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정아…”
“왜~”
“내가 나뿐 년이야….”
“어~ 너가 나쁜 년이야~”
“마쟈…내가 나뿐 년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것도 모르고 오빠 욕하거ㅠㅠㅠㅠㅠ”
그래. 이곳이 바로 다짐 붕괴의 현장이다. 문태일 때문에 울지 않겠다는 다짐은 휴지를 뜯을 때 같이 뜯겨 나간게 분명하다. 나는 다 마신 술병을 양 손에 쥔 채 또! 울었고, 정수정은 이런 내가 익숙하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안주를 집어먹으며 내 술주정에 대충 대답해준다. 첫 과외비가 입금된 기념으로 정수정과 약속을 잡고 만난 것 뿐,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내가 잔뜩 취해서 어제 저녁에 있었던 문태일과의 일을 몽땅 다 불었다는 거다. 오빠가 그렇게 됐었고, 그래서 나를 떠났던 거래. 이미 취한 상태에서 눈물을 그렁하게 달고 그런 말을 했단 말이다…!
“그리구…막 오빠가 날 보고싶었다고 안아줘써..”
“어, 그거 다섯 번째 듣는 거야.”
“응응…그리구…내가 안겨서 막 울었다구…난 진짜…도라써….ㅠㅠㅠㅠ”
“…진짜 답 없는 년…그만 울어 좀!!!!!”
비록 지금은 이렇게 버럭 성질을 내지만 처음 말을 해줬을 땐 정수정도 엄청 놀랐었다. 문태일이 먼저 날 찾아왔다는 것에 한 번, 사고를 당했다는 것에 한 번, 그 탓에 일년동안 말을 못했다는 것에 한 번. 내가 중요 포인트를 끝낼 때마다 입을 떡 벌렸었다고. (뭐라고오?! 라고 총 세번 소리 질렀다.) 나는 했던 말을 하고 하고 또 하며 계속 울다 네 번째 소리를 지른 정수정의 목소리에 놀래 끅, 하고 울음을 삼키곤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눈물이 잔뜩 번진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헤롱이는 정신을 잡으려 애썼다. 그렇지 않으면 안주거리로 널부러진 땅콩 몇 알이 대포알마냥 날아올지도 몰랐다.
“너 어쩔거야.”
“..머가..?”
“너가 싫어서 일년 동안 잠수탄게 아니라며.”
“응..”
“보고싶었다고 먼저 너 찾아갔다며.”
“응..”
“이제 말도 다시 한다며.”
...그래서 너, 문태일 다시 만날거야? 아주 잠시 말을 멈춘 정수정은 곧 그렇게 말을 하며 턱을 괴던 손도 내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살벌한 눈초리 덕에 조금이나마 정신이 든 나는 구부정하던 자세를 곧게 피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응, 응 자동응답기처럼 잘만 나오던 대답이 쏙 들어가버렸다.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면 어쩌라는 거야 기지배. 나는 뜨거워진 침을 크게 한번 삼킨 후 양 손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그래서 나는 문태일을 다시 만날 것인가’ 에 대해 결론을 지으려는 행동이었다. 나름 심각하다고.
정수정은 내 입에서 또 응! 이 나올까봐 저렇게 진지한 건가. 하지만 꾹꾹 눈가를 눌러가며 어제의 문태일을 천천히 떠올린 내가 내린 결론은 그게 아니였다. 근데 이 결론이라는 걸 말하려니 입 안이 텁텁한게 쉽사리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이제 정말 문태일을 놓았다는 걸 내 입으로 인정한다는 거잖아 이거. 결국 앞에 놓았던 술병을 들어 병 채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정수정이 야!!! 하고 또 한번 소리를 빽 질렀지만 상관 없었다. 정신이 없어야 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듀정..”
“미쳤어? 너 진짜 네 발로 기어서 집 들어가고 싶어?”
“나 이제 오빠 안 좋아하는 거 가타..”
