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병원 : 09
w. Shelter
루한의 예상치못한 선언을 들은 민석은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곧 '아.' 하고 수긍했다. 그러다 발로 모래를 툭툭 치며 딱히 별다른 감정을 느끼거나 하는 기복없이 멍하니 고개만
흔들어대다가 이내 루한의 팔을 아프지 않게 툭 건들었다.
"그럼 우리 이웃 맺는거에요?"
"네..?"
"이-웃. 옆집 사는 사이 좋은 이웃."
"아, 네."
루한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설프게 웃었다.
"좋다. 나 여기서 혼자 살면 정말 심심할까봐 고민 많이 했는데."
"......"
"가끔..정말 심심할때, 이렇게 얼굴보고 얘기하면 참 좋겠어요. 그렇죠."
실은 당황했다. 갑작스레 옆에 이사오겠다고 하는건, 확실히 집을 정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떠보는건지 몰라서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랐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새 당황한 기색은 감추고 곧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오는 민석이 루한은 왠지 그때처럼 귀엽다고 생각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가슴을 아프지 않게 치던 날. 그때처럼 말
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 이사가 확실히 정해진건 아니라고 말 못하겠는데- 번뜩 루한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 많이 얘기 하고 싶은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민석이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자 루한도 덩달아 같이 시간을 확인했다. 한것도 없는데 벌써 20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난 후였다.
"피곤하죠. 어서 들어가봐요."
민석이 고개를 야무지게 끄덕이며 먼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루한에게 인사했다. '다음에 또 봐요. 그때는 반갑게 인사할게요.' 라는 말과 함께 민석은 멀어졌다. 걸음걸이가 원
래 저렇게 종종걸음인지 열심히 걷고는 있는것 같은데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지진 않는다.
안그래도 작은 뒷모습이 이제야 조금씩 멀어지니까 더 작아보이는것 같다. 몇 분동안을 쳐다보다 어두운 그림자가 차츰 소멸되어가자 루한은 고개를 좀 더 빼 그의 뒷모습을 좀
더 쫓았다. 꼬여 있는 다리는 여전히 풀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정말 자주 보겠는데."
루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진채로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혼자뿐인 한적한 공원 주위를 수도없이 걸었다. 사실, 루한도 저가 무슨 확신을 가지고 민석의 집 옆에 이사를 가
겠다고 한건지는 모르는 일이였다.
그냥, 그냥. 깊히 따지지도 않고 적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때 가장 적절히 핑계댈수 있는 것, 그냥 그런거였다. 집이 마음에 든 탓도 있지만 사실 주변 환경이 갑자기 맘에 들
어 종지부를 찍었다고 해야할까.
아직은 그걸로밖에 설명 되지 않는 처음 느끼는 감정이였다.
-
회진 전 짧은 교육시간, 백현은 대략 한시간 가까이 아무도 없는 빈 회의실에서 PPT를 열어놓고 스크린 앞에 함께 앉아 어느 환자의 X-ray 사진을 보여주며 종인을 상대로 교육
중이였다. 들고있던 볼펜으로 모니터를 툭 건들었다.
"우리팀이 얼마전에 수술한 환자 사진이에요."
종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백현은 그 앞으로 걸어가 원을 동그랗게 그리며 종인에게 질문했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겠죠?"
"수술 전과 후의 상태를 보니 디스크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래요. 맞아요."
정형의를 준비중인 사람에게는 식은죽 먹기인 문제를 간단히 맞춰낸 종인은 미동없이 백현에게 물었다.
"호전되고 있는 상태인거죠? 특이 이상은 보이지 않는데, 저기 하얀 조직은 혹시 출혈인가요?"
"맞아요. 특별한 부작용은 없는데 가끔 수술 후에 이런 조직이 생기곤 해요. 이건 봉합 후에 작게 출혈이 생겨서 일어난거에요."
"아, 수술후 출혈은 종양과는 크기와 모양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군요."
"하지만 방심할수 없는게, 자칫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출혈이 줄어들지 않는다 싶으면 아무래도 자세한 사태를 파악한 후에 교수님께 즉각 보고드리는게 좋을거에요. 당연
히 심해지는 경우에도요."
"네. 보고가 필요한 일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왠만한건 우리 선에서 해결하는데.. 혹시나 다른 디스크가 발생 된걸수도 있거든. 조금의라도 미스는 있어서는 안되니까, 일지 적는건 잊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선배님."
종인이 작은 수첩에 받아적으며 진지하게 교육에 임했다. 사실 종인은 지금 당장 레지던트를 뛰어 넘어 주치의를 맡아도 손색이 없긴 했지만, 환자를 다루는것에 있어서는 아직
이른감이 없지않아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현은 남들이 신경쓰지 않는 조금 더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쓰도록 했다.
"내가 말 안해도 종인씨가 알아서 하겠지만."
그가 귓볼을 만지작거리며 침착하게 종인을 향해 웃었다. 그러다 차트를 뒤지다 볼펜을 오른쪽 가슴께에 있는 주머니에 꽂아넣으며 마지막 얼마남지 않은 PPT 자료를 정리했
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고 지금 바로 회진을 돌아야 할 시간이였다.
