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을 먹고 있는 우지호 옆에 가만히 앉아 있고, 이태일은 하품을 하며 우지호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이런 단조로운 사진말고 정말 괴물의 모습을 찍고싶다나, 뭐래나.
"표지훈, 오늘 7시에 월중회의 있는 거 알지."
"어? 아, 알아요."
"오케. 빠지면 죽어. 회의 할 때 자도 죽어. 딴짓해도 죽어."
"그냥 내가 죽이고 싶은 거 아니에요?"
"어떻게 알았냐."
장난스럽게 웃고, 웬일인지 자신이 직접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이태일. 힐끗 나를 보며 '넌 안 가냐?'하고 묻는다.
"아, 전 그냥 우지호 좀 봐주다 갈게요."
"그래봤자 괴물일텐데 뭣하러 그렇게 챙겨줘?"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닌지 이태일은 히죽 웃고는 그대로 휠체어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석에 편하게 기대어 앉았다. 조용히 스테이크를 썰고 있던 우지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손을 휘저으며 '먹기나 해'하고 말했다.
"이태일이란 사람은 너 미워해?"
"어? 뭔 소리야, 갑자기."
"널 죽이고 싶다잖아."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지능이 높다고 이런 반어법도 이해하는 건 아닌건가. 아니다, 이태일이 썼으면 반어법이 아닌가. 나는 큭큭대며 답해주었다.
"말만 하는 거야, 말만."
"말만? 그럼 실제론 너 죽일 생각 없는 거야?"
"그렇겠지. 사실 저 인간이라면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아, 너 지금 나 걱정한 거냐?"
웃음을 띤 얼굴로 우지호를 바라보는데 우지호는 늘 그렇듯 표정이 없다. 다른 사람이 저런 반응을 보였으면 무안했겠지만, 우지호는 항상 저런 표정이다보니 쪽팔릴 것도 없다.
"돌았어?"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접시로 시선을 돌리는 우지호. 아, 저거저거. 이태일한테 배웠나.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자 눈만 들어 '보고서나 빨리 써'랜다. 이태일이 하는 행동 보고 배웠나, 진짜. 내가 툴툴대며 손가락으로 펜을 돌렸다.
문득 방을 둘러보니, 휑하다. 그렇게 넓은 방은 아니지만 하얗기만 하고 가구라곤 이 커다란 방석이 전부니, 나라면 여기서 하루종일 있는 걸 못견디고 도망이라도 쳤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뭐, 가구라도 넣어줘야 되나. 책 많이 읽으니까 책꽂이랑 책상이나 넣어줄까?
우지호는 달그락거리며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밥을 먹고 있고, 나는 펜을 빙빙 돌리며 문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10%에 물이 포함되어있다는 건 알겠는데, 나머진 영 모르겠다. 나도 수석으로 들어온 몸인데, 갑자기 자존심 상하네. 이태일 이거 알면서도 일부러 나 괴롭히려고 모르는 척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며 펜을 빙빙 돌리다가, 눈에 띄는 글이 있어 밑줄을 그으려 펜을 붙잡았다.
"아!"
힘을 너무 줬나, 순식간에 종이를 넘어 내 손까지 쭉 그어버린 펜. 힘을 주체를 못해서 그런지 볼펜 자국이 난 곳은 살짝 벌어져 피가 맺혀 있다.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우지호도 벌떡 일어난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우지호가 긴 손가락을 뻗어 내 손을 붙잡는다. 뭐하냐고 물으려는데, 왠지 모르게 말은 나오질 않고 멀뚱멀뚱 우지호를 바라보았다. 눈을 곱게 내리깔고 두 손으로 내 손을 꽉 움켜쥐고 있는 우지호의 손이, 평소와는 달리 조금 따뜻하기까지 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우지호가 두 손을 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서글픈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밥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나는 우지호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의아해하며 방금 전까지 우지호가 꽉 잡고 있었던 손을 올렸다.
손은 볼펜 자국도 상처도 뭣도 없이 새하얗기만 했다.