“술을…! …어?”
“아냐아냐, 안 좋아해. 나 이제 문태일 안 좋아해.”
“...진짜?”
“예전엔 목소리만 들어도 가스미 막 쿵쾅거렸는데 어제는 아니여써..”
어제는 가스미 안 쿵쾅거려써...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머리를 쿵 테이블에 박았다. 아으, 하고 짧은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갔지만 그게 다였다. 스륵 눈이 감긴 건 금방이었다.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정수정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정신을 잃는 것 역시 그랬다.
“아..아 나 주거..”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개폐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아침 강의가 없는 걸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하며 거실로 나갔다. 엄마 아빠가 계셨다면 아마 지금 이 시점에서 손바닥이 날라왔을 거다. 술 좀 작작 마셔! 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오늘 밤에 오시니까..(씨익) 안심하며 갈증 해소를 위해 부엌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머리 아파..”
진짜 노답년..나년…(한숨) 아침에 항상 후회하면서 술 앞에선 도대체 왜 자제를 못하냐, 엉?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사실 어제 정수정을 만났다는 기억 빼곤 머리에 남은 건 깔끔하게! 없다! 매번 이랬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았다. 그냥…수정이한테 전화해서 내가 몽총이다 빌면 된다...^^
흘러 내리는 머리를 대충 뒤로 넘기곤 냉기를 내뿜는 냉장고 안에서 생수병 하나를 꺼내 벌컥 들이켰다. 찬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니까 그제서야 좀 살 것 같았다. 키야~! 하고 입가를 문지르곤 생수병을 다시 넣으려 냉장고로 다시 시선을 돌렸는데, 방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음료 두개가 냉장고 윗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뭐야 이건..”
난 이런 걸 산 적이 없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해장 음료와 복숭아 맛 음료였다. 내가 미간을 좁히기도 잠시, 해장 음료에 붙어있는 작은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쓰니까 마시고 나면 옆에 있는 거 마셔. 제~발 인간답게 살자^^] 출처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누가 우렁각시마냥 요런 짓을 해놨는지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반듯한 글씨체는 백퍼센트 정재현 것이다. 언제 다녀간거야? 눈만 끔뻑이며 포스트잇에 적힌 세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은 나는 일단 해장 음료부터 들이켰다. (해장이 시급했다.) 쪽지에 적힌 것 처럼 혀를 자극하는 쓴 맛에 잔뜩 인상을 썼다. 웩, 맛이 왜 이래.
“아 냄새도 이상해!!!!!”
한모금 마시자마자 켁 헛구역질을 한 나는 황급히 입을 떼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게 뭐람…! 난 그냥 단 거 마실래. 어린이 입맛 때문에 결국 해장 음료는 도로 냉장고로 직행했다. 대신 복숭아 음료를 까 한숨에 바닥까지 탈탈 털어 마셨다. 그나저나 정재현은 어떻게 알고 이런 걸 사놓았데. 혹시 어제 정재현이 나 업고 들어왔나? 아냐, 그랬으면 엄마 아빠 저리가라 할 정도의 폭풍같은 잔소리가 쏟아졌을 거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상황을 머릿속에서 바로 접었다.
방으로 돌아와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 후 손을 뻗어 더듬더듬 이불 속 어딘가에 박혀있던 핸드폰을 찾아 홀더키를 눌렀다. 뭐야 벌써 열한시네(당황)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슬쩍 내렸다. 또 점심으로 해장해야 할 판이구만. 한숨을 푹 내쉬며 까매진 화면을 도로 밝히기 위해 다시 홀더키를 눌렀다. 나의 해장 메이트에게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지금쯤 강의가 끝났을 거다. 고민따위는 하지 않고 바로 메세지를 보냈다.
내가 그렇게 부르자, 얼마가지 않아 1이 사라지고 답장이 왔다.
