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기서 내려요.
Baby J
12월 31일, 친구들과 스무 살이 되자마자 찾은 동해에서 멋진 일출을 봤다.
들뜬 마음으로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난생처음으로 클럽도 갔다. 이 얼마나 꿈에 그라던 일인가, 너무나도 새롭고 행복하고 들뜬 마음이 가득했다.
무사히 일출을 보고 하룻밤을 잔 후 집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 야 저 사람 괜찮지 않냐?”
“시끄러워, 잠 좀 자자. 너무 피곤해.”
피곤에 찌들어버린 몸을 고속버스 좌석에 푹, 기대어 잠을 청하려던 순간,
옆에 앉은 수정이가 날 툭툭 건드리며 반대편 좌석에 앉아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호들갑을 떤다.
시끄럽다는 말을 마치곤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힐끗 그 사람을 쳐다보니 꽤나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 내 남자는 아닌데.
-
“조심히가! 집 도착하면 인증샷 날려라!”
“알겠다고, 극성이다 너도.”
“걱정해주면 좋은 줄 알아 이년아.”
“네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약 세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서울. 한숨 자고 일어나니 더욱 피곤해서인지 눈이 절로 감긴다.
터미널 근처에 사는 수정이는 도착하면 인증샷을 날리라며 신신당부를 하곤 택시에 몸을 실었다.
터미널에서 얼마 안 가 있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타고 가야 할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인지 5분, 10분이 흘러도 오지 않는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서인지 하늘엔 어둠이 가득 내려왔고, 불어오는 바람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네, 금방 가요. 네.”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잠이 들락말락 할 때, 어눌한 말투로 통화를 하며 내 옆에 풀썩 앉는 사람에 의해 잠이 확 깼다.
그 사람이 내 옆에 앉자마자 달큰한 향이 스멀스멀 내 콧속을 자극하는 게 느껴진다.
목소리도 좋고 향기도 좋은 사람이네, 얼굴은 얼마나 잘생겼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휙 돌려 옆에 앉은 사람을 쳐다봤다.
“어!?”
“네?”
“ㅂ,별똥별이다….”
아오, 이 방정맞은 입. 옆 사람을 쳐다보니 아까 고속버스에서 수정이가 호들갑을 떨던 그 사람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가리키며 어!? 하고 아는 척을 해버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둥이처럼 날 쳐다보는 그 사람에 의해 어색하게 웃으며 별똥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버렸다.
창피한 마음에 머리를 몇 번이나 쥐어박은 지 모르겠다. 어휴, 창피해 미치겠네.
이런 어색하고 창피한 공간에 왜 사람이 한 명도 없는지 모르겠다. 버스 정류장에 그 사람과 단둘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창피하다.
제발, 빨리 버스라도 와라…. 창피한 마음에 오지도 않은 카톡을 켜 수정이에게 톡을 보냈다.
야, 나 아까 네가 버스에서 말한 그 사람이랑 버스 정류장에 같이 있음.
“아, 앉으세요.”
“ㄱ,감사합니다.”
수정이에게 카톡을 보냄과 동시에 버스가 내 앞에 멈춰 섰고, 드디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해맑게 웃으며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탄 후 시선을 빙- 돌려 앉을 자리를 찾아보니 딱 한 좌석이 남아있다. 이래 봬도 내가 달리기 하나는 잘한다고.
속으로 자만심에 가득한 말들을 한껏 내뱉으며 하나 남은 자리로 향하던 중, 아까 그 사람의 발을 밟아버렸다.
아니, 왜 같은 버스인데…. 순간 동상처럼 굳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자, 그 사람이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내 앞에 떡 하니 서버린다.
미안한 마음과 창피한 마음이 계속해서 든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왜 이런 모습만 자꾸 보이는지….
[뭐, 그래서. 번호는 땄어?]
(그건 무슨 멍멍이 같은 소리야)
[아 빨리 상황 설명해봐!!]
(아 몰라 창피해. 번호는 안 땄고, 같은 버스 탔는데 내가 발 밟음.)
[너 내릴 때까지 안 내리면 저 이번에 내려요. 이렇게 하고 내려]
(자꾸 나한테 이상한 거 시키지 마)
[그리고 따라내리면 넌 이제 모태솔로 탈출임]
(리얼리?)
[오올라잇~~~~]
(아 몰라 일단 나 피곤하니까 좀 잠)
[ㅇㅇ]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지는 수정이의 카톡에 답장을 해주니 또 나에게 무모한 짓을 시켜버린다.
