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다.
나의 첫사랑이 결혼을 한다.
첫눈에 반한 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믿는다.
흰티에 청바지 어두운 체크무늬 회색코트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오던 순간 네가 짓던 웃음과 귓가에 다 들리게 쿵쿵되던 심장소리까지
자리주인 없으면 옆에 앉아도 되냐는 말에 내가 가방과 코트를 치워줬었고 너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었다.
그때부터 그 수업은 무슨 정신으로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옆자리에 네가 앉아 있다는 걸로 네 온 신경은 너를 향해 있었고 나는 온 힘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척 하기 바빴었다.
정해진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아서 그렇게 싫어했던 학교 가는 길이 설레었다.
열 아홉의 끝에서 스무살, 내가 다 큰 어른인 줄 알았던 때에 누군가가 주는 사랑만 해본 나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첫사랑 이었다.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수업을 듣고 나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자연스레 연인이 될 줄 알았는데, 정의되지 않은 관계 안에서 스무살의 모두가 그렇듯 우리는 꽤 오래 망설였다.
동화같은 사랑이야기는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고, 내가 사랑했던 왕자님은 내가 아닌 다른 공주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
누군가는 첫사랑을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라고, 다른 누군가는 처음으로 사귀게 된 사람이라고 한다.
나에게 정재현은 "원본"이다.
내 스무살 여름은 정재현 이었고, 그 이후로 누구를 만나든 이런 점이 좋고 싫고를 따질때면 그 기준은 항상 정재현 이었다. 내가 만난 남자들의 싫은 점은 정재현과 달라서 싫었고, 좋은 점은 정재현 같아서 였는데 그런 이유로 시작된 사랑은 금새 끝나고 말았다. 정재현이 아니라서, 아무리 끼워 맞추려고 해도 정재현이 아니었으니까.
스무살, 첫사랑, 짝사랑. 남들에게는 다 지난 일이라고 잠시잠깐 설렜던 기억뿐이라고 어릴때 풋사랑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스물 하고도 여섯 꼬박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니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정재현은 여전히 나에게서 조금도 흐릿해지지 않았다.
정재현이 웃는다.
한 때 나에게 짓던 웃음 그대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웃는다.
눈빛에 가득 담긴 따스함은 그대로 변함이 없다.
스무살 여름, 그 때의 내가 용기를 냈더라면 네 옆자리에 서있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그리고 지금의 네가 행복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언젠가 한번은 보고 싶었는데, 그 언젠가로 미루고 미루었던 만남을 쌓여있던 감정들을 다 훌훌 털어버리려고 한다.
"재현아. 내가 나를 미워하고 한 없이 작아지던 그 시절에 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
그리고 네가 행복해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