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잊기로 하는 거에요. 박경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하지만 아까 왔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막상 도망치고 보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서. 발에 잔디가 밟히는 걸 느끼는 순간 우지호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스륵 풀렸다. 무릎을 꿇고 옆구리를 꾹 눌렀다. 눈 앞이 새하얗고 고통에 숨 쉬기도 힘들다. 미친, 내가 살다살다 총도 다 맞아보네.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옆에서 우지호가 앉는 것이 느껴졌다.
우지호의 두 손이 조심스럽게 내 팔을 붙잡아 온다. 조심스럽게 허리께를 어루만지는 손. 누가 건드리니 아플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우지호가 하니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지호가 상처 부위에 손을 얹고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우지호, 우지호. 녀석이 한 쪽 팔로 붙잡은 팔이 따뜻하게 달아온다. 통증이 사라진 걸 느낀 내가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뜨니 보이는 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까만 눈. 옆구리를 보니 옷의 구멍으로 보이는 살이 깨끗하다. 옷에 묻은 핏자국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지호."
말없이 내게 안기는 우지호. 녀석의 머리통을 그러쥐었다. 녀석의 머리 위로 내려앉은 햇살 때문에 머리카락도 따뜻하다. 가만히 녀석을 안고 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를 따라 일어난 녀석이 가만히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난 이제 다시 못 돌아가."
"왜."
"이미 도망왔잖아."
"다시 돌아갈 수는 있어."
"넌 돼. 난 안 되고."
그렇게 말하고 다시 눈을 감는 우지호. 나도 녀석을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내 내게서 떨어진 녀석이 뒤돌아서고 주변을 돌아본다. 그러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놈. 뒤를 따라 걷고 있는데 점점 안으로 들어간다.
"우지호?"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건지, 말없이 끝까지 걸어가서 갈색의 벽을 짚는다. 우지호, 뭐하려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내 말에 우지호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고는 눈을 감았다. 마치 뭔가에 집중하기라도 하는 듯. 손이 천천히 벽을 타고 흘러내리고 어디선가 쩍 소리가 들렸다. 쩍? 어디서 난 소린가, 의구심을 갖기도 전에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야, 야. 우지호! 녀석의 몸을 휙 끌어 당겼다. 벽이 양쪽으로 휙 갈라지며 빈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변의 벽이 기이하게 휘어지고 바닥에 타닥타닥 자잘한 돌들이 떨어졌다. 안으로 보이는 공간은 캄캄하다.
우지호가 내 손을 쥐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말없이 녀석의 뒤를 따라 들어가는데 캄캄한 동굴의 벽, 돌 여기저기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아. 우지호랑 있으면 온갖 일에 다 엮이는 기분이다. 제각기 다른 빛을 띠는 돌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우지호, 어디로 가는 거야."
"..."
"어?"
"원래 있던 곳."
원래 있던 곳? 그게 어딘데. 아니, 넌 어디서 온 거야. 우지호. 내 말에도 녀석은 말이 없다. 그저 내 손을 더 꽉 잡아올 뿐. 한참을 어정쩡하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우지호가 멈춰섰다. 우지호는 가만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고, 나도 천천히 그 옆으로 다가가 아래를 보았다. 통로가 끝나고 나온 탁 트인 공간.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바닥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암흑인 아래를 바라보다가 우지호를 보니, 우지호는 여전히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우지호, 어떡하게.
"어."
아래에서 뭔가 올라온다. 돌이 반짝이며 아래를 비추고, 천천히 모습을 나타낸 건 커다란 바위. 바위가 올라와 앞에 멈춰서고 우지호가 그 위에 올랐다. 바위가 허공에 아무런 조건 없이 떠 있는 게 이상해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자 우지호가 내게 손을 뻗는다. 잡아. 녀석의 손을 잡고 바위로 올라탔다. 나까지 올라타자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바위. 움찔하며 우지호의 손을 꽉 잡자 우지호가 가만히 손가락을 쥐었다폈다하며 내 손등을 토닥인다.
