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위험한 연애 할래요?
Baby J
“크리스, 나 출근할게요.”
“그러던가 말던가”
오늘 역시 무심한 남편이란 사람의 말투, 진절머리가 난다.
신혼 때는 정말 좋았는데 왜, 도대체 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서로에게 소홀해지기만 하는지,
이제는 내연녀까지 생긴 것인지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끔가다 여자 화장품을 옷에 묻혀오는 경우도, 여자 향수 냄새가 진하게 밴 채 집으로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네 멋대로 해라, 난 신경 안 쓴다-. 하는 말투의 크리스 때문인지 오늘 하루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대꾸도 잘 해주지 않던 사람이 저런 말을 내뱉을 때면 가슴에 송송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다.
크리스의 대답을 듣고선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나왔다. 제발, 숍에선 아무 일도 없길 바랄 뿐이다.
“원장님, 시우민씨 오셔서 원장님 기다리고 계세요.”
“아, 그래. 옷 갈아입고 바로 간다고 전해줘.”
“네,”
주차를 마치고 숍으로 들어가자마자 나에게 쪼르륵 달려와서 시우민씨가 오셨다고 전하는 직원의 말에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원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다른 생각에 잠겼다. 시우민, 저 남자는 어째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젊어지는 기분인지, 29살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가 없다.
아직 20대라서 뭔가 다른 건가,
“원장님,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요즘 영화 찍느라 너- 무 바빠서요.”
“수고 많았어요.”
“푸흐, 원장님, 난 진짜 엄청 많이 보고 싶었는데 원장님은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네? 아, 보고 싶었죠- 이렇게 멋진 손님이 오랫동안 안 왔는데.”
“멋진 손님이라면 여기 연예인 많이 오잖아요. 그런 거 말고 다른 의미로.”
“어휴, 가서 샴푸나 하고 와요!”
원장실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제일 첫 번째 의자에 팔짱을 낀 채 앉아있는 시우민씨. 걸어오는 내가 보였는지 능글맞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런 시우민씨에게 나 역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몇 번 주고받자 뜬금없게 다른 의미로 보고 싶지 않았느냐고 물어온다.
매우 능글맞게 나오는 그 사람 때문에 당황해서인지 어깨를 살짝 치며 샴푸나 하고 오라며 그를 보내버렸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라 그런지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원장님은 남편이랑 사이 좋아요?”
“………뭐, 그냥 그렇죠. 일찍 결혼해서 그런지 이제 뭐…,”
“그쵸? 이제 별 감정 없고 정 때문에 사는 거죠?”
“그런 게 왜 궁금해요,”
“그거야 당연히 내가 원장님 좋아하니까 그렇죠.”
“어우, 진짜 능글맞아.”
달아오른 볼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식히고 있을 때, 벌써 샴푸를 다 한 것인지 금세 제자리에 앉아 또 질문세례를 퍼붓기 시작한다.
이렇게 능글맞은 사람이 왜 아직까지 연애도 못 하는지, 그저 웃기 바빴다. 드라이를 꺼내 민석씨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지듯 말려주기 시작했다.
오늘 헤어 스타일링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혼잣말을 하고 있자, 스마트폰을 꺼내 내 앞에 척, 하니 들이민 그 사람.
난 이 머리가 제일 좋아! 하며 자신의 사진을 나에게 보여줘 버린다.
“왁스로 앞머리를 세워야겠네,”
“이 머리하고 프러포즈 하면 이상할까요?”
“왜 이상해요, 민석…아, 시우민씨는 어떤 걸 해도 다 멋있어.”
“시우민이 불편하면 그냥 민석이라고 해요. 누나”
“에? 누나?”
“○○ 누나. ○○○ 누나, ○○이 누나-”
민석씨의 ‘누나’ 라는 소리에 또다시 두 볼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거울 속 나와 계속 눈을 맞추며 누나, 누나 거리는 민석씨에게 새삼 설렘이란 걸 또다시 느껴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남편 같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난 이미 유부녀이고,
아…. 나 혼자 너무 멀리 나와버렸나,
“음, 머리는 다 했다. 이리 와 봐요. 메이크업해줄게.”
