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_라미로아
-1-"오빠, 좋아해요."
"아- 정말? 미안한데 오빠가 여친이 있어."
따사로운 5월의 오후.
어김없이 후배 여학생에게 고백을 받는 남자.
다를것이 있다면, 아주 이례적으로 그가 여자를 찼다는 것.
"왠일이냐, 최승철."
"내가 뭘."
"니가 여자를 다 차고."
"얼굴 수준을 봐라. 나도 눈이 있거덩."
"하여간 못된 새끼."
승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못된 새끼라며 가벼운 욕을 건넨 지수가 팔꿈치로 승철의 팔을 툭 친다.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걷던 승철이 지수가 방심한 틈을 타 자신의 팔꿈치로 지수을 때려버린다.
그 둘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곧 싸움일 일어날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유치한 둘의 우정 확인법 되시겠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우정이 확인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수야, 나 심심해-."
"니 여친들 하고 놀아. 누구누구 정리 됐냐.”
"왜. 하나 가질래?"
"...내가 무슨말 할줄 알지?"
"엉. 못된 새끼."
승철은 지수가 재미 없는 녀석이라며 고개를 저어버렸다.
조금 유치할수도 있겠으나, 승철이 다니는 늘파란고에서 최승철은 꽤나 유명한 녀석이었다.
승철이 ’제우스’라고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혹시 그리스 신화를 읽어본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번개를 다루며 모든 신들의 아버지인 그의 모습을.
처음 그를 본 사람이라면 그의 별명이 왜 제우스인지 의아해 할 수 있다.
사실 큰눈에 잘생긴 소년 같기만한 최승철과 어떤 작품에서나 위엄있고 거대한 제우스의 모습을 보면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가끔 방학이 되면 노랗게 물들이는 그의 머리가 이유이기도 했고, 가장 큰 이유는-.
여자였다.
바람둥이- 라는 어감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녀석때문에 승철의 뒤에서 승철을 지칭하던 말이 비밀스럽게 제우스로 바뀐 것.
승철은 자신이 제우스가 된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소문이 퍼지는대로 가만 두었다.
제우스라는 어감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하게 그래버렸을지도 모른다.
“심심해. 여자 만나러 갈래?”
"어디로. 하긴 늘파란고 제우스가 어딜 가나."
“왜 너까지 나한테 제우스래.”
“여자 있으면서 맨날 바람피잖아.”
"난 바람 안펴. 잠깐 노는거지."
당당한 승철의 말에 지수이 헛웃음을 뱉었다.
승철의 별명이 ‘제우스’ 인데에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넌 본처가 있잖아.”
"본처?"
"그래. 본처. 제우스 본처 헤라처럼. 넌 윤서가 있잖아.”
"윤서."
작은 목소리로 윤서의 이름을 읊어보던 승철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지수의 어깨에 손을걸치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어디로 가냐는 지수의 말에 이쁜이들이랑 놀게- 라고 대답하는 승철의 말에 지수은 또 웃음을 흘려버린다.
이녀석은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릴까.
-2-
"남자 둘이서 무슨 카페야!"
"모르면 말을 마시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는 '쉿' 표시를 하던 승철이 카운터에서 보일듯 말듯한 자리에 앉아서는
주문을 해야한다며 알바생을 부른다. 여전히 탐탁치 않은 지수의 모습에 승철은 지수에게 살짝 윙크를 날리고는
윙크를 받은 지수에게 욕을 얻어먹기 바로 직전에 테이블에 도착한 알바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오던 욕을 눈치껏 집어 넣은 지수는 알바를 슬쩍 보고는 포기했다는 듯 시선을 돌려버렸고 승철은 제 멋대로
"아메리카노 두잔이요." 라고 말했다. 주문을 확인한 알바생이 자리를 떠나자 마자 궁시렁 대는 지수.
"니가 무슨 아메리카노야. 핫 초코나 먹어."
"어때? 이쁘지."
"뭐가."
"알바생말야. 딱 봐도 스물 초반? 그래도 이쁘지 않냐."
승철의 말에 지수는 슬쩍 보이는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방금 왔었던 알바생을 확인했다.
승철의 말대로 살짝 성숙한 그녀의 모습에 지수은 혀를 둘렀다.
"너무 누나잖아.”
"뭘 모르네. 누나가 진리거든."
"참나-. 취향존중 안해주냐. 난 나보다 나이 많으면 부담스러워서 싫어.”
"어린 애들이 성숙하면 안어울리고 그렇다고 귀엽다면 어린애인것 뿐이고,
연상이 성숙한건 당연하고 연상이 나한테 귀여운 순간-!
내 여자라는 거지."
요리조리 줄줄 읊어보이는 승철의 말에 지수은 오늘 하루종일 어이가 없을 지경이였다.
