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권순영] 메두사
w. 뿌존뿌존
그 애는 다른 애들과는 항상 달랐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히히덕거리며 야한 잡지를 보거나 게임따위를 하고 있을때도
그 아이는 짐짓 한심하다는 눈길을 보내며 먼 창밖을 응시하곤했다.
물론 그 애가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거나, 성격이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아이들과 가치관이 많이, 좀 많이 다른 것 뿐이었다.
그게 권순영이 왕따를 당한 이유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권순영이 왕따를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아이는 아니였는데,
권순영은 아이들이 자신의 교과서를 모두 찢어 쓰레기통에 버려버렸을때도,
아이들이 자신에게만 이동수업인걸 알려주지 않고 이동을 해버려도
권순영은 그저 묵묵히.
나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그리고 내가 권순영과 같은 반이 되었던 그 해는
권순영을 향한 아이들의 괴롭힘이 최고조에 이를 때였다.
아이들은 권순영에게 조롱과 비난이 담긴 말들을 서슴없이 뱉었고,
그럼 권순영은 입술을 꾹, 하고 깨물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야, 권순영이랑 눈 마주쳐본 사람 있음?"
"없을걸?"
"왜 애들이 눈 안 마주치는 줄 알아?"
"왜?"
"걔랑 눈 마주치면 귀신 쓰인데!"
"진짜?"
지금 생각해도 사뭇 어이 없는 그 소문이 전교에 돌기 시작했다.
일진에 붙어 빌빌거리던 아이들은 그 소문을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진들이 무서워 그 소문을 믿는척 해, 권순영은 철저한 혼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권순영과 같은 반이었던지라, 그 애가 몹시 불쌍하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나라면 저렇게 참지 않을텐데.
그리고 어느 날, 내 짝인 남자아이와 그의 여자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솔직히 쟤랑 눈 마주치면 귀신 씐다는거 그거 개뻥아님??"
"야, 일진들이 말 험하게 하는거야. 그런걸 왜 믿냐?"
"야, 김세봉. 조용히 말해, 다 들리겠다"
"근데 궁금하긴 하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다른 남자아이들에게 선동당해
이미 권순영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일진무리가 우리반으로 설렁설렁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아마 내 목소리를 들었기때문이겠지.
"야, 너 귀신 씌여본적 있냐?"
"......아니?"
"귀신 무서워?"
"아니"
난 나름 일진에게 무시당하지 않고싶었고,
권순영을 지켜, 야한다는 이상한 사명감까지 들기에 이르렀다.
"그럼 쟤랑 눈 마주치고 와봐."
그들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는 내 마음에 불을 붙혔고,
조금 무서웠지만, 난 권순영의 앞자리로 향했다.
내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건지 권순영은 읽고있던 책을 덮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안녕?"
권순영의 앞자리에 앉아 저렇게 묻자, 권순영이 감고있던 눈을 느릿하게 떴다.
권순영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권순영의 눈은 까맣고도 깊었다.
귀신에 씌이긴 커녕, 눈에 빨려들어갈것만 같았다.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일진들에게 말했다.
"나 귀신 안 씌였는데?"
+
일진들은 생각보다 훨씬 약은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모멸감이 불만이었는지,
쉬는 시간 이후 내 친구들에게 모두 나와 놀지 말라 협박아닌 협박을 했고,
나는 반에서, 전교에서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비가 매우 많이 왔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우산을 빌리고자 친구에게 다가갔다.
그 친구는 권순영의 앞자리였는데, 내가 친구의 옆에 서자마자,
권순영은 가방을 메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는 그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저기 영희야..!"
"..........응?"
"혹시 나랑 우산 같이 쓸래? 내가 우산이 없어서 그ㄹ......"
"미안, 나 학원 빨리 가봐야해"
그리고 영희가 가방을 들고 내 앞을 스쳐지나가버렸을때,
그런 영희의 가방에 학원교재는 커녕, 갈아입을 옷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난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었다.
나는 미련하게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장마가 시작되어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창문을 때려대며 내렸다.
교실에 혼자 남아있었던 그 긴 시간,
갑자기 천둥이 치며 학교 전체가 정전이 되어버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 의자에 몸을 말고 앉아 훌쩍거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목욕했으면 됬을텐데 말이다.
그때 갑자기 복도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뒷문이 거칠게 열렸다.
"너 아직 집에 안갔냐?"
그게 내가 두번째로 들었던 권순영의 목소리였다.
물론, 처음보단 훨씬 높고, 힘들어보이는 목소리였지만.
내가 훌쩍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권순영이 머리를 거칠게 헤집으며 다시 말했다.
"니가 뭔데 날 도와. 넌 그냥.....
됬다, 집에 가자"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권순영은 밖으로 나가 날 기다렸다고 했다.
친구와 내가 집으로 향하면 그때 자기도 집으로 가려고.
하지만 그걸 몰랐던 그땐, 권순영의 말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뭐? 난 너 도우면 안돼?"
".......집에 가자 김세봉"
"야, 너 바보지? 싫으면 싫다고 해!
때리고 싶음 때리라고!"
그땐 권순영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난 그저 내 마음이 가는데로 널 도왔는데,
착한 일을 했는데 왜 내 주변엔 아무도 남지 않은거지?
"지금 내가 널 도왔잖아."
그리고 권순영의 그 말은 내 머릿속에 종을 울렸다.
+
권순영과 함께 하는 하굣길을 꽤나 즐거웠다.
권순영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아이였고,
생각처럼 속이 깊은 아이였다.
권순영과 친구가 되고, 난 어쩌면 왕따를 당한게 잘 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하곤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야, 너 대학가면 나 안 볼거야?"
"봐야지. 니가 나한테 어떤 존잰데"
"못 보면 너무 속상할거야"
"연락 자주 해"
"그럼"
그리고, 권순영의 부재는 생각보다 컸다.
더 이상 날 보듬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울때면 늘 날 달래주던 부드러운 손길도 없었다.
난 생각했다.
권순영이 보고싶다, 고
권순영이 내 옆에만 붙어있으면 좋겠다, 라고
그리고 무작정 권순영에게 전화를 걸었던 그 날 밤,
"김세봉"
"응?"
"너 메두사가 무슨 뜻인지 알아?"
"몰라."
"지배하는 여자란 뜻이야. 이 메두사 같은 여자야.
날 그만 지배해"
그리고, 우리의 삶은,
우리가 다시 만난 그 하굣길의 가로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