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거기' 혹은 '종점'들.
여기서 울지 말고 거기서 울어. 울다가 다시 와.
거기서 울고 여기서는 살아야지. 즐겁게, 유쾌하게 살아야지.
잘 지내나요, 내 인생/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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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물을 열자마자 무겁게 덮쳐오는 어둠백현이 거실로 걸어가 더듬더듬 불을 킨다백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소파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있는 경수였다그럴리가 없겠지만은, 경수의 시선과 백현의 시선이 얽혔다고 느껴지는 순간백현은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껴안고는가슴 속 응어리들을 토해낸다-------------------------------------------------그렇게 한참을 있었을까 귓가를 찢을듯 들려오는 큰 소리에백현은 거실로 뛰어 나간다산산조각이 나버린 꽃병그 앞 소파에 평온히도 앉아있는 경수백현의 독한 향수냄새가 경수의 코 끝에 닿았는지꽃병조각을 알지도 못하고 일어서려는 경수 앞으로백현이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는다
유리 조각들과 꽃을 가만히 바라보던 백현은허공을 더듬거리는 경수의 손을 붙잡은체날카로운 조각들 사이로 결국 무너져 내린다아아, 경수야니가 그리 소중히 여기며 어여뻐하던 꽃도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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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조각들을 백현이 치우는 동안 경수는 제법 강한 손아귀 힘으로백현의 옷자락을 꼬옥 잡은체 놓지 않는다백현이 경수를 안아들어 침대에 내려놓을 때에도경수에 손에서 백현의 옷자락이 놓아지는 일은 없었다경수는, 버려지지 않는 법을 알고있다-------------------------------------경수를 칩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백현은얌전히 놓여있는 경수의 이마위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경수의 눈두덩이 위에도 백현의 입술이 가볍게 내려앉는다백현은 경수에게서 빼앗은 세상을제 가슴 안에 꼭꼭 눌러담은체 살아간다매일 토해내면 토해낼수록부피를 더해만 가는 그 검은 응어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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