백현은 차트를 종인에게 맡기고 교육장을 나갔다. 종인이 의자 넣기 등 뒷정리를 하고 마저 백현을 따라 나섰다.
-
"안녕하세요. 밤새 편안하셨어요?"
"오셨습니까 선생님. 편안했고 말고요."
"다행이네요. 어떻게, 무릎 상태는 좋아지신것 같아요?"
"수술 받고 나서 아주 나아지고 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이제 잘 움직일수도 있고요."
"네. 다행이네요, 그럼 우리 무릎 한 번만 살짝 움직여 볼까요?"
"예.."
백현은 50대 초반의 어르신의 병실로 찾아가 상태를 체크했다. 건축 관련된 일을 했던 남성은 무거운 벽돌을 나르다가 철근에 발이 부딪혀 몸에 힘을 잃어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
진 바람에, 안그래도 워낙 약했던 무릎 연골이 먼저 맞아 어긋나게 된 큰 사고가 발생되어 얼마전 병원에 입원하게 된것이다. 다행히도 일주일 전, 응급실에 오자마자 백현이 맡
아 수술했던 이 환자는 아주 빠르게 호전되고 있었다.
백현이 그 다리를 살며시 잡으며 위 아래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두 세번정도 움직이는데 조금은 관절이 시렸는지 남성이 미간을 찡그렸지만서도 곧 나름 유연하게 움직여졌
다. 그는 알듯말듯한 표정을 짓다가, 곧 만족한다는 미소를 지으며 잠시동안 앉았던 환자용 침대에서 일어났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일주일만 더 계시다가 퇴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아닙니다. 지금처럼 관리만 잘 해주시면 더 빨리 나을수 있으니까, 병원 내 돌아다닐때도 조심하시구요."
"예.. 정말 감사합니다."
"아들뻘인데, 저한테는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백현이 웃으며 종인에게서 차트를 건네받고 검진기록을 작성했다. 무릎 연골이 선천적으로 약했던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환자를 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종인은 그런 백현과 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같이 미소지었다.
환자실을 나온 백현과 종인은 몇 번의 환자실을 순회한 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차분히 쉴수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도 시간을 힐끔힐끔 확인하던 백현은 이제 곧 있을 수술을 위
해 자리를 비워야 했다. 먼저 알아챈 종인이 일어나 백현의 뒤로 가 섰다. 그리고 백현이 앉아있는 의자를 조금 당기며 자세를 잡았다. 뒤에서 가운을 걷어붙이는 소리가 들려왔
다. 백현이 고개를 휙 돌려 종인에게 물었다.
"뭐하는거에요-?"
"아, 가만히 계세요."
"응? 뭔데.."
"안마요 안마. 선배님 어깨 주물러드릴거에요, 지금."
"아...."
종인이 자신의 목을 풀며 백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이내 주물주물 하며 주무르기 시작했다. 딱히 종인의 안마를 거부하지 않은 백현은 조금 머쓱한지 눈을 꿈뻑였다.
"제가 얼마나 시원하게 하는지 모르죠? 딱 5분만."
"어으- 괜찮은데."
"제 직속 선배님한테 이런거 해드리는게 소원이였어요."
"소원 참.. 소박하네... 어우,"
"시원하시죠?"
"정말.. 후배 잘 뒀다는게 이런건가보다.. 아, 아..! 그래요 거기! 어우 좀 뭉쳤어.."
"여기? 알겠어요."
"어어..거기...아이고."
"저런, 많이 뭉치셨네요."
어느새 몸을 편안하게 축 늘어뜨린 백현은 종인의 손길에 살짝 아린지 미간을 찡그리다가도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종인씨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아- 손 힘이 장난이 아닐
세.
"너무 시원하다. 근데 갑자기 왠 서비스?"
"그냥요. 제가 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냥은.. 지금 나 수술하러 간다고 괜히 기분 풀어주는거구나?"
"뭐.. 그렇다고 할게요. 아직 두시간 남았지만, 환자분과 환자분 부모님 뵙고 이것저것 준비하시려면 긴장되실것 같아서요."
"에이, 긴장은 무슨. 날 뭘로보고.. 근데, 좀 편하니까 7분 합시다. 7분."
백현이 종인의 손목을 잡으며 '어우, 시원하다.' 를 연발하자 종인이 신이나서 백현의 어깨를 더 시원하게 주물렀다. 백현은 눈을 가만히 감고 종인의 손길에 어깨를 맡기다가도,
뭐가 갑자기 웃겼는지 본인만 알 정도로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백현은 이제 됐다며 종인의 손목을 잡았다.
"이제 그만 해도 되요. 성인 남자 어깨 주무르려니 힘들죠? 그만해요."
"어.. 저 괜찮은데."
"종인씨도 곧 현업에 뛰어들어야하는데, 체력 아껴야지. 지금부터 미리미리 어깨 근육 안뭉치게 잘 해요. 내 꼴나니까. 응?"
"선배님, 진짜 조금만 더 쉬다가 가세요. 아직 7분에서 4분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 그렇다는거지! 고마워요 종인씨."
