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람이는 전학 첫날엔 항상 그래왔듯 혼밥을 위해 가방에서 이어폰을 챙겼다.
그리도 동민과 석우를 한 번씩 쳐다보곤 "점심 맛있게 먹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을까 석우가 하람이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뭐야? 같이 밥 먹을 사람 있어?"
"...어? 아니?"
"우리랑 같이 먹자."
석우의 말에 하람이 "그래도 돼?" 하며 그를 쳐다봤고 석우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하람이는 조심스레 동민을 보았다.
문제지를 풀고 있던 동민은 하람이의 시선을 느꼈는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고 석우를 한번 쳐다보던 동민은 "그러든가." 하며 작게 끄덕였다.
"성남에서 왔다고 했나? 그럼 고향이 거기야?"
"아니, 태어난 건 속초. 거기서 제일 오래 살았어."
"아, 그립진 않아?"
"그립긴 하지. 그래서 방학 때 자주 놀러 가."
하람이의 말에 석우가 입을 열어 또 질문하려고 하자 가만히 밥을 먹고 있던 동민이 젓가락으로 석우의 식판을 툭 쳤다.
"야, 얘 밥 좀 먹게 말 좀 그만 시켜."
"아, 미안. 내가 말이 너무 많았지?"
하람이는 갑자기 소심해진 석우가 웃긴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아니야, 괜찮아."라며 말했고 그렇게 밥을 먹다가 하람이 궁금한 게 생겼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너희 둘은 어떻게 친해진 거야? 성격이 진짜 다른데."
"우리? 글쎄, 이젠 기억도 안 나. 초딩 때부터 친했거든."
"헐, 진짜? 신기하다~"
"근데 이동민 얘가 나한테 좀 귀찮을 정도로 붙긴 했지."
"야, 내가 언제? 그리고 귀찮을 정도로 붙은 건 너겠지."
결국, 밥을 먹던 숟가락까지 내려놓고 한참을 투닥거리는 둘을 보던 하람이는 "아, 내가 미안. 밥이나 먹자 우리!" 하며 빌었고 동민과 석우는 말하던 걸 멈추고 하람을 한번 쳐다보곤 머쓱해졌는지 헛기침을 해댔다.
"아니다. 성격 다르단 말 취소! 너희 왜 친한지 알겠어."
밥을 다 먹고 나와 교실로 향하던 중 석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뭔가 싶어 동민과 하람도 멈추면 석우가 "아이스크림 먹을래?" 하며 물어왔다.
"아이스크림?"
"응. 너 전학 온 기념으로 내가 쏠게."
"야, 밥 먹자마자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그럼 넌 빠지든가. 하람아 가자~"
석우가 동민을 향해 저리 가라는 듯 손짓을 하며 하람이에게 어깨동무를 했고 하람이 동민의 옷자락을 잡으며 "그냥 가자. 석우가 쏜다는데~"라고 말하자 동민은 작게 한숨을 쉬고 둘을 따라갔다.
매점에 도착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고르고 운동장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중 웬일로 동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너 집은 이 근처야?"
"음, 학교에서 도보로 한 20분 정도?"
"멀진 않네."
"응. 너흰 얼마나 걸려?"
"우리고 비슷해. 열매 초등학교라고 있는데 우리 둘 다 집이 그쪽이거든."
"어? 나도 그 주변인데!"
하람이의 말에 석우가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진짜? 그럼 집 갈 때 같이 가면 되겠네!"라며 말했고 동민이 어이없다는 듯 석우를 쳐다보자 "우리 이제 친구잖아~" 하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석우였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종례시간, "하람이는 선생님 좀 보고 가렴~"이라는 말과 함께 담임선생님과의 인사를 마치고 하루의 일과가 끝났다. 하람이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내고 교실로 돌아가면
텅 빈 교실엔 가방을 메고 책상 위에 걸터앉아있는 석우와 그 옆에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는 동민이 남아있었다.
"어? 안 갔었네?"
"집 같이 가기로 했잖아~"
"쌤이랑 얘기가 길어져서 먼저 갔을 줄 알았어. 오래 기다렸지? ㅠㅠ"
"ㅋㅋㅋ 아니야. 가자."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셋이 집으로 향하던 중 석우가 뭔가 어색하고 조용한 이 분위기가 싫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쌤이랑은 무슨 얘기 했어?"
"아, 그냥. 오늘 첫날인데 뭐 어땠냐고, 친구는 사귀었냐고 물어보셨어."
"오호. 나도 궁금한데?"
"뭐가?"
"오늘 어땠는지."
