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괴롭혔던 변백현
8
W. 백빠
지금 생각해보면 변백현은 고등학생 때도 나를 잘 다뤘었다. 그때는 되려 내가 그를 잘 다룬다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내 마음처럼 네가 반응해준 적은 단 한번도 없음에도 나는 변백현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좀 멍청했었다. 넌 똑똑했었고. 판단하기도, 파악하기도 쉬운 나를 다루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고 끊임없이 너를 이겨먹으려고 하는 나를 넌 참 재밌어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네 아래에 있다. 여전히 날 재밌어하는 네 아래에, 보이지 않는 족쇄를 스스로 찬 채.
변백현은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나와선 내 옆에 앉았다. 옆에서 느껴지는 변백현의 온도에 갑자기 넓은 소파가 좁게 느껴져왔다. 너는 뒤에 등을 편히 기대 앉아선 리모콘으로 티비를 켰다. 나만 복잡하고 나만 생각이 많아진 듯한, 아무렇지도 않은 네 여유로움에 물끄러미 그 얼굴만 쳐다보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너 진짜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
“니가 날 좋아해서, 그거 뿐이야?”
그래, 모든 걸 다 떠나 너는 내게 어찌됐건 고마운 사람인 건 사실이었다. 은인임에는 틀림없다. 널 차갑게 내친 날 전화 한통에 데리러 온 것도, 따뜻한 집에 머물게 해준 것도, 빚을 갚아준 것도 모두 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고작 니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혹은 나를 네 옆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드려고 따위의 이유라기엔 과분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네게 해준 것도 앞으로 해줄 것도 없다는 걸 너가 더 잘 알텐데도.
그러나 넌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라는 듯 조금의 뜸도 들이지 않고 대답한다.
“어.”
그 대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간단하고 확실하며 단호했다. 그리고 너는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널 좋아해서, 그거 뿐이야.”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내가 했던 질문이 멍청했음을 깨닫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렇게 대답 할 것을 알면서도 물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리고 항상 같은 포인트에서 당황하는 나도 바보같고. 저 천연스러운 말투, 변백현의 주특기인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물고는 괜히 텔레비전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왜?”
또 한번의 멍청한 질문이었음을 모르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게 궁금했다. 고등학교 시절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너와 내가 재회했던 만남을 떠올려봐도 너가 나를 좋아하게 된 계기 혹은 이유가 될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 대체 왜 너는 이렇게까지 날 이렇게 좋아하는지 의아했다. 만약 내가 남자라면 나같은 여자애는 질색을 하며 친구로도 두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내 질문에 변백현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는 할 말이 있지만 하지 않는듯한 뉘앙스로 넘기듯 대답해버렸다.
“넌 몰라도 돼.”
내가 왜 몰라도 돼? 니가 날 좋아하는건데 당연히 알아야 하는거 아니야? 어째서 그걸 내가 몰라야 되는거야?,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구차하게 느껴질 것 같아 그냥 입을 꾹 다물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때 변백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손목을 잡곤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니 변백현이 내 눈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너 울었어?”
“…….”
진정시킨다고 한건데 아직도 발갛게 부어있었던 모양이다. 고개를 저으며 두 손으로 눈을 비비려는데 내 한쪽 손목을 잡고있던 변백현이 그러지 못하게 손에 힘을 줬다.
“그럼 더 빨개져.”
그리고 다른 손으로 내 눈가를 매만졌다. 따뜻했다. 변백현의 손.
“왜 울었어, 나 때문이야?”
“…….”
변백현은 나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너 때문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엄마 때문이기도 했고 나 때문이기도 했다. 완전히 너의 탓은 아니었지만 네 탓이 크기도 했다. 내가 왜 울었는지 이유들을 되새기다 또 다시 울고 싶어져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넌 몰라도 돼.”
그 대답에 변백현이 실소를 터트렸다. 넌 단순히 아까의 복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 이유를 네게 구구절절히 설명하다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 대충 얼버무린 것이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내가 얼마나 추할까 싶기도 하고. 내가 말한다해도 넌 이해하지 못할거다.
