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다시 오자.
문 앞에 걸려있는 그 봉투가 외롭게 느껴졌다.
늦은 밤 석진은 인적이 드문 방에 들어섰다. 새하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는 며칠째 감감무소식이다. 감은 눈을 뜨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아이와 연결된 기계는 아직 아이가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 소리에 석진은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감출 수 있었다.
석진은 조용히 아이의 앞머리를 옆으로 쓸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은 아이의 까만 머리에 흩어졌다. 옅은 빛에 아이의 얼굴이 비쳤다. 아직은 미성숙한 동그란 선들이 그의 나이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기껏해야 6살에서 8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석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아이의 얼굴만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견디는 아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만 그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아이는 꿈에서의 고통을 이길 수 없었는지 끙끙 앓았다. 석진의 거친 손이 아이의 보드라운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었다. 아이는 석진의 손이 아릴 정도로 꽉 잡았다.
너는 무슨 꿈을 꾸고 있니.
새하얀 아이의 꿈을 알 수 없는 어른은 그대로 아이에게 등을 돌려 그 방을 나왔다.
복도의 환한 불빛이 석진의 모습을 비쳤다. 바닥에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조용히 그를 따라 움직였다. 모두가 잠든 이 밤, 석진은 남준을 찾아갔다.
석진은 굳게 닫혀있는 그의 방문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열어 제겼다.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던 남준이 문 앞의 석진을 보고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석진에게 앉으라며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쳤다. 이유를 예측할 수 없는 석진의 방문에 남준은 호기심의 목소리를 가득 담았다.
“이 시간에 왜 왔냐? 아침에 얘기하지.”
“남준아.”
진지한 석진의 목소리에 남준은 잔뜩 긴장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석진의 뒷말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최악의 상황만 아니면 괜찮다고 남준은 생각했다.
“왜? 하고 싶은 말 있어?”
“그 여자애 이제 잘 해주지 마. 어차피 내일부터 못 볼 거야.”
남준은 커다란 종을 머리로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가엽게 여겨졌던 그 아이를 내일이 되면 못 본다? 어쩌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가슴이 허해지는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
남준은 무의식중에 그 아이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알 방법이 없는 남준은 그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기관지를 타고 들어오는 공기가 폐에 붙어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석진에게 이유를 물어보려고 싶었던 남준은 곧 그 생각을 접고 멋쩍게 웃으며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두었다. 자신의 앞에 재생되고 있는 이 영화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준은 복잡해진 머릿속을 뒤로 이 조용해진 분위기를 깨고 싶어 입을 열었다.
“할 말끝이야? 와인 한잔할까?”
“나 와인 싫어해.”
와인을 싫어한다는 석진의 말에 남준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석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는 남준은 그저 석진의 비위를 맞추기로 했다.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 석진은 자신의 친구이기 전에 자신의 상사였으니. 꼬여 버린 관계가 애석했다.
“와인 싫어? 다른 거 마실래?”
“너 걔가 우는 소리 신경 거슬린다며.”
애초에 술은 마실 생각도 없었는지 석진은 남준의 말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자신의 할 말만 했다. 변화하는 남준의 표정을 바라보는 일 만큼 재미있는 일은 석진에게 없을 것이다. 변화의 그 끝엔 조그맣게 절망스러운 표정이 남아 있었다. 그 표정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석진은 자신의 마음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거슬려 지금도.”
남준의 대답을 들은 석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남준에게 싱긋 웃고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남준은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의 정의를 알 수 없었다. 동정심에서 출발한 이 감정의 현재 상태를 자신도 몰랐다. 남준은 그대로 소파에 머리를 붙였다. 한숨이 자연스레 입을 비집고 나왔다.
재생되고 있던 영화가 끝나고 새로운 영화가 시작하고 있었다. 까만 화면에 오프닝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을 자면 그때의 꿈처럼 정국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생생한 꿈을 자신은 잊을 수 없더라. 손을 올려 두 눈을 덮었다. 제대로 잠을 못 잔 탓인지 금세 잠이 들었다. 제발 정국이를 만나게 해달라며 달님께 소망하며.
그때도 지금도 변한 건 없다. 그저 슬픔에 젖어버린 그녀와 그녀의 슬픔에 젖어버린 한 아이만 존재할 뿐 모든 것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국아. 누나가 정국이 만나러 가면 마중 나와 줄래? 그렇게라도 너를 만나야 누나가 살 것 같아.
저번에 봤던 파란 날개를 가진 나비가 나에게 살포시 다가왔다. 그 나비는 나에게 길을 안내하듯 내 앞을 훨훨 날아가 버렸고 나는 그 나비에 홀린 듯 뒤를 쫓았다. 그때와 변한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은 이곳이 익숙하지만 새로웠다.
