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하늘로 높게 뻗은 나무들.
모든 게 우지호 투성이다.
책에서나 보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모습의 자연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천천히 발을 옮겼다. 흰 면 티에 트레이닝 복 바지만 입었고 맨 발이던 발은 따뜻한 땅을 그대로 밟는다. 축축하면서도 발가락 사이로 닿는 흙의 느낌이 묘했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우지호라는 것도 묘했다.
나무도 하늘도 구름도 새도 풀도 모든 게 우지호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방이 우지호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다가 깨달았다. 이건 꿈이구나.
그러자 갑자기 배경이 바뀌었다. 어느새 하늘은 새하얗게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이 변했고 얼굴에 닿는 공기가 차갑게 변했다. 풀내음이 사라지고 어느새 내가 밟고 있던 흙은 꽁꽁 언 호수로 변했다. 호수 주변의 나무들에 쌓인 눈이 하얗다. 내 몸에 닿는 찬 공기에도 나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표지훈."
내 이름에 뒤를 돌아보니, 진짜 우지호가 있다. 아니, 그럼 주변의 다른 것들은 우지호가 아닌가? 그것도 아니다. 묘하다. 하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우지호와 마주섰다. 우지호는 평소와는 또 다른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표정으로,
"너는 득이야 실이야?"
내 입이 열리며 나온 말.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놀라서 굳어 있는데, 우지호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아무것도."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던 자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얀 천장이 날 반기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에 감긴 붕대가 거슬린다. 아씨, 입도 좀 따갑고. 누운 상태에서 고개만 돌려보니, 오늘도 책을 읽고 있는 박경이 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책을 바로 덮는 녀석.
"병신."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푸흐, 하고 웃음을 참는데 녀석도 웃는다.
"왜 그랬냐."
"글쎄."
"안 될 거 뻔히 알면서."
"그래, 알았지. 근데 내가 왜 그랬을까."
웃으며 따가운 볼을 쓸었다. 아 그거 이태일이 다 때린 거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박경이 변명하는 말투로 말하며 웃는다. 이태일 그 양반은 다리도 못 쓰면서 어떻게 이렇게 잘 패놨대. 지팡이라도 들고 팼나?
"우지호는?"
"너 이제 우지호 못 봐."
"뭐? 왜!"
"이태일이 둘이 격리시키고 절대 못 만나게 하라고 다 얘기해놨어."
"왜!"
왜겠냐. 한심하단 눈빛으로 보는 박경에게 대꾸할 수가 없다. 이태일 독한 것. 그나마 우지호가 유일하게 말도 걸고 따라다니던 사람이 난데. 갑자기 우지호가 걱정되기 시작해서 '그래서 지금 우지호는 뭐하는데'하고 물으니 이태일 연구실에 있겠지, 뭐. 하고 무심하게 대답한다. 아니 이 자식아. 넌 걱정도 안 되냐? 하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우지호 걱정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으니. 아니다, 박경은 한 번 한 적 있는 것도 같고?
박경이 상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동안 아까 꾼 꿈에 대해 뒤늦게 생각해 보았다. 보통 꿈은 일어나면 바로 잊혀지던데,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보니 우지호가 내 이름 부른 건 처음인 것 같다. 대체 뭐였지. 또 아무것도, 라는 대답을 남긴 녀석. 꿈에서도 복잡한 놈이다. 사방이 우지호였고 그 것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던 것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머리도 맞았는지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우지호를 X구역에 내보내자는 이태일의 즉흥적인 계획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남은 이틀 동안 나는 우지호를 볼 수 없었다. 박경이 인쇄해 온 이태일의 계획서를 침대 위에서 하루종일 읽고 외웠다. 그리고 계획 당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사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해서 드디어 의료층을 벗어날 수 있었다.
군인 반, 연구원 반. 오랜만에 나온 바깥의 날씨는 꽤 쌀쌀하다. 곧 불어올 모래 폭풍에 대비해 모든 창문에 셔터를 내린 건물이 답답해 보여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 멀리서 "표지훈!"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보이는 건 이민혁과 안재효.
"야, 왜 안 보였냐? 회의 때도 안 보이고."
"어?"
이태일, 아무한테도 말 안 한다더니 진짜 말 안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데 녀석들은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는지 저들끼리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대화는 우지호에서 모래폭풍으로, 모래폭풍에서 지난 번 탐사로, 지난 번 탐사에서 김유권으로 바뀌었다.
"김유권 왜 아직도 못 일어나지?"
"모르겠다.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
한숨을 푹 내쉬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침대에 누워만 있던 김유권이 떠오른다. 그 때 내가 좀 더 빨리 돌아갔으면 김유권은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건물에서 군인들이 우르르 나온다. 순식간에 밖에 있던 사람들의 대열이 일사분란하게 정리되고, 군인들 사이로 이태일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평소에도 재수없지만, 오늘따라 더 재수없어 보이는 건 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진지할 때 나오는 표정과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다른 곳만 둘러보고 있는 눈. 그리고 이태일 뒤로 군인에게 팔을 붙들린 채 나오는 건 우지호다.
"우지호."
낮게 이름을 부르자 들었는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드는 우지호. 나와 눈이 마주친 우지호가 계속 빤히 나를 바라보다가 군인의 재촉에 고개를 돌려 이태일을 따라 걸어간다.
웅성거림이 다시 늘어날 때 쯤, 연구소 뒤에서 굉음과 함께 거대한 'BBC-7'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륙양용으로 만든, 솔직히 말해 거의 하나의 건축물 같은 거대한 모습. 하지만 그 밑편에 있는 바퀴는 그것이 건물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있다. 3층 높이의 BBC-7이 멈춰서고, 게이트가 열렸다.
"자."
이태일의 목소리가 주변을 울린다. 확성기를 쓰고 있는 이태일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다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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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여기서 이제 출발을 하자!ㅎㅎㅎ라고 틀은 잡아 놨는데 내용을 구체적으로 생각 안해서 Fail.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내가 사랑해요 보면서 눈물 또르르....ㅁ7ㅁ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