백현이 기지개를 켜며 눈물이 나는 눈가를 벅벅 닦고는 종인의 허리를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종인은 못내 아쉬운지 백현의 가운을 잡으며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다시 안볼거 아니고, 다섯시간 뒤에 볼거거든요. 그렇게 보지 않았음 좋겠거든요."
"그래도.."
"이래서 사람이 인기가 많으면.."
"잘 다녀오세요, 선배님."
"...뭘 또 무안하게. 흠, 흠."
그제서야 종인이 백현을 놔주자 백현은 무안한듯 뒷머리를 만지며 괜히 휘파람을 불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끝나고 종인씨 먼저 가요. 수술 결과는 바로 알려줌!"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백현의 뒷모습에 종인은 쑥스러운듯이 웃었다.
선배님, 오늘도 수술 화이팅.
-
백현을 보낸 후 사무실에 줄곧 혼자 앉아있던 종인은 아까 백현이 교육하다 만 PPT 자료를 대충 살펴보며 듣지 못한 부분을 차분히 검토중이였다. 아니면 백현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보며 일일히 외우거나 상태파악을 하기도 했다. 한창 빠져들고 있는데 종인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처음에는 보던것에 집중하느라 그 진동을 듣지 못했으
나 여러번 울리는 울림탓에 종인은 곧 고개를 먼저 핸드폰으로 돌렸다. 그러다 시선을 두었는데, 화면에 메세지 톡이 와있었다.
"누구지.."
그가 핸드폰을 들고와 화면을 확인했고, 종인은 순간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 종인씨!
'도경수' 라고 가지런히 적힌 이름 세글자가 반듯하게 떠있었다. 종인은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헤어지고 난 이후로, 각자의 집에서 문자를 주고받은날 이후로는 처
음으로 받은 메세지였다. 종인이 마른침을 삼키고 화면을 가까이 눈에 댔다. 미간을 찡그리다가도 눈을 크게 떴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경수에게서 온 문자였다.
종인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조금 떨리는 손으로 보기버튼을 눌렀고, 메세지를 차분히 적기 시작했다.
- 네. 경수씨 오랜만이에요..
떠는것 처럼 보이려나. 아랫입술을 아프지않게 깨문 종인이 이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려 잘근잘근 씹었다. 초조하게 대화창을 나가자, 바로 메세지가 도착했다. 종인은 숨을 한
번 들이키고 난 후에야 확인했다.
- 지금 옆에 백현이 있어요?
- 아. 선배님은.. 수술하러 들어가셨어요.
- 갑자기 수술? 그래서 연락이 안됐구나.
백현의 소식을 물은 경수는 먼저 백현에게 연락을 했던 모양이였다. 종인이 뭔가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자판을 쳤다.
- 아마 네시간 뒤에 나오실거에요. 혹시 제가 전달해드려야 할 말이라도 있으신..?
종인이 입술을 우물거리며 하나하나 꼼꼼히 쳐냈다. 오타가 나면 금새 딜리트를 누르고, 다시 치고. 그러다 점 하나, 물음표 하나를 찍는것까지 괜히 세심하게 초이스하던 종인
은 몇번의 고뇌 끝에 엔터를 쳤는지 모른다. 용건이 단지 백현선배님이라면.. 그럼. 뭐라고 대화의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거지..
- 우리사이에 할 말은. 그냥 전화해봤는데 안받길래요.
- 아.....
- 종인씨는 지금 혼자있겠네요. 뭐해요?
- 아..이것저것..검토중이였습니다.
- 아하..
두 남자의 재미없는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종인은 뭐가 즐거운지 시무룩했던 표정은 금새 날려보내고 어느새 쿡쿡대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을 다시 굳게 만든건 경수
였다.
- 그래서 영화 언제 보러 갈래요?
종인이 두 눈을 꿈뻑거렸다. 그러다 현실로 '어, 어. 어. 그게...' 하고 읊조렸다. 그 생각을 못했다. 함께 영화를 보기로 약속해놓고, 결국 경수가 먼저 약속을 잡게끔 만들어버렸
다. 요새 병원일에 몰두한다고 경수에 대한 일을 잠시 신경쓰지 못했더니 어느새 시간은 3일이나 흘렀고 연락 한통도 하지 못했었다.
- 기다렸는데. 영 말이 없어서..
이어지는 경수의 말에 종인은 제가 죄인이 된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단다. 종인 저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멘트에 한동안 우물쭈물거리며
당황하던 종인은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도, 이러다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다 갈것같아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심산으로 빠르게 다시 자판을 쳐내려갔다.
-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경수씨 저는 오늘 끝나고도 괜찮고 내일도 괜찮ㄱ고 다 괜찮습ㄴ디ㅏ
- ㅎㅎㅎㅎ 오타봐
흥분을 감추지못하고 엔터를 누른 바람에 그대로 오타가 전송되버렸다. 종인은 핸드폰을 그대로 딱딱한 책상에 떨구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였다.
혹시나 경수가 실망을 했으면 어쩌지, 보기 싫은데 괜히 떠보는건 아니겠지- 하는 다른 생각들이 빠르게 종인의 머리위로 둥둥 떠올랐다.
- 아...정말 미안해요 경수씨..
- 뭐가요?
- 아...
- 내가 먼저 문자하게 한거?
- (이모티콘, 눈물) 미안해요..
