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 평화
부승관 2학년
최한솔 2학년
채형원 3학년
임창균 3학년
메리골드 -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윤정한 3학년
권순영 3학년
김여주 2학년
이민혁 2학년
라벤더 - 정절
이지훈 3학년
전원우 3학년
이 찬 2학년
1월 22일|
승관) 나 진짜 약초학 외우다가 돌아가시는 거 아니야?
한솔) 다 외우고나 말해. 한페이지도 못넘겼으면서.
승관) 야. 다 외웠으면 이미 돌아갔겠지.
한솔) 다 외운 원우형 멀쩡히 살아있잖아.
승관) 넌 빠져.
여주가 밤에 숲을 찾은 것을 형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난 뒤, 여주가 한참 따가운 눈빛을 받는 시점이었다. 동시에 수업은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고, 지금은 모든 수업이 다 끝난 뒤 도서관에서 자습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승관이 약초학 책을 펼치 지 십분 채 되지 않아 책상 위로 엎어지자 한솔은 계산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승관의 심기를 건드렸다. 여주는 잠시 승관을 바라봤다가 다시 약초학 책을 내려다봤다. 여주도 승관과 같이 암기중이었다.
승관) 형은 좋겠다. 암기 잘해서.
원우) 잘 못해. 그냥 자주 봐서 그래.
승관) 그럼 부지런해서 좋겠다.
원우) ....그런가.
승관) 아 이걸 언제 다 외우냐고!
한솔) 그렇게 말할 시간에 외우겠다.
승관) 닥쳐 좀. ..넌 좀 어때?
여주) 응?
승관) 잘 외워져?
여주) 어려워. 근데 어쩔 수 없지.
승관) ...하. 하기싫어라.
승관이 다시 펜을 들었다. 빤히 글씨를 바라보곤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며 외우는 여주와는 달리 반복적으로 깜지쓰듯 써가며 외우는게 승관의 타입이었다. 한창 또 시간이 흐르고, 하루의 끝자락이 다 되어갈 때 쯤 가장 먼저 일어난 건 한솔이었다. 산술학 모임 친구들끼리 야식 약속 겸 만담이 있다고 이른 한솔은 가볍게 인사를 건네곤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승관은 제 약초학 페이지를 바라보다 다시 여주를 바라봤다.
승관) ...여주야.
여주) 응?
승관) 얼마나 외웠어?
여주) 어... 두페이지??
승관) 좋겠다.
여주) 넌?
승관) 한페이지.
여주) 별로 차이 안나네 뭐.
승관) ...........
승관) 형.
원우) 응?
승관) 형은 무슨 공부해.
원우) 마법학.
승관) ...언제 끝나?
원우) 글쎄. 그냥 읽고 있는거라, 너희 일어나면 일어나려그랬지.
승관) ...그래.
다시 또 적막이 찾아왔다. 승관이의 사각거리는 펜소리와, 원우가 책을 넘기는 소리. 그리고 여주의 속삭임이 얹어졌다.
아이들이 도서관을 나온 건 기숙사 통금을 한시간 가량 남겨둔 시점이었다. 아이들이 거의 없는 복도를 거닐던 도중 천문학실에서 나오던 정한과 마주쳤다.
정한) 너희 어디가?
원우) 도서관 갔다가 기숙사 가는 길. 넌?
정한) 난 도서관은 별로라, 여기서 공부했어. 셋만 있었어?
자연스레 정한이 합류했다.
원우) 한솔이도 있었는데, 사교모임 애들이랑 약속있다고 잠깐 갔어.
정한) 음-. 여주는 뭔 공부했어?
여주) 약초학이요.
정한) 아~ 약초학. 나 외우는 거 젬병이라 그 과목 진짜 힘들었었는데.
원우) 아 그 때 니가 제일 낮은 성적 받았다그랬던게 약초학이었나?
정한) 응. 겨우겨우해서 F는 면했었지.
