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병원 : 07
w.Shelter
민석이 차를 몰고 급히 찾아간 곳은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어느 애견카페 및 반려견센터였다. 최근 그가 부쩍 자주 찾아오는 곳 중에 하나였다.
"아, 늦었다!"
그가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차 때문에 좀 늦었더니 거의 두 시간을 넘게 지각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곤 반려견센터의 문을 활짝 열었고 안으로 조심스
럽게 뛰어 들어갔다.
그 안에는 큰 테이블 위에 큰 개를 올려둔채로 개의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 상태를 확인하고 있던 한 남자가 서있었고 그는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급히
뛰어오는 민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민석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입모양으로 '나 왔어!' 하고 들뜬 표정으로 입을 오물거렸다. 안에서 내부를 지키고 있던 어린 새끼 강아지부
터 덩치좋은 우람한 개들까지 민석을 보자 우렁차게 짖기 시작했다.
"지각이에요-"
"미안해.."
남자는 그를 한 번 슥 훑어보더니 단 한마디로 그를 제압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숙여 하던 일에 집중했고, 민석은 곧바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미안하다는것부터 시작
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는 잘 안늦잖아.."
"......"
"근데 오늘따라, 깜빡하고 아침부터 큰 실수를 한거 있지? 차키를 두고 내렸더라고."
"......"
"완전 바보지 내가."
"......"
"끝나고 알았잖아, 나. 아 그래서 그거 좀 처리하고 하느라 여기 못올뻔 했어."
"......"
"그래도 일 해결하고 왔잖아. 응? 잘했지?"
민석은 짧은 핑계의 마무리로 미안함이 섞인 애교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
"그럼!"
"거기 애기 1호. 짖지마."
그가 민석의 말에 차분히 대꾸하더니 여전히 짖고 있는 강아지들중 가장 하얗고 작은 새끼강아지에게 잔소리를 던졌다. 저에게 하는 말은 아닌줄 알고 있지만 순간 무언가가
왠지 모르게 빈정이 상한 민석이였다. 그는 미안한 표정을 싹 거두고 헛기침을 했다.
"애기 1호는 무슨..."
민석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듯이 중얼거리자 남자가 눈만 살짝 올려 그를 쳐다보고 픽, 하고 웃어버렸다.
그가 따뜻한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포근한 기운이 슬며시 올라왔는지 위에 걸치고 있던 밀크색의 가디건을 벗어 하얀 의자 위에 올려두었다. 천장에는 각종 새들이 투명한 새
장안에 도란도란 앉아있었고, 주위에는 높은 가구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고양이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 고양이 한 마리가 민석과 눈이 마주쳤는데, 고양이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민석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우씨- 하며 똑같이 고개를 돌렸다. 생긴거처럼 시크하네..!
"오늘은 안바빠?"
"똑같아."
"하긴. 이 많은 아이들을 다 관리하려니 안 바쁘진 않겠다."
그러다 뒷짐을 지고 한바퀴를 쭉 돌았다. 카페 안처럼 백열등으로 꾸며진 애견센터의 내부는 싱그러운 벽지와 함께 민석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가 입가에 미소를 걸친채
로 조금 더 돌아다니자, 아주 작고 귀여운 새끼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태어난 모양이였다. 이름표에는 이름도 써있지 않은 상태였고, 어렴풋이 보이는 발바닥이 분
홍색이였다. 코도 분홍색, 벌러덩 누워버리니 보이는 동그란 배도 분홍색. 아주 말랑말랑하게 생긴게 눈을 똘망하게 뜨고 제 고개를 들어올려 민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이
라도 앙앙댈것 같다. 한 번에 시선을 빼앗긴 민석이 그자리에 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엄청 귀엽다..."
넋을 놓고 강아지를 바라보던 민석이 눈을 떼지 못하고 손을 들어올려 강아지의 앞발을 만지려 했다. 하지만 이제 갓 태어난 새끼인 강아지를 보호하기 위해 칸막이 안에 들어
가 있는 바람에 쉽사리 만질수는 없었다. 손을 가져다 대자 차갑게 느껴지는 유리막이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특별히 만지게 해달라고 하면 역정을 낼까..
민석이 침만 삼키며 애가 타게 강아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투명한 벽만 톡톡 두드리는 민석의 뒤에 큰 그늘이 졌다.
"귀엽지. 일주일 전에 태어났어."