변백현이 이번엔 내 턱 끝을 살짝 잡곤 제 쪽으로 돌려 자신의 얼굴을 보게 만들었다.
”안 알려줘도 되니까 나 없을 땐 울지마.”
“…….”
“내 앞에서만 울어, 이제.”
나긋한 목소리는 내게 명령했다. 그 말도 안되는 명령에 난 충분히 인상을 찌푸리거나 성질을 낼 수 있었지만 마주한 네 눈빛이 날 간질거리게 만들어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저 짧게나마 이렇게 물을 뿐이었다. ..내가 왜? 너는 대답했다. 넌 몰라도 돼.
결국 내가 작게 웃고 말았다. 변백현은 웃는 날 보더니 자기도 웃었다. 항상 생각했던거였지만 변백현은 웃는게 참 예쁘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너가 과연 내가 어떤 애인지 알게 되도 날 좋아할 수 있을까? 너가 기억하는 그때의, 고등학생 때의 한에리보다 더 추락해있는 나를 알게 되어도?
“...넌 분명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실망할거야.”
항상 되풀이되는 우리,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게 나라는 것도 안다. 그냥 편하게 웃을 수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줄 수도 있는데 나는 언제나 분위기를 깨버리고 만다. 그건 나의 고질병이었다. 나는 애정을 받는다는 느낌이 불편하다. 그래서 누군가의 애정을 거부하고 싶어진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그랬다. 내가 학창시절 때 느꼈던 사람들의 ‘안달’은 애정이 아니었고 부모님은 자신들이 바빠 내게 관심조차 주지 못했고 나는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했지만 끝내는 받지 못했다. 그래서 만들어나간게 그 거지같은 관계론이었다. 두텁게 쌓여나가는 내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랑 받는다는 게 불편해졌다는 말보다 더 슬픈 말이 있을까.
그런데 나는 네 눈만 봐도, 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애정이라는 것이.
“난 니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 없어.”
“…….”
“너라서 좋아하는거야. 니가 한에리라서.”
여전히 니 말투는 담담했고 평소와 다를 것 없었지만 내 심장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변백현에게 들릴까 걱정될 정도로 빠르게 뛰어대는 심장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더이상 너와 눈을 맞추고 있을 수 없어 고개를 돌리려고했지만 내 턱 끝을 잡고 있던 변백현이 다시 자신을 보게 했다.
“나 피하지마.”
“……기분이 이상한 걸 어떡해.”
“참으라고 했잖아, 내가.”
심장은 얼만큼 피를 빠르게 돌게 만드려고 이렇게 펌프질을 거세게 해대는 걸까. 차마 눈은 마주치지 못한 채 눈을 밑으로 깔고 변백현의 회색 티셔츠를 보았다.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는게 무엇인지 조금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조금씩 나의 텅 비었던 퍼즐에 따뜻한 몇 조각이 채워졌다.
백현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고개를 들게 해 억지로라도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백현은 그녀에게 하고 싶어도 참는게 많았다. 보고싶어도, 손대고 싶어도, 붙잡아두고 싶어도, 말하고 싶어도 참았다. 아까 그녀가 왜 자신을 좋아하냐 물었을 때도 참아야했다.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는 가지고 싶어서다. 나는 널 가지고 싶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차가운 물이라도 들이켜야 주체할 수 없이 드는 그녀에 대한 소유욕이 누그러질 것 같았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난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려다댔다. 그리고 큰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었다. 한번도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텔레비전 소리가 이제서야 조금씩 들려왔다. 계속 이 집에 있다간 내가 더 이상해질 것 같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 옷을 찾으러 세탁실로 향했고 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백현과 마주쳤다.
“어디 가.”
“...세탁실에.”
“세탁실은 왜?”
“이젠 가야지. 너한테 신세도 많이 졌고..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은 꼬박꼬박 갚을게.”
“…….”
“쓸데없는 걱정은 안해도 돼. 나 어차피.. 너한테서 도망 못 가는거 알잖아.”
