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씨는 의아했다. 황실과 인연이 깊은 무인 집안이라고는 하나, 이유도 없이 무턱대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라는 편지는 생애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나라의 황태자가. 전쟁이라기엔 주변이 매우 고요하고 기척 없는 편지였으며, 군사 요청이라기엔 자신의 ‘막내’ 아들만 부른 것이 이상했다. 편지 적힌 내용은 의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막내아들을 보내길 바라며 충분한 작별 인사를 할 것. 안 그래도 이상한 편지의 내용이라 또 다른 전갈이 온다면 상세한 언질이 있길 기대했지만 전갈을 전한 이가 말한 것은 그저 ‘오늘 매화궁으로 올 것’이었다. 전 씨는 이 중에서 ‘충분한 작별 인사’가 가장 신경 쓰였다.
“궐에 갈 준비는 마쳤느냐.”
“예, 아버지.”
“…왜 입궐 하는지 이유는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왜 네 형도 아닌 네가 선택 된 건지 모르겠구나.”
앞에 앉은 전 씨의 아들이 큼지막한 눈알을 도르륵 굴렸다. 자신도 모른다는 눈치였다. 무예 실력이라면 그의 형 또한 그와 견줄 만큼 대단했다.
“충분히 인사는 했느냐.”
“그런 듯 합니다.”
“…태자 저하께서 네가 급히 필요하신 모양이구나.”
태자 저하의 명을 잘 받들 거라. 선홍빛 도포를 걸친 전 씨의 아들이 제 아비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신신당부를 마음에 새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충분한 작별 인사’라 함은 누군가는 오랜 기간 동안 제 아들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전 씨는 황명에 따라 궐로 향해야만 하는 자신의 막내아들이 걱정스러웠다.
“대감마님, 궐에서 사람이 왔습니다요.”
“…가 보거라.”
핏기로 물든 고운 얼굴이 옆에 둔 장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가(家)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검 중 하나였다. 황실과 무인 집안으로써 인연을 맺었으니 그것이 필요할 것이라 여겨 아들의 손에 쥐여 준 것이었다. 제 아들이 밖으로 나간 마당이 고요했다. 전 씨는 궐의 사람들이 참 끝까지 기척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 씨의 아들이 손에 검을 꼭 쥐며 대문으로 향했다. 말 한 필과 한 명의 사람 뿐이었다. 열여덟의 소년에 불과한 그는 이러한 궐의 부름이 낯설기만 했다. 궐에서 보내진 사람은 그의 얼굴을 보곤 종이를 펼쳐들며 입을 열었다.
“전 가(家) 정국. 맞습니까?”
“…예.”
정국이 궐으로 향하는 말에 올라탔다. 가족과의 첫 이별이었다.
황녀(皇女)
一
“상대가 많이 늦는구나.”
태형이 고개를 든 채 눈을 굴려 궐의 접객실인 빈영전(賓寧殿)의 내부를 훑었다. 태형의 근처에 앉은 황제는 태형의 맞은 편 자리에 있어야 할 상대가 오지 않음을 탄식했지만 그 후의 별다른 말은 없었다.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태형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빈영전 안은 어떤 궁녀도, 내관도 두지 않은 태형과 황제, 단 둘이었다.
“그래, 이제 나이가 스물이라고?”
“…그러하옵니다, 폐하.”
나라의 하늘인 황제와 단 둘이 남게 되는 것은 태형의 예상에 전혀 없던 일이었다. 집안에서 혼사로 인해 입궐하는 일은 태형의 스무 해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니 예상할 리도 만무했다. 태형은 이럴 줄 알았다면 빈영전 앞까지라도 식을 데리고 올걸, 하는 후회를 했다. 황제는 태형이 입궐해 빈영전에 들었을 때 긴장을 풀라 일렀지만 태형은 그럴수록 몸을 더 빳빳하게 굳혔다. 그것은 한 시의 흐트러짐 없이 올곧은 모습이었다. 태형은 온 몸이 뻐근했다.