"아..."
"형처럼 작지?"
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누구처럼 작지 않냐는 말에 눈을 한 번 힘주어 감고는 팔자주름을 만들어내며 고개를 휙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노려봤다. 민석을 입구서부
터 반기던 그 남자였다.
남자는 어느새 고개를 쭉 빼 민석의 바로 옆까지 얼굴을 두었다. 그리고 자신을 빠르게 돌아보는 민석의 눈에 눈을 맞춰왔다. 올라간 눈매가 조금은 차가웠다. 생각보다 가까
운 거리에 살짝 흠칫한 민석이 무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뒤로 내뺐다. 그리고는 강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뭐."
"꺼내줄게."
"정말?!"
"응."
남자가 창을 가볍게 밀어내며 한 손에 들어오는 조그마한 솜뭉치같은 강아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코를 한 번 살짝 스치듯이 만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털이 아주 하얗고
눈,코,입이 오밀조밀한게 민석은 강아지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금방이라도 그것을 안고 달아나고 싶은 심정이였다. 남자가 강아지의 몸체 이리저리를 살펴보고는, 그제서야
민석에게 조심스레 내밀었다. 그는 정말 기쁨과 환희에 가득 찬 얼굴로 남자를 한 번 바라보다가 냉큼 강아지를 안아들어 품에 꼭 안았다.
"아..!"
"좋아?"
"너무너무 푹신해...."
"......"
"푹신해서 미치겠어..너무, 너무 너무.."
"......"
"귀여워...!"
민석이 강아지를 안고는 한바퀴 빙 돌았다.
"영화 찍냐."
"알게 뭐야! 사랑스러워, 사랑스러워.."
"귀엽긴."
"성별은 어떻게 돼?"
"암컷."
"그렇구나.."
그는 강아지를 한품에 안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남자는 팔짱을 끼며 그런 민석과 강아지를 번갈아보다 중얼거렸다. 둘이 닮았네.
그가 요즘들어 자주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가 있었다. 민석은 현재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평소에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지만 그가 사는 아파트 안에서는 강아지를 키우는게
금지가 되어있었기에 지금껏 마음 놓고 애견이나 동물을 키울 수 없었다. 예로는 옆집 아저씨가 소형견을 키웠는데 밤에 조금 짖는다고 경비원이 찾아와 주민들 항의가 빗발
친다고 주의 좀 해달라고 했던 일도 있었다. 그 주민들이란 곧 이웃집 아주머니들을 말한다는걸 알수 있었고, 여성들의 파워가 얼마나 센지 알고 있는 민석은 욕을 먹을까 싶
어 감히 애견을 키울수 없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민석은 예전부터 봐두었던 단독 2층 주택집으로 조만간 이사를 가게 되었다. 기존에 살던 엄한 곳에서 벗어날수 있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렇게 꿈에도 그
리던 애견과 의 생활을 이룰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 잘 알던 지인이 운영하는 애견센터에 찾아와 매일매일 애견에 대한 지식을 쌓고 분양받을 강아지를 탐색하는게 그의 퇴근
후 일과였다.
그리고 마침내 민석은 오늘, 그렇게 찾던 자신만의 반려견을 찾은것 같았다.
"그 애기로 분양받을래?"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민석이 확고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타오. 이 아이 안에다 숨겨줘."
"응?"
"누가 데려갈까봐 겁나!"
"......"
"이름표에 이름 먼저 적어두자, 주인 이름도 밑에 적어놓고. 주인이 있다는 강아지라는걸 알려야해.."
"아,"
"혹시 얘 탐내는 사람들 있었어?"
"아직. 오늘 처음 밖으로 꺼낸거야."
"오케이. 그럼 됐어."
민석이 속사포로 말을 뱉어내고 안고있는 새끼 강아지의 얼굴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분홍색의 작은 혓바닥을 내밀고 민석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민석이 그새 엄마미소로
강아지를 안아 위아래로 흔들며 입술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자신을 따갑게 쳐다보는 시선에 이내 내민 입술을 안으로 말아넣을수밖에 없었다.
"후회 안하지?"
"후회는 무슨. 내가 귀엽다고 한눈에 뿅가서 나중에 크면 책임 안지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여?"
"그런 사람들 여럿 봤거든. 이 애기들 아빠로써 그런건 당연히 신경쓰이는게 아니겠어?"