계속해서 강요하는 수정이가 귀찮아져 잔다는 핑계를 대며 카톡을 꺼버렸다.
힐끗힐끗 머리를 정리하는 척 거울을 꺼내 그 사람을 올려다보니 이번에도 역시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다.
일반인이 이렇게 잘생길 수 있나? 아예 거울 각도를 틀어 그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눈, 코. 마지막으로 입. 따로따로 보고 있을 때, 뭐가 웃긴 것인지 그 사람이 웃는 게 보인다.
입 옆으로 깊숙하게 패인 보조개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저절로 힐링이 되는듯한 기분?
“ㅈ,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얼굴 한 번만 보고 만족하자. 하는 생각으로 거울의 각도를 살짝 틀어 그 사람의 얼굴 전체를 거울 속에 담았다.
거울 속에 담긴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난 소스라치게 놀라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곤 그대로 거울을 가방 속에 집어넣고선 창피한 마음에 눈을 꼭 감아버렸다.
왜, 언제부터 제가 그쪽 보고 있는 걸 알았나요…. 눈을 감으니 거울 속에 담겨져 있던 그 사람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눈을 내리깔고선 날 보고 옅게 지은 미소가 왜 그리 인상적인지,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이번 정류장은 ☆☆입니다. 하는 소리에 눈을 뜨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이번에 내려요.”
“네?”
자리에서 일어선 후 벨을 누르곤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 수정이가 시켰던 말을 해버렸다.
한참을 고민하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넸고, 그 사람은 당황스러웠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때마침 열리는 문 덕에 도망치듯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총총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빠져나가다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은 내리지 않은듯하다.
내가 그렇지 뭐, 버스가 출발하곤 머리를 쥐어박으며 혼잣말을 되뇌고 있을 때 저만치 가던 버스가 우뚝 멈춰 섰다.
신경 쓰지 마 ○○○. 너에게 봄날은 ㅇ벗다.
“저기요,”
“ㄴ,네?”
“그렇게 그냥 내리면 어떡해요. 연락처라도 주고 내리던가.”
터덜터덜 축 처진 채 이어폰을 두 귀에 꽂고선 땅바닥만 보고 걸어갔다.
땅만 보고 걷던 순간 인기척과 함께 내 시야를 가득 채워버리는 새하얀 운동화 하나가 있었고, 그에 이어 내 어깨를 건드리는 손에 의해 이어폰을 빼 그 사람을 쳐다봤다.
뛰어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날 부르는 그 사람에 의해 눈을 제대로 마주치니 아까 버스에서 무모한 짓을 벌였던 그 사람이었다.
나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며 연락처라도 주고 내리던가. 하며 말을 마친 그 사람은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고 보조개가 깊게 파이게 웃어 보인다.
해맑게 웃는 그 사람에 의해 나 역시 피실피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뱉어버렸다.
“지금 번호 따는 거죠?”
“그쪽이 먼저 작업 걸어주세요- 하고 내렸잖아요.”
“그쪽이 아니고 ○○○이에요. ○○○.”
“그래요 ○○씨. 난 레이에요. 그니까 애태우지 말고 번호 줘요.”
그 사람의 핸드폰을 한 번, 그 사람을 한 번 쳐봤다가 번호 따는 거냐고 묻자 크게 웃으며 말장난을 걸어온다.
서로의 통성명을 빠른 시간에 끝내고 애태우지 말고 번호를 달라는 그 사람의 손에서 그 사람의 핸드폰을 받아들어 번호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눌렀다.
내가 지금 좀 바빠서 그러니까 데려다 주진 못하겠네요. 조심히 가요, 연락할게.
번호를 찍어주자마자 그 사람은 나에게 조심히 가라는 말을 남기고 뒤를 돌아 택시를 잡고선 빠르게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걱정스럽다.
하지만 걱정스럽던 것도 잠시, 그 사람에게서 온 카톡 한 통에 의해 금세 환한 미소를 입안 가득 띄우며 들뜬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씨, 뭐…. 음…. 먼저 얘기 걸어줘서 고마워요.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말 걸고 싶었는데 ○○씨가 먼저 걸어주네. 앞으로 좋은 발전이 있길 바라요. 친구 말고 연인으로.]
암호닉 |
『 웬디 〃 대박이 〃 정은지 〃 알로에 〃 허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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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 J |
2차 메일링 글은 10시쯤에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