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병원 : 01
W. Shelter
이른 새벽 6시. 어제 저녁 미리 맞춰둔 알람이 쨍알거리며 울렸다.
침대에서 곤히 자던 한 남자의 팔이 바깥으로 쑤욱 올라와 소리의 근원지를 자연스럽고 절도있게 제압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그가 천천히 그것을 내려놓고 부은 눈을
손으로 쓸어내며 슬그머니 한 쪽 눈을 떠 천장을 바라봤다. 모던한 흰색 벽지로 도배된 방 안, 창가로 들어오는 시원한 새벽 바람,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주황빛 스탠드까지.
첫날부터 모든게 완벽했다.
"드디어 첫 출근..."
남자가 졸린 눈을 비비며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 무슨 재밌는 상상을 했는지 크고 짙은 쌍커풀이 진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그리곤 수줍게 목소리까지 내어 웃었다.
얼마간을 실없이 웃기만 하다 결국엔 눈을 부릅뜨더니 침대에서 몸을 재빠르게 일으키고는 곧 부르르 떨며 머리를 한 번 시원하게 털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탄성.
"........첫 출근이래."
그가 침대에 걸터앉은채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퍼컷을 날리는 시늉을 하며 눈을 꼭 감고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다시 침대 위로 점프. 이불을 자기 애인마냥 끌어 안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난리가 아니였다. 먼지가 날리는것 같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날아갈듯이 좋았다. 아,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다. 시간이 벌써 5분이나 흘렀다. 첫 날부터 늦을수는 없으니 빨리 가서 씻고 준비 해야한다.
종인은 어제 미리 다려둔 와이셔츠를 옷장에서 꺼내 입으며 거울 앞에서 계속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웃는게 멋져야 돼, 웃는게 좋아보여야 사람들도 편할거야.
자신의 몸에 딱 맞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이리 돌고 저리 돌며 자신의 모습을 체크했다. 갈색빛이 감도는 들어오는 햇빛에 밝게 비추는 머리카락과 군살없는 몸매가 가장 눈
에 띄었다. 손목을 들어 셔츠 단추를 잠그던 그가 끊임없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실수같은거 안하겠지. 긴장해서는 안되는데.."
옷장 중 세번째 옷장을 확 열어제끼자 수많은 넥타이가 고르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 중 검정색 스트라이프 넥타이와 노말한 모자이크 회색의 두 넥타이를 집어 들며 한참을 고
민하던 종인은 두 개를 한꺼번에 대보더니 곧 회색 넥타이를 선택하고서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다시 옷장 문을 닫고 넥타이를 들고 와 자신의 목에 메었다. 때마침 거실에서
는 토스트기가 땡-하고 울렸고 브런치 두 조각이 김을 뿜으며 올라와있었다. 그는 마저 넥타이를 메고서 옷깃을 한 번 접었다 내린뒤 다시금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슥슥 털
어냈다. 푸흡, 하며 괜한 웃음이 터지자 다시 오른손을 들어올려 주먹으로 입술에 갖다 대었다.
"김종인. 너 화이팅!"
그가 네모난 검정 가죽 백팩을 메고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 두개를 손으로 집어들고 현관을 열고 나갔다. 그는 어머니가 사주신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엔 푸른 정원
도 함께 대치되어 있었다. 정원의 한 켠에는 종인의 흰 자전거가 있었는데 그가 자연스레 자전거의 자물쇠를 열며 가방을 자전거 안장에 안전하게 올려둔뒤 자신도 곧 그 위로
올라타 신나게 페달을 밟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원의 푸른 잔디가 유리의 반사된 빛을 받아 예쁘게 반짝였고, 밝은 햇빛이 따사롭게 피부에 와닿자 종인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오늘부터 함께 이 병원을 운영해갈 김종인 선생님입니다."
