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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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랑해요. 오래 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해요!
주인, 메리 미
w. 오즈
4. 두 번째 날, 메리 미
가만히 잠든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무서웠나. 울릴 작정은 아니었는데. 그저 곯려줄 생각으로 뒤에 귀신이 있는 척 연기를 했더니 주저앉으며 울어버렸다. 갑자기 전력질주를 하던 때 알았어야 했다. 주인이 유리 멘탈이라는 걸. 나는 에휴, 하고 이불을 끌어올려주었다. 어쩜 자는 것도 이렇게 애 같지. 쌕쌕거리는 게, 꼭 어린 조카 애 같다. 그러고 보니 아까 베개를 들고 쫄쫄 내 옆에 앉던 것도 미운 다섯 살 난 애 같았는데. 괜히 미안해진다. 정말 울릴 것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리 와.'
'…….'
'라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빨리 먹을 테니까.'
주인이 말을 듣고 가만히 끄덕이는데, 그게 또 착하고 기특해서 엄청나게 빨리 먹었다. 평소의 속도보다 거의 두세 배로 흡입했던 것 같다. 치우는 것도 대충 치워놓고, 이도 분노의 양치질마냥 빠르고 강하게 닦고. 그 결과가 이거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엄청 더부룩하고, 잇몸도 상처가 났는지 아린 느낌이 든다. 약간의 피 맛은 보너스. 나는 챙겨서 들고왔던 소화제를 서랍에서 꺼내 쭈욱 들이켰다. 낯을 가려서인지 첫만남에 누구에게 이렇게나 친절한 편이 아닌데. 미안해서 그랬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내 침대를 차지한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잘 자네. 놀라서 잠도 못 잘 것 같더니. 나는 주인이 깨지 않게 주인 옆에 살짝 앉아, 헤드보드에 몸을 기댔다.
'고마워요.'
잠들기 전에 침대 옆 바닥에 앉아 가만히 가사를 적고 있던 내게 주인이 자그맣게 말해왔다. 대꾸는 안 했지만, 아마 입 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을 거다. 무언의 뿌듯함, 그리고 괜시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죄책감. 나는 끝내 장난이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치만… 무언가 더 가까워진 느낌은 분명히 있다. 그러니까 오늘의 이 일은 나만 알고 있는 비밀로 해두기로 한다. 그리고 정말 귀신이 있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한 거라고 스스로 내 마음을 토닥여본다. 도마뱀처럼 제 꼬리를 잘라도 살아남던 죄책감이 그제야 뭉그러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무언가 가득 찬 것만 같던 위도 같은 속도로 정상화되기 시작한다.
"으아, 할머니, 오지 마여, 으앙…."
나는 갑작스레 몸부림을 치는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악몽을 꾸는지 그새 식은땀이 잔뜩이다. 나는 소매로 조심스레 이마에 난 땀들을 닦아주었다. 울먹이는 주인의 배를 토닥였다. 저번에 조카 애가 악몽을 꿀 때 해주었던 것처럼. 성인 여자 배를 만지는 거니 조심스럽게 위아래로 손을 움직였다. 으응, 싫어. 싫어, 할머니. 뒤척이며 결국 또 우는 듯한 소리를 내는 주인에게 작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울먹이기에 손길과 함께 괜찮다고 연신 말해주니 조금씩 웅얼거리는 소리가 줄어든다. 괜찮아, 괜찮다. 괜찮다아.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자 서서히 줄어들던 울먹임이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다 결국 멎었다. 마음 속에서 뿌듯함 같은 게 자꾸 치고 올라온다. 그 느낌이 좋아서 나는 결국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할머니, 잘 가아."
희미하지만 주인은 분명히 그렇게 옹알거렸다. 웃다가 나도 모르게 아, 졸라 귀여워, 하고 말해버렸다. 말을 뱉어놓고 당황한 쪽은 나였다. 그래, 당연히 한 쪽은 쌔근쌔근 자고 있으니 당황할 리가 없지만. 어쨌든 내가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게 당혹스러웠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던 성격이었나. 잘 모르겠다. 번호를 묻는 여자들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연애를 한 적은 별로 없어서. 나는 갑작스레 뜨거워지는 귀를 몇 번 문지르고 흠흠, 하고 헛기침 소리를 냈다. 괜히 부끄러워진다.
지금쯤 주인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아까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에 나는 괜한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 길게 누워 팔을 세우고 주인을 바라보았다. 쌔근거리는 숨소리에 맞춰 작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떠오르는 선율, 아무거나를 골라 불러주었다. Remember the way you made me feel. Such young love but something in me knew that it was real…. 공들여 노래를 불러주니 주인의 얼굴에 미소가 서서히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아까의 그 뿌듯한 마음이 달처럼 둥글게 떠올랐다. 되게 기분 좋네, 이거.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릴 노래를 레코딩 할 때보다 더욱 정성 들여서 부른 것 같다.
"잘 자."
잘 자, 하고 말하자 주인이 알아듣지 못할 잠꼬대를 해온다. 대답인 걸까? 대충 대답이라고 단정 짓고 옆에 쪼그려 누웠다. 바닥에서 자기는 싫다. 바닥은 딱딱할 뿐더러 그 차가운 촉감을 느끼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려가서 이불을 깔기가 너무나도 귀찮다. 나는 눈을 감았다. 주인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오니까 오히려 그게 노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이 불러주는 자장가. 내 노래에 화답이라도 하듯 일정한 숨소리가 나를 잠의 세계로 이끈다. 나는 주인이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땐 너무 졸려서 한 이불을 덮었다는 자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지금 시간이 새벽 두 시다. 새벽 두 시까지 이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새삼 놀라워진다.
주인이 이끈 잠의 세계에서ㅡ 아니, 꿈의 세계에서 나는, 여자를 만났다. 주인과 똑 닮은 여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