백현은 그녀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설마 내가 자기를 보내줄거라고 생각한건가. 이게 도망가는거랑 뭐가 달라, 에리야. 그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날 알면서도 일부러 이러는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건지.
“내가 너한테 돈 갚으라고 빌려준 거 같아?”
“…….”
“나 그 돈으로 너 산거야. 어디 못가게.”
“…….”
“그러니까 여기에 있어.”
너를 샀다, 라는 말이 기분이 나쁠수도 있는 말임에도 그녀가 어떤 말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이 곳이 아니면 딱히 머무를 곳이 없다는 걸 지금에와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엄마네 집으로 가면 되겠지, 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엄마 얼굴을 볼 자신도 없고 이유 있는 친절을 엄마에게 받는다면 구역질이 날 지도 몰랐다. 일하던 가게로 가자니 변백현이 너무 알기 쉬운 장소였고 아무 여관으로 가자니 돈이 문제였다.
“...그렇지만...”
하지면 변백현의 집에서 계속 지내기엔... 불과 얼마전까지 술집에서 근무했다고 하기엔 순진한 말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남자와 여자였고 동거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숙이고 어쩐지 얼굴까지 조금 붉히고 있는 걸 본 그는 저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어떻게 넌 고등학생 때보다 더 귀여워졌지.
“나 아무짓도 안해.”
“..어? 아니, 그런 거 때문에 그런거 아니야.”
“그럼 해도 돼?”
“…….”
어차피 그녀가 안된다고 해도 말을 들을 것도 아니면서 백현은 그녀가 앉은 소파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게 무슨, 무슨 소리야. 백현은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이끌었다. 나 배고파, 밥 먹자. 그녀는 마지못해 백현을 따라가면서도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제 자신을 힘껏 부정했다. 아닐거라고, 그래선 안된다고.
변백현은 항상 차지하는 입장이었다. 빼앗고 소유하는 입장. 누군가에게 양보하거나 빼앗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가지고 싶으면 가졌고 버리고 싶으면 버렸다. 누굴 위해 어떤 것을 포기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됐다. 가지고 싶은게 있다면 알아서 갖다 바쳤고 빼앗고 싶은게 있다면 알아서 그들이 내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왔다, 변백현은. 친구나 여자같은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친해지고 싶은 애들은 스스로 다가왔고 더 알고 싶은 애들은 스스로 자신을 내보였다. 한에리가 오랜시간 동안 자신만의 관계론을 만들었듯 백현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백현이 그녀를 옆에 두며, 어쩌면 가장 식상할지도 모르지만 신선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그가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알아서 바쳤던 세월에 그는 어떻게 해야 그녀를 제 것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걸 다 받아주기만 한거고. 백현이 미국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그녀를 잊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한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었을 것이다. 그 미련을 떨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떨쳐지지 않았다.
백현은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를 찾았다. 이제와서라도 그녀를 가져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손쉽게 제 손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와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려웠다. 아니, 그때보다 더.
그는 얌전히 눈을 감고 잠에 빠져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내 것이 되진 않았지만 이제서야 그녀를 내 옆에 두게 되었다. 더 이상은 조금도 멀어질 수 없다. 그는 잠자고 있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곤 방을 나섰다. 이토록 발이 안 떨어지는 출근길은 난생 처음이었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아, 네. 금방 나갈게요.”
양치중인 바람에 발음이 엉성했지만 아주머니는 알았어요, 하며 대답했다. 이 집에 온 첫 날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칫솔은 기어코 내 칫솔이 되고야 말았다. 내가 이래도 되는건가 싶었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고 새로운 방법을 알아볼 때까지만 있기로 마음 먹었다. 변백현이 순순히 보내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 나흘이 되니 처음엔 깜짝 놀랐던, 아침마다 방문을 두드리는 아주머니의 노크도 익숙해졌다.