- ㅋㅋㅋ
- (이모티콘, 눈물) 정말로요...
- 정말 미안해요? (이모티콘, 정색)
- 아 정색하지 마세요 경수씨.. 미안해요 내가
- 그럼....
- 네..
- 영화 종인씨가 쏘는거 어때요? 이왕이면 밥도 종인씨가 쏘자!
- 아 그럼 그럴까요? 그럼 기분이 좀 풀리시겠어요? 그럼 정말로 그렇게 할까요?
눈물만 빼곡히 보내던 종인이 경수가 중간에 삐진척 문자를 보내자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씨, 를 연발했다. 하지만 다시 괜찮아진듯한 경수의 태도에 다시 입을 굳게 다물고 빠
르게 자판을 쳤다. 오타내지 않을거야.. 흥분하지 않고 내 의견을 잘 전달할거야..
- 네. 그럼 기분이 좀 풀릴거 같은데요^^
- 그렇다면 오늘 보는게 좋을것 같네요! (이모티콘, 웃음) 더 늦기전에요.
- 그래요. 나도 오늘 괜찮아요.
- (이모티콘, 하하)
- 근데 종인씨도 되게 아날로그한줄 알았더니... 그런 이모티콘은 어디서 나는거에요??
- 무료로 받을수 있어요! 이따가 만나면 다운받아드릴게요..
- ㅎㅎㅎ 저는 괜찮은데..
- 정말 미안해요. 경수씨.
결국 다시 미안하다는 말로 끝을 낸 종인은 이모티콘은 웃는 캐릭터를 보냈지만 사실 울상이였다. 사나이가 되어서 상대방을 신경쓰지 못하다니, 좀처럼 자신에게 화가 줄어들
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건,
얼굴이 새빨개졌다. 왜 단 한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거지? 이렇게 안절부절한 태도는 마치, 연인사이에서 먼저 약속을 어긴 남자친구의 행동같잖아. 왜.. 왜 지금까지 아
무렇지 않게 흘러온거지? 경수씨와 나는 분명히 같은 성별인데 이런 대화들이 가능한건가? 가능..했던건가?
종인은 급히 채팅창의 대화들을 스크롤을 올려 처음부터 다시 확인했다. 처음 메세지를 주고 받은 날부터 지금 이순간까지의 대화들을.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이상한 점은 없었
다. 그냥 편한 지인사이 같았다. 단지 경수가 조금 귀여웠을 뿐.
- 나 퇴근 7시.
- 그럼 저도 그 시간에 맞춰서 나갈게요.
- 좋아요. 백현이도 부를까?
백현의 이야기가 다시금 나오자 종인은 잠시 고민했다. 당연히 제 선배님이라, 그럼 그렇게 하자고 답장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경수에게서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 아니다. 백현이는 수술하고 난 다음에는 절대로 어디 안가니까 그냥 우리끼리 가요.
- 아...그래요?
- 네. 제가 지금까지 본 결과로는 힘들다고 집에만 누워있거든요.
- 그럼..아쉽지만 선배님이랑은 다음에 봐야겠네요.
- 네. 그럼 이따 볼게요 종인씨~ 기대된다!
급히 약속을 만들어낸 경수와 종인은 각기 다른 사무실에서 핸드폰을 내려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뭔가 영화보다 다른 무언가에 생각을 빼앗긴듯 했지만, 나쁘지 않은 기
분이였다.
경수는 생각했다. 종인은 정말 놀리는 맛이 재밌는 사람이라고. 그 이상의 감정이 드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보면 마구마구 놀리고 싶어진다. 생각보다 짖궂은 성격의 경수
가 킬킬거리고 웃으며 대화창을 나갔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시간까지 대략 세시간 남았다. 아직 진료할 환자들은 많이 남았지만 입가에 알듯말듯한 미소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종인도 마찬가지였다. 눈은 웃고있었으나 입은 굳게 다물고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볼펜을 들어 PPT에 집중을 하려 했건만, 도움이 되지 않는것 같다.
아무래도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걸까. 문득 웃음을 멈추고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건지에 대해 잠시 고민하던 종인은, 역시 시간을 확인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영화시간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리곤 어렵지 않게 바로 표 예매를 할 수 있었다.
-
저녁바람이 상당히 차가워졌다. 새벽과 다름없는 찬 공기에 종인은 다행히 아침부터 두꺼운 자켓을 걸치고온 덕에 추움을 덜 느낄수 있었다. 병원 근처 영화관에 먼저 도착한 종
인은 바깥에서 경수를 기다렸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다리기를 5분, 멀리서 누군가 종인의 이름을 부르며 오는게 보였다.
종인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예상대로 경수가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상당히 가벼웠다. 추웠는지 두 팔을 손으로 감싸고 오는 모습이 여간
추워보이는게 아니였다. 종인은 경수를 보자마자 잔소리가 나왔다.
"이렇게 춥게 입고 나오면 어떡해요. 아침에도 많이 추웠을텐데, 그냥 이러고 나온거에요?"
"백현이 닮아서 잔소리는.. 나 괜찮아요!"
"안괜찮아요. 지금 추워서 떨고 있잖아요."
"그럼 우리 빨리 들어가요."