"그럴일 없으니까 걱정마. 그리고 알잖아, 난 어릴때부터 애견 없으면 못살았어. 27년을 같이 살았는데 뭐.."
"알아. 너무 한 번에 정하는건 아닌지 싶어서 물어보는거야."
"안해, 안한다구."
"좋아."
"그렇다면 이제..!"
"분양서 적으러 가죠."
"응, 당장!"
민석은 타오라는 남자의 팔을 잡아끌며 자신이 먼저 센터의 중앙으로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럴때 보면 저 형도 참 나이값 못하는것 같다니까.. 누가 저걸 3년후 서른으로 봐.
-
"지금 바로 데려갈건 아닌거지?"
"응. 이사는 아마 일주일 뒤에 하게 될거야. 그때 다시 데리러 올게."
"그래."
"그동안 얼마나 보고싶을까.."
"나?"
"아니, 너 말고. 우리 애기 2호.."
다시 보호막 안으로 들어간 강아지를 빤히 쳐다보던 민석이 두 손으로 고개를 고정하고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을 쳐다보듯이 바라보는 민석이 웃겼던 타
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쩝 소리를 냈다.
"그런데, 강아지 엄마는 어디있어?"
"아..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어, 왜?"
"자, 이거 먼저 작성하시고."
"응."
"이사날은 정확히 언제인지 몰라? 찾아갔음 좋겠는데."
"알아서 집들이 할게. 놀러 와."
"강아지 안고?"
"아니, 우리 애는 내가 안고."
타오가 웃으며 민석의 머리를 헝클었다. 민석은 헤- 하고 바보같이 웃고는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며 인사를 했다. 타오는 어서 가보라는듯 민석의 어깨를 밀어냈다. 민석은 강
아지를 데려가지 못한게 못내 섭섭했는지 앞을 걷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 강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도 안데려가니까 앞 보고 걸어요."
"응.."
"형 아기야."
"......"
"애기 2호."
"......"
민석이 몸을 완전히 돌려 타오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가지런한 앞니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시원하게 웃어버렸다.
그럼 우리 애기 2호. 오빠가 곧 데리러 올게!
아무도 없는 빈 병실, 누군가 똑딱이 버튼을 툭-하고 누르자 병실안에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내가 왜 너랑 이래야 하는건지.."
"우린 친구잖아.."
그들은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백현과 찬열이였다.
"친구 두 번 했다가는 진짜 큰일 나겠네."
"여자 간호사들 번호 싹 쓸어준다니까. 아직도 만족 못해?"
"그럼 어서 시작하자, 시간이 없다."
백현과 찬열이 빈 병실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 작전을 회의하고 있었다. 잔뜩 불만이 가득 낀 백현의 얼굴에 찬열은 '전화번호'를 끼얹었고 곧바로 화사해진 백현의 얼굴은 애
써 억지미소를 만들어냈다.
병동의 아이들은 이제 각 호실에 들어가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현은 핸드폰으로 주섬주섬 노래를 틀기 시작했고, 그가 입맛을 다시며 찬열의 가운 주머니에 빼꼼히
고개를 들고 있는 토끼 머리띠를 꺼내 찬열의 머리에 씌웠다. 찬열은 처음엔 아직 이걸 쓸 기분은 아니라고 했지만 백현이 억지로 씌우며 영혼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수 없다고
하자 찬열이 코를 훌쩍이며 받아들였다. 그러던 찬열은 조금씩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리듬을 타며 무릎을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포즈 하고는.."
"나 저번에 싱거운 스파게티 같다는 소리 들었다."
"그건 칭찬이네."
"그런가... 그정도야?"
"됐고, 일단 처음은 후리하게 해."
"나 너무 긴장했어."
"아이들 앞인데 긴장할게 뭐 있나."
"유간호사도 분명 같이 있을거라고.."
"예쁘냐?"
"완전 예뻐."
찬열이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그 표정을 지을때는 아닌것 같다고 백현이 구시렁 거렸다.
아무래도 이들은, 앞으로 몇 주 뒤에 열릴 사랑의 음악회 준비를 하는것 같았다. 백현이 아닌 찬열의 장기자랑 준비를.