서울 정형외과로 출근한 종인은 그를 소개하던 원장의 손에 의해 가운데 자리로 서게 됐다. 등 뒤로 빼꼼히 보이는 귀여운 가방이 눈에 들어오자 모여있던 여간호사들이 귀엽
다며 쿡쿡거리고 웃었다. 눈치챌리 없는 종인은 수줍고도 해맑게 웃으며 힘있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허리를 한 번 크게 굽히자 가방에 그의 뒷통수를 쳤다. 아야, 하던 종인이
뒷통수를 문지르며 일어섰고 또 다시 여간호사들 눈에는 하트가 뿅뿅 튀었다. 피부봐 되게 구릿빛이야, 엄청 매력있게 생겼어. 쑥덕거리는 소리가 그를 소개하던 원장에게까
지 들릴 정도였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여기 계신 종인씨는 성균관대 의대를 졸업했고 정형 전문의를 전공으로 다뤄서 그 분야에서는 상당히 지식이 뛰어난 사람이라, 전국 정형외과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했던 소문난 인재입니다. 나이가 스물 다섯이던가요?"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귀를 기울였다. 그럭저럭 하다가 나이 얘기에 오- 하는 탄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우리 종인선생이 선택한 곳이 이곳이니까, 다들 적응 잘 할수 있도록 도와주자구요. 자 인사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앞으로 이 곳에서 선배님,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할 김종인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모자란 저를 잘 이끌어주신다면 그 두배로 더 잘하겠습니다. 감
사합니다!"
그가 다시 한 번 허리 숙여 인사하자 그곳에 모여있던 의료진들이 손을 모아 박수를 쳤다.
핸드폰을 만지며 그들 중 가장 끄트머리에서 종인을 흘끔흘끔 바라보던 한 남자, 찬열에게 문자로 어디냐고 갈굼당하던 백현이 문자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
를 후루룩 마시며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비집고 들어오는 중이였다. 백현의 눈에 비친 그는, 뭐랄까. 어딘가 웃는 모습이 조금 모자라보였다. 왜 저렇게 실실거리는거?
그러다 백현은 곧 아차 했다. 첫 날이라 그렇구나. 하지만 곧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이컵을 입에 문채로 함께 박수를 쳤다.
바쁜 시간이라 대충 인사를 끝낸뒤 원장이 종인을 이끌며 원장실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사람들이 조금씩 흩어졌다. 신입이라 조금 기승부릴까봐 놀려주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되게 귀엽게 생겼다는둥 호감이 강하게 들어오는 좋은 인상이라는둥 뭇 여간호사들이 서로의 팔을 치며 칭찬해대기에 바빴다.
백현은 그 자리에 남아 종인의 뒷모습을 여운있게 바라보았다. 머리 긁적이는게 습관인가. 계속 긁적거리네.
"...아. 진짜 이 스키.. 아 또 왜!"
- 야. 넌 어떻게 뭘하느라 전화도 안받고 문자도 씹고 그러냐!? 너 진료시간 아닌거 다 알거든? 하나뿐인 친구한테 그따위로 할래?
"넌 이럴때만 하나뿐인 친구라고 하더라. 뭐 도와달라고 할때. 여자 소개해달라고 할때. 먹을거 사달라고 할때!"
- 그리고 장기자랑 준비할때.
"맞고 싶나.."
- 아 백현아 제발 부탁이야 진짜. 한 번만 좀 도와줘, 나 이거 아무래도 못하겠어..
"...너네 담당쌤한테 말해. 내가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 끊어!"
- 야, 야야. 그럼 노래만 골라줘 노래만..
찬열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10통이 넘게 걸려오고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울리는 진동벨에 백현은 치를 떨며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찬열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장기자랑
준비를 좀 도와달라고 하는것 같은데, 오늘에야말로 담판을 지어야겠다는 심산이였다.