"........"
"많이 기다렸어요? 종인씨도 코가 좀 빨갛네?"
"아. 아, 아니에요."
종인이 경수의 팔을 이끌고 영화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춥기는. 이렇게 팔이 차가운데..
경수가 베시시 웃으며 뛰어들어갔다.
"시간은 늦지 않았겠죠?"
"미리 예매해놨어요. 안 늦었고, 먹을거만 사서 들어가면 될 거 같아요."
"이따가 밥 먹을건데 지금 먹어도 괜찮을까..?"
"남자는 하루에 네끼가 기본 아닌가요?"
정색하며 말해오는 종인의 대답에 경수가 어이없다는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종인도 표정을 풀고 경수를 따라 웃었다. 몇 초간 서로를 바라보며 재밌다는듯이 웃다가
시간이 없다며 메뉴를 고르기로 했다.
종인과 경수는 달달한 팝콘과 콜라 두 잔을 주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간식이 나오자 종인이 그것들을 받아들고 경수에게 고갯짓을 했다.
"주머니에 핸드폰 있으니까 꺼내주세요. 직원한테 그거 보여드리면 될거에요."
"은근히 모바일 활용 잘 하시네요."
"아까 아날로그 하다고 하신거 곧 취소하셔야 될걸요~?"
"그래요?"
경수가 종인의 등을 툭 치며 앞 보고 걸으라고 단호히 말했다. 어이쿠, 하고 발을 헛디딜뻔한 종인이 중심을 다시 잡으며 팝콘과 콜라를 다시 한 번 올려잡았다. 경수는 종인의
핸드폰을 뒤지며 영화표 찾기에 바빴다. 그런데 그때 알림이 울렸고, 어쩌다 보게된 경수가 상태표시줄에 있는 메세지를 읽으며 종인에게 말했다.
"방금 문자 왔는데요."
"네?"
"백현이. 수술 잘 끝났대요."
"아! 백현 선배님이에요?"
"답장 해드릴까요?"
"아. 그럼. 잠시.."
종인이 경수에게 미안하다는듯이 웃으며 팝콘과 콜라를 맡겼다. 경수가 흠칫하며 그것을 다 받아들자 종인이 핸드폰을 가져와 들어 메세지를 확인한 후 웃으며 백현에게 빠른
속도로 답장을 했다. 경수가 멀뚱히 서서 그것을 지켜보는데도 종인은 쉬지않고 자판을 쳤다. 경수는 쳇,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저 사람은 백현이를 너무 좋아한다니까.
"나 팔 아파요."
"아아! 미안해요!"
경수가 살짝 종인에게 엄살을 부리자 종인은 이내 핸드폰을 다시 경수에게 들이밀고 팝콘과 콜라를 다시 건네받았다. 콜라가 좀 무겁긴 한데, 얼른 먹어치워야겠다.
"백현이가 뭐래요...?"
"수술 잘 끝나서 기분 짱 좋으시대요. 어디냐고 해서, 영화보러 왔다고 했어요."
"....누구랑?"
"그야.."
"........"
"..경수씨랑, 왔다고 했죠."
경수가 종인이 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처음 문자할때보다 많이 풀어지고 어색함이 줄어든 두사람은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기에 바빴다.
그러다 종인은 멀뚱히 경수를 바라보다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고, 그러다 다시금 백현을 떠올렸는데, 아무리 수술 후에는 움직이지 않는 백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같이 영화
보러 가지 않겠냐고 권하지 않은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후배인데, 선배의 친구를 만나 함께하는 자리에 그 선배가 끼어있지 않는게 살짝 걸린 모양이였다. 경수는 아
랑곳하지 않고 팝콘에 가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종인의 앞길을 터주었지만.
"백현이가, 우리 둘이 왔다고 뭐라고 안해요?"
"뭐라고 하진 않으시는데. 잘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네."
상영관 여러곳이 펼쳐지자 경수가 종인의 핸드폰을 열어 상영관 번호와 자리를 확인했다. 5관 J열 8,9번.
정확히 가운데에 자리를 배치한 센스를 발휘한 종인이 마음에 든 경수가 종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런 행동에 조금 흠칫한 종인이 경수를 내려다보자 경수는 눈을 크게 뜨고
입모양으로 '왜요?' 하고 말했다. 종인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무렇지 않게 몇 관이냐고 물었다.
"5관."
경수가 종인을 이끌고 5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고, 종인은 뒤따라 걸었다.
핸드폰을 직원에게 보여주며 상영관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적은 인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있었다. 다행히 그들이 앉아야 할 J열에는 가장자리에만 사람이 한 두명 앉아
있었고 어렵지 않게 뚫고 가운데를 앉을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사이좋게 콜라를 나눠가진 두 사람은 광고가 나오는 스크린을 보며 짧은 대화를 했다.
"적응은 잘 되가요?"
"병원일이요..?"
"응."
"네. 백현선배님이 잘 도와주시는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잘 해가고 있어요."
"백현빠네, 백현빠."
"아니라고는 안할게요."
