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우리
w.1억
제 13화_
또 다른 재회
"아버님 뵈러 오신 건가봐요. 근데 이 늦은 시간에.."
"……."
선호와 주혁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선호는 여전히 웃음기를 남긴 채로 주혁을 바라보았고, 주혁은 아무 표정도 없었다.
혹시라도 주혁이 미친 소리라도 할까 두려웠던 열린이 주혁을 보며 고개를 저었고, 주혁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 아프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돼서요. 올 시간이 없었어서.. 늦은 시간인 거 알지만.."
"그러시구나.. 근데 그때 술집에서 말고 몇 번 봤던 것 같은데. 그게 카페였더라구요. 너무 늦게 알아봤네요."
"아, 네."
"김선호입니다. 나중에 술 한잔해요. 열린씨에 대해서 잘 아실테니까. 궁금한 거 물어봐도 되죠?"
선호가 주혁에게 악수를 건넸고, 주혁이 '남주혁입니다'하며 어색하게 악수를 한다. 손을 놓은 주혁은 아무런 인사도 없이 매정하게 선호를 지나쳐갔고, 열린이 머쓱한 듯 웃어보였다.
"원래 저런 애는 아닌데.."
"괜찮아요."
주혁이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다가도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손이 왜 이렇게 떨려오는 건지.
"멍청한 새끼.. 10년이나 만난 전애인하나테 뭘 물어본다는 거야."
길열린 옆에 있는 사람이 또 너무 착해보여서, 너무 따뜻해 보여서 그게 너무 화가났다. 나와는 다른.. 나와 비슷한 모습 하나 없는 사람과 만나는 네가 밉기도 했다. 그리고 욕심이 났다. 다시 너와 함께 있고싶다는 생각이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안 가고 계속 이러고 있어도 돼요? 출근은 어쩌구요.."
"출근은 조금 늦게하면 되죠?"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미안하게.."
"제가 좋아서 있겠다는데 뭐가 미안해요."
"……."
"그나저나 주혁씨랑 많이 친했나봐요. 아버님 뵈러 오신 거 보면.."
"네.. 조금.."
"좋은분인가봐요. 친구 부모님 걱정돼서 병문안도 오고.. 요즘 그 카페 잘 못 갔었는데. 자주 가야겠네요."
"가지 마요."
"네?"
"안 가면 안 돼요..?"
내 말에 놀란 듯 그가 두눈을 크게 뜨고선 날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니.. 그가 손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바로 내 얼굴으르 확인한다. 분명 가지 ㅁ라라는 내 말이 궁금할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내게 말한다.
"그래요. 열린씨가 싫어하는 짓은 절대 안 해요."
"……."
"나 내일도 밤에 와도 되죠?"
"에? 왜요오."
"열린씨 밤에 심심하니까. 놀아주러?"
"안 돼요."
"와 너무하네."
"피곤하니까 안 된다고 하는 거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몰라요?"
"몰라요."
"바보."
그가 바보- 하면서 자기가 더 바보처럼 웃었고,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남주혁 걔는 왜 온 거야. 왜 하필이면.. 병원에.
다음날 열린이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간 사이에 어머니가 잠깐 병실에서 나오자 마주친 간호사가 보기좋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어머니도 인사를 건네며 지나치려고 했을까.
"어제 새벽에 열린씨 애인분 봤는데. 엄청 잘생기셨던데요? 열린씨한테 엄청 잘해주기도하고.. 한눈에 딱 보이더라니까요?"
"…그래요?"
"네. 다들 부러워해요. 저희들한테 먹을 거랑, 건강식품 주면서 아버님 잘 부탁드린다고 그러구요."
"……."
그 다음말에는 아무 대꾸도 해주지않고 대충 웃어주고선 등을 돌린 어머니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아주 쌍으로 놀러와서 정신을 쏙 빼놓네."
"야! 나는 그렇다쳐도 성경 누나한테 쌍이 뭐냐!?어휴유."
"주혁이 말은 다 옳아. 아, 맞다. 곽동연! 너 졸업앨범 챙겨왔댔지? 얼른 보여줘."
동연이 졸업앨범을 보여주자, 성경이 신나서 졸업앨범을 펼쳐보았다.
"여기! 남주혁!"
동연이 주혁의 고등학생때 시절 모습을 보여주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이 새끼 이때는 그래도 덜 잘생겼었다니까?
"이 친구는? 그때 왔었던 친구인데."
"길열린? 얘는 우리랑 제일 친한 여사친. 예쁘기는 해도.. 성격이 장난이 아니라서.. 어우.."