승관) 와 그랬었어? 나 지금 완전 에프 뜨게 생겼어.
정한) 벌써?
승관) 내일 쪽지시험인데 개망했다니까.
정한) 아 맞다. 쪽지시험있었지 그 과목. 다섯번은 볼 걸? 거기에 중간 기말.
승관) 미쳐 돌아가는구나. 개망했네.
정한) 야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에프는 안떴어. 포기하지말고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외워봐.
승관) 그래야지...
정한) 여주는 암기 잘해?
여주) 아뇨, 저도 잘...
정한) 힘들겠네.
여주) 어쩔 수 없죠 뭐..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던 아이들이 중앙복도에 서서는 손을 붕붕 흔들며 각자 기숙사로 들어갔다. 같이 들어가던 여주와 정한 사이에 적막을 깬 건 정한이었다.
정한) 여주는 도서관에서 공부 잘 돼?
여주) ..그런 것 같아요. 딱히 엄청 조용하진 않으면서, 주변에 책도 많은게 시각적으로도 좋고..
정한) 음- 나는 도서관은 별로더라고. 사실 난 도서관엔 애들 만나러 가.
여주) 아-
정한) 뭔가... 공부를 해야하게 만드는 것 같달까. 좀 누워서도 보고싶고, 책상에 다리 올려서도 보고싶고 그런데. 그렇게 못하니까 난 웬만하면 천문학 실에서 공부해.
여주) 편하게 하는 걸 좋아하나보네요.
정한) 맞아. 몸도 마음도 편해야하는 스타일.
여주) ...순영 선배는요?
정한) 권순영?
여주의 질문에 순간 계단에 먼저 오르던 정한이 걸음을 멈춰 여주를 내려다봤다. 자연스레 여주의 걸음도 멈췄다.
정한) ...네가 물어보니까 생각해봤는데,
여주) ............
정한) 이상하네,
공부하는 걸 본 적이 없네.
1월 24일|
순영) 공부하냐?
정한) 보다시피. 뭔 일이야, 천문학 실엔?
순영) 빈종이 좀 가져가려고.
정한) ............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정규수업을 마친 정한은 잡다한 일까지 끝마치고 나서 간식을 챙겨들곤 천문학실에서 공부중이었다. 목소리를 내며 책을 읽던 정한의 소리를 끊은 건 순영의 등장이었고, 공동 서랍을 열어재낀 순영이 빈종이를 몇장 집어드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정한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순간 여주의 물음이 뇌리에 스치자 정한은 순영을 불렀다.
정한) 야.
순영) 왜.
정한) 너 어디서 공부하냐?
순영) ? 지금?
정한) 아니 평소에. 너 공부하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는데,
니 성적은 죄다 R이잖아.
정한의 질문에 순영은 잠시 정한을 바라보다 마저 종이를 챙기곤 서랍장을 닫았다. 몸을 완전히 정한에게 튼 순영이 눈을 맞췄다.
순영) 니가 그렇게 물어보니까,
정한) .............
순영) 이상하게,
정한) ?
순영)
말해주기가 시르네 ㅋ
순영이 천문학실을 나갔다.
형원) 학기 중엔 잘 안나와도 돼. 더군다나 적응하는 중이니까.
창균) 맞아.
여주) 네 괜찮아요.
카페에 손님이 더 들어오지 않는 시점, 형원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여주를 향해 말했다. 여주가 가볍게 웃어보이자 형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원) 무슨 과목이 제일 재밌어?
여주) ...음, 마법약이요.
형원) 아~ 실습하는게 재밌어서?
여주) 네. 이상하게 만들어져도 재밌고, 잘만들어지면 또 잘만들어지는대로 재밌고.
창균) 그럼 제일 싫은 건?
여주) 싫다기 보단, 약초학이 제일 힘들어요. 외우는 걸 잘 못해서.
창균) 아~ 그게 좀 외우기 어렵긴 해. 알파벳이 발음대로 읽히지도 않잖아.
