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_라미로아
-18-
"윤서한테 차였다고?"
"어. 뻥."
"100전 99승 1패."
윤서에게 차였다는 말을 들은 지수가 낄낄 웃으며 99승 1패라며 승철을 놀렸다. 사실은 사실이니 화도 낼수도 없고 승철은 이제 어쩔수 없지- 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승철의 표정을 보고 있던 지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무리 내 친구라지만 정말-.
"그래도 윤서는 좀 진지한가 싶었더니, 최승철 너답다."
"뭐가."
"너 답다고."
"칭찬인가-?"
지수의 진지한 말에 장난스럽게 받아치며 킬킬 웃던 승철은 문득 윤서와 헤어지던 그 날 마주쳤던 수영을 떠올렸다.
윤서가 말했던 버려지는 마음이 윤서에게서 오는 것인지 수영이에게서 오는 것인지 아직 헷갈렸지만- 굳이 따지자면 수영쪽인 것 같았다.
씁쓸해진 기분에 승철이 그럴줄 알았으면 고윤서 안지말걸- 하고 후회도 했다가 수영이한테도 차일까, 차라리 그럴바엔 홍지수가 놀리기 전에 먼저 찰까 고민도 잠시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자꾸만 앞으로 닥칠일들을 생각하기 싫어서 미루다가 아예 생각하지 않는 승철의 생각을 꿰뚫어 버린 지수가 승철은 아직 어린애라며 혀를 끌끌 차버렸다.
어느 카페.
잔뜩 울상이 된 그녀를 발견한 민정과 윤하가 무슨일이냐고 물어도 수영이는 대답이 없었다. 친구들이 최승철은 바람둥이야- 라고 말했을때 아니라고 승철을 믿는다고 말했던 본인이었다. 밤중에 딴여자랑 꼭 껴안고 있던게 승철이었다고- 차마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할수가 없었다.
승철과 헤어져야 할까.
라고 생각하자 머리는 지끈지끈 거렸고, 그냥 모른척 하기에도 마찬가지로 머리는 지끈 거렸다.
싫었다. 무엇보다 승철과 사귀기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바람둥이였기 때문에 바람 이라는 것에 대해서 더 날카로웠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누가 바람에 자비롭겠냐만은.
"강수영 표정 왜그러냐구!"
"..어?"
"얼씨구. 정신 어디다 두고 있는거야. 오랜만에 과제 생각없이 노는데! 표정이! 그게! 뭐야!"
"아..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니긴- 이라는 표정으로 민정이 분노의 커피 마시기를 하는 반면에 윤하는 수영이의 표정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지금의 생각을 간파당하는 것 같아 수영이 승철의 생각을 떨쳐내려고 하지만 아마 어디선가 돗자리를 깔 생각인지 윤하는 수영이의 머릿속을 간파해 버렸다.
"남친땜에 걱정있어?"
"....으..돗자리 깔아야겠다. 너."
"그럴줄 알았어. 무슨일이야."
차분한 윤하의 말에 수영이 조근조근 이야기를 시작하자, 커피를 폭풍 흡입하던 민정도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바람피지 않는 다던 그가 밤에 어떤 여자를 안고있었다-. 라는 짧은 말 한마디로도 민정과 윤하은 어떤일이 있었는지 대충 비디오가 그려지는것 같았다.
"그 여자가 누군데?"
"몰라."
"친동생 아니야?"
"당황하던걸. 아닐거야."
"어림짐작 하는건 좋지 않아. 물어봐. 그녀가 누구인지."
어른스러운 윤하의 말에 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민정도 우울한건 알겠지만 그건 내일 물어보고 오늘은 좀 신나게 놀자며 칭얼댔고 수영도 애써 승철의 생각을 떨쳐내며 웃어보였다.
-19-
"누나 오늘 표정이 안좋다."
다음날이었다.
만나기로 한 날도 아니였고 평일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카페로 불러낸 수영이의 행동에 승철은 잔뜩 긴장할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 굳어버린 표정이라니…. 이미 깨져버린 믿음이겠지만 그래도 변명이라도 해볼까, 하고 승철은 먼저 입을 열었다.
"누나가 오늘 왜그러는지 알것 같아. 내가 다른 여자 안고 있어서 화난거지."
"..."
"내가 누나 사귀기 전에 사귀던애야. 그리고..."
"동생아니었어? 그랬구나."
수영이의 말에 승철은 속으로 아차-. 라고 외쳐버렸다.
요즘따라 왜이렇게 실수를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차가운 표정으로 동생 아니였느냐고 묻는 그녀의 말에 승철은 자신의 입을 당장이라도 때리고싶을 지경이였다.
"승철아."
“...."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난 싫어."
"...어?"
"헤어지자."
결국 입밖으로 나온 이별선고에 승철은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수영이는 조금이라도 그와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싶었다.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그 여자가 친동생이라거나- 그랬으면 좋겠다고 맘속으로 백번도 넘게 기도했다. 하지만 그가 먼저 내뱉어 버리는 모진 말에 수영이는 더이상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너도 똑같은 남자였다-.
"누나..."
"그만하자. 처음부터 너가 바람피고 있었다면 할말은 더 없어. 기억은 나니? 우리 첫 만남.”
이 자리가 너무나도 불편하다고 생각한 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얼굴이 새빨갛게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가지고 놀 수 있을까, 승철이 야속했다. 더이상 승철을 마주보고 앉아있을 수가 없던 수영이 가방을 챙기고 일어났다.
"오늘 커피 내가 사줄게. 그때 그녀석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수영이의 말에 승철은 수영이 전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를 떠올렸다.