"…그러게 예쁘다."
"…그..치?"
뒤늦게 동연이 주혁의 눈치를 보았다. 뭐... 누나는 알지도 못 하는데 뭐 어때!... 성경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한장씩 넘기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주혁은 둘이 뭘 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오롯이 어제밤에 만난 선호만 떠오를 뿐이다. 부모님 뵐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그럼.. 잤겠네.
"열린씨!"
간호사의 조용한 목소리에 열린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가도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얼른 나와봐요. 로비에 애인분 있던데."
"에?!"
열린이 어머니에게 '갔다올게'하고선 병실에서 나왔다. 로비에 도착한 열린이는 로비에 쫙 깔린 상자들에 한 번 놀라고, 상자를 들고 로비로 들어오는 선호에 두 번 놀란다. '선호씨!?' 열린이의 목소리에 선호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선 놀라 열린을 본다.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내서 온 거예요. 이건 환자분들한테 다 돌리려구요."
"네? 아니.. 뭐하러 이렇게까지..!"
"도와줄 거 아니면 옆으로 가주시죠. 휙 휙.."
선호가 손으로 가라는 듯 휘이- 젓자, 열린이 뻘쭘한 듯 옆으로 피해주었고.. 선호가 밖에있는 몇개 안 남은 상자들을 옮기고나서야 숨을 겨우 돌리며 열린이에게 말한다.
"옆 병동은 다 돌렸고, 여기만 돌리면 돼서.. 다 돌리고 열린씨한테 연락하려고 했는데. 열린씨가 다 망쳤네."
"…진짜."
"아우 힘들다. 안아줄래요? 아, 안 되겠다. 땀나서."
"참나..."
열린이 웃으며 선호를 안아주었고, 오히려 선호가 열린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고생한 건 본인이면서.. 참. 한참 안고있었을까.. 갑작스런 열린이의 어머니 등장에 열린이 놀라서 선호를 놓아주었다. 선호가 왜 그러냐며 뒤를 돌아보면...
"안녕하ㅅ.."
"그쪽."
"……."
"내 딸이랑 결혼할 거예요?"
"……."
"결혼할 생각이 있냐구요."
"네. 당연하죠."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대답하는 선호의 모습에 당황한 건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 열린도 놀라서 선호를 바라보았을까.
"나는 그쪽한테 우리딸 시집 안 보내요. 뭐하는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딸 안 보내."
"엄마 왜 그래 진짜..!"
"나한테 잘보이고 싶어서 이런짓 하는 건지는 몰라도. 다신 안 그랬음 좋겠네."
자신에게 왜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는지 선호가 당황한 것 같다가도, 열린이 자신의 눈치를 보면.. 선호가 열린을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어머님 심정 이해해요. 하나뿐인 딸인데 진짜 뭐하는 놈인지도 모르는 놈한테 어떻게 시집을 보내요. 나같아도 그러겠네."
"……."
"어머님 걱정하시겠다. 들어가봐요. 내 걱정은 하지 말구요."
"…어떻게 그래요."
"제 말 들어요. 저도 시간 없어서 가봐야 돼요. 안 가면 혼내요~?"
"…진짜 미안해요."
"글쎄 그 싸가지가 애아빠인 거 있지? 나 진짜 놀랬잖아. 근데 날 또 어떻게 알고 납치를 했는지."
"그게 납치야? 누나가 취해서 쓰레기더미에서 자고있었다며? 그럼 그건 구출이지.. 나는 가끔보면 누나를 잘 모르겠더라.. 상황파악이 안 돼?"
"야 인마."
"내 말이 틀려?"
"잤겠지..?"
"쟨 왜 저래?"
혜선의 말에 동연이 옆자리에 앉아서는 혼잣말하는 주혁을 보고선 재밌는지 웃으며 혜선에게 말한다.
"몰라? 길열린이 애인이랑 잤겠지~~? 이러던데 아까부터?"
"안 잤겠냐."
주혁이 힘들어하는 게 마냥 웃기고 재밌는지 혜선이 꼴 좋다는 듯 웃으며 말하자, 주혁이 놀란 듯 눈이 커져서 혜선에게 말한다.
"잤다고??????"
"야 당연하지. 몇 번을 그 사람 집에서 잤는데. 왜? 화가 나~? 신경쓰이냐? 이제 열린이 인생도 피는데~ 뭐~ 네가 화나서 어쩌겠냐."
"어."
"뭐?"
"짜증나."
"……."
"그 남자랑 같이 있는 거. 죽도록 싫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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쨔쨔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