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 차이''
"……"
막상 소개를 받겠다고 했지만, 현재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 현재 내 머리속은 오로지 최승철과 그 옆에서 웃고 있던 이름 모를 여자만이 가득했다. 대체 왜? 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냥 기분이 이상했다. 승철이가 나 말고 다른 여자인 친구가 없는것도 아니였다. 워낙 사교성이 좋고, 잘 웃고, 친절하기까지 한데 누가 그를 마다하지 않겠는가, 갑작스럽게 요동치는 내 마음에 가장 답답한건 당사자인 나였다. 위잉-
"……"
벌써 10번째 가만히 울렸다 조용히 꺼지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할 말은 많지만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랬다. 계속해서 울렸다 꺼지는 핸드폰은 잊지말고 상기시키라는듯 너의 이름 세글자를 환하게 띄었다. 넌 15통을 끝으로, 그제서야 나를 향한 통화를 멈췄다. …받을 수 없었다. 고등학생때부터 쭉 붙어다녔던 우리 둘에게 붙어다니는 연상어는 '너네 왜 안사겨?' 였다. 듣자마자 코웃음을 치는 나를 바라보며 친구들은 그랬다. 두고 봐라, 너네 곧 있으면 사귈껄. 그때도 녀석은 그냥 사람 좋게 미소만 지었던것 같다. …아, 나 최승철 좋아하는구나. 암흑뿐이였던 전등이 켜지는 기분이였다. 타이밍 좋게 다시 한번 쥐고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너도 양반은 못되는구나. 하지만 받을 수 없었다. …내 입으로 우리사이의 촛불을 불어 끌 순 없었다.
"어제 왜 전화 안받았어?"
"전화 했었어?"
건너오지 않는 대답 대신 내 얼굴에 꽂히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빨대로 내 속 같이 씨꺼먼 아메리카노를 휘저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 내 표정에 다 써져 있을 것이다. 표정관리 하난 더럽게 못하니까. 그냥 넘어가 줄 속셈인지 녀석은 이내 숨을 내뿜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어제 걘 누구야? 주제 넘은 질문인것 같아 접었다. …내가 뭐라고. 순식간에 심란해진 마음에 아메리카노가 더 씨꺼멓게 보였다. 타 들어간다.
"오늘은 같이 가. 어제 너 없어서 쓸쓸해 죽는줄 알았어."
…혹시 얘 고단수는 아닐까, 할말을 잃게 하는 너의 말에 정말로 할말을 잃어버렸다. 대답 없는 내가 의아했는지 너는 답지 않게 시킨 딸기 쉐이크에서 시선을 옮겨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뭘봐. 또 좋다고 웃는다. 항상 그랬다. 너는 치대고, 나는 밀어내고. 이게 벌써 10년짼데. 이제 아마 곁에 없어서 쓸쓸한건 너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벌써부터 같이 있는데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목구멍을 씁쓸하게 만드는 맛에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중에 승철이 여자친구 데려오면 얼마나 쓸쓸할까.
"토요일날 영화 볼까?"
니 여자친구랑 보세요. 혀끝에 맴돌았다. 혀끝을 죽을 힘에 다해 깨물었다.
"…안돼 나 약속있어."
"에? 누구랑?"
"소개팅."
헐, 불어 버렸어.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빨대를 내내 저었던 손이 한순간 굳었다. 남 몰래 잘해보려 했는데 일이 꼬였다. 힐끗,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올리자 마자 마주치는 시선에 어렵게 올렸던 시선과는 다르게 0.1초 만에 내리는 시선은 쉬웠다. 내가 왜 눈치를 봐야하지. 억울함에 무의식적으로 입술이 대빨 나왔다. 건들기만 해도 툴툴거릴입술을 녀석은 건들지 않았다. 내심 서운했다. 여자친구 생기니까 태도 변하는것봐. 예전같았으면 나 빼고는 다 안된다. 혼난다, 말들어라. 하며 다그쳤는데.
"…혼나."
"……"
깜짝 놀라 시선을 들었다. 마주치는 시선에도 내리지 않았다. 녀석의 입술을 대빨 나왔다. …뭔데. 묻고 싶었다. …승철아 여자친구 생겼어? 물을 수 없었다. 긍정의 대답이 나올까봐, 내가 두려워 하는 그 말이 나올까봐. 근데 이상했다. 나만 하던 줄다리기에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상대편이 나온듯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듯한 기분이였다.
"아 왜 진짜!"
"안 할래."
"아 걔한테 다 말했단 말이야."
"대타 뛰어줄 사람 찾아놨으니까 그리 알아."
"아니 저기 봐? 어? 최승철도 연애 한다니까?"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또다.
그때보다 더 깊숙해진 팔짱이다. 가슴이 쓰렸다. 주체되지 않는 기분에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쳐다보는지도 모르는지 너는 기분이 좋은듯 웃음을 흘렸다. 아니, 넌 나와 눈이 마주쳐도 웃을 것이다. 겁도 없이 내가 좋아하는 그 웃음을 짓고 있는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의 묘한 시선을 읽었는지 혜나의 입이 조용해졌다. 그때였다. 멀리 있는 그 눈과 마주쳤다. 망설임 없이 혜나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나 최승철 좋아해."
내 인생, 이렇게 화나는 고백은 처음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