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소개팅
"야, 김남준 내일 소개팅 나간대."
남자들끼리의 단톡이 있는지 잠시 핸드폰을 두드리던 태형이가 말했다.
-알아.
아는 사실이라 단호하게 말한 것뿐인데
김태형은 김아미 냉정한 거 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금세 또 해사해져서 물어온다.
표정 변화가 참 풍부한 친구야.
"우리도 놀러 갈래? 질 수 없잖아."
-과제는 어쩌고?
"다음 주까진데 뭐! 하루만 놀자!"
나는 굉장히 탐탁치 않은 얼굴이었지만 어느 새 마음 속 아미는 말하고 있었다.
야, 레포트는 전날 하는 거인 거 몰라?
잘 알지.
.
.
.
결국, 다음 날 김태형과 약속을 잡았다.
또 봄이랍시고 여기저기서 행사를 하는 모양.
얜 어디서 그런 정보를 물어오는지. 나야 편해서 좋다만.
어, 그런데 김태형 옆에는 누구지?
멀리서 다가오는 김태형의 모습을 캐치할 수 있었는데, 그 옆에는 태형이보다 한 뼘 정도 작은 남자도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둘이 대화하면서 오는 거 보니까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주황 머리가 강렬한 그는 나를 보더니 먼저 꾸벅 인사했다. 덕분에 얼결에 나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박지민입니다. 태형이 친구예요."
-아, 저는 김아미요...
원체 낯을 많이 가리는 터라 김태형에게 눈짓으로 이게 무슨 짓이냐 물으니
태형이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친구가 많으면 즐겁잖아? 하는 얼굴로.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낯 가리는 내가 김태형과 친구를 먹을 수 있었던 건, 이 녀석의 미친듯한 친화력 때문이었다고.
김 스치면 인연...이 자식이....
지민 씨는 내 눈치를 보더니 슬쩍 말을 던졌다.
"아...저기, 제가 혹시 불편하시면..."
-아뇨!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아, 다행이다...표정이 별로 안 좋아보이셔서..."
김태형은 무슨 소리냐는 듯 지민 씨의 어깨를 쳤다.
넌씨눈 자식, 퉤.
유한 인상과 말투의 지민 씨는 착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김태형 친구니까 괜찮겠지 뭐.
동갑이라고 말 놓지 않겠냐는 지민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한결 더 나를 편하게 대해온다.
생각보다 훨씬 말을 잘 하는 사람이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거리를 다니며 간식거리를 사먹다가 돌연 김태형이 사색이 되어 멈춰섰다.
덕분에 나는 지민이와 눈을 맞추며 어깨를 으쓱였다.
-김태형, 왜 그러는데.
"아, 아. 어떡해. 야, 미안한데 난 가봐야겠다. 나 조별 모임 있는 거 완전 잊었어!"
뭐? 지금 간다고?;;;;
"어휴, 등신. 빨리 가 봐."
자, 잠깐만. 태형아. 그럼 나보고 뭐 어쩌라고-!
"미안, 미안. 김아미! 박지민이랑 둘이 놀아! 나 간다!"
김태형은 마지막 말을 남기곤 꽁지가 빠져라 내달렸다.
"그럼 갈까?"
-어? 어, 어...
내 걱정과는 달리 지민이가 말도 잘 걸어주고 해서 우리의 대화는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점점 편하게 말했던 것 같고.
다음 가기로 했던 장소는 커플들에게 유명하다는 소원 비는 벚꽃 나무였다.
꽃이 피기 전에 가서 소원을 빌면, 오래가게 해준다나 뭐라나.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을 골라 다녔더니 피곤했다.
지민이는 그런 나를 알아차리곤 먼저 카페에 들어가서 쉬었다 가자 권유했다.
아, 진짜 센스 넘치는 친구네.
"뭐 마실래?"
-난 그냥 아이스 초코.
"단 거 좋아해?ㅎㅎ"
-어. 초콜렛 좋아하거든....어?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김남준이다.
소개팅 장소가 여기였어?;;;
김남준도 멍청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둘의 얼굴은 거의 비슷할 거라 예상한다.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며 지민이와 이야기했다. 일부러 남준이에게 등을 지고 자리를 잡았다.