천장의 작은 구멍들에서 내려오는 햇빛. 주변에 떠 있는 또다른 바위들. 이상하다. 이상해. 그 생각만 하며 우지호의 손을 꽉 쥐고 있었고, 바위는 점점 구멍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땅을 밟았다. 우지호가 가만히 주변을 두러보다가 이내 손을 들어 하늘 쪽으로 한 번 가볍게 휘둘렀다. 하늘에 작게 나있던 틈이 이내 다시 회색 구름으로 가려지고, 비로소 우중충한 X구역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잿빛 하늘. 이와 대조되게, 우지호 때문인지 그저 맑기만한 공기.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공기. 숨을 들이마시다가 옆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우지호 때문에 나도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손을 잡고 싶지만 어딘지 모르게 잡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우지호의 뒷모습만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지호."
"..."
"너 이태일이랑은 무슨 사이야?"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날 돌아보는 우지호. 녀석의 검은 눈이 날 바라보고,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적이 길어질 무렵, 녀석의 입이 열렸다. 친구야. 뭐, 친구? 그 뜬금없는 대답에 내가 멍청한 표정을 짓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언제부터."
"알잖아."
"..."
"10년 전부터."
"..."
"쭉 친구였어, 난."
마지막의 '난' 이건 무슨 의미일까. 10년 전. 히든 사이트에서 보았던 내용이 떠오른다. 인간 병기 연구. 연구진의 사진엔 분명 어린 이태일이 껴 있었다. 우태운이라는 남자의 사진도 있었고, 맨 위에 있던 우지호까지 모두 기억한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이태일은 우지호를 모른 척 한 걸까. 아니면 정말 단순히 잊어버렸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지호가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10년 전에 내가 세상에 나왔어."
우지호의 입이 열리고 나온 말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웅장하게 느껴지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없이 우지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했어."
"무슨 소리야. 네가 10년 전에 태어났다는 거야?"
"그거랑은 다른 이야기야. 난 태어난 적 없어. 존재했을 뿐이야."
도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내 앞에서 걷고 있는 우지호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대체 넌 뭐야? 우지호의 머리카락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난 잘 모르겠어. 왜 인간들은 해쳐야 배부른지."
느릿느릿 입을 연 우지호의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지호의 뒷모습이 갑자기 아슬아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냥 걷고 있는 야윈 두 다리가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지고 녀석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일텐데, 그게 안 돼. 항상 누군가는 경고했어. 공존해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지켜지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나왔어. 그냥 숨어 있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되니까.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나왔어."
"어디서 나왔다는 건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우지호. 표정을 살피고 싶어도 내게 보이는 것은 뒤통수 뿐이다. 넌 몰라. 말해줘도 넌 몰라. 어쩔 수 없어.
"우지호 넌, 넌 대체 뭐야."
"난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나일 뿐이야. 나는 풀이기도 하고, 물이기도 하고, 흙이기도 해. 나무이기도 하고, 새이기도 하고. 세상에 굴러다니는 돌이기도, 괴물이기도 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다시 멈춰선 우지호. 천천히 나를 돌아본 녀석이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검은 눈과 마주하는 순간, 갑자기 바람이 묘하게 바뀌었다. 서늘하던 공기가 갑자기 차갑게 바뀌며 온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마치 꿈에서 느꼈던 그 날의 공기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꽁꽁 언 호수, 눈으로 덮인 나무들. 그리고 시린 공기. 그 때 꿈에서 느낀 것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던 모든 것이 우지호였다. 하늘도 땅도, 모든 것이 전부 다. 꿈에선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고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자연의 모습에 우지호가 배어있었고, 우지호의 모습에 자연이 배어있었다.
말도 안 돼.
"세상의 모든 것들.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은 다 내게서 찾을 수 있어."
"...네 피처럼?"
그 말에 우지호가 살짝 내리깔고 있던 눈을 다시 올렸다. 나와 마주친 눈이 꼭 맞다고 하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 한다. 우지호의 피에서 찾을 수 있었던 모든 것. 그래. 그건 정말 단순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우지호에게 배어있는데 피라고 안 배어 있을까. 우지호의 피, 그 단면적인 모습만 보아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것을 옆에 놓는 순간, 우지호의 피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서서히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머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혼자 회전하고 있지만, 몸은 순응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자연'. 그러니까, 이 세상 자체가 우지호라는 것일까.
