에 넣었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걸 챙겨야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가방에 옷가지들을 챙기는 것처럼.
“…아니, 그 년 지금 아예 다른데서 살고 있는 거 아닐까요?”
“모르지. 짐은 챙기러 한번은 올 거 아냐.”
“통화기록 보니까 애미랑 연락한 흔적도 없고….수중에 돈 한푼도 없는 거 같던데.”
그때 밖에서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짐을 놔둔 채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 작은 방에서 숨을 곳이라고는 이 침대 밑 밖에 없었다. 침대 밑으로 트여있는 얇은 시야에 여러명의 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 숨을 꾹 참았다.
“뭐야, 씨발. 이 년도 토낄라고 짐싸놨었나본데?”
“근데 짐이 여기 그대로 있는데요?”
“짐 싸다가 숨은거 아닌가 몰라.”
“설마요. 숨을 데도 없는데.”
온 몸에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섰다. 나는 평소 잘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이럴때만 찾아서 미안하지만 제발 도와달라고. 남자들은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집안을 기웃댔다.
“애미년은 꼴랑 오천주고는 잠수를 타고 딸래미는 집구석엘 안들어오고. 집안 알만하다. 참.”
“그래도 반은 받아냈으니까.. 이 집 보증금 천만원은 되지 않을까요? 안되려나.”
“이런 골방이 천만원이나 하겠냐? 한 오육백 하겠구만.”
“이 기집애는 언제 집구석엘 겨들어오는거야. 애미를 찾아내든 돈을 갚든 둘 중에 하난 해야지, 딸이.”
무서웠다. 내 귀에 심장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들킬 것 같았다. 정말 무서웠다. 숨이 막혀와 최소한으로 숨쉬려 발버둥을 치고 두려움에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하는 데를 찾아가봐야되나. 얘 어디서 일하는지 아직도 못찾았어?”
“술집 여잔가봐요. 그쪽 관련 일하는 친구가 어디서 본 것 같다니까 금방 찾을 것 같아요.”
“술집년이라고? 돈 못 갚으면 몸으로 떼우면 되겠네.”
“술집년 아니라도 그렇게 해야죠.”
남자들은 지들끼리 낄낄 대다 애들아, 밖에서 기다리자. 하며 우르르 집에서 빠져나갔다. 문고리가 고장난 문이 덜렁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나는 짐을 챙겨 겨우 비상문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나왔고 나오자마자 미친듯이 달려 택시를 잡았다. 그제서야 손발이 떨리며 눈물이 났다.
*
8년만에 마주한 그녀는 생각보다 초라했고, 생각보다 예뻤다. 웃을 때 들어가는 보조개도 여전했고.
저따위 기집앤 내가 아버지 회사만 물려받으면 가만 안뒀는데. 그래, 나는 분명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만해도 그렇게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미국 가서 경영공부를 하게 되면 저런 여자앤 널리고 널렸을거야, 라고. 그러나 그건 나의 커다란 착오였다. 나의 첫 연애가 늦은 덕분도 그녀이며 다른 사람들을 맘껏 사랑하지 못한 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세월에 못이겨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8년을 가슴 속 한켠에 지니고 있었던 그녀를 막상 마주했을 땐 별 것이 없었다. 그렇게 반갑지도 새롭지도 감정에 확신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익숙함, 그것만은 선명했다. 8년만에 보는 그녀는 아직도 내게 익숙했다. 그때처럼 익숙하게 그녀를 보았고, 그녀와 말했고, 그녀가 예뻤고, 심장이 뛰었다. 빠르게.
“부사장님, 내일 아침 일곱시에 회의있습니다.”
“…부사장님?”
“어.”
윤비서는 요즘 자꾸만 어떤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는 것 같은, 쉽게 말하자면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백현을 자주 마주했다. 말을 한번 하면 못알아듣고 일처리에 늦장을 부리는가하면 자꾸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누가봐도 한에리라는 여자를 만난 후로부터 바뀐 것 같았다. 그 술집에 가지 않은 게 일주일이 넘었고 백현이 저런지도 일주일이 넘었으니 말이다.
백미러로 슬쩍 본 백현은 역시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휴대폰은 업무 외엔 하루에 다섯번 미만으로 보는 사람이 말이다. 윤비서는 작게 한숨을 쉬곤 말했다. 내일 아침 일곱시에 회의있으시다고요.
백현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눈치 챌만큼 그는 모든 신경이 그녀에게 몰두되어 있었다. 좀처럼 다른 것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눈은 산처럼 쌓인 자료들을 읽어내려가고 있었지만 정작 머릿 속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우는 건 얼굴이, 백현이 읽고있는 리포트 위에 그려졌다.
‘난 너 진짜 싫어. 난 네 얼굴 보기가 힘들어. 불편해. 역겹다고.’
‘너만 보면 내가 한심해서 견딜수가 없다고, 알아?’
말들은 화살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 그러나 화는 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너무 가여워서, 불쌍해서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내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말하면 변백현은 웃을 뻔 했다. 그게 귀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라면 변태라고 생각하려나. 18살엔 단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지금와서 마주한 그녀는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새로웠다. 그때는 몰랐던 얼굴들을 그는 발견했다.
처음 그녀가 울며 그런 말을 했을 땐, 내가 나타나는게 그녀에겐 괴로움이고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들다면 더 이상 그녀 앞에 나타나지 말아야지 싶었다. 그녀가 첫사랑이기때문에 못잊었든 지금도 좋아하고 있어 못잊었든 그게 그녀에게 고통이라면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제 관심 가지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한지 일주일이 되는 날. 변백현은 확신했다. 자신은 한에리를 아직도 좋아하고 있음을.
고등학교 시절 제 자신을 하루가 멀다하고 괴롭힌 여학생을 짝사랑하고 아직까지도 그 별같지 않은 짝사랑의 끈을 놓지 못해 허우적대는 남자, 변백현은 제 자신조차도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변백현은 도저히 그녀에 대한 관심을, 생각을, 애정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우는 건 싫은데.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서 일주일이 되고 또 일주일이 됐다. 겨우 2주 가량을 못 본것 뿐인데 눈 앞에 그녀가 아른거려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간 몇번의 연애를 하면서도 없었던 일이었다. 2주의 시간은 변백현이 8년 간 지녔던 18살의 서툰 감정을 잊게 하지 못하였다. 더 증폭시켰을 뿐.
“나 잠깐 나갔다올게.”
그녀를 보지 못한 지 2주 하고 이틀이 지난 날. 결국 변백현은 회사에서 무작정 차키 하나를 들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비서실에 앉아있던 윤비서가 벌떡 일어나 어딜 가냐고 물었지만 변백현은 대충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은 당연히, 그녀가 일하고 있는 술집이었다. 당연하지만 모든게 그대로였다.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변백현이 들어가자 로비에 있었던 매니저가 놀란 눈치로 아는 체를 해왔다.
“변사장님? 예약도 없이 여긴 어쩐일로?”
“에리… 아니, 한나 어디있습니까?”
변백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그녀를 찾았다. 매니저는 급하게 그녀를 찾는 듯한 백현을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한나씨 그만 뒀는데?”
“……예?”
“한나 얼마 전에 그만 뒀어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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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Wonder - Los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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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하나하나 읽으면서 주먹으로 입 틀어막는다능.. 감덩의 눈물 참느라..ㅜ사랑해여..
제목에 변백현을 넣었지만 과연 백현과 이뤄질지는 의문입니다 여러분. 낄낄.
+암호닉은 최근편에!♡
++댓글은 작가의 힘입니다ㅠㅠㅠㅠㅠ추천은 작가의 에너지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