“오늘도 음영 팍팍!”
“푸흐, 알겠어요.”
왁스를 묻혀 민석씨의 머리 이곳저곳을 만지다 보니 금세 머리를 다 했다. 왁스가 잔뜩 묻은 손을 수건에 대충 닦고선 민석씨를 반대쪽 의자에 앉혔다.
나 손 닦고 올 테니까 기다려요. 민석씨가 의자에 앉는 걸 본 후 곧바로 세면대로 향해 손을 닦곤 민석씨의 앞에 섰다.
머릿속에선 음영 팍팍, 다른 생각 다 집어치우고 음영 팍팍. 하며 잡생각을 치우려 애를 많이 쓴 것 같다.
파운데이션과 비비크림을 옅게 바르고선 섀도로 눈에 음영을, 섀딩으로 얼굴 전체에 윤곽과 음영을 넣었다.
“자, 이제 입술만 바르고 끝나요.”
“입술?”
“네, 스케줄 시간 늦었어요?”
“오늘 스케줄 없는데-”
“아, 그럼 오늘이 그 프러포즈?”
“네. 원장님 시간 있어요?”
“시간은 많죠,”
“그럼 나 좀 도와줘요.”
“음…. 그래요.”
브러쉬를 꺼내 들어 립 메이크업을 거의 다 끝내갈 즈음, 손가락에 립밤을 묻혀 입술에 가져다 댔다.
입술에 내 손이 닿자마자 쪽, 소리가 나게 손가락에 뽀뽀를 해버리는 민석씨.
뭐…. 이런 건 자주 있으니까. 하며 애써 웃어넘기곤 자신을 도와달라는 민석씨에게 알겠다고 하며 숙여있던 허리를 곧게 폈다.
“끝나면 전화해요. 데리러 올게.”
“응, 그래요.”
아침 일찍부터 와선 뭐 준비할 게 저리 많은지,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자마자 뭐에 쫒기는 사람처럼 바쁘게 숍을 나가버린다.
이제 한시름 놓고 쉬어도 되겠네, 원장실로 들어가 기지개를 한번 켜곤 그대로 책상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러던가 말던가,’ , ‘당연히 내가 원장님 좋아하니까 그렇죠.’ 눈을 감으니 크리스와 민석씨의 말과 행동이 눈앞에 선하다.
크리스는 이제 나에게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심한 반면, 민석씨는 아니었다.
나이 서른에 다른 남자한테 설레면 뭐하겠어…. 한숨을 깊게 내쉬고 쪽잠이라도 자자는 생각으로 눈을 더 세게 감아버렸다.
“원장님, 먼저 퇴근하세요.”
“어…. 그래.”
원장실에서 쪽잠을 자다가 손님이 와 머리를 하고, 다시 원장실에서 쪽잠을 자고. 몇 번을 반복 한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더욱 피곤한 몸 때문인지 직원이 먼저 퇴근하라며 날 부추겼고, 결국 옷을 갈아입곤 민석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민석씨?”
‘아, 누나! 지금 끝났어요? 빨리 나와. 나 앞이에요.’
“어?…. 네, 지금 나갈게요.”
몇 번의 통화음 이후 전화를 받아든 민석씨는 앞이라는 말을 끝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오늘 하는 프러포즈가 많이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봐선 꽤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겉옷을 여미고선 문을 열고 나오니 숍 앞에 민석씨의 차가 날 반기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아야 하나, 조수석에 앉아야 하나, 꽤 깊은 고민을 하다 결국 조수석에 앉아버렸다.
“나 여기 앉아도 되죠?”
“당연하지, 누나 좌석은 여기로 확정.”
“푸흐, 그게 뭐야. 빨리 가요. 내가 도와줄게.”
