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보관소
w.1억
단둘이 관람차를 타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고하면 너무 명백한 거짓말이다.
네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하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뭔가 너에게 관심이 간다는 걸 알리고싶지 않았으니까.
오늘이면 마지막인 걸 생각하자니 단둘이 있을 때 너에게 작별 인사라도 했음 좋겠는데도.. 내 몸이 따라주지않았다.
머리로는 널 잡고있는데. 몸은 널 쳐내고있다.
"내리자..!"
"……."
재욱은 알고있었다. 체육대회 이후로 을이 자신을 피하고, 평소처럼 대해주지 않는 것을.
그래서 더욱 더 을이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물어본다면 그걸 알지 못 한다고 또 미워할까봐 그러지 못 한 것이다.
먼저 내린 인엽과 강이 을과 재욱이 뻘쭘한 듯 내려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인엽이 먼저 강에게 말한다.
"뭐지 저 어색함은."
"저쪽이 더 어색해보이는데."
이어서 내리는 도현과 민시를 본 강이 그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인엽은 둘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다.
한곳으로 모일 시간이 되었고, 재욱이 가다말고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자 자리에 멈춰선다.
- 언제오니?
"이제 가요."
- 재밌게 놀았어?
"…그냥."
- 짐 말이야.
"오늘 집에 가서 꼭 정리할게요."
- …….
"하려고 했는데."
- 짐 안 싸도 돼.
"……?"
- 가지 마. 뉴욕.
"……."
- 아들 하고싶은 거 다 해. 자식의 청춘을 부모가 어떻게 상관하겠어. 네 청춘은 네가 지켜.
"……."
- 그대신 하나만 약속하자.
"…어떤 약속이요?"
- 고3때는 여태 했던 것 보다 훈련 더 받는 거야. 이미 코치님이랑, 선생님들이랑 얘기 끝났어. 수업은 정말 가끔 듣고, 훈련에 집중할 거라고.
"……."
- 엄마가 여태 부담스럽게 했다면 미안해. 아들. 조심히 와야 돼?
"……."
전화가 끊겼고, 재욱은 여전히 멈춰서서 아무말이 없다. 갑작스레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 재욱은 당황한 듯 했다.
다시금 전화 와서 그 말이 거짓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다보면.. 저 멀리서 애들이 소리친다.
"야 이재욱! 안 오냐?"〈- 도현
"왜 서서 멍때리고있어?"〈- 인엽
얼마 가지않아 멈춰서 재욱을 기다려주는 친구들에 재욱은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듯 작게 웃음을 띄우며 애들에게 다가간다.
버스에 먼저 올라탄 을이 '아싸'하며 창가쪽에 앉았다. 그 다음으론 재욱이 다른 자리에 앉으면 되는 상황이었고, 재욱의 뒤로는 민시가 서있다.
재욱이 자리를 골라 앉지도 않고 가만히 서있으니, 민시가 재욱에게 짜증을 낸다.
"야 안 가냐?"
당연히 민시는 #을의 옆자리에 앉을 생각이었다. 재욱이 갑자기 을이의 옆자리에 앉아버리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을이 놀라서 재욱과 민시를 번갈아보니, 민시가 곧 헛기침을 하며 다른 자리에 앉으며 혼잣말을 한다.
"…귀여운 놈.."
을이 너무 당황을해서 재욱을 바라보다가도 어색하게 창밖을 보았다.
자리가 많고 많은데 내 옆자리에 앉는다니..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을이 최대한 재욱쪽을 보지않으려 재밌지도 않은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재욱도 눈치가 보이는 건 당연하다.
"……."
한시간을 넘게 달려 학교에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리는 상황에 재욱이 내리지않고 가만히 앉아있자, 을이 재욱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안 내려...?"
"…아, 어."
"…어?"
"…내일."
"……."
"영화 볼래?"
"어???"
"……."
"왜?"
을이 너무 당황스러워하자, 재욱이 뻘쭘한 듯 을을 제대로 보지 못 했고..
