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우리
w.1억
"남주혁한테도 그렇게 잘해주더니만.. 이번에도 그러냐?"
"남주혁한테는 편의점 음식이었지만, 선호씨는 직접! 싸다주는 거야."
"대단합니다요. 길열린."
"대단하지?"
"나 내일 백화점 갈 건데. 같이 갈래?"
"그래애."
"갔다와."
"응."
열린이 작게 춤까지추며 집에서 나가자, 혜선은 이 집에 들어와 살면서 처음 보는 밝은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길열린 너도 남주혁 참 빨리 잊었구나.
제 9화_
보고싶은 걸까
"한 10분 뒤에 잠깐 나올래요?"
- 그래요. 열린씨 볼 생각에 벌써부터 막 설레네.
"어휴.."
그와 통화를 하며 걷고있었을까.. 고갤 돌려보자 남주혁의 카페였다. 아, 지금쯤 점심 먹고있겠네.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 핸드폰을 끊고서 카톡을 확인하고 있었을까, 누군가와 부딪혀 손에 들린 핸드폰도, 도시락도 다 떨궈버렸다. 우선 부딪힌 사람의 얼굴을 먼저 확인해야겠단 생각에 고갤 들었다. 일부러 나한테 다가와 부딪힌 것 같았으니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
남주혁이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성들여 두시간 동안 싼 음식들이 바닥에 초라하게 널브러져있다. 그리고 넌.. 나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4년 전_
열린이의 생일이 다가왔고, 평소에 갖고싶어했던 지갑을 사기엔 돈이 모자라, 알바를 시작했다. 택배 일을 하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주혁은 많이 힘들어보였다. 새벽 5시에 나가는 주혁에 소리를 들은 열린이 깨서는 눈을 비비며 주혁에게 말한다.
"벌써 나가..?"
"응. 전화할게."
"5신데.."
"그러게 말이다. 내일까지만 고생하면 돼."
"그래애.. 잘 다녀와. 고생이다 진짜.."
신발을 신으며 주혁이 나가려고 했을까, 같이 일하던 친구가 여자친구가 싸 온 도시락을 먹던 게 떠올라서 멈춰서 열린이에게 말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나 도시락 싸주라."
"도시락?"
"응. 도시락."
"나 음식 엄청 못하는 거 알잖아.. 먹고 토할 걸.."
"그냥 주먹밥이라도?"
"편의점 거 사줄게. 그게 더 맛있겠다."
"그래. 뭐.. 그럼 나 간다."
주혁은 서운하지만, 졸린 듯 다시 눈을 감는 열린이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 했다.
주혁이 화가난듯 의자에 앉아서는 한숨을 내쉬자, 놀러온 동연이 눈치를 보다가 먼저 말을 건다.
"웬일로 점심시간에 손님이 없냐."
"걔가 도시락 싸주는 거 봤냐?"
"어?"
"길열린 말이야."
"어... 아니? 한 번도 못 봤지."
"진짜 웃기지않냐?"
"아니.. 왜..? 왜 그래. 설마 열린이가 그분한테 직접 도시락 싸줬어? 이야.. 길열린이? 대박.."
마치 동연이 자기를 놀리는 것만 같자, 주혁이 미친놈이- 하며 무섭게 쳐다봤고, 동연이 몰래 웃는다. 난 이 상황이 너무 재밌다.
"미안해요..."
겨우 멀쩡히 남은 거라곤 계란후라이와 소세지 반찬이 끝이었다. 괜히 울적해서 입술을 쭈욱- 내밀고있자니, 그가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저는 열린씨가 도시락 싸준 것도 좋은데. 열린씨 얼굴 보는 게 더 좋아요.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요. 열린씨 속상해 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안 좋은데."
"……."
"울적해하는 모습이 귀엽긴한데.. 이 모습 보려면 늘 울적해할 거니까. 패쓰.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너무 좋다."
그가 예쁘게 얘기 해주니까 우울한 것도 다 사라졌다. 난 맛있는 거 싸다주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잠깐만 기다려줄래요?"
"왜요?"
"제 비서가 데려다줄 거예요."
"네? 왜 비서분이 데려다줘요.. 안 그래도 돼요! 어유.. 싫어요..! 불편해요.."
"이 친구가 항상 놀고먹게만 해줬더니 일 좀 제발 시켜달라고 막 따졌다니까요. 그냥 타요."
"…거짓말. 비서 괴롭히는 건 아니구요?"
"제가요? 아니 왜요? 할짓이 그렇게 없나?"
"그렇게 생겼잖아요."
"와.. 들켰네. 역시 관상은 과학인가."
"한 번을 안 져요 아주 그냥."
