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일상의 변화
후보로 사는 삶은 근위병 나탄소의 일상과 완벽하게 달랐다.
아침에 나인이 깨우면 일어나서 화장을 받고, 옷은 입혀주는 것으로 입었다.
아침 메뉴도 궁인식당 조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일상은 정말 내가 왕가의 일원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진짜 세자빈은 문안인사도 드리고 저하도 기다려야 하는 일상도 있지만 그거 빼곤 비슷했다.
봉사활동도 다녔고, 전하랑 중전마마도 만나뵈었다.
항상 후보끼리 같이 다니니까 우린 정말 자매처럼 친해졌다.
외동이라 그런가 언니들이 생긴 것 같고 좋았다.
단, 항상 신경쓰이는 건 전정국이었다.
분명 근위대는 3교대인데 혼자 2번 근무하면서 항상 날 지켜보고 있었다.
부담스럽다기보단, 걱정되었다.
//
"사퇴서류입니다."
서류봉투를 건네받는데 거부감이 들었다.
"..."
"진짜 이제 결정을 내릴 때야"
"아직 며칠 남았잖아...시간을 줘."
전정국이 나가고, 난 서류봉투 속 내용물을 꺼냈다.
사퇴각서와 사유서, 비밀유지각서 등등의 서류가 있었다.
난 후보인에 내 이름을 썼다.
전정국이 인주까지 같이 넣어줘서 난 지장만 찍으면 되었지만, 아직은 사퇴할 마음의 준비도 안되었고,
세자저하에 대한 마음의 정리도 안되어서 지장은 찍지 못하고 그 서류들을 다시 서류봉투에 넣었는데,
똑똑-
"세자저하 오셨습니다"
저하가 오셨다.
휴..더 고민하다가 들킬 뻔 했다.
"왜 답장이 없느냐. 한참 기다렸잖아."
"앗...! 내 핸드폰이 어디갔지..? 죄송합니다 저하 그러고보니 핸드폰을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습니다.."
"잃어버린 거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저하."
나는 급히 침대 위 옷주머니. 가방 속 모두 찾아봤으나 없었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어떡하지..."
"뭘 어떡해. 새로 사면 되지."
"혹여 다른 궁인이 주워 저하와 저의 연락내용을 보면 어떡합니까..."
"...정국이를 부르거라"
"지금 근무자가 전정국이 아닙니다."
"아...전화도 안되네..알겠다. 일단 좀 더 찾아보거라. 찾으면 곧바로 나한테 연락주거라."
"예. 저하. 심려끼쳐드려 죄송합니다..."
//
결국 밤에도 찾지 못하고 아침이 찾아왔다.
오전에 조찬 후 자유시간이 주어져 난 봤던 곳도 한 번 더 보면서 핸드폰 찾기에 여념이 없는데, 방에 언니들이 들어왔다.
"어쩐 일이세요?"
"너...이거 찾니?"
내 핸드폰이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어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니 손에 들린 내 폰을 가져가려는데 언니가 손을 쳐냈다.
"너...그렇게 안봤는데 완전 여우더라?"
"그게 무슨..."
"세자저하랑 사적으로 연락을 하네? 그것도 세자저하께서 먼저 연락하시고?"
잠금설정을 해놓지 않은 게 실수였다.
"너. 전 기장님하고도 연락하던데, 양다리야? 어쩜 이런 애가 다 있니?"
"그런 게 아니예요.."
"웃기지마. 우리가 지금 다 봤는데 어디서 발뺌이야?"
"전 기장님하고 저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후보가 되기 전까지는 직장동료였습니다. 당연히 연락하면서 지냅니다."
"내용을 보니까 완전 연인끼리 하는 연락이던데."
"대체 어디서 연인같은 느낌을 받으셨나요? 그리고 왜 남의 사생활을 멋대로 보세요?"
나도 처음엔 의기소침했는데 갈수록 열받아서 따져묻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이게 꼬리쳐놓고 기어오른다며 한 소리를 했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저하께서 오셨다.
"우선 각자 방으로 가 계시죠. 제가 차례차례 방문하겠습니다."
저하는 후보1번 언니와 함께 그 쪽 방으로 향했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방에서 기다렸고, 교대한 뒤 전정국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 마음이 이상했다. 전정국이 원망스러웠다.
"왜 너랑 문자한 걸 안지워서 내가 이렇게 당했는지 모르겠어!!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
난 어느새 화장이고 뭐고 신경도 안 쓴 채로 눈물을 떨구고 있었고, 전정국은 나를 안으려고 다가왔다.
"꺼져. 더이상 오해받기 싫어.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내가 전정국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로 화풀이를 하고 있는데 저하께서 들어오셨다.
"나가보거라"
"예. 저하."
전정국이 나가고 저하께서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일단 다른 후보들에게 해명했다. 그들이 오해를 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미안하다. 늘 조심했어야 했는데."
"..."
"당분간은 연락대신 직접 찾아오마"
"놀라셨을텐데 돌아가 쉬십시오."
저하께서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나는 저하의 품에 안겨 울었다.
//
다음날부터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공식적인 행사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식사자리처럼 사적인 곳에선 대놓고 조롱을 받아야 했다.
사람이 달라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것을 나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달았다.
그 후보들 뿐만 아니라 나마저도 갑자기 바뀐 것 같았으니.
