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아직 풀어나가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맴돈다. 별의 잔해 w. pattern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끈을 만져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끊어버리지 않는 이상 이 끈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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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시체들이 널려있다. 그 길을 걷는다. 동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조금 세지자, 종현은 자신의 한쪽 팔에 들린 노란 봉투를 더 꼭 붙잡았다. 뭐가 들었는지 봉투는 두툼하게 봉해져 있었다. 봉투의 겉면에는 약간 흘려쓴 듯 한 글씨체로 ‘무기 공방 No.2’ 이라고 적혀있었다. 종현은 길가에 널려있는 시체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저 꿋꿋한 발걸음만을 이어나갔다. 이 죽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나를 아는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이 아닐까? 사실 그 누구든 종현에게는 별로 큰 이슈거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발에 걸린 무언가에 잠시 멈칫하던 종현은 곧 다시금 이어지는 발걸음에 맞춰 작고 흐릿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일주일 전에 전투 준비 명령이 내려왔다. 아주 갑자기. 사실 이 전쟁이 별난 케이스인게,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좀비’ 라고 불리는 정체 모를 생물체들과의 전쟁이란다. 그러니까, 미드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그 썩어 문드러진 괴물들 말이다. 하지만 종현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방 사람들은 아직 그것들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근처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좀비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사람만 감염된다. 그러니까 다 죽어버리면 감염될 사람도 없고, 어차피 정부에서는 사람들을 살리는 것 보다 자기들 사는게 더 급급하니 다 죽이든 어쩌든 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걸로 따지면 할 일도 없어 심심하고 월급도 짜게 주는 이 공방이 제 목숨을 살린 것이나 다름 없다. 종현은 나름 행동 대장이라고 연구소에 몇 없는 총까지 쥐어줬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것도, 예방 차원이라기 보단 단순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다들 서로가 그 무거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으면서도 티는 내지 않았다. 그것은 암묵적인 룰이었고, 동시에 현실 도피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죽인거야. 절대로 내 목숨이 아까워서 그런게 아니고,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런 자기 합리화는 기본적인 인간의 심리이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내 탓이 아니다. 뭐 그런류의 것들 말이다.
사실 종현은 지구가 망하려나보다, 하는 정도의 태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살아가는 것이 즐거움과 행복의 연속이었다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 전쟁에 직접 참가하여 괴물들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해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종현의 목표였다. 그러는 편이 자살 따위의 멍청한 방법보다야 명예롭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 같았다. 하지만 종현에게 그런 삶을 살게 해준 장본인인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종현의 그런 명예로운 죽음을 탐탁치 않아했고 덕분에 종현은 늘 조용하고 심심한 무기 공방에서나 일을 하고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종현은 군사훈련을 받던 버릇이 아직 몸에 베어있었다. 그래서 방금도 자신을 노려보던 한 남자를 쏴버렸다. 이것도 여기 널브러져있는 시체들이 죽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예방 차원에서… 아니. 사실은 예방을 빙자한 살인. 예방을 빙자한 이기심.
그러게 노려보긴 왜 노려봐?
하여튼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던 종현의 눈에 한 여자가 들어왔다. 종현은 봉투를 든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눈에 힘을 주었다. 또 사람을 죽이기는 싫었다. 하지만 죽여야 했다. 그녀가 기세에 눌려서 도망가면 사는거고, 괜히 승부욕에 불타올라 맞붙으려 했다면 죽는거다. 종현의 발걸음이 한 발 한 발 그 여자에게 가까워질 수록 여자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종현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면 답은 한 가지였지, 아마. 종현의 손에 들린 총이 점점 상승한다. 그때 여자의 입이 열렸다.
“너, 네가 우리 남편을 죽였어?”
그녀의 쉬어버린 목소리가 종현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아하, 복수를 하려고 온 건가? 종현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그런 복수 받기엔 제가 좀 바쁘네요. 슬쩍 올라갔던 종현의 입꼬리가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음과 동시에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귀가 먹을 정도의 총성과 함께. 자신의 발 밑에 쓰러져버린 여자를 무표정하게 쳐다보던 종현은 자신의 가슴팍에 튄 그녀의 피를 털어냈다. 하지만 이미 자국이 나버린 터라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붙어 검은 옷에 붉은 장식을 남겼다. 명예롭게 죽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면, 살아 남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했다.
종현의 어깨에 고정된 검은 망토 자락이 바쁘게 걷고있는 종현의 종아리께까지 내려와 지면 위로 쌓여있는 건물 잔해들을 쓸어가며 약한 먼지바람을 일으켜냈다. 하지만 굳이 종현의 망토자락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바람에 먼지는 날리고 있었다. 그저 정면만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눈매를 빛내던 그의 발에 미처 발견 못한 작은 돌맹이 하나가 채여 저 멀리로 굴러갔다.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져 버린 돌맹이를 흘깃 쳐다본 종현은 곧 전쟁중이라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깔끔한 10층짜리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범한 건물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굳게 닫혀 여러가지 잠금장치로 보호받고 있는 철문에 작게 적혀있다. No.2.
종현은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소린 - 건반 위에 눈이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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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ㅎㅎ 패턴입니다. 여기에 이렇게 글을 적는건 처음이라 매우 떨리네요...ㄷㄷ 별의 잔해는 좀비물인데 사실 좀비의 비중이 큰 좀비물은 아니랍니다...그니까 막 탈출하고 생사를 다투고 그런게 많이 없을 거에요. 그 이유는 제가 곰손이라 그런 긴박한 장면을 못쓰기 때문이죠ㅋㅋㅋㅋ 많이 미숙하겠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문제시 둥글게 지적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