손을 잡고서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있었을까? 정장을 입은 비서분이 선호씨 옆에 서서 나에게 목례를 했다.
"……."
되게.. 생긴 게 다들 이쪽이랑 안 어울리네. 비서..라고 하기엔 너무 잘놀게 생겼어.
선호씨의 차에 탔고, 문을 열어준대로 뒷좌석에 타게 됐다. 와.. 조수석에 탔으면 엄청 어색했겠다. 지금도 이렇게 어색한데 말이야.. 차에서 내리자마자 '감사합니다'하고 웃으며 말해도, 비서는 말이 없었다. 뻘쭘하게 인사도 안 받아주네.. 쳇.. 무시를 일부러 하는 것 보다는..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냥.. 뭐랄까.. 황천길 배에 탔다가 '넌 아니야 내려'해서 내린 기분이랄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요가를 하고있는 언니 옆에 앉아서는 아까 있었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자식 일부러 너 친 거 아니야?"
"그래. 그런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랬다니까.. 그리고 오늘 선호씨 비서분이 집앞까지 데려다줬는데.. 그 대표에 그 비서인가봐. 둘 다 잘생겼어."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궁금하네. 눈 높잖아, 너."
"그건 그렇지."
"아 맞다. 나 남주혁 카페 가야되는데. 같이 갈래?"
"어?"
"안 쓰는 포트기 준다길래."
"…아."
"떳떳해져. 불편하면 지는 거다."
"그래.. 뭐.. 나도 가져올 거 있었어."
솔직히 말해서 보기싫다. 근데 여기서 싫다고 피해버리면 정말로 지는 것 같아서. 아까 그 상황에서 아무말도 못 한 것도 짜증나죽겠는데.. 피하면 오늘 밤에 못 잘 것 같아서.
"포트기 망가져서 사기 귀찮았는데. 고맙다? 남주혁."
"어. 온 김에 길열린 네 물건 싹 다 가져가라."
어- 하고 고갤 끄덕였다. 저 포트기는.. 카페 처음 차릴 때 내가 사줬던 거였다. 그걸 언니한테 그냥 주다니.. 너도 참 진짜 대단하다. 그때 가져간다고 다 가져갔는데도 아직도 내 물건들이 남아있는 걸 보니 신기했다. 가방 안에 물건들을 하나씩 넣는데 속이 다 후련했다. 그래. 내 흔적들을 다 없애버려.
"피아노는 나중에 아빠 차 갖고와서 가져갈게."
"네 애인한테 부탁하면 되겠네."
"그래. 그래야겠다."
그럴 생각도 없는데. 그래야겠다고 대답을 한 내가 등신같았다. 어쩌려고 이래.. 어휴... 언니가 우리 사이에 껴서는 눈치만 보길래, 아무렇지도않게 웃어보였다. 일부러 나한테 저렇게 차갑게 말하는 거야 뭐야.
"주혁아! 치맥하러 가자!"
처음 들어보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덕에 남주혁을 보던 내 시선도, 나를 바라보던 언니의 시선도 모두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향했다.
"어.. 손님 계셨네.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희는 주혁이 친구예요. 혹시.. 애인분이신가?"
"아, 네."
애인이냐는 언니의 말에 여자는 참으로 예쁜 미소를 띄우고선 맞다고 대답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기가 죽었다. 남주혁은 나보다 예쁜 여자를 만나고있다. 여자는 나를 바라보더니 곧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는데 나도 모르게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해버렸다.
"네. 안녕하세요."
"뭐야 남주혁? 예쁜 친구분들 있다고 말 안 해줬잖아. 내가 예쁜 사람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뭐하러 말해. 일찍 왔네."
"응. 쇼핑 조금만 하고 왔어. 네 옷도 사왔지."
키도 크고, 날씬하고.. 예쁘고.. 돈도 많아보인다. 왜 이게 나를 기죽게하는 걸까. 정신을 차리려고 고갤 저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 거야.
"다음에 밥 한 번 먹어요. 주혁이가 예전엔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됐거든, 동연이한테 물어봐- 하며 남주혁이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나는 급히 가방을 닫고선 말한다.
"우리 가볼게."
다음날 혜선은 일어나자마자 열린이 데이트하러 나가서 없자, 심심한 듯 백화점에 간다. 혹시라도 그때 그 싸가지를 볼까 싶어서 계속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 남자는 없다. 구경을 하고선 집에 가야겠다 생각하고선 백화점에서 나왔을까. 뒤에서 자꾸만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았고, 혜선은 그때 그 남자일 거라고 예상을 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내 번호가 갖고싶은 거겠지.
"이번엔 또 뭐예요?"