누구랑 무슨 약속인지도 안 말해주구!!!!! 메세지로는 보내지 않았던 말을 핸드폰에 대고 버럭 지르다 끝내 핸드폰을 내렸다. 진짜 혼자 해장하러 가야하는 건가 잠시 울상을 지었다. 혼자 밥 먹는 거 심심한데..(입툭튀) 나는 괜히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전화번호부를 위아래로 넘겼다. 그런데 번뜩 뇌리를 스치는 사람이 있다. 내가 포부 넘치게 첫 과외비 들어오면 밥을 사겠다 외쳤던..!
…태용 센빠이….!
“오, 김여주~ 진짜 사네?”
“그럼요~! 누구 덕에 번 돈인데~”
“그렇지 인마. 아주 바람직하다.”
내가 오늘 선배의 점심을 책임지겠다고 메세지를 보내자, 정확히 1분 후 선배에게 이렇게 답장이 왔었다.
[해장하러 가자]
그리고 난 소리를 질렀지. 유레카!
60년 전통 육개장 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결려있는 식당에 마주 앉은 선배는 해장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멀쩡한데..? 화장을 하고 나온 나보다 더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원래 잘생겨서 그런 건가.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지금 해장을 하러 왔다는 것이다. 내심 파스타 같은 걸 먹으러 가자고 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역시 한식 최고(우르먹) 육개장 만만세!!!!!!!
“사실 저도 해장해야 했거든여…근데 선배가 해장하러 가자고 하셔서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알아. 너 어제 술 왕창 마신 거.”
식당 저 끝 쪽에서부터 밀려오는 매콤한 육개장 냄세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 입꼬리를 귀까지 올리며 신이 난 채로 말을 했는데, 돌아온 건 꽤나 황당한 말이었다. 그걸 선배가 어떻게 알지…?(당황) 놀란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떠 선배를 바라보자, 태용 선배는 그런 내가 웃긴 건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 어제 네 옆옆옆 테이블에서 술 마셨어.
…뭐라구여…?
“나 갔을 때 너 이미 취해 있더라.”
“..진짜요..?”
“진짜지 그럼. 그래서 내가 해장하러 오자고 한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떡 벌어진 입을 손으로 밀어 닫았다. 쪽팔림이 물 밀리듯 밀려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아까 정수정이 통화 중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너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였지.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다고! 그래…정수정이 그렇게 말했었다...(입틀막) 잠시간 테이블 밑에 둔 다리를 달달 떨었다. 나 분명 추했을텐데 시바… 나 때문에 일부러 해장국을 선택한 선배한텐 너무너무너무 감사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많이 쪽팔리잖아..?
“걱정마. 난 어제 너 못 봤던 걸로 해줄게.”
“감사합니다…근데 사실 저는 아무 기억이 없어옇..”
“아무 기억이 없다고?”
예…^^ 마음같아선 당장 어제로 돌아가 정수정과 약속 자체를 잡지 않고 싶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할게 없었다. 내가 상황을 기억만 했더라도 정수정의 화는 반으로 줄었을 거다. (아까도 말로 후려맞았다.) 내 행동에 선배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헐, 하고 김 빠진 소리를 냈다.
“너 그럼 어제 네 친구한테 업혀 간 건 알아?”
“헐 저 정수정한테 업혀서 나갔어요???!?!?”
“..정수정..?”
태용 선배가 또 크게 뜬 눈을 데굴 굴렸다. 그러더니 음,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제 턱을 두어번 만지작거리더니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래 뭐, 정 씨는 맞다 그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저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래. 의문을 가진 내가 입을 열려했지만 육개장이 한 발 빨랐다. 하필 이 타이밍에 하얀 김을 솔솔 풍기며 테이블 위에 척! 올라온 것이다. 할 수 없이 반쯤 벌린 입을 도로 다물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팅했다. 나중에 다 먹고 물어보면 되지 뭐.
