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병원 : 02
w. Shelter
루한과 첸이 병원에서 긴급 호출을 받은건 오후 15시쯤이였다.
둘은 점심을 대충 떼우고 티비와 게임기를 연결해 축구 게임을 하는 중이였다. 사실 밖에 비만 내리지 않았다면 직접 나가서 축구를 했을 그들이지만 날씨가 따라주지 못해 아
쉽게도 손가락만 풀었다. 게임속 축구장에서도 비가 내리는 탓에 경기는 무척이나 치열했다. 첸의 캐릭터를 화려한 개인기로 따돌리는 루한의 캐릭터가 신나게 달렸다. 그들
이 골대를 향해 전진하던 중 루한의 핸드폰에는 전화가 걸려왔고 유리로 조공된 테이블이 가볍게 떨림과 동시에 루한이 슛팅한 공이 아깝게 골대를 맞고 튕겨나갔다.
루한은 아쉽다는듯 탄성을 내뱉으며 시선은 화면에 향한채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 번호는 병원의 번호였고 잠시 표정이 굳어지더니 첸에게 몸을 돌려 게임을 멈추라
는듯 손짓했다. 첸이 알아듣고는 게임을 끄자 루한은 쉿- 하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루한입니다."
그가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루한이 말할 틈도 없이 상당히 위협적인 소리들이 전달되었다. 무언가가 격하게 깨지는 소리와 물건이 무너지는 소리,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어
떤것들이 주체 할 수 없이 바닥으로 구르는 소리, 그리고 인명의 째질듯한 비명소리와 알아듣지 못할 중국어들까지. 루한은 난데없는 소음에 놀라 인상을 쓰며 수화기에서 잠
시 귀를 뗐고 바로 핸드폰의 볼륨을 최소로 줄인채 다시 가져다댔다. 최소로 음량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들은 첸이 있는 곳까지 들려왔고 심각해지는 루한의 표정을
본 첸도 그의 곁에 가까이 붙어 전화기에 귀를 댔다. 한참이 지나자 처음으로 정상적으로 들려오는 빠르고 정확한 말이 그들의 귀에 스쳐 지나갔다.
- 환자가 위험합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와주세요 선생님!!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제발..!!!
그가 무어라 대답할 새도 없이 여러번의 비명과 쨍그랑- 하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것들이 몇 번을 더 반복되고 나서야 전화가 끊겼다.
루한은 겉옷따위 챙기지도 못하고 잠옷바람이라면 잠옷바람으로 급히 뛰쳐나가 무작정 핸들을 잡았다. 첸은 조수석에 함께 앉아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으며 와중에도 루
한의 핸드폰으로는 병원에서는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방전이 되버렸다.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미친속도로 악셀을 밟아 달리니 평소 30분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거리를 10분만에 도착 해냈다. 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병원 안으로 진입했다.
엘레베이터가 자꾸 환자층에서 멈추는 바람에 둘은 계단으로 뛰어 오르기를 선택했고 위치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루한의 전화기 반대편에서만 들렸던 시끄러운 소리가 현실로
귓가에 다가와 크게 울렸다.
루한과 첸이 3층에 도달했을때, 그 주변은 무척이나 엉망이였다. 환자 공급용 링겔팩은 바닥에 떨어져 사정없이 접질러져 터져있었고 벽과 바닥에는 누구의 피인지 모를 핏물
들이 아주 강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각종 의료용품이 여기저기에 정신없이 흩어져 있었으며 비명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루한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믿을수 없었다. 분
명 그 곳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전부 모여있었는데, 단 한 명도 그런 상황을 진정 시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지금..무슨 일입니까."
루한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일제히 모든 시선이 루한과 첸에게로 꽂혔다.
"선생님.."
전화기를 쥐고 있던 남자 간호사가 어두운 가운을 입은채로 루한에게 달려갔다. 방금 전 루한에게 이 사실을 알린 사람인듯 했다. 루한이 그의 옷깃을 잡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덜덜 떨기만 했다. 그러다 간신히 손바닥만 들어올려 어딘가를 지목했는데, 바로 그때 오른쪽 바닥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무언가 빠르게
그들 앞으로 위협적이게 튀어나왔다.
루한과 첸이 놀라 잠시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니 그들을 놀라게 한건 괴한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30대 초반의 여성 환자였다.
"청양...?"
