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보관소
w.1억
도현이의 고백은 날 참 복잡하게 만들었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워서 계속 도현이가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나를 좋아했다고? 유독 나에게만 더 다가왔던 게, 친해져서가 아니라 좋아해서였던 거였구나.
그리고.. 왜 사귀자는 말은 없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이런 생각을 왜 하냐 노을.. 그렇다고 해서 도현이랑 사귈 것도 아니면서..
근데.. 자꾸 떠오르는데 어떡하냐구..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것 같아서 찝찝해..
"바쁜 것 같더니.. 왔냐?"
"응. 근데 어제 너 부르려고 했는데.. 썸남이랑 데이트 한다고 했었잖아..그래서 못 불렀어! 다음에 또 온대. 그때 다같이 만나자."
"…그래."
"근데 도현이 더 멋있어졌다? 엄청 남자다워진 것 같기도 하구.."
"군대 갔다오면 그렇다잖아."
"근데 강이랑 인엽이는 안 그러는데..어떻게 딱 도현이만 그러지?"
"그러게 걔네는 고등학생 때랑 다른 게 하나도 없는데. 그치."
민시랑 나는 옆에서 밥을 흡입하는 인엽이를 한심하게 보았고, 강이는 우리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다.
아, 그리고 중요한 걸 빼먹었네. 고등학생 때 인엽이가 민시를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물어보지를 못 했다.
유난 떠는 걸 좋아하는 인엽이가 내게 먼저 민시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않는 걸 보면.. 인엽이도 민시를 잊은 게 아닐까.
"뭘봐 노을."
"너무 잘 먹길래."
"아, 맞다. 어제 재욱이한테 연락 왔었는데."
"진짜!?"
"요즘 되게 바쁘다더라.. 막 방송도 타고 그런대. 어제도 촬영했대."
"진짜? 무슨 촬영?"
"축구하면서 애들 가르치고, 연예인들이랑 같이 축구하고 그런 거지 뭐. 내일 방송한다더라."
"…아."
"넌 이재욱한테 연락 안 해보냐? 솔직히 네가 제일 궁금해할 것 같은데."
인엽이 말에 모두가 고갤 끄덕였다. 다같이 모였을 때 너희에게 재욱이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이 상황이 웃기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강이까지 고갤 끄덕이자. 민시와 인엽이가 놀라며 말한다.
"송강 너도 을이가 이재욱 좋아했던 거 알았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아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어! 늘 우리한테 관심 없었잖아..!"
"…그냥 남들 아는만큼 아는 거지."
"…남들이 아냐 얘가 이재욱 좋아하는 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하긴.."
"……."
결국엔 이렇게 다같이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게 됐네.. 뭐 해도 상관은 없지만..
왜 이재욱이 좋냐고 인엽이랑 민시랑 동시에 물어보면 난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냥 좋았던 건데. 이유가 없어.
"점심시간 끝나간다. 우린 슬슬 간다! 가자, 민시야."
"그래. 얘들아 잘가라~ 내일 술이나 마시자."
강이랑 인엽이는 점심시간에 시간맞춰 나와서 밥을 먹었던 거였고, 민시랑 나도 학교 점심시간에 나와서 같이 밥을 먹었던 거였다.
올라가는 길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을 서로 만나서 민시와 헤어지게 되었고, 친구가 나에게 팔짱을 끼며 말한다.
"근데 네 친구들은 어떻게 다 그렇게 잘생겼냐?"
"어? 뭐야.. 봤어?"
"지나가면서 안에 딱 봤는데 너랑 친구들 있던데? 그 친구는 이름이 뭐야?"
"그 친구가 인엽이!"
"오오오.. 여자친구 없으면 소개좀..."
"물어볼게 ㅎㅎㅎ..."
"쟤."
"응?"
친구가 가리키는 쪽을 보자, 익숙한 여자애가 고개를 숙인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기 예쁜 거 알고 그걸로 부심부리고, 여친있는 남자들 꼬시고.. 뒤에서 없는 욕 지어서 하고 다닌대. 우리랑 동갑."
"……."
"하연이 남친한테도 연락했었대. 대박이지 ㅋㅋㅋㅋ. 취업나갔었다가 이번년도에 대학 들어왔던 것 같던데."
"……."