가만히 듣고 있던 동민도 궁금했는지 하람을 힐끔 쳐다보았고 하람이는 양쪽에 동민과 석우를 번갈아 쳐다보곤 "뭐, 첫날부터 친구도 생기고 난 너무 좋았지."라며 웃어 보였다.
"다행이다. 너가 좋았다니까."
그렇게 걷다 보니 하람이의 집에 거의 가까워졌고 하람이 걸음을 멈춰 서자 동민과 석우도 따라 멈췄다.
"난 여기서 좀만 가면 바로 집이라, 먼저 가볼게!"
"아, 그래 그럼. 조심해서 가."
"응. 오늘 진짜 고마웠어."
"고맙긴. 내일 보자 하람아."
"그래. 너희도 조심해서 가!"
"잘 가라."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동민과 석우에 하람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집 쪽으로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석우가 동민에게 어깨동무하며 걸어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곤 다시 집으로 향하는 하람이었다.
집에 도착해 핸드폰을 확인하면 하람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예은에게 와 있는 부재중 전화에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다시 전화를 걸었고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고 통화가 연결됐다.
- 박하람!!
"뭐야, 바로 받네 ㅋㅋㅋ"
- ㅋㅋㅋ 폰 하고 있었거든. 오늘 학교는 어땠어? 뭐 안 물어봐도 뻔하긴 한데.
"나 친구 생겼어."
- 친구? 진짜? 헐... 웬일이래. 또 내가 놀릴까 봐 뻥치는 건 아니고?
"진짜거든!!"
- ㅋㅋㅋ 장난장난~ 근데 다행이다. 난 또 혼자 낯가리고 아무 말도 못 했을까 봐 걱정했지.
"그럴 뻔했는데 짝꿍 된 애가 말 걸어줘서 그 애랑 좀 친해졌어."
- 오~ 속초는 언제 놀러 올 거야? 얼굴 좀 보자!
"방학하면 한번 갈게 ㅋㅋㅋ"
- 알겠어. 나 이제 과외 있어서 끊는다~
한편, 하람을 보내고 동민과 석우가 집으로 향하던 중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석우에 동민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뭐가 그렇게 좋길래 아까부터 웃어?"
"응? 아, 그냥. 새 친구 사귀어서 기분이 좋네."
"참나, 그나저나 웬일이냐? 원래 먼저 말 잘 안 걸잖아."
"그냥, 귀엽잖아~"
"?"
"토끼 같지 않아? 그 주다인가 있잖아. 영화 캐릭터."
"주다가 아니라 주디겠지."
석우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뭐, 어쨌든."이라고 하자 동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하람이의 얼굴을 떠올렸고 왠지 닮은 것도 같은 느낌에 "뭐, 닮긴 했네." 하며 작게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뜬 하람이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중 "오늘도 데려다줄까?' 하는 엄마의 물음에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길을 좀 익힐 겸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어 "오늘은 그냥 걸어갈게."라고 하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화창한 날씨에 기분이 좋은 듯 하람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마음속으로 흥얼거리던 중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한쪽 이어폰을 빼고 뒤를 돌아보면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석우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어? 석우 안녕!"
"어젠 잘 들어갔어?"
"응. 너도?"
"응. 아 맞다 어제 너 번호를 못 물어봤더라고. 알려줄 수 있어?"
"ㅋㅋㅋ 그래."
석우가 내민 핸드폰을 받은 하람이는 곧바로 번호를 찍은 후 그에게 건네자 바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석우에 웃으며 연락처에 그의 번호를 저장했다.
그리고 석우를 쳐다보자 고민하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는 그에 "뭐해?" 하며 묻자 진지한 표정으로 "뭐라고 저장할지 고민이야."라는 석우였다.
그러다 그가 결정한 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의 타자를 눌렀고 하람이는 궁금한 마음에 "뭐라고 저장했어?"라고 묻자 대답 대신 핸드폰을 보여주는 석우에 화면을 보니
거기에는 하람이라는 이름 뒤에 토끼 이모티콘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이 토끼는 뭐야? ㅋㅋㅋ"
"ㅋㅋㅋ 그냥. 너 토끼 같아서."
교실에 도착하니 언제부터 와있었던 건지 석우와 하람이에게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공부를 하는 동민에 하람이 신기한 듯 쳐다보면 그런 동민이 익숙한 듯 말을 걸어오는 석우였다.
"이동미니 우리 왔는데 인사는 좀 하지~"
석우의 말에 고개를 든 동민은 귀찮다는 듯 석우를 한번 쳐다보곤 하람을 향해 "안녕." 하고 인사를 해왔다. 그러자 석우가 "야, 나는!" 하며 동민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자
동민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맨날 보는데 인사는 무슨."이라고 하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그들의 모습이 웃긴지 하람이 작게 소리를 내 웃자
동민은 그런 하람을 잠깐 쳐다보았고 곧바로 마주친 눈에 어색한지 목을 가다듬으며 눈을 피했다.