아주머니는 나의 아침 겸 점심을 차려주고 마저 집안일을 끝내면 네시쯤 집으로 돌아가셨고 변백현이 집에 돌아오는 여덟시까지는 나 혼자 보내야했다.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 크나큰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 따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2년간 밤마다 술과 아저씨들에 시달리며 억지로 웃음지어야 했던 일상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 없었다. 2년간 꿈꿔오던 평범함에 가까운 일상이기도 했고.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드는 그런 평범함. 그러나 엄마에게서 가끔 오는 문자메세지는 나를 가끔 우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곤 했다.
[전화 안받네.. 지금은 어디서 살아? 지낼 곳 없으면 우리 집으로 와]
[딸 밥은 먹었어? 전화 좀 받아봐]
[덕분에 아들하고 남편 안정적으로 돌아왔어 어디야? 얼굴 좀 보자]
등등. 엄마라는 이름으로 문자가 오면 삭제를 눌렀다가도 차마 ‘예’를 누르지 못하고 읽기 마련이었다. 읽고 나서 다시 삭제 버튼을 누르지만 나는 결국 ‘아니오’를 누르고 만다. 이럴 때면 담배가 그리워졌다. 일주일 가까이 당한 강제 금연에 그냥 이번에 끊어버리자, 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럴 때면 지독한 담배연기가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딸 돈 갚아주고 싶어 제발 엄마 얼굴 봐주라 응?]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자도 모잘라 엄마는 내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지잉, 지잉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보다가 배터리를 빼버리곤 거실 벽의 시계를 한번 확인했다. 저녁 7시. 아직 변백현이 돌아오려면 한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그의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를 벗고 내 방 침대 옆에 고스란히 접혀있는 내 옷을 걸쳤다. 이 옷을 입고 잔뜩 비에 젖은 채 변백현의 품 안에서 이 집으로 들어온 게 떠올랐다. 그때 내 다리에 남았던 멍들은 서서히 색이 옅어져가고 있었다.
일단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얼마만에 맡는 바깥공기인지, 숨을 크게 들이쉬자 머릿 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오기는 했는데 돈도 없을 뿐더러 어디로 가야 뭐가 나오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으리으리한 오피스텔 건물들만 있고 옆에 공원이 하나 있었지만 사람 한명 지나다니지 않아 한적했다. 오랜만에 바깥에 나온 김에 산책이나 하고 들어갈까 싶어 공원으로 향했는데 저쪽 벤치에 어떤 여자가 혼자 담배를 피고 있었다. 궁색하지만 담배 연기라도 맡으려고 벤치로 가까이 다가가 여자 옆에 살짝 앉으니 날 슬쩍 본 여자가 말을 걸었다.
“…한 대 필래요?”
“네?”
“아까부터 저쪽에서 내 담배만 보면서 걸어오던데.”
“……아.”
”여기.”
내가 너무 티날정도로 쳐다봤나… 조금 미안했다. 여자는 담배 한개비를 내밀었고 라이터를 붙여주었다. 이빨 사이에 물려지는 가느다란 막대. 타들어가는 담배를 문 내 입, 그리고 내 폐부를 찌르는 고약함에 이제야 살 것만 같았다. 돈이 없어서 어떻게 담배를 구하나 싶었는데 운이 좋았다. 한모금 깊이 들이마시자 옆에 있던 여자가 물었다.
“집에서 담배 못 피게 해요?”
“음, 네. 뭐. 그쪽도 그래요?”
“아뇨, 나는 아랫집에 애기 때문에 나와서 펴요. 테라스에서 펴도 지랄하길래 그냥 공원에서 피죠.”
내가 여자의 말에 큭, 웃자 여자도 덩달아 웃었다.
“그 애기 엄마 얼굴이 진짜 웃겨요. 항상 올라올때마다 화장을 하고 와요.”
“그래서 뭐라고 그러는데요?”
“이런 표정을 하고 목소리는 이렇게. 담배 피지 마세욧! 이래요.”