마주보고 웃던 경수와 종인은, 상영시간이 다 되자 어두워지는 스크린을 보며 팝콘을 씹던 입을 조용히 오물거렸다. 드디어 시작한다, 경수가 긴장이 됐는지 어깨를 부르르 떨며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 손만 올려 종인이 들고 있는 팝콘에 가져다 댔는데, 그 안에는 이미 종인의 손이 있었다.
어쩌다 마주치게 된 두 손이 철썩- 하고 마찰을 빚으며 튕겨나갔다. 먼저 나간건 종인의 손이였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것은 경수의 손이였고 종인은 깜
짝 놀라 손을 빼내었다. 그런 종인의 놀람을 느낀건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무안해진 경수가 조용히 팝콘만 집어들어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영혼없이 콜라를 쪼옥-
들이마셨다. 오늘따라 콜라가 몹시 칼칼한것 같다. 맛은..있는데.
영화가 상영이 되고, 둘은 한동안 영화에만 집중했다. 역시 공포영화 매니아들 답게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오로지 영화만 보았다. 그러다 먼저 시선을 돌린건 종인이였다.
정말 야무지게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속눈썹 한 번 흔들리는 감 없이 뚫어지게 화면속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경수가 그저 신기했다. 저도 저렇게까지 보지는 않는데, 빨려
들어갈것만 같은 시선으로 스크린을 주시하는게 참 귀여웠.. 아니, 보기 좋았다.
종인은 피곤하지 않았지만 경수만큼 힘이 솟아나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말이다.
경수는 종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채 정말로 화면을 뚫겠다는 기세로 흘러나오는 자막 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여지없이 그것을 바라보던 종인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다시 돌렸
다.
아. 자막 몇 줄 놓친거 같은데 장면 이해를 못하겠다.
하지만 들려오는 영어로 대충 어떤 장면인지 생각해낸 종인은, 손에 잡히는대로 시원한 콜라를 한 번 흔들며 들이켰다.
영화가 끝난 후, 종인은 경수가 들고 있던 콜라까지 들어 쓰레기 통에 차분히 버리고 나서야 흥분된 마음을 드러낼수 있었다.
"어떻게 봤어요? 저는 정말.."
"재밌는것 같아요. 완전 짱.."
"결말이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그러게요. 사람들이 무섭다고 할때 얼마나 무서울까 했는데...진짜 무섭네."
소름이 돋는다는듯 자신의 팔을 문지르던 경수가 어깨를 떨며 고개를 저었다. 종인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에 보는 공포스릴러 영화는 정말 추위를 부르기에 딱 좋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영화관을 가득 채우던 두 사람이 바깥으로 빠져나오자 실내와는 다른 차가운 바람이 둘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아까보다 더 추운것처럼 느껴지는 경수는 바람이 부는걸 피해 뒤를 돌았다. 그리고 다시 팔을 슥슥 매만지며 종인을 올려다보았다. 종인은 그런 경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그렇게 춥게 입고 나오지 마요.. 알았죠."
"그럴게요. 아, 지금은 정말 춥다."
"........"
"그렇게 쳐다보지 마요. 동정심 고스란히 비춰지니까."
"아, 안그랬어요. 도, 동정같은거 안했어요."
"장난인뎅."
해맑게 장난을 쳐오는 경수를 쳐다보던 종인이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씨익 웃으며 장난스럽게 경수의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자- 이러면 좀 덜 춥겠죠?"
"헐. 사람들이 봐요..!"
"그런가.."
종인이 입술을 비죽이며 팔을 풀어내자 경수가 조금 빨개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조금만 추울테니까, 그냥 종인씨는 옆에 딱 붙어서 와요."
"그럼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감기 걸리니까요."
"........"
"...어. 얼굴 빨개졌다. 그렇게 추워요?"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빨개진 경수의 얼굴에 손가락을 들이밀던 종인이 걱정된다는듯 빽하고 다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안되겠다며 자신의 자켓을 벗
었다. 경수가 그것을 보고는 뭐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종인은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말한뒤 훌훌 벗어 경수에게 건넸다.
검정색의 숏 자켓. 경수가 멀뚱히 바라보자 종인은 자켓을 한 번 탈탈 털고 다시 내밀었다.
"이거 입어요."
"네?!"
"입어요. 경수씨."
"아, 아니에요. 식당이나 집도 여기서 다 금방인데 조금만 추우면 됐지 뭘요. 종인씨도 이거봐, 안에 셔츠밖에 안입었네! 나보다 더 춥겠다..!"
"입으랄때, 입어요."
끝내 경수가 자켓을 들지 않으려 하자 강제적으로 종인이 경수의 몸에 자켓을 덮었다. 경수가 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종인은 씁- 하며 어린 아이 혼내듯이 정색을 했고 경
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 종인이 하는 행동을 볼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수의 몸에 크게 덮여진 자켓은, 확실히 종인보다 체구가 작은 경수에게는 무척이나 컸다. 종인이 입
었을땐 분명 딱 맞고 적당한 핏의 옷이였는데, 주인이 바뀌게 되자 순간 옷이 커져버렸다. 경수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마땅치 않은듯 종인을 위아래로 노려보자 종인은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웃으며-
"여기다. 이렇게."
"......."
"하면. 완전 무장. 오케이?"