형원) 맞아. 그래서 읽는 소리 따로 쓰는 글자 따로 뜻 따로해서 세번 외워야하잖아.
창균) 맞아.
여주) 그래서 좀 힘들죠. 머릿속에서 뭐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
딸랑-. 셋이 대화를 이어갈 때 쯤 카페 문이 열리자 다들 시선을 옮겼다. 익숙한 얼굴에 셋은 입가에 그렸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손님을 맞이했다.
순영) 자몽에이드 한 잔이랑, 음.... 치케? 아 초코? 아 씨,
형원) 고민이 많군요 손님.
순영) 예. 잠만요. 아 스콘?
창균) 고민 참 넓게 하네.
순영) 스콘, 어 초코스콘 주세영.
형원) 드시고가실건가?
순영) 아니 싸줘.
형원) 어디가서 먹게?
순영) 엉, 정원.
형원) 9펄이야.
형원의 말에 순영이 펄을 건네고, 금새 준비한 창균이 음료를 먼저 건넸다. 오븐에서 순영의 스콘이 데워지자 카페엔 순간 빵냄새가 가득 퍼졌다. 여주는 순영을 향해 물었다.
여주) 구 정원이요?
순영) 응.
여주) 음~
순영) 셋이 뭔 얘기하고 있었어?
창균) 여주 무슨 과목 제일 어렵냐고.
순영) 아~ 뭔데?
여주) 약초학이요. 외우는 걸 못해서.
순영) 난 산술점. 그거 남들은 쉽다는데 난 젬병이었어.
창균) 그건 나도.
형원) 난 여주가 좋다던 마법약. 자꾸 터져서 머리를 폭탄으로 만들었었거든.
여주) 아 진짜요? 머리 타는 애 아직 한 번 도 못봤는데.
형원) 곧 생길 거야. 한 반에 한 번 도 없던 적은 없었어.
순영) 맞아. 아 공부하기 싫다 정말. 물론 사교모임보단 좋지만.
여주) 아 근데,
띵-. 여주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오븐이 울리고, 여주는 뒤돌아 빵을 담았다. 종이백을 건네자 순영이 물었다.
순영) 무슨 말 하려그랬어?
여주) ..아, 까먹었네. 다음에 생각나면 말할게요. 별 거 아니었나봐요.
순영) 괜히 궁금해지네. 여주는 이따 기숙사에서 보고, 다들 빠이!
순영이 손을 붕붕 흔들며 사라지자 여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물어보려그랬더라.
1월 28일|
승관) 개망했어.
여주) ...........
원우) ....다음 시험 잘보면 되지. 쪽지시험 비중 별로 안크고, 아직 네 번이나 남았잖아.
승관) 맞아. 근데 진짜 억울해서그래. 다들 봤잖아. 나 개열심히 외운거!
근데 어떻게 빈종이만 보면 생각이 안나냐고 왜!
승관이 쪽지시험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더니 곧 몸을 일으켜 북- 북-! 찢어버렸다. 그러나 힘을 쓴 승관을 무시하듯, 종이는 챡 챡 챡 붙더니 원상복구되었다. 틀린 걸 다시 꼭 보라며, 마법을 걸어놓은 교수때문이었다. 붙여진 종이가 살랑살랑거리며 책상에 안착하자 승관은 붉게 물든 얼굴을 한 채 아오! 하곤 자리에 털썩 앉았다.
원우) ...걱정 마. 외운만큼 다음 번엔 잘볼거야. 그리고 쪽지시험에 냈던 거 중간 기말에도 나오니까 써먹을 수 있을거고.
승관) ...........
여주) ...........
승관) 넌 어땠어? 쉬웠어? 애들이 다 잘봤으면 진짜 개망하는건데..
죽상인 눈을 한 채 승관이 여주를 바라보고, 여주는 머쩍게 웃으며 눈을 맞췄다.
여주) 어려웠어.
승관) 진짜?