매일마다 전화 하는 찬열 덕에 아주 질려버린 백현은 결국 먹고 떨어지라는 식으로 마음을 잡고 찬열에게 자신이 그나마 조금 알고 있는 걸그룹의 춤을 알려주기로 했다. 다
소 시끄러울수 있는 음악의 볼륨을 조금 줄이고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백현도 그제서야 서서히 리듬에 따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표정은 무표정이였으나 눈동자는
이미 저만치 신나게 굴러가고 있었다.
"여기서 이쪽 다리를, 이렇게?"
"아니 느낌 따라가 그냥."
"느낌이 지금 안살아."
"아 느낌이 왜 없어? 지금, 지금 네가 타고 있는 리듬의 동선을 생각해봐. 그냥 그대로 가!"
"이..이렇게?"
느낌 예찬론을 펼치며 백현이 찬열을 구박했다. 찬열은 머리를 긁적이며 미간을 찡그렸고, 허망하게도 다리는 그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백현은 그런 찬열을 보고 혀를
쯧- 차더니 곧 우아한 손동작을 하며 느낌을 따르라 명령했다. 정말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
백현이 머리를 찰랑거리며 입으로는 특이한 효과음을 만들어냈다. 처음엔 그렇게 하기 싫어하더니, 지금은 찬열보다 더 신나보였다. 딱히 전화번호 때문은 아닌것 같았다.
"물 만났나.."
"잘 보라고 내 느낌을."
"..너 이러는거 네 환자들은 아시니?"
"찬열아. 하기 싫어?"
"해야지. 그럼, 해야지."
"잘 봐."
본격적으로 댄스타임에 돌입한 둘은 흘러나오는 댄스곡에 맞춰 동작을 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현은 제 말대로 느낌 따라 가는건 쉬웠지만 막상 동작을 만들어내려니 머
리가 아파오는것 같았다. 대충 도입부분은 이렇다 치고.. 다음엔 뭐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렇게 하는게 괜찮으려나?"
"진부하지 않을까."
"엉덩이 흔드는건 포인트야. 그냥 해봐."
"응.."
어느정도 맞춰가며 대강 후렴부분까지 맞춘 그들은 그새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있었다. 사실 백현도 요즘 유행한다는 걸그룹 춤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따라하려니 쉽
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느낌 가는대로 맘대로 안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누군가 녹화를 좀 해줬으면 하는데.. 시간 지나면 다 까먹으니, 이거.
"그렇지. 그렇지."
"와, 이제 몸 풀린다."
찬열이 팔을 휘휘 저으며 정체불명의 찌르기 댄스를 추기 시작했고 백현은 잘한다며 박수를 쳤다. 잔뜩 흥이 난 그들은 또 다시 안무 만들기는 잊고 제 기분에 맞춰 몸을 움직
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번뜩 정신차린 백현이 찬열을 말리며 잠시만 진정하라고 했다. 싱거운 스파게티에서는 벗어나야지.
그렇게 한동안 말 안듣는 몸을 이끌고 후렴을 조금 더 벗어나자 점점 더 넓은 범위의 고민으로 빠져들었다. 쿵쿵 거리는 소리에 환자들이 깰 기세였다.
"그니까 이게.."
"응."
"어..."
"......"
"아, 모르겠네."
한창 다음 동선에 대한 연결고리가 푹 꺼져버려 고뇌에 빠진 두 남자가 허리에 손을 올린채로 한참이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미 시작해버린거, 백현은 도망갈수도 없었다.
자신만 믿고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찬열을 보는 백현의 눈은 이내 안쓰러움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두 남자가 있던 병실의 문이 갑자기 예고없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둘은 놀라 동시에 그 곳을 바라보았고, 그들이 눈 앞엔 생각지도 못한 남자가 서있었다.
"어라? 종인씨?"
"선배님. 여기서 뭐하세요?"
종인이 가방을 들고 시니컬하게 서있었다. 퇴근하는 길인듯 보였다. 찬열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인과 백현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아는 사람이야?"
"내 후배."
"아."
찬열은 눈치를 보며 머리위에 씌워져있는 머리띠를 스윽 내렸다. 그리곤 코 밑을 손가락으로 문댔다.
"일단 인사해, 박찬열. 내 친구에요 종인씨."
난데없는 소개시간에 종인과 찬열은 의아했지만, 서로 눈치를 보며 이내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백현은 뻐근한 허리를 툭툭 치며 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냈다.
"여긴 어떻게 찾아왔어요?"
"인사드리려구요. 지금 퇴근한다고."
"아...난 또. 그럼 여기 잠깐 앉아요."