뭐라 말을 꺼내려 하는데 제 옆에 방금전 원장실로 쪼르르 따라 들어갔던 종인이 어느새 곁을 지나치고 있었다. 잔뜩 짜증난 얼굴로 전화를 받던 백현이 순간 본인도 모르게
표정관리를 하며 '어~ 응, 그래 알았어~' 하며 애 다루는 말투로 돌변하며 전화를 뚝 끊었다. 종인은 그런 백현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 네. 안녕하세요."
"편히 말 놓으세요."
"아. 초면인데 어떻게.."
"괜찮습니다.. 제가 한참 어린 후배잖아요."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말을 해오는데 밉지는 않았다. 하지만 백현은 종인의 말에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한참 후배는 아닌데... 백현도 의사들 사이에서는 꽤 어린 편이였다.
남들보다 빠르게 정식 의료진으로 치고 올라왔지만 그렇다고 오래된 경력도 아닌데 순간 제가 늙은이처럼 느껴지자 백현은 살짝 심드렁해졌다.
"나도 들어온지 1년밖에 안됐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러자 종인이 다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백현은 눈을 꿈뻑거리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다시 말 편히 놓지 말라고 하는건 아니겠지..
이왕 이렇게 된거, 처음 말 거는 사람이 원장 빼고는 자신밖에 없는것 같은 눈치에 백현이 핸드폰을 집어 넣고 종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뭐, 친해지면 좋으니까.
"오늘 첫 출근인데 기분은 어때요? 막, 부담스럽고 그러죠."
"아.. 저 엄청 심장이 두근거려요 지금.."
누구나 다 처음 직장에 발을 디디면 환상을 갖게 된다. 이 사람도 지금 그런것 같고, 백현도 처음엔 그랬다. 백현이 처음 병원으로 들어왔을때 응급환자가 갑자기 밀려들어오
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처음부터 고된 진료에 뛰어들었지만. 백현은 그날을 회상하며 괜히 웃으면서도 인상을 찡그렸다.
"앞으로 제가 만날 환자들이 너무너무 기대되고, 흥분도 되구요.."
그래, 나도 그랬다. 커피를 다시 마시며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 선배님같이 좋은 분을 만나서 설레기도 해요."
종인이 백현의 명찰을 스윽 보더니 다시 백현의 눈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어, 이놈자식.. 웃는것 봐. 사람 좀 황홀하게 하네.
"아, 왜, 왜그래요 부끄럽게."
"하하.. 선배님, 앞으로 제가 모르는게 있으면 여쭤봐도 되나요?"
"그러세요. 동료니까 서로 배워야지."
"선배님."
"네?"
"근데 구내 화장실이 어디있어요..?"
"아. 화장실... 여기서 한 층 더 위로 올라가면 바로 있어요. 딱 이 쯤이야."
"감사합니다!"
백현은 태어나 처음 들어온 병원 후배한테 첫 질문을 받았다. 그건 바로 화장실 위치라고는 말 못해..
종인은 누구보다 빠르게 경보하듯이 2층을 찾아 나갔고 백현은 방금전 황홀했던 마음따위 고이 접어 고개를 휘적이고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친해져서 나쁠건 없을거 같은데,
좀 많이 특이한 캐릭터같아 저 사람.
"아나 커피 다 식었어. 아! 박찬열..."
-
"너무 과로하게 움직이지 마시구요. 처방전 끊어드릴테니 하루 세번 꼭 약은 드시고요. 어머님이 연세가 조금 있으셔서, 조금만 무리해도 신경에 아주 큰 손색이 갈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심해서 다니세요. 아셨죠!"
"알겠어요.."
"왠만하면 가까운 거리여도 아들한테 차로 데려다달라고 하시고, 집에서는 가벼운 집안일 외에는 하지 마세요.."
서울 종합병원 안, 신경과 전문의 층 3번 진료실 안에서 가운을 입지 않은 남자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한 여성분의 손을 잡으며 진찰하던중이였다. 다리를 만져보다가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고는 큰 무리없이 처방전만 드리는걸로 마침내 진료를 끝냈다.