"너..내일 가잖아.."
"…그거."
"야 너네 안 내리냐? 마지막에 내리게?"
인엽의 말에 재욱이 결국 말 없이 버스에서 내렸고, 뒤 따라 내린 을이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모두가 이제 집에 가자면서 피곤한 듯 흩어지려고 하는데. 재욱이 '저기'하고 멈춰서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자, 모두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 재욱을 본다.
"나 내일 뉴욕 안 가."
"미뤄진 거야? 그럼 언제 가? 우리 그럼 놀러갈래? 대박."
"안 가."
"에?"
"안 가도 된대."
"에??????"
"나 너네랑 같이 졸업한다고."
"진짜!?!?!"
여태 힘이 없던 인엽이 신나서 재욱을 징그럽게 안았고, 뽀뽀까지 해버리자, 재욱이 인상을 쓰며 인엽을 밀어낸다.
을이는 티를 안 냈지만, 몰래 웃고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민시는 멋쩍은 듯 도현을 몰래 보았다.
"……."
"…야 이재욱 간다면 가야지 안 가는 게 어딨냐?"
"가길 바라는 것 같네. 걱정 마. 어차피 뉴욕 안 가도 수업도 못 듣고, 너네랑 밥 먹는 건 평소보다 더 힘들 거니까."
"우리 너 주려고 선물 사놨단 말이야."
"선물?"
민시가 고갤 끄덕이며 을을 보자, 을이 고갤 작게 끄덕였다. 물론.. 둘만 산 건 아니다.
모두가 재욱에게 주려고 산 선물이 있었고, 그 선물이 뭔지는 아직 서로 모를 뿐.
재욱이 안 간다는 소식에 모두가 웃고있다가도 민시가 재욱의 등을 치며 말한다.
"그럼 내일 방학식 하고! 끝나면 줄게. 어차피 너 주려고 산 거니까. 주긴 줘야지.. 그래도. 너 안 간다니까 마음이 다 놓이네. 오늘 애들 다 저기압이었던 거 알지? 진짜.. 어휴.. 꼴에 친구들이라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가 심부름이 시켜서 마트에 들렀다. 엄마가 사오라는대로 바구니에 넣는데 강이가 내 옆에 물끄러미 바라만보다가 말한다.
"넌 요리 잘해?"
"어..아니..? 그닥...?"
"아."
"뭐야 그 반응은?"
"그럴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였어."
"야 그럼 왜 물어봐!!"
"잘할 수도 있으니까."
"참나... 너 엄마한테 다 말할 거야. 너 밥만 쥐똥만큼 주라고 할 거야."
"너 맘대로 되냐."
"요즘 까불어 송강?"
주먹으로 강이의 팔을 마구 때리다보니, 강이가 내 손목을 잡고 안 놔주었고, 어느순간 우리는 같이 살면서 더 편해졌는지 장난을 더 많이 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스크림 딱 하나씩만 사먹을까?"
"추워 죽겠는데 아이스크림을?"
"응! 좀 끌리는데..."
"아줌마 카드 그냥 막 써도 돼?"
"아니? 모르겠어.. 그러니까. 네가 먹고싶다고 했다하면.. 아마도.."
"……."
"괜찮지?"
"어휴.."
결국 강이랑 같이 쭈쭈바 하나씩 입에 물고선 집으로 향한다. 아, 장바구니는 각자 하나씩 들고!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집이 멀게 느껴지는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나니.. 너무 손이 시려워서 멈춰서 강이를 올려다보니, 강이가 또 왜 그러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편의점 가서 따뜻하게 마실 거 사올게."
"그냥 가."
"손 시린데.."
"……."
"내가 사올게 그럼."
"됐어.. ! 내가 사올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금방 갔다올게!"
강이를 벤치에 앉히고선 급히 편의점 가는 길에 마침 옆에 도현이가 다니는 도서실이 있기에 반가운 마음에 멈춰서서 창문쪽만 바라보다가 도현이한테 창문 밖 좀 보라고 문자를 보내려다가..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사가지고 나왔을까.. 도서관 옆에서 나는 담배 냄새에 고개를 돌렸을까..