“…벌써 사법부 대사의 아들이 혼인할 나이가 됐다니, 시간이 참 빠르구나.”
“…….”
“우리 태자는 혼기가 돼도 비(妃)를 맞을 생각을 않는데 말이다.”
황제는 제 맏아들을 떠올리며 태형을 향해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태형은 꼭 말아 쥔 주먹을 무릎에 곱게 둔 채 황제의 웃음을 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태형의 입 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대사는 잘 지내는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황제가 말하는 ‘대사’는 태형의 아버지를 의미했다. 태형은 황제가 말을 붙일 때마다 비슷한 맥락의 형식적 대답만을 반복했다. 태형의 대답에 황제는 말했다. 안부 전해주게, 요새 통 사법부 인사들과 만날 일이 없구나. 태형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똑같은 대답을 했다. 빈영전(賓寧殿). 그것은 접객용 궁에 걸맞게 손님의 편안함을 뜻했지만 태형이 이곳에 들어와 줄곧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다과라도 들겠느냐.”
“…아, 아닙니다.”
“허면, 점심은 들었느냐.”
“그도 괜찮사옵니다, 폐하.”
무료함을 이기지 못한 황제가 생각한 방안이었다. 태형은 말을 더듬으며 황제에게 손사래를 쳤다. 태형의 거절에 황제는 말했다.
“황의 제안을 그리 자꾸 거절하는 것도 불충이다.”
황제는 태형의 대답을 묵살한 채 바깥에 있는 궁녀를 불러 다과를 내오라 명했다. 태형은 황제의 발언에 제 목소리를 삼킨 채 입술을 약하게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답답한 공기가 가득 맴돌았다. 황제는 빈영전에 든 지 반 시진*이 지났다 일렀다. 한 두 시진은 된 거 같았는데…. 태형은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 시진 : 시간이나 시각. 한 시진은 두 시간을 이름.
“헌데, 어찌 그대의 상대가 오지 않는 것이냐.”
“…자, 잘 모르겠사옵니다.”
“수학관(修學館) 장의 여식이니 황명을 어길 리가 없는데 말이다.”
황제는 몇 년 전 인사이동 당시 춘추관(春秋館)에서 수학관 장으로 관직을 옮겼던 윤 씨를 떠올렸다. 신하들은 입을 모아 그가 법 없이도 살만한 양반이라 말했다. 그런 그의 모범적인 여식이 늦는 일은 황제의 상식 범주에서는 없는 일이었다. 황제는 그가 명한 다과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정사가 시급했다. 태형은 제 눈동자를 굴렸다.
“…할 수 없구나. 오늘은 이만 파(破)하는 수밖에.”
오늘은 퇴궐토록 하라. 태형은 경직된 몸을 풀었다. 태형이 느끼기엔 두 시진 정도였지만 반 시진도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태형이 황제의 뒷모습을 보며 두 손을 모은 채 의자에서 일어섰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황제는 태형에게 말했다.
“…다과라도 들 거라.”
“괜찮사옵니다, 폐하.”
“과인이 그대를 헛걸음 하게 한 것이 미안하지 않느냐.”
태형은 두 눈을 깜빡였다. 적막이 두 사내의 사이를 물들였다. 태형은 입술을 축이며 처음으로 말을 이었다. 궐로의 헛걸음에 대한 보상이었다. 허면…,
…궐을 구경해도 됩니까?
“…황녀라니요.”
“말 그대로.”
정국이 점점 길어지는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된다고 치부시킬 만한 소식이라 여겼다. 정국이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떴다. 정국의 심경 변화에도 석진은 겨울의 햇살을 받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두 사내는 ‘도화궁(桃花宮)’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번 봄에 열여덟 번째 해를 보냈네.”
“…말이 안 되옵니다, 저하.”
정국이 석진과 벌어지는 격차를 줄이려 다시 걸음을 빨리했다. 정확하게 잘 알진 못했으나 정국은 군사 훈련과 관련된 기관에 지원 요청이 되는 등 자신의 손에 든 장검이 요긴하게 사용될 만한 곳에 자신이 투입될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입궐 후 매화궁에 도착해 석진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대궐에 숨겨진 여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국과 동갑인.