체육 시간, 남자아이들은 축구를 하기 위해 운동장에 모였고 동민과 석우 외에는 친한 친구가 없어 홀로 그늘에 앉아있던 하람이는 괜히 심심해져 발장난을 치고 있으면 누군가 그녀의 옆에 앉았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축구를 하러 간다던 석우가 하람을 보고 있었다.
"심심하지?"
"응? 아니, 뭐... 근데 너 축구 하러 간 거 아니었어?"
"맞는데, 너 심심해 보여서. 그냥 오늘은 쉴까 하고?"
그 말을 끝으로 활짝 웃어 보이는 석우에 왠지 고맙기도 하고 조금은 미안하기도 한 마음에 하람이는 "에이, 괜찮아. 가서 해! 너희 하는 거 구경하지 뭐."라고 말했고 석우는 괜찮다며 꿋꿋이 옆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석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저 멀리서 축구를 하던 친구 한 명이 이쪽으로 걸어왔고 석우를 향해 "야, 김석우! 너 경기 들어와야겠는데? 경석이 빠졌어!"라고 외쳐왔고
그에 석우가 하람을 보며 난감한 듯 표정을 지었다.
"어떡하지...?"
"급한 거 같은데 빨리 가 봐. 난 괜찮아!"
"아, 진짜 미안... 이따 아이스크림 쏠게."
하람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석우의 등을 떠밀자 그는 하람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남자애들의 축구경기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 옆에서 하람을 불러왔고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같은 반인 듯한 친구가 하람이의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너 김석우랑 원래 아는 사이야?"
"응? 아니, 왜?"
"아, 그냥. 김석우 원래 남자애들 말고는 말 잘 안하거든."
"아... 그래?..."
하람이는 뭔가 머쓱해지는 친구의 말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말을 이어오는 그녀였다.
"맞다. 내 이름 모르지? 난 박유나!"
"아, 유나?"
"응. 나 너랑 친해지고 싶은데."
친해지고 싶다는 유나의 말에 하람이 멋쩍게 웃으면 유나가 "왜? 싫어?"하며 물어왔고 하람이 당황해 손을 젓자 그제야 웃으며 하람 옆에 가까이 앉는 유나였다.
그렇게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유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체육 수업이 끝났고 동민과 석우가 어깨동무하며 하람쪽으로 걸어오다가 유나와 앉아있는 하람을 보고 동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유나와 이야기하고 있던 하람이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동민과 석우를 발견하고 유나에게 "어, 나 가볼게!" 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
"뭐야? 그새 친구 사귄 거야~?"
"아니, 그냥 얘기 조금 한 거야. 근데 괜찮은 애 같기도 하고?"
"너 이러다 우리 버리는 거 아니지?"
"ㅋㅋㅋ 그럴까?"
"헐... 야 동민아 들었지?"
"..."
교실로 향하는 길, 하람과 석우의 이야기에 아무런 대답 없이 다른 생각에 잠겨있던 동민은 석우의 부름에 놀라 정신을 차렸고 동민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헤드락을 거는 석우였다.
그 모습이 웃긴지 하람이는 소리 내 웃었고 동민은 그런 하람을 한번 쳐다보곤 석우에게 "아, 너 땀 냄새나." 하며 그를 떨어뜨렸다.
이에 석우는 "진짜?" 하며 자신의 체육복 옷자락을 코에 갖다 대었고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이는 석우에 어이없다는 듯 교실로 들어가 버리는 동민이었다.
어느덧 하루가 끝나고 오늘도 함께 집으로 향하던 셋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람이의 집 앞에 도착했고 하람이 "나 먼저 가볼게. 내일 보자!" 하며 손을 흔들면
곧바로 잘 가라며 손을 흔드는 석우와 그런 그를 한번 쳐다보곤 작게 손을 흔드는 동민에 웃으며 집으로 향하는 하람이었다. 그녀가 들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던 석우와 그 옆에서 아무런 표정 없이 하람을 쳐다보던 동민은
하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걷던 동민은 옆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석우를 한번 쳐다보곤 입을 열었다.
"야, 김석우."
"왜?"
"박유나 있잖아,"
"박유나? 아, 방금 하람이랑 이야기하던 애?"
"응."
"걔가 왜?"
"... 아니다."
"뭐야? 왜 말을 하다가 말아 --"
"아니, 뭐. 박하람 잘 챙기라고."
"야, 난 이미 그러고 있거든? 너나 잘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