"2057년 9월 회의를 시작합니다."
이 말을 들은지 한참이나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진행중인 회의. 나는 멍하니 손을 바라보며, 방금 있었던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다쳤고, 손에는 볼펜 자국이 났었다. 그런데 우지호가 내 손을 잡았고, 손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해졌다. 심지어 얼마 전 커터칼에 베여 생겼던 흉터도 사라졌다. 이건 무슨 뜻일까. 멍하니 손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박경이 내 허리를 쿡쿡 찔렀다.
"야, 표지훈. 이태일이 너 노려보는 거 안 보여?"
고개를 드니 이태일이 나를 살기 넘치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아, 예. 집중할게요.
사람들이 모두 종이를 한 장씩 넘기는 걸 보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하나 보다. 한 페이지 넘기니 이태일이 발표할 차례. '우지호' 석자가 적힌 종이를 바라보며 빨간 밑줄을 그었다.
[내가 대충 생각해 봤는데, 저 녀석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아. 설령 인간이라고 해도 일반 인간의 범위를 넘어선 능력을 가지고 있어.]
[가설이긴 하지만, 신빙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X구역에서 아무런 장치 없이 정상적으로 호흡하고 있었고 신체에 불순 물질이 지나치게 많이 쌓여 있는데도 무사한 걸 보아서는 정화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이태일이 했던 말이 머리에 계속 맴돈다. 정화 능력? 손에 있던 볼펜 자국이 없어진 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그리고 손의 상처가 없어진 걸 보면 혹시 치유 능력도?
무슨 괴물이 이래. 손에 든 펜을 또 빙빙 돌리기 시작했고, 이민혁이 곧 오는 모래 바람에 대한 짧은 발표를 하고 끝냈다. 이번엔 방사능이 섞여 있다나, 뭐래나. 이해가 안 가는 걸 보니 나 진로 잘못 정했나보다.
이태일이 전동 휠체어를 움직여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태일이 앞으로 나가자 조금은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그런 회의실 안을 둘러보던 이태일은 씨익 웃었다. 덩치도 작은 게, 세상을 다 이기는 듯한 모습이다. 이태일이 조용히 우지호에 관한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나야 몇 번이고 봐서 지루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지호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지 자세한 사항은 처음 봐서 그런가, 모두 눈이 빠져라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펜을 돌리며 스크린에 뜬 우지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해서 사흘 뒤, 모래 폭풍이 오는 날 X-01 구역에 우지호를 내보낼 생각입니다."
"뭐요?"
멍하니 있던 내 귀에 들어온 말에 책상을 쾅 치고 일어났다. 잠깐,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회의실 분위기가 싸해지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태일의 표정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우지호에게 있는 특별한 능력을 시험하기 위하여 사흘 뒤 X-01 구역에 가기로 했습니다."라며 다시 설명한다.
"아니 잠깐만요, 모래 폭풍이 오는 날 X-01 구역이라뇨. X구역 자체로도 위험한데 모래 폭풍이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애써 화를 참고 차분하게 묻자, 여기저기서 동조의 목소리가 들린다. '귀한 케이슨데, 잃으면 어쩝니까'라며. 아니 애초에 우지호는 괴물이라고는 해도 생명체다. 그런 생명체를 X 구역에 내보낸다는 건 고문이나 마찬가진데, 다들 그런 건 신경 안 쓰나? 우지호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건 상관도 없다는 듯, 귀한 케이스를 잃을 걱정만 하고 있다. 그럼 우지호는 어떻게 되는거지. 갑자기 눈 앞이 새하얘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지호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히 살아남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겠습니다."
이태일의 말에, 모두가 믿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 이태일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연구소에서도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실패한 적은 없었고, 작은 실수도 없었다. 징그럽기까지 한 인간이다. 나도 이태일을 믿는다. 믿기 싫어도 믿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우지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냥 연구소의 단독 진행이다. 그래, 실험 대상 주제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스크린에 비친 우지호의 표정 없는 얼굴이 갑자기 서글퍼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