“누나……왜 또 왔어.”
“원래 아쉬운 사람이 보러 오는 거야.”
내 말에 정국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정국이는 나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깨를 꽉 잡은 손이 나에 대한 원망을 가졌는지 조금 아프게 느껴졌다.
“누나. 나 만나러 와도 나 이제 여기 없을 거야.”
누나가 자꾸 나 찾아오면 자꾸 내가 돌아가야 하는데 흔들리잖아.
“그러니까 이제 나 만나러 오지 마.”
내가 누나한테 갈게.
단호한 표정을 지은 정국이에게 그저 슬픈 웃음을 띠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정국이가 오늘따라 더 얄미웠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나 너 못 만나는 거잖아.
정국아 나 그럼 너 보고 싶을 때 어떡해?
꿈속에서라도 누나 만나주면 안 돼?
하지 못할 말을 삼키며 정국이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정국이는 그런 나를 비웃듯 나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정국이에게 다가오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 시선을 피해버린 정국이가 원망스럽게만 느껴졌다.
손 닿으면 부서질 듯한 그 모습에 다가가려 했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음속으로만 소리 없이 걸었더니 땅 위로 남겨지지 않은 발자국이 살포시 마음에 쌓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 발자국들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낼 날이 올 거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나가던 바람이 저를 치고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올 거라며 정국을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점점 희미해지는 발자국 소리가 정국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 사실을 믿기 싫어 감았던 눈을 뜨지 않았다. 감은 눈을 덮은 속눈썹의 끝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정국아.
의미 없는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들려오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
정국은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눈을 감고 높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자신은 이곳에서의 생활도 좋았지만 누나를 만나러 가야만 했다. 하루가 다르게 자신을 찾아오는 누나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다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어디서 다시 눈을 뜰까?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공기의 저항을 느꼈다. 한순간도 느끼지 못했던 중력이 자신을 바다 밑으로 끌어당겼다. 수면에 닿기 전 친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돌아가지 말라던 목소리들을 자신은 이겨냈다.
‘나 먼저 갈게. 너희도 꼭 돌아가.’
코와 입으로 밀려오는 바닷물을 뱉어낼 수 없었다. 목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닷물이 고통스러웠지만 참아야 했다. 주변을 유영하던 물고기들이 정국의 곁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허우적거리던 팔다리가 물결에 파묻혀 버렸다. 바다가 정국이를 깊은 곳으로 삼켜버렸다.
감겨 있던 네 개의 눈이 동시에 떠졌다.
이른 아침 덩치도 크고 몸도 우락부락한 남자가 나를 엎쳐 메다시피 하고 석진의 방으로 데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몸을 숨길 수 없더라. 석진의 앞에 무릎을 꿇린 그 남자는 곧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너 뭐 잘하냐?”
“얼굴 좀 들어봐.”
뜬금없는 석진의 말에 놀아 주먹을 쥔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곧이어 들려오는 말에 순순히 고개를 들고 석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얼굴을 뜯어보다시피 하는 석진의 시선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그 시선에 고개를 피하려는 순간 턱을 잡아 얼굴을 고정하는 석진에게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반반하네.”
“너 일해볼래?”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석진은 하려 했던 뒷말은 삼키기로 했다. 끄덕거리는 그녀의 고개를 본 석진은 만족스럽단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목요일 오후 6시까지 챙길 거 다 챙겨놓고 준비해.”
권위 있는 그의 목소리에 어찌 반항 따위를 할까……
방으로 돌아와서 새벽 밤이 다가올 때까지 고민했다.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한 물음은 정말 끝이 없더라. 두려운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 감추었다. 다가올 미래를 예상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힘없는 자신의 모습만큼 눈물겨운 건 아직 찾을 수 없었다. 일이라도 해서 머릿속 가득한 불필요한 생각을 떨쳐 내고 싶었다.
석진은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어 윤기야.”
“너네 가게에 여자애 한 명 보내줄까?”
제가 작가님 소리를 듣는 날이 오다니ㅠㅠㅠㅠ (감격)
우리 암호닉들 다 외우고 싶은데 가능하겠죠...?
가능하다면 댓글도 다 달아주려 노력하는데... 네 이 글 올리고 댓글달러 갈거에요.ㅎㅎ
저는 소통하는 게 너무 좋아요 :)
내 사랑들~ 지금 뭐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4화 올라왔습니다!
밤에 5화 올리러 올테니 기다려주시면 감사해요...ㅎㅎ
그리고 암호닉 꼭 확인해주세요! 혹시라도 없다면 금방 추가하겠습니다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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