당차게 커피는 자신이 사겠으니 그냥 눈앞에서 사라지라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이별 후 담담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딱 그꼴이었다. 승철이 바라지 않던 그 상황이었지만 승철은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 남자처럼 최승철은 오늘 차이고 말았다.
-.
몇일 째 가슴이 뻥- 하고 뚫려버린것 같았다.
수영이에게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고,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한대 맞은것 같은 기분이 영 좋지 않았던 승철은 지수에게 말을 걸었다. 솔직히 자존심 상해서 연속으로 또 차인건 지수에겐 바로 말하지 않았다. 몇일 내내 침울한 승철이었지만 지수는 그저 윤서와의 이별 후유증이 오래간다고 생각했을 거다.
“야. 나 커피 얻어먹었어. 수영 누나한테"
"염장 지르냐. 어쩌라고"
"차였어. 그때 그녀석처럼."
승철의 말이 충격적이였는지 지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최승철이 또 차였다고? 더 말이 없는 승철을 위해 먼저 지수는 말을 꺼냈다.
고3스럽지 않은 이야기 였지만.
"술사주랴."
"이래서 마시나.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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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
"난 이런 네 모습이 좋다. 최승철"
한참이나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지수가 승철을 보고 말했다. 이미 취할대로 취한 승철이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겨우 "왜-."라고 물었다. 승철의 머리를 손으로 마구 비비며 웃어보인 지수는 몰라서 묻냐며 키득거리지만 승철은 허공에 손을 저으며 모른다고 답한다.
"여자한테 차여서 술마셔 본적 있냐. 오늘말고."
“...없어."
“헤어지고 이렇게 힘든 적 있었어?”
"...없어."
"그럼 잡아. 수영누나.”
"...."
"너한테 그런 경험을 준 여자가 난 너무 고맙다."
고개를 겨우 들어 지수를 바라본 승철이 입모양으로 '진짜?'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지수를 바라보던 승철이 고개를 뒤로 젖혀 한숨을 내뱉는다. 한번도 겪어본 일이 아니라 너무 어려웠다.
"몰랐어. 이런 기분인지. 많이 이별해보고 많이 사귀어 봤지만. 오늘 처럼 이렇게 아쉽고 후회되는건 처음이야.”
"진짜 좋아해서 그래."
“이렇게 갑자기? 정말 특별한 거 하나 없었는데.”
“원래 사랑이 그렇게 온대. 진짜 사랑을 하게 된거야. 최승철 다컸다."
한번더 승철의 머리를 쓰다듬은 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와서 어딜가냐며 승철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지수는 안된다며 승철의 손을 뿌리친다.
"아 진짜 뭔데!"
"누나가 나 술마시는거 안좋아해."
"...아 뭐야, 너 누구 사귀냐."
"응. 수영 누나 친구. 그니까 빨리 수영누나랑 합쳐. 나 상황 애매하게 만들지 말고 새꺄."
"아옿......"
지수가 돈을 내고 가게를 나가버리자 혼자 남은 승철은 친구 다 필요 없다며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던 술친구들이 이상하게 얼굴조차 보기가 싫었다.
"아 그냥 집 갈렣.."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선 승철이 주인아저씨에게 안녕히 계세요, 라며 구십도로 허리를 꺽어 인사하고는 가게를 나왔다. 조금 비틀거리는 것이 충분히 승철에게도 느껴졌으나 찰나에도 승철은 수영이 보고싶다고 느꼈다. 취해서 그랬을까. 잠깐이라도 얼굴만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승철이 그녀의 집쪽으로 발길을 돌렸다.화내지는 않겠지- 하며 실실 웃던 승철이 핸드폰을 꺼내들어 수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수영이는 받지 않았고, 다시 걸어 볼까 하다가 승철은 그냥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걷고 걸어 도착한 그녀의 집 앞. 이번엔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라는 고민에 빠져버렸다. 초인종에 손을 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그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는 승철.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자신의 집으로 걸어오던 수영이는 자신의 집 앞에 서 있는 승철을 발견했다. 수영이는 승철을 보고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가 다시 돌아가기를 멍하니 기다릴수도 없었기에 집으로 다가가다가 괜시리 이야기가 길어지면 마음이 약해질까 다시 뒤 돌아 버린다.
"...강수영"
“..”
"강수영?"
다시 돌아가버리려던 그녀의 발걸음을 묶은 것은 승철의 목소리였다.
하필 뒤돌아 가버리려던 순간 그가 수영을 발견할 줄이야. 다시 승철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다가 포기한 수영이 집과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들리는 그의 목소리.
"가지마..."
".."
"강수영 가지마"
그의 목소리가 끊겼으나 수영이는 뒤를 돌아 볼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그와 눈을 마주치면 맘이 약해질까 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그저 두 눈만 꼭 감고 서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그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면 갔는지 안갔는지 알수라도 있을텐데- 라고 생각이 들때즈음 알싸하게 코끝을 찌르는 알콜향이 뒤쪽에서 수영을 감싸안아왔다.
"가지 말라고 강수영."
"...최승철..."
"나, 진심인데.”
"..."
“니가 제일 좋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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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넘나 집앞을 자주 나돌아다니는것 같지만 기분 탓입니다.
헤어지자마자 재회하는 것 같지만 기분 탓입니다.
그나저나 승철이 자꾸 누나 이름으로 부르면 안돼. 누나 심장 조지면 안돼.
아주 잘하면 다음편에 완결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팅해주시는 분들 기프티콘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규칙에 걸리나여? (나대는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