정말로 그 남자였다. 혜선이 예상했다는 듯 웃자, 남자가 말하길.
"그쪽은 그쪽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 같고, 제일 잘난 것 같아요?"
"에?"
"……."
"어.. 여봐. 나랑 핸드폰 케이스도 똑같네. 스토커야?"
"그쪽 핸드폰인데요."
"응?"
"핸드폰을 주워줘도 스토커 소리나 듣고."
"……."
"안 받아요?"
받아요- 하며 혜선이 핸드폰을 가져가자, 도혼이 무심하게 뒤돌아 걸으며 말한다.
"그쪽 번호 따일 만큼 예쁜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저기요. 뭐라구요??"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열린씨 일이면 저한테도 중요해요."
"피곤할텐데.. 먼저 가세요!"
"기다릴게요. 어두운데 혼자 버스타고 가면 위험해."
"뭐가 위험해요. 아직 7시도 안 됐구만."
"어우 완전 위험해."
"참나..."
"나 신경쓰지 말고, 맘 편히 갔다와요."
"네에."
아빠의 상태가 더 심해졌다고 했다. 갑자기 말도 잘 못 하고, 숨도 잘 못 쉰다는 말에 너무 걱정이 돼서 안 올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그에게 말했더니, 그는 나보다 더 걱정하는 표정을 하고선 바로 아빠에게 날 데려다주었다.
아빠는 안 본 사이에 살은 더 빠져있었고, 말 한마디 못 할 만큼 많이 아파하셨다.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를 바라보자,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마침 엄마도 아빠의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고있는 것 같았다. 말은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바짝 마른 입술을 열어 목소리를 내었다.
"사위는..."
"사위?.."
"…주혁이."
"…무슨 사위야. 그냥.."
"……."
"안 왔어.."
남주혁은 엄마와 아빠에게 나에게 만큼 다정했고, 잘해줬었다. 오죽하면 나보다 더 자식같은 행동도 많이했었다.
"아빠는 주혁이가 그렇게 좋아?"
"좋지.."
"그레도 딸이 더 좋지?"
우리 아빠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나보다 남주혁이 더 보고싶을 것이다. 나를 사랑해준 남의 자식이 더 보고싶을 거야. 처음 남주혁을 봤을 때.. 그렇게 질투나서 말 한마디도 안 했던 사람이. 언제 저렇게 아빠한테 정이 들은 걸까.
"갈게. 엄마. 내일 또 올게."
"주혁이는."
"……"
"어떻게 얼굴 한 번을 안 비추니."
"엄마."
엄마는 아빠가 저렇게 누워있는 게 슬픈 거야, 남주혁이 오지 않아서 슬픈 거야.
"남주혁이랑 나.. 헤어졌고, 서로 애인도 있다구."
"……."
"걔는 나보다 훨씬 더 예쁘고, ,더 잘난 여자 만나고있어. 이제 그만 놔줘. 미련 버리라고."
"네가 싫대?"
"…어?"
"네가 왜 싫대."
"…10년 정도 만났으니까 싫을 때 됐지."
"네가 뭐가 모자라서 싫대."
"서로 안 맞아서 헤어진 거야."
"가."
"……."
"꼴보기 싫어."
엄마는 괜히 나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런 엄마에게 이제 뭐라고 할 힘도 없어서, 바로 뒤돌아 엄마를 피해 걸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난 오히려 이럴 때.. 위로해주면 더 슬프더라."
한참 차에서 가만히 있으니, 그가 내 눈치를 보고 말을 걸려고 하기에 바로 말을 가로 막았다. 그는 내 말대로 입을 열지 않았고,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상하게.. 왜 그가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슬플까. 위로받는 기분이야.
"열린씨."
"……."
"내가 열린씨 정말 많이 좋아한다고 늘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다 저한테 얘기해줘요. 열린씨에 대한 모든 일들은.. 다 공감하면서 지내고싶어요."
왜 이렇게 슬플까. 분명 나에게 그 어떤 위로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슬펐다.
"선호씨.. 진짜 고마워요. 나 요즘 선호씨 덕분에 행복하거든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마운데. 근데 왜 울지?"
"……."
"원래 열린씨는 고마우면 우나~?"
주혁은 성경과 밥을 먹고선 피곤한지 주차를 하고 엘레베이터를 탄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주혁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려고 했을까.. 옆 계단에 익숙한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있자, 놀란 듯 뒷걸음질을 친다.
"주혁아."
"…어머님."
"이렇게 찾아와서 미안해. 할 말도 있고.. 그래서 무턱대고 왔는데."
"…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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뗴이이잉 !! 여러분 즐추!~ 즐추보내라구우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