그녀의 이름은 청양. 몸이 아픈 아이를 먼저 하늘로 보낸 후 남편과 이혼까지 겪게되자 불안증세와 정신질환이 한꺼번에 찾아와 2년을 내리 앓던 환자였다. 루한이 그녀를 어
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2개월이 넘도록 주치의를 담당했었던 까닭 때문이였다. 지금은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청양의 주치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지만 이
런식으로 맞닥뜨리게 되니 당황스러움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대면하게 된건 본인이였기에 차분히 그녀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청양."
"......."
"루한이에요."
"......."
"나 기억하죠."
청양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였다. 가소롭다는 미소, 루한이 보지 못한새 마음을 많이 다친듯한 얼굴을 표면 위로 드러내고 있었다.
"됐어."
"......"
"나랑 청양만 남게끔 다들 나가줘요. 첸, 지금 바로 환자들 대피시켜."
"......"
"나머지는 내가 할게."
루한은 사람들을 잠시 뒤로 한채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녀에게 조급하지 않게 다가갔다. 모두가 그를 초조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청양."
루한이 오른쪽 무릎을 꿇으며 그녀에게 손을 뻗어 내밀었다. 가만히 있을리 없는 그녀는 루한의 그런 행동에 당장이라도 달려들듯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루한이 상체를 조
금 숙이자 그때 그녀가 황급히 두 손을 밖으로 빼냈다. 놀랍게도 그녀의 양손에는 의료용 칼과 큰 주사 바늘이 흉기가 되어 쥐어져 있었다. 뒤에 있던 첸이 그걸 보고 크게 놀라
루한에게 뛰어가 곧바로 제지시켰다.
"루한."
그가 루한의 어깨를 격하게 잡아 돌리며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이제서야 둘은 상황파악이 되고 있었다. 정신질환 1급을 앓고 있는 그녀가 갑작스런 발작을 일으켜 병동 안에
서 칼부림을 한 것이다. 그들이 곧바로 위험을 직감했다.
"오지마. 뒤로 가있어."
"위험해. 잠깐만. 이건 아니야."
"괜찮아."
"괜찮다고? 환자 손에 지금 뭐가 들려있는지 안보여? 잠시만 기다려. 이건 아직 아니야."
"아무것도 방해될거 없어. 저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야."
"일시적인 현상? 너 지금 그게 할 소리야? 안돼. 위험해."
"청양을 마취시킬거야."
"뭐?"
"내가 할게."
"루한, 지금 너 너무 급한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는 달라질게 없어. 조금만 더 생각해, 급하게 행동하지마."
"맞아. 지금 급해."
"뭐?"
"급하다고. 첸, 부탁하는데 지금 당장 사람들을 전부 밖으로 빼줘."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저 환자는 지금 날카로운걸 들고 있어! 다가가면 마취고 정리고 뭐고 네가 다칠지도 몰라!!"
"이런 분위기가 청양을 더 난폭하게 만들고 있다는거 알잖아! 첸..부탁해. 어서 사람들을 전부 조용히 내보내줘."
"위험하다고, 루한. 제발 조금만 더 생각해!!"
"생각할 시간이 없어. 누구 하나는 이 상황을 정리 해야돼."
"........"
"아니면 계속해서 환자가 발생할지도 몰라. 잠시만 뒤로 가 있어. 이건 내가 처리할게."
첸이 바닥을 크게 치며 욕을 읊조렸다.
간호사들은 그런 그들을 보며 벌벌 떨고 있었고 건장한 의사들은 손을 쓰지 못한채로 아까부터 멀찍이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들 상당히 맥이 빠져있는 표정이였다.
그리고 루한은 위험함을 감수하면서도 그녀에게 닿으려 준비중이였다.
"우웨이씨는 어디있습니까."
현재 그녀의 주치의 되는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봐도 그가 찾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우웨이씨."
두 번을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없습니까."
루한이 뛰는 심장을 가다듬으며 호흡했다. 이 환자를 이대로 놔둬서는 안된다. 다들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다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청양."
"......"
그가 첸을 밀어내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굳은 심지가 박힌 루한을 말릴수 없다는걸 깨달은 첸은, 뒤로 돌아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눈을 꾹 감았다. 천장이 뿌옇게 흐려졌
다.
"위험하지 않아요.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나.. 기억하죠. 당신을 아주 잘 알고, 당신과 친했던 사람이에요. 청양. 나에게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줄래요?"
"......"