나는 아까보다 좀 더 크게 웃었다. 내 나이 또래거나 나보다 조금 더 많아보이는 여자는 쾌활하고 웃겼다. 그렇게 둘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시껄렁한 대화를 하다가 나는 별안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가봐야된다며 벤치에서 급히 일어나자 여자는 어깨를 으쓱 거렸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다음에 또 봐요.”
“네, 오늘 재밌었어요.”
“이거 가져가서 피고 싶을 때 몰래 펴요.”
여자는 여섯개비 정도 남은 담뱃갑을 내밀었고 나는 받을까말까 고민하다 고맙다고 말하며 받아들었다. 그리고 아직 여덟시가 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집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오피스텔 입구 비밀번호도, 도어락 비밀번호도 모르는 상태였다. ...아, 진짜 나 등신같다. 어떻게 들어가야하지 고민하며 입구 앞으로 갔지만 세대 별 비밀번호를 눌러달라는 여자의 음성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때 안에서 누가 나와 저절로 문이 열렸다. 오늘은 진짜 운이 좋은 날이구나!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려는데,
“……한에리?”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소리.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앞에 서있는 건 변백현이었다. ...어, 왜 니가 안에서..? 잔뜩 풀어헤쳐진 넥타이에 헝크러진 머리, 이마엔 미세한 땀까지. 변백현은 내 손에 들린 담뱃갑을 한번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고 날 빤히 쳐다보다 영문 모를 얼굴로 서있는 날 제 품에 와락 껴안았다.
*
“나 오늘 일찍 퇴근한다.”
“예? 아직 결제서류 남았..! 부사장님!”
윤비서는 백현의 말에 벌떡 일어나며 아직 쌓여있는 미결제서류들을 가르켰지만 그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원래 퇴근 시간은 7시 남짓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앞 당겨 6시 30분에 퇴근을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에리를 조금 더 빨리 보기 위해? 하루 종일 심심하게 있을 그녀에게 외식을 나가자고 하거나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주거나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실에 없길래 에리야, 하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지만 답이 없었고 자나싶어 그녀의 방에 한번, 씻나 싶어 화장실에도, 아니면 부엌에, 혹은 내 방에, 그렇게 방 하나하나 들여다보다가 그녀가 정말로 이 집안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고나서야 그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다시 그녀의 방으로 가보았다. 역시나 첫 날에 입고 들어왔던 옷이 없었다. 급하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원은 꺼져있었다. 그녀가 없어졌다. 목을 죄여오는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끌러내렸다. 머리를 헝클이며 윤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사라졌다,한에리가. 심장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었고 불안했다. 초조했다. 그때처럼 또다시 그녀가 숨어버렸을까봐,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을까봐. 내가 너무 부담을 줬나, 아니면 욕심을 부렸나, 나흘 사이 내가 뭐 잘못한거라도 있나. 백현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다 그 사이 그녀가 더 멀리 가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수만가지의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어디로 간걸까, 벌써 얼마나 멀리 갔을까, 어떻게 갔을까……
그리고 백현이 그녀를 다시 마주한 것은 어이없게도 오피스텔 입구였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그녀가 보였다.
“……한에리?”
그녀는 들리는 자신의 이름에 놀란 얼굴로 백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담뱃갑이 들려있었다. 담배 구하려고 나갔다왔구나. 백현은 그 순간 안도하기도 했지만 어이가 없기도 했다. 고작 담배를 구하러 잠깐 나갔던 그녀 때문에 내가 이토록 핀트가 나가있었다는게. 화를 내고 싶었다. 왜 말도 없이 사라졌냐고, 그까짓 담배는 안피우면 그만 아니냐고. 그러나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녀를 품에 안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백현은 그녀를 꽉 껴안았다. 그리곤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너 진짜 사람 미치게 한다.”
“…….”
“난 니가 또 사라지는 줄 알고, 진짜...”
왜 나는 그 짧은 시간 사이 고작 너 하나 때문에 핀트가 나갔었는지. 백현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그녀를 두 팔로 더 꽉 껴안을 뿐이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빠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이 여자는 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여전히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는데 나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가기만 한다.
