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학교가 어떤지 몰라서 쓰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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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본건 막 대학교를 입학하고 혼자가 되기 싫어 정신없이 친구를 사귈 때쯤이었다.
인맥을 쌓으며 핸드폰에는 누군지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번호와 이름들을 채워나갔다.
조용한 성격도 아니었기에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선배들의 부름에 매일을 술로 지냈었다.
한 번은 정말 가기 싫지만 화석급 정도 되는 복학생 선배가 부르는 바람에 억지로 나간 날이 있었다.
뭐 씹은 얼굴로 뚱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건너편 처음 보는 남자도 나와 같은 처지였는지 인상을 팍 쓴 채 앉아있었다.
혹시 신입생인가 아는척 하고싶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에 괜히 선배면 어떡하지 싶어 가만히 있을 때
내 옆에 앉아있던 선배가 야, 너는 신입생이 어떻게 술자리에 얼굴이 코빼기도 안보이냐?! 하며 건너편 남자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아.. 사정이 있어서 어쩔수가 없었어요. 이제 자주 봐요 선배님."
마냥 굳어있을 것만 같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를 씩 올리며 활짝 웃는 남자였다.
이내 제게 술을 따라준 선배님께 저도 술을 따라주더니 잔을 맞대었고 나도 얼떨결에 같이 짠! 을 외치며 목구멍으로 술을 넘겼다.
"아, 너 얼굴 익숙해질 겸 일어나서 인사해봐."
"아 네. 안녕하세요 16학번 정치외교과 정호석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러운 복학생 선배의 자기소개 요청에 당황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인사하는 남자였다.
쟤 사회 생활 잘하겠네. 인상도 서글서글하고. 그나저나 16학번이면 저와 같은 신입생이었다.
게다가 정치외교과라니. 나와 같은 학과에 호석이란 아이에게 손을 뻗어 인사를 건넸다.
"와 반가워, 16학번 정치외교과 이탄소야!"
"어.. 그래 안녕. 반갑다."
뭐람. 인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이 느낌은. 괜스레 김빠지는 느낌에 정호석에겐 신경을 끄곤
옆에 앉은 화석 선배가 따라준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며 정신없이 마셔댔다.
그렇게 한참을 마시고 눈을 떴을땐, 용케도 제 집을 찾아왔는지 내방 침대에 멀쩡히 누워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시간을 확인하니 다행히도 다음 수업까진 여유가 있었다.
부랴부랴 지우지 못한 화장을 지워내고 편한 후드티로 갈아입곤 초코우유로 대충 해장을 한 뒤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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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호석! 안녕!"
"..."
분명 저건 무시가 맞다. 장담한다. 눈을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쌩하니 제 갈 길을 가는 호석이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술자리에서 처음 본 게 다면서! 씩씩거리는 걸음으로 강의실에 찾아 들어가니
딱 좋은 자리에 앉아 날 기다리는 박지민이 보였다. 박지민과는 신입생 오티때 만났는데, 마음이 잘 맞아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다.
"너 빨리빨리 안올래? 자리 잡는다고 눈치 보여 죽는 줄 알았잖아"
"아, 미안미안. 그래도 늦진 않았다?"
"퍽이나."
그렇게 지민이가 잡아준 자리에 앉아 대충 책과 필기구를 정리하고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아까 그 싸'가지가 왔을까 싶어서.
둘러본 뒤쪽엔 없는 걸 보니 앞쪽에 있을 터. 대충 눈을 굴려 찾아보니 맨 앞 줄에 자리잡은 새까만 머리통이 눈에 띄었다.
사실 까만 머리는 많았는데, 어째서인지 그 녀석의 머리가 유별나게 눈에 띄던지 의아했다.
"야 박지민"
"응?"
"쟤, 저기 앉은 애."
"누구? 아 호석이?"
"어어, 정호석. 쟤 원래 사람 무시하고 그래?"
"뭐? 어디서 이상한 소릴 듣고와서. 절대 아니야, 얼마나 착한데"
"아, 그래?"
오호라. 그럼 내게만 저런단 말이지. 그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는 와중에 누군가 내 등짝을 퍽 치는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욕을 할 뻔 했지만 다닌지 얼마나 됐다고 자퇴를 할 순 없지. 바로 표정관리하며 돌아본 그곳엔 복학선배가 떡하니 서있었다.
"탄소야, 오빠 옆에 앉아도 되지?"
"아...네, 네 그럼요"
하. 피곤해지겠다 싶을 찰나, 복학생 선배가 뜬금없이 어제 집에 잘 들어갔냐며 음흉하게 웃어댔다.
무슨 소린지 몰라 네? 저 어제 집 잘 들어갔죠. 용케도 혼자 걸어갔지 뭐예요 하하.. 어색한 웃음을 날리며 대답하니 돌아오는 선배의 대답이 아주 가관이었다.
"뭐? 얘 웃기는 애네, 어제 호석이가 고생 좀 했지. 너 데려다준다고 얼마나 진뺐는줄 알아?"
"..네?"
"뭐, 기억 안 나는 거 보니 아무 일 없었나 보네. 호석이한테 너 고맙다고 해"
..망할. 그러니까, 어제 내가 집에 멀쩡히 들어가게 해준 게 내 두 다리가 아니라 정호석이었다 이거야?
맙소사. 그제야 정호석이 내게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 어떡해..
내가 수업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멘탈이 무너지는 바람에 옆에서 말을 거는 박지민의 부름도 듣지 못할 정도였다.
"야 이탄소. 야, 야!"
"으아아아아아 깜짝아. 왜, 왜 소릴 지르고 난리야!"
"너 그렇게 넋놓고 있을거야? 호석이 한테 안가?"
"하.. 지민아. 어떡하지 나 자퇴할까?"
"무슨소리야, 나 먼저 간다. 얘기 잘하고 와"
그렇게 냉정하게 떠나버린 박지민은 저를 찾아온 민윤기 선배와 룰루랄라 떠나버렸다.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땐 필기를 다 끝냈는지 가방을 정리하며 나갈 준비를 하는 정호석이 보였다.
언제 또 저를 피할지 몰라 급하게 맨 앞줄로 내려가 정호석 앞에 섰다.
사람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해줬는데도 그새 까먹은 나는 무작정 호석의 앞에 섰지만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할지 떠오르지 못해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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