"날 봐요. 안전해요. 지금 이곳은 위험한 곳이 아닙니다..."
"......"
"그거 내려놓고, 내 손 잡아봐요."
"......"
그가 한발자국씩 천천히 더 다가갔다. 그녀가 여전히 불안함과 무서움을 안고 있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면서도 루한을 알아보는듯 했다. 고개를 살짝 이리저리 흔들며 루한
의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손에 들려있는 위험무기들은 아직 내려놓지 않은 상태였다.
"이리와요.."
"........"
"청양."
".....싫어.."
"......."
"벗어날거야."
"그래요. 벗어나요, 우리."
그녀의 눈에 불안과 공포, 슬픔이 연속으로 올라왔다. 루한은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끊임없이 다가가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다. 모든 이들이 청양이라는 환자와 루한,
그 둘만을 바라보았다. 첸은 입을 막고 숨을 죽인채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지금 사람들을 내보내기엔, 그리고 그를 말리기엔. 너무 늦었다.
"벗어나게 해줄게요."
"......."
"방법도 알려줄게요."
"......."
"대신에, 그것들을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럼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요."
"......."
"청양. 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을 지키려 온거에요."
그녀가 주사기를 든 손으로 산발인 머리를 쥐어 뜯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확한 자해였다. 양쪽 고막을 찢어지게 하는 비명소리가 감히 측정할 수 없는 데시벨 정도로 크게 울렸
다. 루한이 아무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고 멀지 않은 거리에 모르핀으로 추적되는 주사가 떨어져있는걸 발견했다.
"저리가!!!!!!!"
"그만해요, 청양. 그만해."
"저리가!!!!!!! 찌를거야!!!!!!!!"
"이리와요. 청양."
"가까이 오지 마!!!!!!!!!"
"...이리와."
"오지 마!!!!!!!!"
아무도 말릴수 없을만큼, 그 순간은 세상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그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들고 있던 칼날 위로 주저없이 달려든 것이다.
"아악!!!!!!!"
청양은 루한이 자신을 끌어안자 급성 발작을 일으키며 루한의 품에서 미친듯이 몸을 흔들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칼은 루한의 허리에 그대로 박혔고, 그녀는 잡고 있던 칼을 놓
았다. 정반대로 루한은 그녀를 꽉 잡은채 놓아주지 않았고 주위는 순식간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괜찮아. 괜찮아요 청양.."
"...오지 말라고......오..오지..말라고.........."
"...괜찮아, 청양.."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비명을 지르는 청양 곁으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주위의 남자 간호사들이 순식간에 달려와 떨리는 몸을 제지시켰다. 루한은 여전히 그런 청양의 몸체를 잡고서 놓질 않
은 상태였다. 루한의 하얀 티셔츠 위에는 새빨간 피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기다려.."
"루한...루한..!!!!!!!!!!"
"...마취 해야 해. 아직 환자는 건들지마.."
"루한....!!!!!"
"....내가 해."
첸이 그에게 달려가 루한의 어깨를 잡아 끌었다. 루한은 주위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주사들중 하나를 집어들어 그녀의 팔을 잡아올렸다. 미리 마취약의 위치를 파악한 탓에
틀림없이 주사기와 모르핀을 들어 주사기에 약을 투입 할 수 있었고 정신이 살짝 흐려지려 하는 와중에도 환자의 맥박을 짚어내며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바로 주삿바늘을 밀어넣
었다. 간호사들이 그녀를 잡고있었기에 루한은 무리없이 주사를 놓을수 있었고 그로부터 청양은 몇 분 동안을 더 급성발작을 일으키다 마지막으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곧
머리를 땅으로 떨궈냈다.
목덜미의 맥박을 만지고 마취제가 그녀의 몸에 흐르는것을 확인한 루한은 그제서야 힘없이 그녀를 놓아주었고 남자 간호사들이 급히 그녀를 들쳐 업은채 응급실로 향했다.
자리에 남은 루한은 칼이 꽂힌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져있는 상태였다. 곁에 있던 첸은 화를 감출수 없는 표정으로 소리를 지
르며 루한의 어깨를 참지 못하고 매우 쳤다.
"이..이....미친새끼야..!!!!!!!"
"......."
"뭘하겠다고 네가..네가!!!!!!!!"
".....첸..."
"내 이름 부르지마!!!!!"
"........"
