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쾅
저 소리만 벌써 20분 째다. 개강 전 마지막 일요일이라 오늘은 늦잠 좀 제대로 자보려고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시끄럽게 들리는 망치 소리에 결국 일찍 눈이 떠졌다.
금방 끝나겠지 싶었는데 20분 동안 계속되는 망치질에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침대에서 결국 몸을 일으켰다. 그래,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지만 이건 아니지.
예지는 잠옷 위에 대충 집업을 걸치곤 현관문을 열구 옆집으로 향했다.
딩동-
벨을 한번 누르니 망치 소리가 멈췄다. '그러게 드라이버를 쓰지 괜히 망치를 써서 사람을 귀찮게 하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현관문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지는 인상을 쓰고 조금씩 열리는 문을 바라보자 한 젊은 남자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었다.
"아, 혹시 옆집이신가요?"
꽤 반반하게 생긴 얼굴에 화가 풀릴 뻔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 예지는 표정을 굳히곤 "네."라고 말했고 남자는 미안한 듯 말을 이어왔다.
"죄송해요. 제가 어제 이사 왔거든요, 짐 정리가 아직 안 끝나서..."
너무나도 불쌍하게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화를 내기도 뭐해서 그냥 주의해달라고 말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남자가 갑자기 "잠시만요!"하고 불렀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문을 열어놓고 집안으로 잠깐 들어간 남자가 무언가를 들고나오더니 그것을 예지에게 건넸다.
"제가 떡은 준비를 못 해서, 쿠키거든요! 아침부터 시끄럽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 와 그래도 착하네~ 무개념 아저씨였어 봐, 바로 그 날부터 전쟁이지.
"그래서 화도 못 내고 왔다니까..."
- 그래서 얼굴은? 잘생겼어?
"뭐, 반반하게 생기긴 했더라."
- 헐, 야 잘해봐! 혹시 알아? 그 남자가 너 맘에 들어서 쿠키 준 거일 수도 있지.
"미쳤어? 그리고 백퍼 여친 있겠지."
- 아, 그런가? 그래도 뭐 친해져 봐! 괜찮은 사람인 거 같은데.
"됐어. 암튼 내일 수업 끝나고 그 카페 꼭 같이 가주기로 했다?"
- 알겠어, 그럼 내일 봐! 끊는다~
결국, 개강 날이 왔다. 월요일 아침부터 잡혀있는 수업에 일찍 일어나 대충 화장을 끝내곤 이것저것 짐을 챙기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면서 이어폰을 찾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제 앞에 있는 누군가에 고개를 들면 옆집 남자가 서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아, 네."
상상치도 못한 인물에 잠깐 당황하다가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 "학교 가시나 봐요?"라고 묻는 남자에 고개를 끄덕이며 "네." 했고 마침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에 어색한 분위기를 잠깐 벗어날 수 있었다.
"어디 학교 다니는지 물어봐도 돼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자 남자가 물어왔고, 대답하려던 찰나에 친구 소희에게서 오는 전화에 "잠시만요." 하며 고개를 한번 숙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이예지, 어디야?
"나 지금 엘리베이터."
- 아, 그래? 나 곧 너희 집 쪽 지나가니까 은행 앞에서 만날래?
"알겠어."
통화를 끊고 나니 1층에 도착했고 지하 1층에 내리는 듯한 남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곤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여름이 끝나감에도 꽤 더운 날씨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으면 멀리서 기운이 없는듯한 자세로 걸어오고 있는 소희가 보였다.
"아, 개강 첫날부터 아침 수업이라니 말이 돼?"
"내 말이. 심지어 양 교수님 교양 수업이잖아. 죽으라는 거지 뭐."
"그냥 이거 버릴까? 아직 시간표 수정할 수 있잖아."
"미쳤어? 그러다 졸업 못 한다."
소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학교에 도착했고 강의실에 들어가서 대충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지루하고 빡빡한 강의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고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다가와 밥을 먹기 위해 몸을 일으켜 강의실에서 나왔다. 학교 주변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쉬다 보니 다음 수업 시간이 다가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학교로 향했다.
"아, 그다음 전공 수업인가?"
"응. 그러네."
"맞다. 너 어제저녁에 우리 과 단톡 봤어?"
"아니, 왜?"
"어제 두 명 들어왔던데? 복학생인 거 같더라."
"아, 몇 학년이래?"
"우리랑 같아 3학년! 한 명은 프사 없길래 못 봤고 다른 한 명은 봤는데 잘생겼더라. 이거 사진 봐봐."
"오 괜찮네. 이름이 우도환?"
"응. 그리고 한 명은 양세종? 이름밖에 몰라."
소희와 얘기를 하면서 강의실로 들어가니 학회장인 동기 재하가 어떤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복학생인가 싶어 그쪽을 보고 있으면 재하와 눈이 마주쳤고 그가 우리를 반기자 등을 보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너무 놀라 온몸이 굳어버렸고 남자는 "어?" 하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바로 앞까지 와서 말을 걸어오는 남자였다.
"우리 같은 학교였네요?"
이 남자 우연일까, 인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