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박경"요즘들어 좀 이상하기는 했다.매일 이맘때쯤이면 항상 내옆자리에 쪼르르 앉아서 어제는 어쨌다,저쨌다 하면서 쫑알대던 녀석이
오늘따라 무슨일인지는 몰라도 김이 쪽빠진 콜라마냥 축 늘어져서 체육시간에도 혼자 벤치에 앉아있지를 않나 오늘은 말도 한마디 못했다.
니가 말안하면 나도말안할거다 뭐 어쨌거나 박경이 없으니까 오늘은 하루종일 자고 먹고 게임만해야지뭐
그래봤자 박경은 점심시간에 분명 내옆에와서 자기반찬 떠다주면서 다시 웃을텐데
"24번 읽어봐"
우지호가 점심을 먹고 잔뜩 부푼몸으로 밍기적거리며 일어났다.
또 모른다고 하려나 괜스레 너가 모른다고하며 내게 눈치를 주던 모습이자꾸만 생각나서 피식피식웃음이 나는걸 억지로 참았다.
우지호가 서툰 발음으로 일본어를 읽어나갔다.그래도 눈치는 있나보네
솔직히 눈치보면서 입모양으로 읊어주고 싶었는데 내가 있던 없던 정말 별 신경안쓰는구나
우지호는 항상 주변에 친구가 많았으니까 그런 우지호의 주변에 항상 멤돌던게 나였고 그걸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고 이지경이 된것도 결국 내선택이니까
박경 이 징한놈 도대체 뭐때문에 삐진거야 지금껏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는데
점심시간엔 나랑 아예 다른칸에 앉아 내가 제일싫어하는 김유권이랑 밥을 먹지를 않나나가지고 지금 놀리는것도아니고 몰래 담배핀거 걸렸나
그럴리가 없는데쪼잔한놈 별거 아니기만해봐 진짜 하루종일 롤할거니까 니가 롤할때마다 째려보게하는 그 욕 백번은 더해줄거다
]매일매일 팔걸이로쓰고 버스비 너가 다 내게해버릴거다 소심한 자식 남자면 남자답게 얘기하던가
이쯤되면 우지호의 눈치가 있는걸까 심각한 고민이 되기시작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요즘들어 머리하는데 시간도 두배는 더쓰고 렌즈도 끼기시작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가 나 팔걸이로 쓸때 온몸에 털이 쭈뼛쭈뼛서는 기분인데다가 이젠 우지호 조끼에서 나는 냄새만 맡아도 나도모르게
홱 뒤돌아서 너가 아닌지 확인하기 시작했고 롤할때 시끄럽게 뱉어내는 쌍시옷들어간 욕마저도 이젠
미친거지 그렇지 너랑 내가 안지는 벌써 10년은 더됬는데 정작 나는 이제 나는
"야 집에안가냐"
오늘 첫마디다 야 우지호 너이자식 겨우 얘한테 말걸까말까 그렇게 고민한거냐
요즘 박경이 예전같지않고 말수도 적어진데다가 자꾸 나를 떨어트리려한다해도 쟤랑 나랑은 그 뭐냐 그래 불알친구다
입을 우물쭈물거리면서 앞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집에가자는거야 말자는거야
박경이 뭐라하던지간에 그냥 평소대로 어깨에 손 딱올리고 집에 가면되는건데 왜이렇게 망설여지는지
됐다 됐어 말아라 말아 그냥 집에 갈란다 어차피 쟤또 나없으면 어두운거 싫다고 울고불고 집에 들어가지도 못할거다.
여차저차 버스에 타긴했는데 어두컴컴해서 왠지 또 집에 못들어갈것만같다.
그래도 우지호 옆에있으면 또 쩔쩔거리면서 어색함에 눈도 못마주칠거고 우지호는 왜그러냐면서 걱정한답시고 계속 얼굴들이밀텐데...!
그걸 어떻게 버텨 차라리 혼자 집에 가는게 낫겠다.바람이 이제 많이 차가울텐데 오늘 겉옷도 안입고 안추우려나
내가 얘 엄마도 아니고 에효..
언젠가부터 느꼈던건데 우지호를 내가 좋아하게된것같다 친구사이에 이런말하는게 나쁘고 이기적인거 알지만
이제는 숨겨지지않을만큼 좋아져버려서 더이상은 너의 주변에 빙빙멤돌다가는 친구사이만도 못한 사이가 될까봐
가로등이 없는 집앞길은 너무 어두웠다.한숨한번 크게쉬고 이제부터는 혼자 집에 갈줄도 알아야 하니까 무서워도 가방끈 깍 붙들고 눈 딱감고 걸었다. 무작정
"아......"
하긴 이렇게 안끈질기면 그건 우지호가 아니지
쟤좀봐 고집부리다 또 이렇게 다 넘어져서 다 까지고 결국엔 나보다 얘가 더 어린애같다니까
"나랑 얘기할거 있지?"
뭘 숨기길래 집에까지 혼자온건지 그게 궁금해서 겉옷도 안입은 나를 원망하며 계속 얘만 기다렸다.
진짜 별거 아니기만 해봐 확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