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별을 해요. 나는 사랑을 할 겁니다
(BGM을 재생 해 주세요)
멀어지고 나서야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고, 놓치고 나서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떠한 변명도 없이 준희를 보내줬는데, 군데군데 의미를 부여하고 나서야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늦어버렸다. 준희는 떠났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려웠을까, 사랑한다는 고백은 서슴치 않게 했으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왜 묻지 않았을까.
이별을 결정하고 마지막을 준비하던 당신은 얼마나 혼자 아파했을까, 그 마음 앞에서 말갛게 웃어보이던 나는 왜 그렇게 미련했을까.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은 그저 무너지고 부서지는 시간들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였던 짧은 시간이 아주 천천히 찬찬히 무너지고 있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걸까, 시작부터 어긋난 만남이었기에 처음부터 우리는 어긋나 있었던 건 아닐까.
그 만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과 다를 수 있었을까,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을 이은 생각은 나만큼 당신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낳고,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당신이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은 금새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런 가정은 하고싶지 않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멀어졌어도, 떨어져 있어도 그 어긋난 시작 덕분에 당신을 만났으니, 당신과의 그 짧은 추억으로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 우리는 그렇게 라도 만났어야 했다.
- 재경그룹의 정재현 대표이사의 약혼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번의 결혼생활을 겪고 재혼인 만큼 최대한 언론의 노출을 줄이고 기자들 앞에서는 "사적인 영역이라 어떤 말도 하기 힘들다" 라고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는데요. 기업의 신뢰도와 투자가치가 좌우되는 중요사안인 만큼 재계의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 재계와 정계의 만남으로 큰 관심을 받았었던 차준희씨와의 결혼생활에 이어서 이번에는 재계와 재계의 만남입니다. 두사람이 국내 굴지의 재벌가 자제들인 만큼 결혼할 경우 보유 주식 및 자산 가치만 무려 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두 기업이 혼맥을 갖추면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혼인동맹으로 보는 시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준희와 다르게 재현은 아직도 세상의 관심 한가운데에 살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상이었고, 내쉬는 한숨도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빛도 의미가 주어지고 부풀려져 재현을 힘들게 했다.
집안의 압박이 있었고, 재현은 준희를 보낸 마음이 아물기도 전에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야 했다.
아직도 방문을 열면 준희가 있을 것 같고, 금방이라도 전화가 올것 같은데 남아서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건 오롯이 재현의 몫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그 어느 시간에도 준희는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도 전에 재현의 어머니는 서둘러 재계인사들을 만나고 그룹을 위해서 다음 며느리감을 찾아나섰다.
원래 그런 자리였다. 누군가를 사랑해서가 아닌 필요에 의해 이해관계에 얽혀 사랑까지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게 재현의 자리였다.
이렇게 까지 하셔야 겠냐는 말에 ,빨리 새사람을 들여야 기업이 안정이 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준희의 부재가 너무 크게 느껴질 때는, 이 악몽같은 일상을 더 이상 준희가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위안으로 삼으며 버텼다.
집중된 시선을 워낙 부담스러워 했던 준희가 이젠 편안한 곳에서 마음껏 웃고 행복해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길 그저 바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