"아 김간 거기 있어요, 내가 안내해드릴테니까."
전국구에 있는 김간들이 멈칫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진료를 끝내고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여성을 바깥으로 보내드리고는 그제서야 사무실 의자로 돌아와 쓰고 있던 안경
을 벗으며 한숨을 푹 쉬더니 머리를 쓸어올렸다. '김민석'. 사무실 책상 한 가운데에 자리한 검은 명패가 눈에 띄었다.
"씁, 우리 엄마도 한 번 봐드려야 되는데..."
매 시간, 매일, 매 년이 바쁜 그는 고향집에 내려간지가 5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민석의 어머니도 나이가 좀 있는 편인지라, 이렇게 어머님 또래 분들이 오시면 더 소중히 진
찰해드리거나 신경을 써주는걸로 대신했다. 민석은 조만간 집에 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안경을 집어들어 쓰고는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려 차트시트를 정리했다. 거
의 정리가 다 끝나가고 퇴근 준비를 하려는 중, 밖에서 누군가 문을 똑똑- 하고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네."
문이 열리고, 곧 준면이 웃으며 들어왔다. 안경을 내리며 밖을 쳐다보던 민석이 반가운 눈치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김준면!"
"민석이!"
"야 너가 이 시간에 여긴 왠일이야?"
"지금 애들 저녁시간이야."
"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구나."
"시간도 못볼 정도로 바빴어?"
"허허. 마지막에 환자분이 좀 많았거든. 앉아."
준면은 가운을 벗고 베이지색 가디건에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일에 벗어나 드디어 퇴근하는 모양인것 같았다. 민석은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했고 다시 안경을 벗으며 준면이
앉은 반대방향에 앉아 피로에 뭉친 제 어깨를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일은 잘 돼?"
"늘 똑같은 일 하는거니까.. 좀, 피곤하긴 하다잉?"
장난스레 씨익 웃어보였다. 준면도 함께 웃으며 말했다.
"민석아, 나 오늘 세훈이랑 바깥 나들이 하러 가기로 했거든."
"세훈...? 아! 그 신입 레지?"
"응. 사실 어제 가려고 했는데 어젠 내가 급한일이 생겼어서."
"그래. 잘 다녀와. 가다가 내 생각나서 들렸구나?"
"어. 안본지 오래됐잖아. 그래서 그러는데,"
"응."
"혹시 시간 되면 너도 같이 안갈래?"
"..가려면 둘이 오붓하게 가지 나는 왜~?"
민석이 음흉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그러자 준면이 멋쩍게 다시 웃으며 말했다.
"세훈이가 조금 낯을 가리나봐."
"낯 가리는데 나는 왜 데려가?"
"그게 아니구, 저번에 세훈이 한 번 본적 있잖아. 그때 유일하게 너한테는 낯을 안가리더라고."
"나를?"
"어, 너를."
"그래?"
민석은 의외라는듯 두 손으로 깍지를 끼며 자신의 머리 뒤로 갖다댔다. 그리고 앉아서 가볍게 하는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뼈가 두둑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연로하다 너도."
"뭐 임마..너와 내가 동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러니까 가자. 응?"
"뭐...딱히 나도 퇴근하고는 할 일 없던 참이긴 했어."
"콜. 그럼 가는거지?"
준면은 자리에 앉아 민석이 짐을 챙기려는걸 도와주며 빨리 가자며 허리를 밀어냈다.
"아, 잠깐만 잠깐만.."
"왜?"
"밥은?"
"아 그것도 당근 먹어야지."
"누가 쏘는데?"
"내가."
"바로 가자."
준면과 민석은 서로를 향해 피식 웃고는 그가 짐 정리를 다 하고 컴퓨터와 티비 모니터를 끄고 블라인드를 치고 나서야 사무실을 나섰다. 시트를 정리하다 말고 자리를 비우게
된 민석의 빈 사무실 안은 고요한 정적이 맴돌았다.