“그래요, 갑시다-”
조수석에 앉자마자 능글맞게 웃으며 이번 역시 날 웃겨주는 민석씨. 그런 민석씨에게 빨리 가자며 재촉하자 알겠다며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황이니만큼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야경을 즐기기로 했다.
남산 타워도 보이고, 63빌딩도 보이고. 어딜 그렇게 멀리 가는지 별의별 게 다 보인다. 한껏 야경을 즐기고 있을 때, 민석씨의 차가 주차장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레스토랑을 빌린 건가? 멋있네 이 사람.
“자, 팔짱 끼시죠 고객님.”
“응? 내가 왜 고객이야, 민석씨가 고객이지.”
“아니에요. 오늘은 누나가 나의 고객.”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에게 팔짱을 끼라고 강요하며 능글맞게 말을 걸어온다. 결국, 눈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껴버렸다.
팔짱을 낀 채 주차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민석씨는 21층을 누르고 씩 웃으며 나에게 스위트룸 키를 보여준다.
그 여자는 부럽네-. 스위트룸 키를 보여주는 민석씨에게 짧게 말을 하고선 팔짱을 조심스럽게 빼버렸다.
혹시나 민석씨가 프러포즈 하려는 그 여자 보면 곤란할 테니,
“팔짱은 왜 빼요. 손잡고 싶어서?”
“ㅇ,어? 아니, 그 여자가 보면 곤란하잖아요.”
“괜찮아요, 상관없어.”
“……….”
“들어갑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먼저 걸어 나오자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하는 민석씨. 당황한 채 말을 얼버무리자 스위트룸 문을 열고선 들어가자며 날 잡아끈다.
방 안으로 들어오니 현관 등이 켜지며 어두컴컴한 방 안을 밝히는듯했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벽을 짚으며 들어가자 민석씨가 먼저 들어가 불을 밝혀버린다.
“………. 이게, 어…. 그니까…. 이게 뭐예요?”
“누나, 나랑 연애할래요?”
“…난 유부녀에요.”
“그니까, 위험한 연해 한번 해보자고요.”
“……….”
“난 다 감당할 수 있는데?”
“난 아직 준비가….”
먼저 룸 안으로 들어간 민석씨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반지 케이스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이게 뭐냐며 묻는 나에게 대뜸 연애할래요? 하고 묻는다. 한 발자국 뒷걸음질을 치자 그는 나에게 한 걸음 다가오며 다 감당할 수 있는데? 하며 말한다.
또다시 뒷걸음질을 치며 대답하는 날 급기야 그 사람이 잡아버렸고, 어물쩍어물쩍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그 사람이 한숨을 한번 쉬곤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미 서로 관계가 소홀해진 건 맞잖아. 그쵸? 그리고 남편도 연애하던데. 누나도 그냥 나랑 해요.”
“……….”
“아, 몰라 계속 대답 안 하면 알겠다는 걸로 알게요.”
“도대체 왜 나 따위한테 그러는 거에요?”
“누나 따위라니. 누나는 내가 처음 숍 다닐 때부터 좋아했던 사람이야. 얼마나 멋있어,”
“나보다 멋있고 예쁜 여자 쌔고 쌨어.”
“싫어. 누나여야만 해요.”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민석씨에겐 미안하지만, 크리스에게 당신도 한번 당해봐. 하는 마음이 커서일지도 모르겠다.
꼭 나여야만 한다고 의견을 굳힌 민석씨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내 손에 반지 하나를 끼워주곤 그대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물을게요. 나랑 위험한 연애 할래요?”
“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정답.”
입을 잠시동안 맞췄다 떼어내고선 나에게 되묻는 민석씨.
그런 민석씨에게 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하고 말하며 목에 팔을 두르자 정답이라며 능글맞게 웃고선 천천히 날 침대로 이끌어버린다.
충동적인 나의 대답이 내 생활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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