"……."
"…엇.."
"……."
담배를 피고있는... 내 친구..도현이랑...말이다... 도현이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놀란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도현이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급히 강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방에 와서는 한참 재욱이에게 줄 팔찌를 만지작 거렸다. 안 간다는 말이 반가우면서도.. 이걸 좋아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하게 되면서도..
근데 또... 도현이가 담배 피던 걸 떠올리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럴 때면.. 혼자 막 생각하면 더 복잡해지니까. 도움을 빌려보자.
강이 방에 노크를 하고선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자, 강이가 대답이 없다. 설마 벌써 자나? 아직 9시인데? 설마..하고 또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다.
뭐야.. 진짜 자나보네..포기하려고 할 즈음.. 강이가 문을 열었다.
"…안 들어오고 왜 서있어?"
"노크 했는데 대답 없길래..."
"…아. 그냥 들어올 줄 알았지."
"에이.. 대답을 해야 들어가지! 뭐하고 있을 줄 알고.. 그럼 들어간다!"
"응."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아빠가 '문은 조금 열어놓거라~'하고 능청스럽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말한다.
"어휴 왜 이래?"
괜히 강이랑 나랑 서로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뻘쭘해 강이의 책상 의자에 털썩 앉아서는 말했다.
"괜히 저러시는 거야.. 우리집에 남자인 친구 처음 데려와서..."
"…아."
"그..저기 강아."
"응."
"혹시..말이야? 너 담배 펴?"
"…담배..? 아니."
"혹시라도 담배피는 친구가 주변에..있어?"
"…아니."
"우리 나이대 애들이 담배 필 수도 있는 거지..?"
"우리 학교 애들만 봐도 많이 피잖아."
"……."
"호기심 때문에 폈거나, 힘들어서 폈겠지."
"…그렇겠지? 힘들면 그럴 수도 있지."
"왜? 담배 피게?"
"어유! 아니??? 그냥 요즘따라 담배 피는 애들이 많은 것 같아서..!"
"신경 꺼. 미성년자때 피는 게 안 좋기는 하지만.. 본인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
"응!"
"……."
"…왜?"
"할 말 더 있어?"
"아, 응!"
"……."
"너는 재욱이 선물 뭐 샀어?"
"그냥 cd 샀는데."
"cd???"
"응. 노래 듣는 거 좋아하니까."
"노래 듣는 거 좋아해?"
"…응."
"아... 몰라! 그냥 뭐 샀나 궁금해서.."
치..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강이도 같이 따라나오길래 왜? 하고 물으니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랑 아빠가 소파를 보고있다가도, 강이가 '저기..'하고 옆에 멀뚱히 서있으니, 두분이서 웃으며 강이를 보고 '응?'하고 올려다보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응. 그래."
"다음주 정도면 방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주일 정도만 신세 질게요.."
"…어? 간다고? 아니.. 방은 어떻게 구했어. 부모님께서 해주신 거야?"
"…아뇨. 그건 아니고.. 모아둔 돈이 있어서 그 돈으로.."
"모아둔 돈이 있다고? 아직 고2잖아.. 어떻게 모은 거야..?"
"명절이나.. 용돈 주신 거.."
"아이구 참.. 기특하기도 하네. 어떻게 돈을 다 모을 생각을 다 했어?"
"……."
"그래도 강아."
"……."
"아줌마가 부탁이 있어."
"…네?"
"조금만 더.. 네가 자리를 완전 잡을 때까지. 성인 돼서 대학 가거나, 일자리 잡힐 때까지만 아줌마가 강이 너를 보살피면 안 될까?"
"……."
"그래."
"……."
"그럼 더도 말고.. 고등학교 졸업."
"……."
"괜찮지 ? ^^"
엄마가 제바알- 하고 웃어보이자, 강이도 따라 웃으며 고갤 끄덕여보였다. 치.. 송강.. 혼자 나갈 생각했냐.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래도 서운해도 어쩌겠어.