그때, 그녀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그의 등을 톡, 도닥였다. 백현이 그녀의 어깨에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귓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
“나 도망 안 가, 백현아.”
“…….”
처음으로 백현은 느꼈다. 아주 작은 틈이 그녀의 마음에 생겨났다는 것을. 아주 조금, 그러나 누군가 들어가기엔 충분한 그런 틈이.
D'Sound - Who says this is love?
암호닉 ♡ |
우리니니 삼김 찰거머리 상콤한레몬 레몬사탕 큥들큥들 순댕이 빛나는밤 야옹냐옹 쀼쀼 블루칵테일 한겨울밤 꽃이찬 큐이 버블티 증원 에이스에스 핫초코 곰국지색 복숭아 큐울 별다방커피 큥카프리오 올봉 말랑 센센 할렐루야 길피수 달로와요 라이또 호이호잇 알찬열매 끼룩끼룩 급똥 오렌지 복동 단이 동도롱딩딩 와대박 고사미 빵 산낙지 안나 구금 몽이 봄날같은백현 4랑둥이경수 고슈가 마요마 우주 우랴기 두둠두둠 슈로롱 이퓨 비바 클쓰마스 유라온 뿡뿡이용 융 큥큥큥 맙소사 백큥큥큥 차녈아난너뿐이야 에엑소오 지호 크러쉬온유 감자 여리 큥이랑슨이랑 김민석장326 쎄후냐 아도라 호빗 꾜미 뭉이 박변김장도오 돌하르방 박찬열치아세포 예찬 로카멜 움치킨 목욕가운 비쇼 0304ㅇㅈ 건포도 뿌뿌 버덕 널만난봄 백현아 지호 패러슛 거봉 버덕 에리나 콩콩 치킨첸 미세모 퓨어 아몬드 0616 갈치 맞춤법 초코칩 종이니니 9094워더 그뉵쿠키 미니롱 찰리 영원 변가락 미적 꼬꼬댁 열부 대아 열매점 쓰니워더 자킬 쁌쁌 하트 동원참치 꿀꿀이 첸쇼 물처럼 몽구몽룡 존느멋 시동 또렝 체니첸 자라 키득키득 꿀꿀이 민트초코 민슈프림 바자다가 아퀼라 1다다 미니언 바닐라라떼 치킨 죄송합니다수호입니다 킹콩홍콩 비글 녹차 휘휘 뽀로로 붕붕이☆ 하트경수 자몽이제일조아 나이키 브디엘로 동동 코코니 투투 045692 체니베니 흥흥 오호랏 오렌지 구회장 동룡 끄아앙 무지개소녀 스무살의봄 귤형여친 종대쓰 봄날 양화대교에 눈사람 임세명 뺑덕 애를도라로 79 커피사탕 다니 누누 유채 훈이랑쑤 109 믹파 체니베니 마운틴 쩐딩큥니 얏삐 첼리 빠밤빠밤 아련 육쌈냉면 다녀오세훈 빽빽 봉봉 단이 홍시이유 미미 백도라도 백현별 귤좋아 팅커벨 자몽은자몽자몽 혀니허니 데세랄 백현빛 늉늉룡 김다정 lobo12 오여미 섭사 잠시 방가방가햄토리 윤이짐 우유퐁당 나나 박찬열치아세포 똥잠 그린티라떼 슈초 됴됴륵 상상 종대큥큥 광대 시나몬 소용돌이 체리 끼억끼억 님 감사합니다 ♡ |
ㅠㅠㅠ이번엔 조금 늦게 왔죠ㅠㅠㅠ? 미안해요 여러분들...(ㅜ_ㅜ)(___)
아 그리구... 저 대학 붙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여러분들께 제일 전해드리구 싶었답니다ㅠㅠㅠㅠ후에에ㅠㅠㅠㅠㅠ모든 입시생 화이팅ㅠㅠㅠㅠ
+ 암호닉은 최신편에..!
++ 추천과 댓글은 작가의 힘...♥아잣아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