이나은이다. 몇년만에 보는 이나은은 여전히 예뻤다. 그리고 넌.. 고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미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길 바랬다. 아는 척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근데 내 친구들은 이나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보다.
"야 이나은."
"……."
"하은이 남친한테 연락은 왜 했어?"
"과제 때문에 물어볼 거 있어서 한 거였어."
"그러니까 왜 여친있는 애한테 연락을 하냐고. 여자 선배는 없었냐. 너 그렇게 여친있는 남자들한테 연락하고 다니면 안 찔려?"
목소리가 너무 컸다. 이나은이 나를 보았고, 내 눈을 바로 피했다. 또 한 번 내 친구가 이나은에게 뭐라고 하려고 했을까.. 나는 급히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도 사람 너무 많은데..그만하자."
내 말에 친구는 '너 보고 참는다'하며 나은이에게 '미친년'하고 욕하며 내 손을 잡고 끌었다.
뒤돌아 이나은을 보았다. 왜 난 저 친구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걸까. 결국엔.. 너도 사랑을 받고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학교가 끝나고 강의실에서 나왔을 땐.. 신경이 쓰였던 이나은이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몇년만에 만나서 너와 같이 카페에서 대화를 하기란 꽤나 어색했다. 사람이 없는 쪽으로 앉아서는 서로 한참 말이 없다가, 이나은이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왜 나 도와준 거야?"
"도와준 거 아니야. 그냥.. 사람 많은 곳에서 누구 잡고 큰소리 내는 게 불편했던 거야."
"내가 미울 거 아니야."
"…왜?"
"고등학생 때.."
"……."
이나은은 아무말도 하지 못 했다. 나는 그런 너를 계속 기다려줬다. 한참 뜸을 들이던 너는 뒤늦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너 질투한 거. 너도 눈치는 챘을 거 아니야."
"……."
"체육대회때 방송 일부러 킨 것도 알고있었을 거고."
"……."
"내가 안 미워? 넌?"
"안 미워."
"왜?"
"누구 미워해봤자 나만 힘들어서."
"…그때 이재욱 붙잡았어. 근데 내가 싫다더라."
"……."
"왜 내가 싫냐고 물어봐도 대답 안 하는 거 보니까. 누굴 좋아하는구나 싶었어. 근데."
"……."
"정확한 건 아니지만, 너인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싫었고, 질투가 났어. 이재욱은 늘.. 항상 너를 보고 있었으니까. 응.. 재욱이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질투한 것도 있고, 늘 네 옆엔 친구들이 붙어있고.. 성격까지 좋아서 그게 너무 미웠어. 나한테는 가짜친구만 있는데.. 넌 몇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좋은 친구들을 사겼잖아. 네가 너무 미워. 날 너무 작아지게 하니까."
"……."
"이제 진짜 끝인 것 같아서. 너한테 양심고백하는 거야."
"응.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
"너도 사랑이 받고싶어서 이런 저런 행동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밉지는 않더라. 내가 이런 말 해서 네가 기분나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난 네가 좋은 친구 만나서 학교 잘 다녔으면 좋겠어.
너도 너를 꼭 사랑하게 되길 바래. 충분히 넌 예뻐. 그래서 난 네가 부러웠고.. 자존감도 낮아졌었거든. 그러니까.. 꼭 너를 사랑하게 돼서 좋은 사람들 만나고 다녀."
"…착한 거냐.. 바보인 거냐.. 참 너도.. 끝까지 질투나게 하네.."
"……."
마음같아서는 너와 친구가 되어주고싶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건 힘들었다. 그래서 너와는 이렇게 좋게 끝내게 되었다. 이걸 나도 만족하고, 아마 너도 만족하겠지.
내일은 주말이다. 강이랑 우리집에서 치맥이나 하면서 재욱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나 보려는데.. 왜 자꾸 도현이도 떠오르고, 나은이와 대화했던 것도 떠오르는 것일까.
"왜 자꾸 한숨 쉬어.. 무슨 일 있어?"
"…아까 이나은 만났거든. 우리 학교에 이나은이 학교 다닌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제대로 각 잡고 대화하는데.. 별 얘기를 다 했어. 근데 다 상관없는데.. 재욱이가 날 좋아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데 거기서 막 무너지는 거야."
"…계속 생각나면 연락해봐."