종인은 아까 백현이 찬열과 전화하는걸 얼핏 들었다. '내가 너네 병동으로 찾아갈테니 그냥 거기 있어.' 수화기의 반대편에서는 2층의 한 호실을 말했던것 같았다. 종인은 개
인 사무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백현이 생각나 들렀다. 예상대로 그는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종인이 목격한건 정말로 진풍경이였다.
백현은 모를것이다. 사실 아까부터 종인이 문을 빼꼼히 열고 그들의 열띤 현장을 훔쳐보고 있었다는걸. 음악소리에 묻혀 문이 조금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집중한 탓에 누
가 자신들을 보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곳엔 종인이 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병실 안을 훔쳐본 종인은, 엄청나게 표정관리를 한 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어 제낀것이다.
하지만 백현은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은 상태로 종인을 친히 안으로 불러들였다.
"아까 전화하시는거 들었어요. 이쯤에 계신다고 하신것 같아서.."
"어...."
찬열이 더웠는지 가운을 벗어 던지며 침대위에 풀썩 앉았다. 백현도 따라 앉았고 종인을 향해 옆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아, 뭔가 바쁘셨던거 같은데.."
"아. 아냐아냐아냐! 아무것도!"
"......"
"바, 바쁘긴 뭘."
백현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변명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백현의 이마에 맺힌 땀이 충분히 바빠 보임을 입증했다. 찬열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상대가 나타나 잠시
말수가 줄어든 찬열이 눈치를 살피며 백현에게 말했다.
"..오늘은 이만 할까?"
"야. 오늘 안끝내면 또 내일...스들르그 흘그즎으. (시달리게 할거잖아)"
"그..그건 그런데."
찬열이 말을 마치고 눈짓했다. 옆에, 저 사람 있잖아.
"아."
"......"
"저기 종인씨. 혹시, 지금 퇴근하는 길이였어요?"
"네."
"..그렇구나. 그럼, 뭐 얼른 들어가보셔야겠네!"
"......"
종인은 못알아듣는 척을 했다. 척이였지만 그들 눈에는 아마 진심으로 못알아듣는것처럼 보였을것이다. 종인이 고개까지 갸우뚱 거리며 눈을 빛내자 백현이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모든걸 종인에게 사실대로 말 할 수는 없었다. 아직, 아직 이미지 메이킹중이란 말이야.
"어쩔건데..."
"아..있어봐."
찬열이 백현에게 속삭였고 그는 찬열의 허벅지를 찰싹 때리며 머리를 굴렸다. 종인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종인씨 오늘 경수 안만나요?"
"네?"
다짜고짜 백현은 경수의 이름을 내놓았다. 종인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 정수리를 손으로 문댔다. 갑자기 경수씨는 왜...
백현은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뜬금 없는 말이였다.
"아. 아니 그러니까.. 경수랑 잘 만나냐고요."
"아.. 카톡만 주고 받아요."
"왜 안만..나."
백현의 허술한 화법에 찬열은 왠지 힘이 축 빠지는듯 했다. 오늘은 왠지 날이 아닌가 싶어 그가 접어놓은 가운을 다시 들어올리려 했다. 백현은 그런 찬열을 보더니 손을 들어
올려 잠시만! 을 외쳤고, 종인과 찬열은 백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이렇게까지는 안하려고했는데."
"......"
백현이 무언가 고민을 하며 손가락으로 눈썹 옆을 긁적였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종인과 찬열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천천히 걸었다. 눈썹 옆을 긁던 손가락은 미간으로 돌
아와 톡톡 건드리며 쓰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찬열과 종인은 얼떨결에 눈이 마주쳤고, 찬열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왜저럴까요?' , '글쎄요..'
"종인씨."
"네."
"종인씨는 학창시절에 공부할때 어디가서 공부했나?"
"음.. 저는 주로 집 아니면 도서관에서요."
"도서관.. 박찬열 넌?"
"난.. 아는 누나 집에서."
백현이 찬열의 어깨를 퍽 쳤다. 너를 구제하려 계획을 펼치고 있는데 그게 할소리니, 할소리야.
"도. 도서관."
"그렇지."
인상을 구기던 백현이 찬열의 겁먹은 대답에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둘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공부는, 도서관에서. 물론! 집도 되고."
"......"
"그럼.. 노래는?"
"노래방?"
"그렇지."