"오래 전에, 그러니까 10년 전에. 모든 걸 쏟아 부었어.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한 곳에 모든 걸 붓고 갈 곳을 잃은 채 밖으로 나왔던 적이 있어."
"응."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죽어가고 있던 나무 한 그루였어. 그 때 무슨 생각을 한 건진 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 나무를 살리고 싶어서 얼마 남지도 않은 힘으로 그 나무를 살려냈어. 그리고 인간들한테 붙잡혔고."
한국H연구소. 내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에 우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힘이 없었어. 달아나고 싶어도 모든 걸 다 써버려서 더는 쓸 힘이 남아있지 않았어.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는데, 그 때 이태일을 만났어."
이태일. 10년 전 연구소에서 이태일은 우지호와 관련된 연구에 참여했었다.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히든 사이트에 있던 많은 비밀 연구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난히 공들여 작성된 문서들. 그 때 우지호의 사진 아래에는 '우지호'라는 이름 대신 영어로 'ZICO'라고 적혀 있었다.
"우지호라는 이름은 그 때 이태일이 지어줬었어. 이태일은 10년전에 처음으로 나한테 손을 내밀어줬던 사람이야. 아직도 난 기억나."
우지호의 눈이 조금 감상적으로 변했다. 저 멀리 어딘가를 보는 검은 눈은 도대체 어딜 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우지호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우지호 앞에서 나도 조용히 서 있었다.
"이태일과 함께 나를 도와준 사람이 있었어. 우태운. 날 밖으로 내보내려다가 결국 죽었고 인간들은 그도 모자라서 이태일까지 죽이려고 했어."
"..."
"참았어야 했는데, 실패했어. 그러려던 게 아닌데 통째로 다 날아갔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우태운의 시체도, 연구소의 인간들도, 연구소 바깥의 인간들도."
모두 사라졌었어. 나 때문에. 우지호의 눈이 서글프게 보인다. 천천히 주먹을 쥐는 우지호의 손 끝이 하얗다.
"다행인 건 이태일은 남아 있었어. 아마 내 기억엔, 죽었었던 것 같아."
"뭐?"
"너무 늦게 찾았었거든. 모든 것이 죽어 있었어. 이태일도 똑같았어. 그래서 다시 처음처럼 되돌리고 싶었는데 힘이 터무니없이 모자랐어. 그래서 결국 이태일을 버려두고 나 혼자 나왔어. 제발 무사하길 빌며 혼자 내가 처음 나왔던 곳으로 갔어."
"응."
"그리고 거기서 다시 시작했어. 남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정말 이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단 게 느껴졌을 때 쯤. 다시 시작했어.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려고 욕심도 부렸어. 인간들이 땅으로 버린 것들로 사방을 막았고 괴물들도 만들었어. 그런데도 인간들은 끊임없이 기어 들어왔고, 난 그들을 없앨 수 밖에 없었어."
마음 속 어딘가가 뜨끔하다. X구역에 대해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던 나니까. 우지호를 처음 만났던 날도 X구역 탐사를 나선 날이었다. 그럼 X구역을 만든 것은 우지호라는 이야기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밉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간들이 땅으로 버린 것들. 불순물질일 것이다. 결국, 불순물질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땅 역시 우지호고, 우지호 역시 땅이다. 역시 믿기 힘들지만, 그로 인해 우지호의 피에도 불순물질이 있었던 것일테고. X구역 전체에 우지호의 힘이 뻗쳐 있었고, 지하 동굴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동굴에 퍼져 있던 고에너지 반응. 그 에너지는 잘은 몰라도 우지호가 쏟아 부었다는 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동굴에서 느껴지던 기시감은 분명 우지호겠지. 그 날 꿈에서처럼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던 우지호.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동굴에서 내가 느끼던 낯익은 무언가는 우지호였다. 그리고 불순물질이 정화되던 공간. 우지호가 가지고 있던 정화 능력. 그 힘일 것이다. 불순물질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녀석 뿐이니. 지하 동굴에서 자라나던 풀, 우지호가 한 말. 희망이 생긴 것 같아. 우지호는 분명 어딘가에 '자연'이란 것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 왜 내가 X구역에 왔던 날 나를 살린 거지?