"…너무 때가 늦었잖아."
"사과를 해야되는 경우에나 때가 늦었단 소리가 나오지.. 다른 경우엔 상관없지않나."
"……."
"한 번쯤은 보내봐도 되잖아."
강이의 말에 그럴까..하고 강이를 올려다보았다. 에이씨.. 맥주나 마셔..! 벌컥벌컥 마시면서 tv를 보는데. 오랜만에 보는 재욱이는 정말 잘생겼다.
유명한 연예인들과 같이 서있는데도 안 꿀려.. 나 취했나. 왜 눈물이 나는 거야.
"잘생겼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잘생겼는데 왜 울어."
"잊으려고 하면 또 잘생겨서 못 잊게 하잖아. 쟤가아아아. 심지어 멋져ㅠㅠㅠㅠㅠ."
"…참."
결국엔 방송을 보면서 너무 너무 네가 궁금해져서 보면서 강이에게 번호를 물어보고선 카톡을 보내게 되었다.
[나 을이야 잘 지냈어?]
근데 더 대박인 건.. 보낸지 10초도 안 돼서 1이 사라졌고.. 너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어떡해?"
"뭘 어떡해 받아."
"어떻게 받아."
"그냥 받아."
민시는 주말이라 본가에 내려왔고..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과일가게를 마감하려고 했을까.
"야 넌 왔는데 아빠한테 인사도 안 하냐? 이년아?"
아빠의 술주정에 민시는 인상을 썼고, 곧 민시의 옷깃을 마구 잡고선 밀어버린다. 힘 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민시에 엄마는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민시를 일으켰다.
그리고.. 민시의 앞으로 익숙한 사람이 섰다.
"……."
"……."
민시는 급히 어딘가로 도망갔고, 민시의 엄마는 도현에게 머쓱한 듯 웃으며 말한다.
"어떤.. 거? 지금 복숭아 맛있는데..! 복숭아 드릴까?"
"…아, 네. 복숭아 한박스만 주세요."
결국엔 너의 전화를 받게 되었고.. 이게 뭐라고 떨려서 강이의 옷깃을 꽉 잡고있다.
- 뭐하고 지냈어?
"…그냥 학교 다니면서 지냈지. 나 방금 너 방송 나오는 거 보면서 연락한 거였는데.."
- 그래? 그게 되게 못나게 나왔는데.
"그래? 아니야 여전히 잘생겼는데."
- 실제로 보는 게 더 낫지.
"…그치!"
- 볼래?
"어? 지금?"
- 아니. 이번주는 힘들 것 같고. 다음주에 시간 될 것 같아. 다음주 시간 되는 날 있어?
"난 학교만 끝난다면 다 가능해!"
- 그럼.
"…응?"
- 너네 학교 구경할래.
"…어? 어! 그래도 되고.."
- 아무때나 찾아간다.
"…상관은 없긴한데.. 언제 끝날 줄 알고..!"
- 기다리다보면 끝나겠지. 유교과라고 했지.
"응!"
- 그래. 다음주에 보자.
너와의 통화는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편하게 통화를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걸까..
"너무 아무렇지도않게.. 오랜만인 것 같지도 않게 통화해서 이상한 것 같아.."
"어색했어도 이상했을 거 아니야."
"맞아."
"그럼 이게 더 낫지."
"응!"
"만나기로 했어?"
"응!!"
"그래서 이건 언제 놓을 건데."
"아, 미안! 지금! 지금 놓을게. 고마워어..."
아무때나가 언제일까... 항상 학교에 나오면서도 턱을 괸 채로 생각을 하게 됐다. 언제일까.. 그대로 연락은 하고 오겠지? 그렇겠지?
아, 참.. 재욱이는 방송에 나오고 꽤 유명해져있었다.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했고.. 재욱이가 잘생겼으니까. sns에서는 재욱이 얘기가 많다.
친구랑 같이 건물에서 나오던 나는 갑자기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 워! 하고 놀래키기에 화들짝 놀라 고갤 들어보면.. 익숙한 냄새였다.
"…진짜.. 진짜 깜짝 놀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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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화정도 남았네유..재욱이 분량 빵빵할 거햐..
뭔가 더 쓰면 끝내기 애매해질 것 같아서 여기서 끝낸 거 비밀..히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