-
바깥으로 나오니 세훈이 먼저 준면의 차 앞에 기다리고 서있었다. 준면이 팔을 요란하게 흔들며 세훈아! 하고 부르자 세훈이 조금 웃는듯 안웃는듯 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옆
에 있던 민석도 세훈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고 그러자 세훈이 환하게 웃으며 더 꾸벅 인사했다. 그걸 본 준면이 멀리 있는 그에게 한순간에 다다다 뛰어갔다.
"야! 너 어떻게 나보다 김민석이야. 웃어?"
"아. 그게 아니라.."
"됐어."
준면이 새침하게 삐지는 척을 하니 세훈이 그의 옷깃을 잡으며 펄럭였다. 곧 준면의 허리에 손을 두른 세훈이 준면에게 한 번만 봐줘요, 하고 손을 비는 모습이 포착됐다. 민석
은 둘의 모습을 보며 바람빠진 웃음을 보였다. 소아과에서 소문난 커플답네..
"세훈이가 뒤에 타고, 너가 앞에 타."
"그러지 뭐."
준면과 세훈은 여전히 티격태격하던 중이였고 민석은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 받고 있는 중이였다. 세훈이 준면을 겨우 달래고 나서야 민석에게 말을 돌려 물었다.
"형. 누구랑 문자하시는거에요?"
"응? 나?"
민석이 손가락으로 자신에게 손짓하며 당황한듯이 말했다.
"아, 아는 사람."
"아.. 애인?"
"..먼저 있는지 없는지부터 물어봐야될거 아니니."
민석이 볼멘소리로 입을 우물거리며 말하자 세훈이 크게 웃었다.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던 준면도 그런 민석을 보며 괜히 귀엽다고 중얼거렸다. 이 나이에 귀엽다는 소리나 듣
고, 애인도 없는데 애인이랑 문자 하냐는 소리나 듣고, 새삼 뭔가 서러움이 올라오는 민석이였다. 소개팅을 해야하나.. 이거 원 참.
"애인 아니고, 여자 아니고! 그냥. 동물병원 원장님이랑."
"동물병원?"
"응. 나 투 잡 뛰려고.."
"뭐라는거야."
민석이 진지하게 말하자 준면이 되받아쳤다. 민석이 다시 씨익 웃으며 운전하는 준면의 팔을 툭 쳤다.
"진짠데. 나 수의학도 배웠잖아."
"그거야 뭐 나도 알지. 브레인이신데."
"사실 오늘 퇴근하고 여기 들리려고 했거든. 근데 이 분도 오늘 사정이 생겨서 못보신다네?"
"그래? 우리 땜에 그런건 아니고?"
"응. 그건 아니야."
세훈과 준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은 다시 핸드폰에 집중을 했다. 그리고 세훈이 민석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형은 혈액형이 어떻게 되요?"
"왜? 맞춰봐."
"음... 왠지, A형?"
"땡! 틀렸어. 너 나한테 관심있으면 가서 조금 더 알아와~"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던 민석과 세훈을 준면이 흘긋 쳐다봤다. 오세훈 저 녀석 나한테는 저런 장난 치지도 않더니. 진짜 김민석한테 낯 안가려도 너무 안가리는거 아니야?
운전대를 잡느라 운전에 집중했지만서도 그걸 핑계로 아무도 모르게 살짝 섭섭해하며 꿍얼거리던 준면이였다. 옆에서는 민석이 오히려 세훈의 혈액형을 맞추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속출됐고, 준면은 그러다가도 같이 따라 웃었다.
"너 내 혈액형은 알아?"
"선배요?"
"응. 뭐일거 같애?"
"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몰라? 틀려도 좋으니까 말이라도 해보지?"
"AB형?"
"어! 맞아."
준면이 해맑게 웃었다. 누가 의사와 레지던트들 아니랄까봐 처음은 혈액형 맞추기로 시작한 대화가 나중에는 혈액형으로 구분하는 성격이 맞네, 안맞네 하는 논쟁으로 이어지
고는 영화관에 도착하고 나서야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는 비로소 멈추게 되었다.