항상 이런 녀석이였는데 오늘따라 특히나도 더 녀석에게 적응을 할수가 없었다.
"우리보다 어린애들이 성숙해도 매력넘칠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난."
"맞아."
"뭐?"
"사실 이쁘면 장땡이야."
개구쟁이 처럼 웃어보인 승철이 자신의 테이블 쪽으로 아메리카노 두잔을 들고 다가오는 알바생을 보고
슬쩍 웃음을 거두었다. 아메리카노 두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맛있게 드세요.” 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승철이 그녀가 가지 못하게 붙잡는다.
"아, 저기요. 시럽 더 넣을수 있을까요. 친구가 잘 못먹어서."
작업을 거는데 자신을 사용하자 욱 한 지수가 아니라며 말을 꺼내려는 순간 승철이 그녀가 알아채지 못하게
눈짓으로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말은 또 잘듣는 지수가 입을 다물자 승철은 아무일도 없다는듯 여자를 바라본다.
"아, 시럽은 저쪽에 있는데. 셀프예요. 자유롭게 넣어드세요."
"아, 그렇구나. 고맙습니다. 아, 근데요. 제가 할말이 있는데..."
"꺼져버려! 이 개자식아!"
아주 자연스레 이어진 어떤 여자의 말에 승철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떤 여자가 이별선고를 저리도 거칠게 하는 것일까,
승철은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확인했다. 한 여자의 뒷모습과 당황한 표정이 가득한 한 남자가 보인다.
남자의 표정을 살피던 승철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여자 알바생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그녀는 카운터로 도망간 뒤.
"아 뭐야 정말-."
"헤어지나봐. 최승철 기술들어갔는데 미스나셨네요~.”
"놀리냐!"
"그나저나 저기 겁나 심각하다. 공공장소에서 왜 저런대."
잔뜩 짜증난 표정의 승철이 다시한번 헤어지는 연인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는 그렇게도 크게 소리 질렀으면서 이번엔 귀를 기울여야 조금이나마 그 둘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다.
"긴말 안할게. 꺼져."
"내가 미안해. 다신 바람 안필게."
"내가 널 또 어떻게 믿어. 됐어. 오늘 내가 커피값 낼거니까 넌 그냥 그대로 니 몸가지고 꺼져."
또박또박한 그녀의 말에 승철이 키득키득 웃는다.
그런 승철의 모습에 지수는 저런게 뭐가 좋냐며 묻자 승철은 "그냥 웃기잖아-."라고 흘려 말했다.
남자가 사라지고 한참동안이나 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는 승철의 귀에 들리도록 푹푹 한숨을 쉬어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지 가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곧 승철의 예상처럼 일어서는 그녀.
승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앞쪽으로 걸어나간다.
“야- 어디가!”
“저 누나가 오늘 내 작업 망쳤으니까 나 책임 져야지.”
승철은 지수에게 씩 웃어보이고는 의도적인데도 전혀 의도적이지 않은것 처럼 승철은 그녀와 살짝 부딪치고는 그녀의 일그러진 눈을 마주치고는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 실수예요."
"...괜찮아요."
“아.. 근데 뜬금없긴 한데, 혹시 여기 자주 오세요?"
“..아뇨. 별로 안와요. 이제."
"...이제?"
"봤죠? 저 헤어지는거."
그녀는 당당했다. 너무 당당해서 승철은 그녀에게 흥미가 생겼던것 같다.
다른 여자들은 질질 짜고 있을 시간에- 그녀는 감정을 다 정리해 버렸는지 담담하게 그녀보다 키가 큰 승철을 살짝 올려다 보며 말했다.
"그녀석이랑 자주 오던데라 이제 정떨어져서 못올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그럼 전 이만-."
"그럼 어디서 볼수 있을까요. 여기가 아니라면."
승철에게 등을지고 카운터 쪽으로 걸어가던 그녀가 승철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잔뜩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승철은 속으로 움찔해버린다.
"작업 걸어요? 저한테?"
"...그야-. 그쪽이 너무 맘에드니까."
"..."
"이름만 알려줄래요?"
"..."
"그리워하게."
승철의 능글 맞은 말에 그녀는 졌다는듯 "수영이요.강수영." 이라고 말하고는 카운터로 걸어갔다.
더이상 승철은 신경쓰기 싫다는 듯 계산을 마치고 뒤도 안돌아보고 카페를 나가버린다.
승철이 수영과 대화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만 보던 지수가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승철을 다급히 불렀다.
지수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지만 승철은 심드렁하게 지수의 앞자리에 앉는다.
“무슨 이야기 했어?”
"그냥 이름만 겨우 들었어."
"이름을 말해줘?"
"번호 물으려던걸 참았어. 방금 헤어졌다고 정색하더라."
"당연하지. 헤어진 여자한테 바로 작업들어가는 남자는 너 밖에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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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 실패? 너무 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