"입만 살아서..네가..네가 이루려는게 뭐야!!!!!!!! 이렇게 다치는게 바라던거야!??!!"
"난 괜찮아. 첸.."
"루한...이 새끼야..!!!"
"...청양 잘 돌아갔지....그럼 됐어.."
"..미친..미친 새끼....미친 새끼야!!!!!!"
루한이 의료진 사이에 둘러싸였다. 응급실에 대치되어 있던 상처 치료 담당 의사가 급히 뛰어온것이다. 그가 곧 루한의 복부를 관찰했다. 아직도 메스는 깊게 박
혀있었고 박혀도 너무 깊게 박힌 메스를 의사는 건들지도 못한채 수술을 결정했다. 외상만 봤을때에도 그는 당장에 수술을 감행해야만 했다.
그가 괜찮다며 팔을 들어올렸으나 곧 힘없이 떨어뜨렸다. 첸은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하지만 루한은 계속해서 괜찮다고 한다. 정말로 미친것 같았다. 환자에게 미친 것 같았
다. 루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 첸이 물었다. 질문의 주인인 루한은 딱히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곧이어 의료진이 가져온 들것에 힘겹게 몸을 맡겼
을 뿐.
루한은 제 이마를 짚으며 거친 숨을 내몰아 쉬었다. 분명,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갈수 있는 휴일이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환자와 대면하고 있었고, 또 지금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보니 무언가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중이였다.
누워있는채로 계속해서 헛웃음을 흘렸다. 첸은 계속해서 루한을 따라갔고, 루한이 그의 손을 잡으며 괜찮다며 입모양으로 뜻을 전달했다. 첸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그런 루
한의 손을 꼭 잡았고, 그렇게 그는 급히 수술실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첸은 수술실 밖에서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주저 앉아 울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였다.
-
백현은 환자의 진료를 마치고 난 뒤 주어진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벼운 산책을 하는 중이였다. 한 손에는 커피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녹차라떼를. 예쁜 초록빛을 띄고 있는
녹차라떼는 어쩐지 백현의 것이 아닌것 같았다. 그는 병원 옆 작은 공원 주위를 걷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는데 먹구름이 끼면서 꽤 흐리고 어두워지는것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 같았다.
"아, 날씨도 흐리고. 몸도 좀 뻐근하네.. 잠을 잘 못잤더니."
그가 약수터 아저씨처럼 두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출근 이틀째인 종인도 함께 나란히 걷고 있었다.
"선배님. 저희 어디 가는거에요?"
"가보면 압니다~"
종인은 1년차 선배인 백현에게 의료 관련 일을 배우게 되었다. 그 이유는 원장이 실력자인 백현을 추천하는 바람에... 가 아니라 종인 그가 직접 백현에게 배우고 싶다고 말했
기 때문이였다. 화장실 위치를 너무 친절하게 알려줘서 감동을 받았다고 했나. 아무튼 그 소식을 접한 백현은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자기합리화를 시키기로 했다. 그래. 화장실
위치 정도는 의식주만큼 중요하잖아. 급할때 갈수 있는 곳이 어디겠어, 그건 바로 화장실이야. 종인씨가 현명한 선택을 한거지.
그 뒤로 백현은 종인을 데리고 다니며 서로간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던 중이였다.
"인생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거잖아요. 대인관계가 중요해야지."
"......."
"내가 종인씨가 좋아할만한 새로운 사람 소개시켜줄게요."
사실 내가 많이 만나는 사람이라 같이 있다보면 언젠가 인사는 한 번 해야 할것 같아서.. 백현은 조용히 읊조렸지만 종인은 듣지 못한것 같았다. 공원 안을 좀 더 깊숙히 들어가
자 벤치가 보였다. 백현은 늘 걷던 길인마냥 익숙하게 걸었고 종인은 여전히 머리를 매만지며 영문도 모른채 따라 들어갔다. 시간이 늦을까봐 노심초사 하는 신입과, 5분 정도
는 늦어도 된다며 종인을 달래는 선배 백현. 둘의 뒷모습이 뭔가 애처로워보였다.
"경수야!"
보라색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고 있던 경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얜 또 쉬는시간에 주책맞게 책을 읽어. 재미없다."
"마음의 양식."
"네 마음의 양식은 나야."