"우지호."
"응."
"그럼 나는 왜 살렸어?"
"..."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컬테로한테 죽던가, 아니면 불순물질 때문에 죽던가 어떻게든 죽었을 텐데. 왜 나를 살려서 그 고생을 한 거야?"
"널 따라가면."
"..."
"이태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태일. 이태일의 이름을 말하는 우지호의 눈이 슬프다. 뭔지는 몰라도 우지호는 이태일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일방적인 것일 뿐이다. 이태일은 우지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살린 거야. 그리고 또 10년 전 그 날처럼 인간들한테 잡히고, 그 때처럼 이태일을 만났어."
"..."
"이태일은 그 때랑은 많이 달라져 있었어. 다 나 때문이야. 나만 아니었으면 이태일은 분명 지금쯤 행복했을 테니까. 가족들도 있었을 거고, 우태운도 있었을 거야. 두 다리도 무사했을 거고. 다 나 때문이라서, 이태일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어. 이태일도 그 날 충격 때문인지 나를 기억하지 못했고. 그래도."
우지호가 천천히 나를 돌아 보았다.
"우지호라는 이름은 기억하고 있더라."
그렇게 말하는 녀석이 정말이지,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겉만 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속은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사는 것도 같았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던 녀석은 의외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천천히 등을 돌리는 녀석.
"인간들은 왜 다른 무언가를 희생시켜야 살아남는지, 왜 함께 살 수 없는지 모르겠어. 왜 그리도 나약한 걸까."
"..."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기억되는 인간은 둘이야. 한 명은 우태운. 그리고 정말 내게 소중한 인간은"
우지호가 느릿느릿 옮기던 걸음을 또다시 멈추었다.
"이태일. 한 명 뿐이야."
과연 우지호는 어땠을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괴롭히려 들던 이태일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마음 한 켠이 괜히 딱딱하게 굳어오기 시작했다. 우지호의 입에서 나온 두 이름. 그 이름에 내가 없다는 것이 왜 그리도 억울한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두 사람은 분명 우지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을테다. 이태일의 자리는 내가 넘볼 수 없겠지. 그런데 이 감정은, 서운함인가. 알 수 없는 느낌에 주먹만 쥐락펴락. 그 때, 우지호의 목소리가 다시 귀를 포근히 감싸왔다.
"그리고 좀 다른 의미로 소중한 사람."
"..."
"표지훈."
다른 의미. 좀 다른 의미. 딱딱하게 굳어가던 것이 펑 터졌다. 알 수 없는 부근이 간질거리기 시작한다. 어느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지호에게로 다가가 녀석을 꽉 끌어 안았다.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우지호를 안고 있을 뿐이었다. 우지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내 이름. 처음 불린 그 이름이 그 무엇보다도 기뻤다.
우지호의 손을 꼭 잡고 말없이 걸어가 나온 곳은 검은 나뭇잎의 나무로 둘러싸인 곳. 빽빽히 자라난 나무 너머로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그 안에 내 꿈에 나왔던 장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울의 모습. 싹을 틔우기 전,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있는 순간. 더는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지호는 내 손을 놓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모습. 뭘 망설이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나 역시도 녀석을 붙잡고 싶었다. 저 안으로 우지호가 들어가고 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태일이 동굴에서 말했던 기분. 그게 이건가. 한참이 지나고 녀석의 입이 열렸다.
"난 꽃을 피우고 싶어."
꽃. 오랜 옛날처럼 자연이 살아나는 것. 지하 동굴의 그 알 수 없는 장소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황폐하지만, 그 곳 어디선가 우지호는 희망을 찾고 있었다. 자신의 힘을 써가면서까지, 무리해가며 그렇게 꿈꾸고 있었다.
"지금부터 꽃을 피우려면 얼마가 걸릴지 몰라."
"기다릴게."
"아니, 넌 네 인생을 살아. 다 잊고 이 곳을 빠져나가서 다시는 떠올리지 말고 살아."