는 무슨
"송강 너 나한테 왜 말 안 했냐?"
다음날 아침 아직도 익숙해지지않은 쉐이크를 먹고선 인상을 쓴 채로 강이한테 짜증을 냈더니.. 처음으로 짜증을 낸 내가 무섭기라도 했는지 표정이 꽤 볼만했다.
"…미안."
"치 됐거든?"
"……."
"다음부턴 나한테 숨기는 거 없이 다 말해!베프끼리 이러면 서운하다 진짜? 가자! 늦겠다!"
시간을 봤다가 늦은 것 같아서 우다다 뛰다가도 강이가 따라오는 것 같지 않아서 급히 뒤를 돌아보니, 강이가 뒤늦게 웃으며 뛰기 시작했다.
학교에 와서는 학교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애들과는 다르게, 나는 기다려지지만은 않았다.
방학하고나면 학교에 못 나오고.. 다같이 밥 먹고 놀 일이 별로 없겠구나 싶었다.
유일하게 다같이 모이는 곳이 학교였는데.. 이건 둘째치고 주머니 속에 넣어둔 팔찌를 만지작 거리며 불안해했다. 내 선물이 제일 하찮으면 어쩌지..
근데 이건 또 별 거 아니다.
"……."
도현이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도현이도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서.. 나도 신경 안 쓰려고한다. 뭐.. 나쁜 거지만.. 그래도 본인 선택이라면 내가 어찌할 수가 없지.
방학식이 끝나고 모두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시가 우리를 하나둘씩 부르기 시작했다.
"자, 이재욱한테 선물 주는 시간이 왔습니다. 자! 나 먼저 준다. 맘에 안 든다고 티내면 죽여버린다."
"……."
민시는 예상치도 못 한 선물이었다. 재욱이를 그려주었다..캐릭터로.. 감탄하면서 다음 도현이가 주는 선물을 보는데..
"헐.."
도현이는 축구화..
"…헐?"
강이는 cd..인엽이는 핸드폰 고리.. 뭔가 내가 제일 초라해보여.
내 선물만 남은 상태에서 모두가 나를 쳐다보길래 나는 쭈뼛쭈뼛 팔찌를 건네주었다. 생각보다 모두 내 선물이 초라하던 말던 상관을 안 쓰는 듯 싶어서 다행이었다.
아 몰라- 그래도 창피해서 급히 대걸레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 길에 도현이도 대걸레를 챙겨 내쪽으로 다가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을아."
"응..."
"뭐야 왜 이렇게 우울해보여."
"…그냥 내 선물이 엄청 초라해보여서.."
"아닌데. 네 선물 굉장했는데."
"정말..?"
"응. 정말. 나도 받고싶은데?"
"…휴우.."
"…그."
"응?"
"어제.."
"아."
"……"
"말 안 할 거야. 걱정 마세요오~"
도현이랑가한참 말 없이 걷다가, 겨우 꺼낸 말은.
"…고마워."
고마워- 였다.
기죽어서 대걸레를 들고 교실로 온 나는 창문을 청소하고있던 재욱이를 보게 되었고.. 재욱이의 손목에..
"…어.."
내 팔찌가 있는 걸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
난 끝까지 너에게 왜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냐고 묻지 못 했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내가 준 팔찌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너를 보면.. 왜 내가 준 선물을 바로 꼈는지, 왜 내 선물을 보면서 웃는지 묻고 싶었지만.
대답을 듣는 게 무서워서 그러지 못 했다. 혹시나 또 나만 상처받을까봐 그러지 못 했다.
비하인드
을이는 가만히 앉아서 만화책을 보다가도 침대에 벌러덩 누워 만화책으로 눈을 가린다.
자는 듯 싶다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아서는 핸드폰을 켜, 재욱을 제외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얘들아 우리.. 재욱이 가는 날 파티는 힘들 수도 있으니까..! 선물이라도 주는 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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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하...영화보면서 쓰느라 늦어따 흐하하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