"저리 가."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며 장난을 했다. 뻘쭘히 서있던 종인이 쭈뼛하게 서있다가 경수가 먼저 종인에게 시선을 돌려 눈을 마주하자 그제서야 꾸벅 하고 인사했
다. 경수는 눈짓으로 가볍게 인사하고는 백현의 옆구리를 찌르며 누구냐 물었다.
"아. 소개시켜줄게. 이 쪽은 도경수. 우리 병원 바로 옆 종합병원에서 치과 운영하고 있어. 좀 귀엽게 생겼지?"
"..안녕하세요. 김종인입니다."
"응. 그리고 이 쪽은 김종인씨."
"..안녕하세요."
"내 바로 직속후배야. 어제 첫 출근 했어. 뭐, 웃기만 안하면 좀 매력 있는 편인데... 괜찮아."
"반가워요."
경수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종인은 잠시 당황하더니 경수의 손을 덥썩 잡고는 위아래로 흔들었다.
"서로 친하게 지내요. 아무래도 나랑 만나다보면 종인씨랑 경수도 자주 만나게 될거 같아서 나중가서 얼굴 붉힐까 싶어 미리 안면 좀 익히라고 인사 시키는거니까."
경수에게 녹차라떼를 내민 백현이 다들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어설프게 자리에 앉으며 종인은 생각했다. 도경수라는 사람은 눈이 정말로 크고, 피부가 곱구나. 딱 봐도 도련님같이 생겨서 함부로 하면 안될것같은 기운이 느껴지는것 같다.
그리고 경수 또한 생각했다. 강하게 생긴것 같지만 속은 무척이나 여린것 같다고. 쌍커풀이 엄청 짙네, 내가 정말 부러워 하는 사람들은 전부 쌍커풀이 짙던데..
그렇게 서로를 은근히 스캔하던 둘은 별다른 대화 없이 계속 눈치를 봤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백현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경수와 종인을 번갈아보자 그 둘은 헛기침을
하며 먼 산을 바라본다거나 읽고 있던 책을 괜히 만지작거린다던지 딴청을 피웠다.
"뭐야."
"응?"
"네?"
"...아니."
백현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얘네 서로 스캔한거 같은데.
"종인씨."
"경수씨."
"아. 먼저 말하세요."
"아, 아니에요. 경수씨 먼저.."
둘은 무언가 궁금한게 있었는지 서로를 불렀다. 초면에 영화의 한장면을 명쾌하게 그려냈다. 백현은 가운데에 앉아 기분이 묘해짐을 느꼈다.
"자리 비켜줘?"
"어? 아니! 어딜가려고."
"나 왠지 너네 소개팅 시켜주는 느낌이야."
"미, 미쳤어! 어떻게.. 남자끼리 그런걸 해."
"근데 왜 수줍어하는데."
커피를 후루룩 마시며 경수에게 구박을 했다. 종인도 계속해서 헛기침을 하다가 이내 바보같이 웃어버렸다. 백현은 종인의 옆구리를 한 번 찌르고는 그러지 말라며 연타로 구
박했다.
"왜요..?"
"바보같아. 그렇게 웃지마."
"..괜찮은데 왜."
어쭈? 도경수 지금 이 요물같은게 처음보는 김종인을 쉴드 한다 이거지.
백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뭐라 한 소리를 하려 하자 다시 반가운 셔플댄스 벨소리가 들려왔다. 보나마나 박찬열일거다. 이놈 번호를 스팸 차단하던지 해야지, 원. 백현이 자
리에서 일어나 잠시 전화를 받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내가 종인씨 앞에서 욕 하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서 일부러 비켜주는거다.
백현이 벤치에서 조금씩 멀어지다가 뒤를 한 번 돌았다. 종인과 경수가 어색하게 앉아있는게 꽤 웃겼다. 하긴, 스캔은 무슨. 처음보는 사람들이 별 얘기야 하겠어. 오늘은 여러
모로 박찬열이랑 조금 길게 통화 하다가 와야겠다.
"......."
"......."
백현이 떠난 자리에는 고요와 정적만이 남아있었다. 둘의 성격상 그것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경수가 다리를 꼬고 앉은채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차마 눈은 마주치지 못
하고 물었다. 아까 먼저 악수를 내민건 어디서 난 용기였을까 싶다.
"저...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아.. 저 스물..다섯입니다."
"아.. 네."
"......."
하지만 오글거림은 더 참을 수 없었다.
"어리시네요."
"네."
"..네."