경수의 어깨에 손을 다시금 둘렀다. 확실히 처음보다 많이 편해진 종인이 도발을 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어떻게 쳐다보든 상관하지 않던 종인이 조금은 시린 손을 경수가 보지 않게끔 감싸쥐면서 한 방향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집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함께 걸어도 이상한
길로 빠지거나 할 염려는 없었다.
그런식으로 섬세하게 자신을 챙기는 종인의 손길에 조금 웃음이 피어난 경수는, 그냥 그대로 집까지 함께 걷기로 했다.
"아참. 우리 저녁은 어디서 먹죠?"
"아. 깜빡하고 있었다."
"팝콘 먹느라 금새 배가 찼네... 어쩌지?"
"어떻게 할까요. 경수씨 뭐 먹고 싶어요?"
"음....."
경수가 종인이 덮어준 자켓의 끝을 만지작거리며 곰곰히 생각했다. 오늘 영화는 종인씨가 보여주고, 우리 둘만 봤으니까. 내일은 백현이랑 함께 저녁이나 먹을까.
그가 먼저 입을 열려던 찰나, 종인이 먼저 선수를 치며 말했다.
"내일 백현 선배님이랑 같이 먹는건 어때요?"
"어- 나 지금.. 그거 말하려고 했는데."
"정말요? 그럼 그렇게 하실래요? 오늘 사실 백현선배님 없어서 조금 마음이 쓰이긴 했거든요.."
"....뭐, 그래요 그럼."
경수가 어깨를 으쓱하자 종인이 그럼 그렇게 하자며 다시 경수의 어깨를 감아왔다. 경수가 먼저 종인에게 백현의 이야기를 꺼내려 했지만, 오히려 종인이 백현의 이름을 부르니
경수는 무언가 묘한 기분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내 본인이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잠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백현을 알기에, 종인씨를 알게된건데. 지
금 내가 기분이 나쁜건 아닐테고. 그렇다고 썩 개운하지도 않은것이... 영 이상했다.
"경수씨."
"......."
"경수씨?"
"....네?"
"많이 춥나보네.."
"아, 아니에요. 옷까지 덮어주셨는데 추울리가..왜요?"
"....약속 하나 지켜서 뿌듯하다고요. 우리 둘이 같이 결말 보기로 한거 말이에요."
"아..."
"재밌게 봐줘서 고마워요."
"........"
"우리, 다음에 또 같이 이렇게 영화봐요."
"..네."
"아! 다음엔, 우리 선배님도 같이. 그땐 꼭 수술 안잡힌날이였으면 좋겠다~"
정말로, 종인의 자켓을 덮고 있는건 도경수지만.
아무래도 백현의 이름을 계속해서 오르고 내리는 이 사람에 대한 그의 기분은, 역시 이상했다.
종인은 경수의 꼬인 기분을 알아채지 못한채로 계속해서 경수의 어깨를 잡고 걸었다. 그리고 경수는, 저가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여전히 알수 없었다. 분명 처음에는 어색
하고 수줍게 자신에게 행동하던 종인이였는데 어느샌가 보자마자 춥지 않냐고 타박을 하질 않나. 지금은 옷을 덮어주질 않나.. 원래 이렇게 사람을 잘 챙겨주는 사람인가 싶었
다. 그래서 늘 누구나에게 하는 호의를 자신에게도 익숙하게 보이는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올라오는 질문들을 하염없이 덮으며 오래도록 걸었다. 자꾸만 백현의 이야기를
하는건 단지 선배로써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러는걸까. 그런 질문 또한 지금은 덮어두기로 했다. 지금 하게 되면, 이상한 사람 될 것 같다.
마치 관심있어보이는 사람같잖아. 보통의 관심이 아니라, 조금 다른.. 색다른 그런 관심.
경수의 말수가 급히 줄어들고나니 둘은 한참이나 대화가 없었다.
종인은 오늘 경수를 만나 갑자기 기분이 방방 뜨는 바람에 수줍음은 잊은채로 경수를 보자마자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정말 춥게 입고 온건 사실이였다. 그래서 경수에게 삿
대질 아닌 삿대질까지 하며 잔소리를 한게 사실이였다. 분명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에 떠오르는 도경수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충격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게 사실
이였지만 어느새 만나게 되니 아는 동네 형처럼 편안해져 친한 동생 노릇을 한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어깨를 잡고 걷는, 지금. 종인은 번뜩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느슨히 팔을 풀어냈다.
겹쳐진 어깨와 팔이 풀어지자 자연스럽게 거리도 한 걸음 떨어진 두 사람은 대화를 더욱 아꼈다. 상황이란게, 정말 이상했다.
경수가 말을 하지 않자 종인도 덩달아 말을 안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둘은 집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경수의 집 앞에 먼저 도착했다.
말 안할땐 안하더라도, 지금은 해야지. 해맑게 웃은 종인이 경수에게 말을 걸었다.
"들어가보세요.."
"네."
"내일 저녁에 봬요."
"네."
경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차- 하며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종인에게 건네주었다. 종인은 웃지 않으며 자켓을 받았고, 두 번 가볍게 접어 제 팔에 걸어놓았다. 경수는
종인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영화. 정말 재밌게 잘 봤어요.
"내일은 춥게 입고 오지 말아요. 알았죠?"