“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어째서입니까?”
정국이 물었다. 정국의 물음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했다. 어째서 황녀가 있음에도 그것을 묵인하고 백성을 속이셨습니까? 정국은 의외로 날카로웠다. 정국보다 조금 앞장선 석진은 정국을 돌아보며 온화하게 웃었다. 고운 눈이 반으로 접혔다.
“작별 인사를 충분히 하라 일렀는데.”
“…….”
“그리 했는가?”
정국이 본가에 있는 제 아버지에게 도착한 편지를 떠올렸다. 본인이 직접 읽지는 않았으나 제 아버지가 정국에게 편지의 내용을 일러 주었다. 작별 인사. 다시 본가에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지도 몰랐다. 표현이 서툰 정국은 제 어머니와 형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한 마디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자신의 형인 정현은 묵묵히 정국에게 잘 다녀오란 인사를 전했으며,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목적을 알 수 없는 궐의 부름에 정국의 어머니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리 했사옵니다, 저하.”
“무슨 의미인 지도 알았겠구나.”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어쩌면.”
단지 추측에 불과한 말이야. 너무 심려치 말게. 석진이 궐내의 담을 지나는 문을 넘으며 말을 덧붙였다. 도화궁 앞이었다.
“…이 궁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석진이 ‘桃花宮’이라는 석 자가 적힌 낡은 문패를 보며 정국에게 물었다. 궐에서 외관이 가장 낡은 궁이었다. 정국이 문패를 올려다보았다. 이유도 기재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 자신을 부른 것 하며, 이런 음침한 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묻는 것 하며…. 정국은 황태자가 하는 행동의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정국이 석진의 물음에 묵직하게 다물던 입을 열었다.
“쓰지 않는 궁처럼 보이옵니다.”
“……다행이구나.”
“…예? 무엇이…,”
“나는 이 도화궁을 보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구나.
정국의 시선이 낡은 궁에서 석진의 옆모습으로 옮겨졌다. 석진은 궁을 올려다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자신의 동생인 황녀가 거처하는 궁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궁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해 황제는 어린 황녀에게 도화궁을 거처로 삼을 것을 명했다. 석진은 자신의 동생에게 별 수 없이 이러한 곳에 밖에 두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고, 나라가 힘이 없어 없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미안했다. 정국은 물음 없는 호기심을 품었다.
“어째서 황녀를 숨겼냐고 물었느냐.”
“…….”
“내가 자네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네.”
“…….”
“그 아이를 숨기는 일.”
정국이 손에 쥔 칼집에 힘을 주었다. 표정엔 웃음기를 머금었지만 석진의 말투는 겨울의 한기처럼 냉랭했다.
“그 검 또한 언젠가 요긴하게 쓰이겠지.”
석진이 정국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정국은 자신이 태어나던 해에 현(現)황의 황후가 승하했으며, 동시에 황후가 잉태하던 아이 또한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기억했다. 정국이 어릴 적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정국은 은연중에 그리 숨겨진 황녀의 호위를 맡는 것, 그것을 업으로 삼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알았다. 이런 낡은 궁에 황녀가 거처하는 것 또한. 정국은 눈치가 빨랐다.
“있느냐.”
석진이 도화궁 내의 사람을 불렀다. 금방이라도 이 낡은 궁 안에서 자신의 열여덟 동생이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면 슬픈 얼굴을 하던 석진은 화색을 띄며 조그만 체구로 달려 나오는 동생을 안았다. 하루의 일과를 설명하는 동생의 이야기가 단순하기만 해 석진은 마음 한 켠이 불편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또한 석진의 하루 일과였으며, 마음의 평안이었다.
“…아무도 없는가.”
“…사람이 사는 궁이 맞사옵니까?”
정국이 석진에게 물었다. 없을 리가 없는데. 석진이 중얼거렸다. 도화궁은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