여주) 응. 어려운거 많이 내셨더라. 다들 못봤을거야. 상대평가니까 너무 기죽지마.
승관) ..그럼 다행이지. 진짜 제발! 제발 다들 망쳤어야해!
승관이 양 손을 모아 눈을 질끈 감았고, 원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승관의 앞에 앉아있던 여주는 자신이 엎어놓은 시험지를 슬며시 제 무릎으로 내렸다. 책상 밑에서 시험지를 곱게 접은 여주가 자신의 망토 안주머니에 종이를 넣었다.
똑, 똑.
정한) ...누구세요? 들어와.
기숙사 통금 30분도 안남은 시간이었다. 길어지는 공부에 정한은 여전히 천문학실이었고, 가야하는데, 가야하는데.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직 다 끝내지못한 책을 붙잡고 있던 정한은 곧 철컥, 하고 열리는 문을 바라봤다. 익숙하고도, 반가운 손님이었다.
여주) ...아직 있었네요?
정한) 응. 원래였음 갔을텐데, 좀 길어져서.
문을 조심스레 닫은 여주가 정한이 앉아있던 앞 소파에 앉았다. 정한이 읽고있던 책을 바라보던 여주가 정한을 향해 물었다.
여주) 우와. 엄청 어려운거네요?
정한) 그치. 아무래도 학년이 높으니까.
여주) 힘들겠다. 읽지도 못하겠어요 전.
정한)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어느순간 읽고있네.
근데 무슨 일이야?
정한의 물음에 여주는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던 행동을 멈추고, 다시 정한 쪽으로 책을 올바르게 돌린 뒤 손톱을 탁 탁 거렸다. 정한은 책을 덮곤 제 소파 옆에 내려놨다. 여주가 고개를 들어 정한의 시선을 맞췄다.
여주) 보여주고싶은게 있어서..
정한) 뭔데?
여주) ...........
뭐냐는 정한의 물음에 여주는 망토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어뒀던 시험지를 꺼내들었다. 접힌 상태 그대로를 정한에게 건넨 여주였고, 받아든 정한은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정한) ...오, 뭐야. 두개 틀렸어? 잘했네.
여주) ............
정한) 암기 못한다더니. 잘했다.
여주) ...고맙습니다.
정한) 근데 왜,
여주) ...아예 상관없는 사람한테 보여주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정한) ............
여주) ...노력해서 좋은점수 받았으니까 자랑은 하고싶고, 칭찬도 받고싶은데,
정한) ............
여주) ...속상해하는 친구 앞에서 이 얘기는 꺼내기 싫고, 같은 과목 배우는 다른 애들한테 말해봤자..관심도 없을 것 같고.
속상해하는 승관을 떠올리는 여주를 모르지 않았다. 상관없는 사람에게 보여주는게 좋을 것 같다는 말만 들었어도, 며칠전부터 약초학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승관을 봐왔던 정한이, 안그래도 눈치 빠른 정한이 모를 리 없었다. 여주의 말을 단박에 이해한듯 정한이 옅게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민과 생각이 곁든, 노력이 물든 여주의 시험지를 세심히 보던 정한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한) 잘했다 정말. 이거 엄청 외우기 힘든데.
여주) ...........
정한) 틀린 것도 딱, 누가봐도 틀리라고 낸 킬러 문제였네.
여주) ...........
정한) 진짜 잘했네.
정한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마치 자신이 받은 점수인 것 마냥 뿌듯해 하면서. 여주는 그 모습을 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여주) ...이럴 것 같아서.
정한) 응?
여주) 이렇게 기뻐해줄 것 같아서,
정한) ...........
여주) 내 일 마냥, 진심으로요.
정한) ...........
여주) 타인의 좋은 일을 진심으로 기뻐해준다는 거, 정말 힘든일이잖아요.
정한) ...........
여주) 근데, 이렇게 기뻐해줄 것 같아서,
정한) ...........
여주) 선배는 그럴 것 같아서.
그래서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