"한 번만 더 말하면 열번째에요!"
"걱정되니까 그렇죠.. 괜히 하는 소리는 아니잖아요?"
"알았으니까, 어서 들어가보세요."
"네. 그럼.. 저 가보겠습니다."
"......종인씨."
경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리려 하는 순간, 경수가 종인을 불러세웠다. 종인은 자리에 우뚝 선채로 몸을 돌려 경수를 돌아보았고, 경수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종
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내일."
"......"
"백현이."
"......"
"...꼭 데리고 나올거죠?"
"....네. 그래야죠."
아, 그래야죠....?
"그래요. 그럼. 안녕히가요."
경수가 종인의 대답을 듣자 웃는 얼굴을 쑥 감추고는 종인에게 싱겁게 인사한뒤 몸을 홱 돌려 도어락을 열고 빠르게 들어갔다. 그런 경수의 뒷모습을 보며 '어어,- 어.' 하던 종
인은 허공에 손목만 휘젓다가 경수가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장면만 볼수 밖에 없었다.
경수씨. 뭐가 문제인거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자켓을 만지작거리던 종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옷 입기 싫다고 한거 걸쳐준거랑, 갑작스럽게 팔을 걸어서 그런건가? 하지만 그건 아까 경수씨
도 영화관에서 먼저 어깨에 팔을 올리길래 거부감 없는 줄 알고 그런건데....
"역시...이상했나보다.."
핀트가 조금 어긋나게 상황을 이해한 종인이 인상을 팍 쓰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역시 초면에 그런 짓을 하는건 실례였어, 내가 오늘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너무나 들이대
버렸네.. 내일 경수씨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아니, 지금 해야겠다.
종인이 조금 언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걸었다. 하지만 막상 문자를 보내려니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핸드폰만 잡으면 작아져버리고 어색함이 두배로 감도니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내일 얼굴 보고 직접 풀어주는게 낫겠다 싶어 종인은 자켓을 빠르게 걸치고 뛰다시피 걸었다.
그 시각, 백현은 찬열과 함께 짜장면을 시켜먹고 있었다.
"그래서 종인씨는 영화보러 갔다고? 경수랑?"
"응. 둘이 엄청 친해졌나봐 같이 영화까지 보러가고."
"그러게. 종인씨도 사교성 엄청 좋은듯."
"나 닮아서 성격도 좋다."
"너는 왜 닮냐? 닮으려면 경수를 닮아야지."
"왜! 내가 어때서. 갑자기 태클이야."
"그래도 조금 지적인 이미지는....너보단.."
"..야. 단무지나 더 먹어."
인상을 구기며 단무지 세개를 찬열의 짜장면 그릇에 얹어준 백현이 오동통한 면을 쉴새없이 우물거렸다.
정작, 종인과 경수 사이의 오묘한 문제점이 되버린 백현은 아무것도 모른채 병원에서 찬열과 만담을 나누고 있었다. 수술을 마친 후 피곤하게 벌러덩 누워있는 백현을 찬열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발로 툭툭 건들며 야식이나 시켜먹자고 한게 시작이였고, 지금은 배까지 통통 두들기며 맛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경수랑 종인씨. 아무래도 뭐 있는거같긴 한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백현을 후루룩 빨아당기던 면을 끊고 곰곰히 생각했다. 아무래도 조금 많이 친한것 같단 말이지. 뭐.. 둘이
그렇고 그런 이상한 일은 없을테지만, 종인씨는 날 버리지 않을거니까. 아 물론 경수도!
"뭐.. 내 알바냐!"
"뭐래?"
"아니. 아무것도 아냐. 많이 먹어라."
"넌 꼭 수술 마치면 나사가 빠지더라."
"야. 단무지 먹기 싫냐?"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로 문제를 모를만한 백현은 찬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길고도 짧았던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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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낫닝겐 / 너구리 / 핫바 / 치즈스틱 / 조무래기 / 노란색연필 / 변골반 / 모카 / 이든 / 낑깡 / 연 / 두부 / 텐더 / 초코푸딩 / 히융융 /
홍홍아직도랩을한다 님♥
4일정도 늦게 찾아왔네요ㅠㅠ 오늘은 카디행쇼...! 할뻔 하다가 쪼~금 아쉬운 카디를 들고 왔어요!
기다려주시고 글 올릴때마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있기에 저는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저는 암호닉 받는 기간 따로 없어요~ 주시기만 하면 무조건 접수랍니다ㅎㅎ~*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정말 추우니까 감기조심하세요.
아...경수처럼 춥게 입고 다니면 종인이처럼 멋진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네요 (수줍게 눈을 굴리며)
사랑합니다~!
+) 구독료에 대해 늘 고민하는데.. 최소 10P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걸 어쩌면 좋을지 (난감)
구독료 없이 보여드리고 싶은데.. 일단 처음엔 구독료 풀고 나중에 시간 지나면 10P 걸어놓긴 하는데, 포인트를 내고 볼만한 글인지 싶어 늘 고민이 되어요ㅜ.ㅜ
일단 오늘은 10P 먼저 걸어놓겠습니다! 늘 감사해요 ㅜ.ㅜ
(이상한 변덕이 들끓는 이른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