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야- 저 별은 무슨 별이야?"
"샛별. 금성이야"
"금성? 수금지화목토천해 그 금성?"
"응"
"우와- 역시 원우. 넌 그런거 어떻게 알았어?"
"......그냥 어쩌다가"
"그냥이라는게 어딨어. 내가 너 책 열심히 읽을 때부터 알아봤어.
저건? 저건 뭐야?"
"저건 물병자리"
"물병자리? 물고기 자리아니야?"
"으이구, 바보야"
어릴 적의 우리는
어둠이 어둑어둑 내리는 학교 운동장에 앉아 그런 얘기를 했더랬다.
늘 조용했던 너는, 책을 많이 읽는, 그저 그런 아이로 내 친구들에겐 기억되어있었지만,
나에겐 특별한 아이였다.
늘 엄마에게 혼나가면서, 어둠이 찾아 올때까지 너와 운동장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으니.
그때의 난 참 순수했다.
별자리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네가 다른 별자리의 이야기를 해주기 전까지
늘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 별자리만 손으로 꾸물꾸물 되짚었더랬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세봉씨. 아니, 이정도 밖에 못해요?"
".......죄송합니다...."
그냥 일 못하는 잡지회사 말단 사원이지만.
+
"엄마-"
"어유, 우리 딸이 언제 이만큼 컸어?"
"뭐야, 갑자기 오글거리게"
"가서도 조심히! 엄마 딸 답게! 씩씩하게!"
"알지 엄마. 사랑해~ 전화 자주할게"
"도착하면 전화하고"
"응"
그리고, 오늘은 어릴적 살던 도시로 다시 이사가는 날.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 혼자라는 거?
회사에서 발령 받아서 가는 거긴 하지만, 괜히 떨리는 건.
아마, 내 기억 속에 늘 네가,
별을 찾는 네가 있기 때문이겠지
"정말 이사가야해?"
"응. 원우야. 미안해. 앞으로는 같이 별 못 봐줄거야.."
"................."
"그래도, 그래도 늘 별 보면서 네 생각할게.
정말이야, 약속해"
"세봉아"
"........응?"
"기다릴게. 늘 그 자리에서"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말 즈음이었을거다.
너와 쌍둥이자리 처럼 붙어다니던 내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간 게.
넌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리겠다며 담담하게 이야기했고,
너무도 담담한 너의 태도에 눈물이 왈칵,
아마 내가 어른이 된 여태까지도 널 잊지못하는 이유는,
너의 담담하지만 모든게 담긴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겠지.
떠오른 추억에 다시 찾은, 그때의 운동장
그리고, 우리가 늘 앉아서 별을 보던 그 벤치.
자리에 앉아 꼼지락거리며 어렸던 너의 얼굴을 떠올린다.
"전......원..우"
그래, 원우.
어렸는데도 불구하고 넌 참 잘생겼었는데.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널 떠올렸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 그와 상반되게 흰 피부,
날카로운 눈매...그리고..
세봉아, 하고 늘 내 이름을 부르던.
어렸던, 너
+
어느 덧 어둑어둑한 밤이 찾아왔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올려다본 하늘.
"어?"
그리고, 떠오른 수많은 별자리들.
그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너의 기억
어렸을 때와 다름 없이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물......물병자리"
그리고 들리는
"바보. 물고기자리"
그리고 보이는,
어렸을때와 다른 너.
어른이 되버린 전원우의 목소리
".......원우?"
"안녕, 세봉아"
그리고 여전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너
칠흑같은 머리칼, 흰 피부..
"원우야.."
"보고싶었어"
".............."
"기다렸어. 늘 이 자리에서"
그리고, 여전히 담담한, 하지만 모든게 담긴 너의 말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