-
홍콩의 코즈웨이 베이, 루한의 저택. 루한과 첸은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 안의 무언가를 급히 검색하고 빠르게 뭔가를 찾아내더니, 화면을 바라보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
다.
"전세계 항공사 비행기 시간 다 찬거?"
"...내 눈에만 그래보이는거 아니지."
"아, 진짜."
병원에서 휴가사실을 뒤늦게 알려준 바람에 루한과 첸은 각자의 고향으로 가게 될 비행기를 뒤늦게라도 찾아봤지만 성수기인 휴가철에 남은 빈자리를 찾는 일이라곤 절대로
흔하지 않은 일이였다. 이코노믹, 비즈니스, VIP등 모든 전 항공사의 전 좌석들이 전부 다 매진되어 있었다. 루한과 첸은 진심으로 입을 모아 말했다. 망했네.. 망했어.
"이렇게 되면.. 이번 휴가때도 우리 둘인가."
"시간 지나면 여분의 자리가 남을수도 있어. 좀 더 찾아보자."
"돈이 있다는것도 다 쓸데없는거 같아, 이럴때 보면.. 정작 필요할때는 뭘 못하잖아.."
첸이 진심으로 비극을 맞이한 표정으로 장렬히 쇼파위에 전사했다. 루한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맥주 두 개를 꺼내와 첸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눈 앞에 맥주를 보여도 일어날
기미가 안보이자 첸의 엉덩이를 살짝 손으로 건들었다. 그러자 첸이 꾸물거리며 일어나 맥주를 건네받았다.
"진짜 너무하다.. 한국 가는게 어떻게 다 매진이야."
"안타깝다."
첸은 한국인이였다. 외국에서 병원활동을 하느라 이름을 첸으로 바꿔 부르고는 있지만, 실제 본명은 김종대였다. 그리고 루한은,
"베이징도 마찬가지야. 홍콩이나 베이징이나 같은 땅인데, 너무하긴 하네.."
중국인이였다. 글로벌한 두 친구가 서로를 보며 헛웃음을 짓고는 맥주를 갖다 대었다. 이거나 먹고, 내일 하루 푹 쉬자.
떨어지는 별똥별이 루한의 집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루한은 창 밖을 바라보며 그 별똥별을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고, 이내 희미하게 웃었다.
여러 분야에서 온 몸을 던져 뛰고 있는 이 의사들은 딱히 무언가를 바라고 일을 하는건 아니였다. 다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맞는 적성을 따라 흘러 넘어왔다고 하지만, 일에
대한 충분한 자부심이 있었으며 플라토닉 러브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이였기 때문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 편이였다. 가끔, 이렇게 휴가나 연휴가 맞지 않을때 빼고
는.
플라토닉 러브는 정신적인 사랑을 뜻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은 환자에게, 그리고 본인에게 찾아올 플라토닉적인 사랑을 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
급속도로 1편 들고 왔어요.
암호닉 ☞ 낫닝겐 / 너구리 / 핫바 / 치즈스틱 / 조무래기 / 노란색연필 / 변골반 / 모카 님!
감동을 주는 여러분의 댓글들 늘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항상 고마운거 아시죠? ☞☜
대체로 큰 사고 없이 일상적인 사연과 사건으로 이야기 풀어내려 노력하고 있어요. ^^
실제로 이거 쓰겠다고 설레발 쳤다가 어제 응급실에 다녀온 기억이 나네요.. 음식 잘못 먹어서- -;; 여러분도 음식 조심 하시고 건강 조심하세요ㅜㅜ 정말 아프더라구요..
그럼 재밌게 읽어주시고 다시 빠르게 찾아오겠습니다~
(와중에 우리 준멘 혈액형 틀려서 수정했슴다.. 털썩 내가 미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