<29>
사퇴의 기로에 놓이다
다른 후보들의 견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언제 나인들이랑 친해졌는지지 지난번에 있었던 전정국과 나의 유언비어를 듣고와 조롱하고 모욕을 주었다.
"전 기장님~ 주군한테 여자를 뺏긴 꼴인데, 어떠세요? 이렇게 드라마틱한 상황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기분이?"
나는 분노에 못 이겨 부들거리며 말했다.
"모욕적인 언사는 저한테만 하시죠. 안하시면 더 좋고"
"어머~ 언니 얘 봐요. 자기 내연남 지키는거야 뭐야~"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후보님들. 심술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계시네요. 같이 있기 정말 불쾌하네."
"이게...여기서 제일 못생긴 주제에 어디서 감히"
"여기서 제일 나이 많은 주제에.. 게다가 남의 사생활 파고들어 조롱하는 악한 심보를 저하께서 아셨는데 외모가 저보다 저보다 잘나시면 뭐합니까"
"어차피 마지막은 국민들의 선택이지 저하의 선택이 아니야. 저하께서 무얼 아셨던 상관없어."
"..세자빈이 되는건데 저하의 의중이 상관없으십니까? 하...그럼 평생 사랑받지 못하는 쇼윈도부부를 원하시는건가요? 저하가 벌써부터 안쓰럽습니다.
그리고 후보님 중 한 분이 세자빈이 된다고 제가 저하 친구가 아닙니까? 전 신경쓰지 않고 계속 저하를 뵐 것입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 비꼬세요.
저든, 전정국이든."
난 자리를 박차고 방으로 들어왔다.
//
저녁이 되자 저하께서 방으로 찾아오셨다.
"정국이에게 보고받았다. 아침에 소란이 있었다고."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화장대 서랍에서 서류봉투를 꺼내서 저하께 드렸다.
"이게 무엇이냐"
"...너무 힘듭니다. 저하"
봉투 속 서류들을 꺼내보던 저하게선 다시 서류를 집어넣었다.
"못 본 걸로 하겠다."
"아뇨. 저하. 궁에도 사직서 제출하겠습니다."
"정국이가 시키던?"
"....예? 무슨 소리십니까?"
"전 기장이 널 좋아하는 걸 모르는 궁인도 있나?"
"...걔가 시킨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남아있거라. 네 서류는 처리해 줄 수 없다."
그 때, 전정국이 들어왔다.
"제가 시켰습니다. 저하."
"누가 허락도 안했는데 들어오래"
"죄송합니다. 허나 나탄소의 사퇴서류는 결재 부탁드립니다."
"내가 왜 그래야하지?"
"..."
"나가."
"저하."
"나가라고 했어."
저하께서 그렇게까지 단호한 모습을 보이시는건 처음 봤다.
전정국이 나가고, 저하께선 수없이 고민하셨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야. 누구의 잘못인거냐"
"..."
"하..이 자리가 뭐라고 난 또 포기를 해야하는 거야."
"저하.."
"난 그동안 세자니까, 세자라서, 세자이기 때문에, 세자로써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그동안 포기해왔던 것은 한번 아쉽고 말았는데, 이번에 너마저 포기해버린다면, 이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저하..."
"탄소야. 이번에도 내가 포기하는게 맞는것이냐"
난 힘들었고, 저하는 간절했다.
내가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하자 저하게서 작은 한숨을 쉬시고, 방을 나가셨다.
난 몇 초 지나지 않아 내 방을 뛰쳐나가서 저하께 달려갔다.
그리고 저하가 들고 계시는 그 서류를 빼앗았다.
"마음이 바뀐 것이냐"
"그냥 주십시오. 변덕쟁이인거 저하께 들켜 창피합니다."
나는 뒷말은 듣지 않은 채 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봉투 속 서류들을 모두 찢었다.
종이 찢는 소리를 들었는지 전정국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뭐하는거야"
"보고있잖아. 종이 찢은 거"
"넌...진짜 내 생각은 조금도 안해주냐"
"너를 생각해서 그래. 내가 후보에서 사퇴하면 난 궁도 그만둘건데, 넌 그러면 안되잖아."
"까짓거 그만두는게 뭐가 대수라고."
"장난해?"
"어차피 너가 어떻게 되어도 난 그만둘거야"
근위병은 전정국의 오래된 꿈이었다.
그러기에 전정국은 근위대 선발시험에 몇 번 떨어져도 다시 도전하여 합격하였다.
꿈이 없던 나와 달리 꿈이 있던 전정국이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게 얼마나 멋져보였는데 겨우 나 때문에 그 꿈을 버린다는게 말도 안됐다.
"세자빈이 되면, 너의 둘도 없는 빽이 되어줄게."
"그런 빽 필요없어. 난 그냥 너가 필요해"
"알아 정국아. 나도 너가 필요해. 그것도 평생. 근데 세자저하께도 내가 평생 필요할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로 저하가 필요하고."
"저하를...정말 좋아해?"
"그건 이제 마음이 정리되면 알겠지. 다만 확실한 건 지금 사퇴하면 후회할거라는 거야."
전정국이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아직은 좋아하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다는 거잖아. 난 이제 확실해졌어. 널 얻기 위해서라면 난 뭐든 할 거야"
전정국이 나가고, 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들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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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끊어졌다 이어지는게 이상하다면 그것도 알려주세요...한편으로 이어보도록 시도해볼 수 있으니까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