이번엔 맞춘 찬열이 뿌듯한 표정으로 무릎을 흔들거렸다.
"다들 때와 장소에 맞춰서 살아야지. 그렇지?"
"그건 그런데, 무슨 말이 하고싶은건데 갑자기?"
"그렇다면...춤연습은?"
촉이 왔다. 찬열은 고개를 들어 백현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고, 종인은 머리를 긁적이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 그 역시 백현을 쳐다보았다. 일탈이라도 하고 싶으신건가?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자 백현이 포근하게 웃으며 직격타를 날렸다.
"클럽."
".....에?"
"갈래요?"
"네!?"
"뭐?!"
"지금. 바로!"
그렇게 백현은 그들의 의견따위 묻지 않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찬열과 종인을 일으키려 했다.
"야,야, 클럽이라니. 나 아직 일 정리도 못했어!"
"어줍잖게 시간 떼우는것보다, 가서 느낌 확 받고 오는게 나을것 같지 않냐?"
"이미지 메이킹중이라며.."
"아,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곧 보게 될건데. 장기자랑때 말이야. 너 앞에서 춤 추고 있으면 내가 가르쳐줬다고 앞장서야지!"
"그런 이유냐?"
"물론."
종인은 딱히 자세한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앞서 본 백현의 춤사위를 봐서는 왠지 방안이 필요할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황당함이 앞섰다.
백현이 말을 마치고 그들을 데리고 문 밖을 나서고 있었다. 찬열은 난데없이 왠 클럽이냐고 연속해서 물었지만 백현은 비로소 오늘에야 꼭 담판을 져야만 했다. 난, 내일도 찬
열이 너에게 이렇게 시달리기 싫거든!
종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일이 끝나면 경수와 잠깐 만나 얘기 좀 하려고 했는데 일이 갑자기 이렇게 되버리니 당황스러울 뿐이였다. 하지만 힘없는 그들은 백현의 양쪽 팔에
끼여서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백현은 금새 신이난다는 얼굴로 그들을 맘껏 조종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 손좀 놓고 말해봐!"
"선배님! 저희가 이러는건 좀..!"
"왜! 의사는 뭐 사람도 아니냐!"
"그, 그건 아닌데.."
거의 끌려가다시피 백현의 옆에 장착된 두 사람은 쉴새없이 꿍얼거렸지만 백현의 귀는 이미 필터링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종인은 클럽같은 곳을 한 번도 가지 못했고, 백현은
마지막으로 간게 작년 이맘때쯤이였던것 같다. 그리고 찬열은...
"난 얼마전에 갔다왔단 말이야!"
백현이 고개를 확 돌려 찬열을 쳐다보았다.
"이게 하라는 일은 안하고!!"
찬열의 말에 종인마저 풉 하고 웃어버리고 백현도 때리는 시늉만 하다가 이미 놨다는듯 웃어버렸다. 이제 억지로 가는게 아닌 함께 발걸음을 걷던 세 사람이 병원 밖을 나서고
있었고, 시원한 저녁하늘에 벌써 하얗게 뜬 달도 함께 어렴풋이 웃고 있는것 같았다.
그래서, 어디로 갈건데?
홍대로 가자.
거기까진 또 언제가!
홍대..나름 가깝던데요?
그럼. 종인씨가 뭘 안다니까.
제가 좀..
그럼 가서 조금만 즐기다 오자.
내일 당직 당첨이야 너.
하루쯤이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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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낫닝겐 / 너구리 / 핫바 / 치즈스틱 / 조무래기 / 노란색연필 / 변골반 / 모카 / 이든 / 낑깡 / 연 / 두부 / 텐더 / 초코푸딩 님♥
시간이 없어서 오늘은 글이 엄청나게 적은걸로.. 8편으로 넘어가기전에 7-2편 만들고 가야겠다능..^_ㅠ
내일은 연재 못할것 같아서 오늘 아주 짧게나마 글 올리고 가요ㅜ_ㅜ
드디어!!! 타오 슨생님이 나오셨습니다~~ 슨~~생~~님~~
조만간 신나게 들썩이는 찬백인을 만날수 있을ㄲ...............ㅏ요!? 클럽씬을 넣고 싶지만 애매하게 끊겨서 다음화에 넣기도 그렇고..안 넣기도 그렇고..ㅋㅋㅋ
무튼 지켜봐주세요!!!♡
+댓글은 늘 정말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