"아니, 네가 있어야 해. 넌 아무것도 안했지만 이미 네가 차지한 부분이 너무 커."
"..."
"우지호, 좋아해."
불순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에서 한 고백. 진부하지만 가장 확실한 한 마디가 바람이 되어 휘날렸다. 까만 눈에 담긴 빛이 일렁이고, 부슬부슬한 머리카락이 휘날리 듯 그렇게 휘날렸다. 우지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딘지 모르게 간절해 보이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표지훈."
"응."
"기다리면 후회할 거야."
"상관 없어."
"난 인간이 아니야."
"한 번도 너 인간으로 생각하고 좋아한 적 없어."
"엄청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 때까지 평생 기다릴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낯설다. 언젠가 엄마와 보며 비웃었던 삼류 드라마. 그 드라마의 낯간지러운 대사들을 내가 내뱉고 있었다. 우지호의 까만 눈이 깜박깜박. 한참을 둘 다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정적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우지호도 나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고, 이내 우지호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나도, 나도 좋아해. 표지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에게 성큼 다가가 놈의 마른 몸을 끌어 안았다. 한 품에 들어오는 몸을 으스러뜨릴 듯 꽉 끌어 안았다. 웬 일인지 아프단 말도 않고 함께 날 안아오는 우지호. 녀석의 두 팔이 내 등을 감싸왔다. 내게 안겨 있는 녀석. 언제까지고 이렇게 안고 있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너무 늦게, 이제야 말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우지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게 안겨 말이 없는 녀석의 어깨에 내 얼굴을 파묻었다. 녀석과 붙어 있다는 사실 하나가, 너무도 기뻤다. 그리고 또 슬프기도 했다. 녀석의 어깨에 내 눈물이 배고 있었고, 놈은 그저 내 어깨를 더 꽉 안아올 뿐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녀석이 천천히 내게서 떨어졌고 나도 녀석을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말없이 돌아서는 녀석.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숲으로 들어가는 놈의 뒷모습이 한없이 여리지만,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느껴졌다. 느릿느릿 걷고 있는 녀석의 뒷모습.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으며 막고 싶지만 그저 난 여전히 조금 젖은 눈가를 문지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 머리를 때리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우지호!"
녀석이 멈춰섰다.
"넌 득이야, 실이야?"
이제는 그 답을 알지만, 그래도 묻고 싶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라날 뿐, 나무를 이용해 뭔가를 만드는 건 나무 자신이 아니다. 이처럼 우지호 넌 그저 존재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대답이 옳은 것이겠지. 그것이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는 다른 누군가의 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우지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지호. 네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고 검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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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번 편 총체적 난국이네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막 모든 게 속시원하게 뙇 풀려야되는데 제가 진작에 정리를 좀 해뒀으면 모르겠는데 정리해둔 종이가 어디로 날아가고 없고^^그 종이 주우신 분 복받으실거에여^^... 그래서 제 기억력에 의지해서 더듬더듬 쓴 거라 진짜 속 시원하고 명쾌한!!..그런 게 없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원래 오늘은 안 올리려고 했는데ㅠㅠㅠ좀 더 다듬고 올리던가 하려고 했는데 어차피 그래도 ㅇ..이미 조금이라도 다듬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 해뜨는 거 감상한 충격이 너무 커섴ㅋㅋㅋㅋㅋ걍 올리고 갈게욬ㅋㅋㅋㅋㅋㅋㅋ 내용도 엉망이고 오글거리는 거 같ㅌ기도 하고...^^... 모르겠다!싶으신 건 바로바로 찔러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세시간동안 이걸 쓰고 두시간을 고쳤는데 나온 결과가 이거란 게 함정 그래서 새벽 여섯시에 잤단 건 안비밀 졸리다 이제 미래괴담이 정말 얼마 안남았어요 겁나 빠르고 급전개져? 알아여 ^^ㅋ ..이게 아니구 이제 두편정도...남았어여 허허ㅣㅇ흐엏어허아흐어헝허엏 앙오디 ㅎ우리 미래괴담이 흥허어헝 괴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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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뭔데 이렇게 맘에 들고 난리? 얘 내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