공원 안의 삐그덕 거리는 그네와 새소리가 겨우겨우 정적을 풀어주었다. 이번에는 종인이 조용히 웃으며 물어왔다.
"........혹시, 영화 좋아하세요?"
"저 공포영화 좋아해요."
"아! 저도요. 저도 공포영화 좋아해요."
"어, 그래요? 종인씨 저랑 취향이 조금 맞나봐요. 저는 공포영화 아니면 잘 안보는데."
"대박...저도요."
"와. 진짜에요? 신기하다. 그런 사람 만나기 힘든데! 다 멜로 좋아하구, 추격 좋아하고 그러잖아요."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둘은 어느새 서로를 향해 몸을 틀어 영화로 시작해 좋아하는 영화관, 영화 볼때 먹는 음식, 좋아하는 좌석 등등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영화 진짜 재밌더라구요. 혹시 이번에 개봉한 영화 컨져링이라고 아세요? 혹시 보셨어요?"
"어우, 아니요. 시간이 없어서 보지 못하고 있는데 그거 진짜로 보고싶어요."
"아.. 그럼.."
종인이 잠시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혹시, 시간 나시면 저랑 같이 영화보러 가지 않으실래요?
"...저랑요?"
"네."
"아.. 뭐.. 저는 괜찮.."
"종인씨! 시간 다됐다. 들어가야돼!"
경수가 귀 뒤를 긁적이며 대답 하려는데 통화를 끝낸 백현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들어가봐야 한다며 종인을 불렀다. 경수가 순식간에 몸을 틀며 마침 그들의 앞을 지나가고 있
는 길고양이에게 휘파람을 불었다. 종인은 그런 백현을 보며 억지로 웃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느릿하게 경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 했다.
"아쉽네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럼 다음에 봴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백현이가 저래보여도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하거든요. 열심히 배우세요. 나쁠거 없을거에요."
"조언 감사합니다."
종인이 바지를 쓸어내리며 어색한 미소로 웃어보였다. 경수도 똑같이 따라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첫 만남이였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여운있는 만남이였다. 백현이
경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일 이 시간에 이 곳에서 다시 보자고 소리쳤다. 경수는 대답 대신 다시금 손을 들어올려 힘차게 흔들었다.
"영화 같이 봐도, 괜찮은데."
경수는 그 자리에 남아 자신의 짙은 눈썹을 매만졌다. 그리고 고개를 쑥 빼내어 저만치 멀어져가는 종인과 백현을 바라보았다. 백현이 또 무슨 웃긴 얘기를 한건지 종인은 웃기
다며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웃고 있었다. 웃음이 많은 남자구나, 저 남자.
뭔가 색다른 느낌을 받은 남자였다. 경수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그도 들어갈 시간이 다 되었는지 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병원을 향해 걸었다.
날씨가 매우 흐렸기에 어차피 비가 내릴줄은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하늘에서는 한방울, 한방울씩 비가 내렸고 정수리와 피부에 빗물이 튀기자 경수와 백현 그리고 종인은 각
자의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뛰었다.
오늘, 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같은 취향을 가진 귀여운, 그리고 겉은 강하지만 속은 여려보이는 웃음이 귀여운 사람을.
왠지 서로를 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두 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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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 낫닝겐 / 너구리 / 핫바 / 치즈스틱 / 조무래기 / 노란색연필 / 변골반 / 모카 / 이든 님! 하루하루 늘어가는 암호닉에 저는 그저 기쁘다고 합니다*
시간이 정말 부족한 쉘터 왔습니다 ^_ ㅠ 한편 한편 쓰기에 시간이 부족하군요 흑흑.. 직장이란 이래서 힘들어요, 일 끝나고 오면 놀고 싶어도 못 노는 현실.. 내일을 위해 놀아
도 시간을 쪼개어 놀아야 하는 현실!!! ㅋㅋ 그래도 잠을 포기하고 수줍게 2편을 써서 내밀어 봅니다.. 20대 초반에 놀지 못하고 ..ㅎㅏ아..
기다리시는 분들은 별로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기다려주신 분들에게 꾸벅 감사의 인사를♥^^
의사가 되려면 적어도 11년은 걸린다고 하죠. 픽이라서 우리 애들을 대학 졸업하자마자 의사 시키는 제가 잘못이지만.. OTL
픽션이라 억지가 있고 과장된 점이 있어도 (또는 틀린게 많아도)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래요, 사랑하는 독자님들! 언제나 사랑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