지민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집중이 잘 안 돼서 대답하느라 애를 먹었다.
"저기, 아미야. 아까부터 누가 너 자꾸 힐끔거리는데...너한테 관심 있나?"
-뭐?
지민이 말에 뒤를 돌아보다, 이 쪽을 힐끔거리는 김남준과 눈이 딱 마주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쟤는 왜 자꾸 쳐다보고 난리야!!
-...친구야.
"어, 진짜?"
지민이는 김남준이 신기했는지 연신 그 쪽을 힐끔거리며 내게 상황을 보고한다.
"야, 야. 네 친구 계속 나 째려 봐. 무서워..."
-원래 눈이 무서운 애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
도대체 김아미가 여기에 왜 있지? 그것도 처음 보는 놈이랑??
남준은 남준대로 멘붕이었다.
지루한 소개팅을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정호석 이 자식 때문에 몰래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다리가 달달 떨렸다.
되게 친해보이는데....김아미 친구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남준 오빠! 저랑 같이 가실래요? 인기 많은 데가 주변에 있다 해서."
나연이가 홍조를 띄우며 물어오는데, 정말 미안하지만 남준의 관심은 온통 뒤 쪽에 앉은 김아미였다.
돌겠네, 진짜.
그리고 주황 머리의 남자와 아미가 카페를 나가는 걸 보는 순간, 남준의 시선이 그들을 쫓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야, 미안한데 나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겠다. 미안!"
-
"아, 미안해. 그 커플 나무까지 보고 가야하는데..."
-아냐. 그냥 나 혼자 보고 가면 돼.
"정말 미안...다음에 또 같이 놀자. 재밌었어."
-응! 나도.
"우리 번호 교환할래?"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 나는 흔쾌히 지민이와 번호를 교환했다.
꽤나 죽이 잘 맞았던 것을 떠올리며 가는 지민이에게 손을 살래살래 흔들어 보였다.
자, 이제 그 나무만 보고 집에 가야지.
그런데 대뜸 내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야, 김아미!!! 허억-"
-어...남준아?
"아, 걸음 진짜 빠르네. 야, 아까 그 주황 머리는 누구야? 어?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아니, 그보다 너 지금 소개팅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야, 지금 소개팅이 중요하냐. 네 옆에 웬 놈이 있는-"
김남준은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혼자 구시렁대며 마른 세수를 하는데, 뭔가 굉장히 흥분한 것 같아 일단 진정시키기로 했다.
-숨 좀 골라;;; 주황 머리 말하는 거면, 태형이 친구야. 지민이라고.
"김태형은 뭐야?"
-김태형도 같이 있었어. 근데 갑자기 일 있다고 혼자만 쏙 빠져서 나랑 지민이랑 같이 놀았거든.
김태형이라는 말에 묘하게 안도했다가도 남준이는 금세 인상을 썼다.
"지민이? 꽤나 친해졌나보다."
-응. 애가 말도 잘 하고. 좀 맞는 구석이 있어서.
남준이는 내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보더니 이내 숨을 내쉬었다.
"얼굴보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네. 하, 난 또 설마했지..."
-뭐야ㅋㅋㅋ내 얼굴보면 뭐가 나와?
"당연하지. 너 본 게 몇 년인데. 아무튼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야?
"아냐. 그냥."
괜히 기분이 이상했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설마, 얘랑 내가 몇 년지긴데.
남준이도 대충 얼버무리기에 나도 그냥저냥 넘어갔다.
"근데 어디가려고 했냐?"
-커플 나무 보러.
"커플 나무?"
-응. 되게 예쁘대.
"아직 꽃 필 때 아니잖아?"
-몰라. 무슨 조형물 같은 게 있나 봐. 가볼래?
김남준 성격에 그런 걸 보러갈까? 싶다가도 난 묘하게 확신이 들었다.
뭔가 같이 가줄 것 같단 말이야.
그리고 잠깐 고민하던 김남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아, 잘 됐다. 나 혼자 심심할 뻔했어!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니 김남준도 같이 따라웃는다.
나는 김남준과 커플 나무를 보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나란히 걸었다.
물뿌 |
오늘은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냥 봐주시면 돼요!!! |
암호닉 |
퓨어 / 룬 / 빨강 / 민윤기
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