선배는 잘 먹겠다는 한마디와 함께 빠르게 숟가락을 움직였다. 나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해장! 해장! 해장! 붉게 색깔을 낸 국물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렇게 한 모금 입에 넣고 내적 박수를 쳤다. 60년 전통이 거짓말이 아니야..! 홍홍 웃으며 야무지게 밥 한 숟갈을 뜨는데, 벌써 반 그릇을 비운 선배가 나를 불렀다. 야 여주야, 하고 말이다.
“너 과외 잘 하고 있는 것 같더라.”
“..갑자기 무슨..”
“민형이가 네 칭찬 엄청 했던데?”
…누가 누구 칭찬을 했다구요?(동공지진) 선배의 말에 허공에 있던 숟가락을 천천히 내려 놓으며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태용 선배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선배가 말을 할 수록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민형이 내가 착하고 잘 가르쳐서 너무 좋다고 어머님께 말씀 드렸댄다. 어머님이 그걸 태용 선배의 어머님께 말씀 드리고…지금 태용 선배가 나한테…(말잇못)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걸까. 담배 말하지 말라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으로 내 혼을 쏙 빼놓을 작정인 거야? 사실 그 편이 제일 마음이 놓이긴 한다. 왜냐면 그게 제일 정상적인 이민형이거든.
“하하..녀석도 참..하핳…하..”
나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진짜 알다가도 모를 놈이라니까. 진짜로 내가 좋은거면 좀 다정히 대해주던가(툴툴) 뒤에서 칭찬하고 다니면 내가 아냐? 입을 쩝 다셨다. 그런 내게서 시선을 옮겨 마저 숟가락을 들던 선배는 또 한번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선배와 다시끔 눈이 마주쳤다. 내렸던 입꼬리를 도로 올렸다.
“민형이는 옛날부터 공부 잘했던 애야.”
“..”
“그래서 주변 기대가 엄청 높아. 우리 엄마도 민형이는 S대 갈 거라 그러시던데.”
“아..”
“그 기대는 당연히 부담이 돼. 너도 알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너가 잘 챙겨줘. 지금이 제일 힘들 때 아니냐. 선배는 그렇게 끝을 내고 씩 웃어보였다. 훅 들어온 선배의 말에 얼 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그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수학만 열심히 가르쳤을 뿐 특별히 이민형을 챙긴 적이 없었다. 여기서 더 챙겨주려면 무슨 미친 짓을 해야하는 걸까.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 또 생각이 많아지네.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선배!”
“그래~ 나중에 보자~”
급히 만날 사람이 생겼다며 먼저 학교로 가라는 선배와 식당 앞에서 헤어졌다. 몇 분 걸어가다 정씨 어쩌고에 대해 물어보려다 말았던 것이 생각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지만 선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다시 걸어나갔다. 아니 근데 아까부터 자꾸 이민형이 둥실둥실 머릿속에 떠다니는 거다. 아아악!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헤집으며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 이게 다 뜬금없이 칭찬을 한 이민형 때문이다. 진심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네. 괜히 내 기분만 이상해졌다.
태용 선배가 했던 말은 사실 다 맞는 말이다. 몇 년 전 나 역시 고3이었고, 지금 이민형이 겪는 모든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녀석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았다. 추측이지만 이민형은 스트레스로 담배까지 잡은 놈이고, 모든 것에 예민해도 이해가 되는 상황에 제 어머니한테만큼은 항상 다정한 아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구 김여주는 태용 센빠이에게 그런 이민형을 더 잘 챙겨주겠다고 또 당차게 외쳤지. …(한숨)
“진짜 어쩌려고 그랬지 나. 친하지도 않으면서!”
일단 친해져야 수학 그 이상으로 챙겨주던 말던 하지. 연신 한숨만 푹 내쉬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옮기려는데, 반쯤 움직인 고개를 세운 후 도로 오른쪽으로 돌렸다. 사탕 전문점이라고 적혀있는 간판 밑으로 아기자기한 가게가 눈에 차올랐다. 이런 가게도 있어? 신기한 마음에 이끌리듯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밖에서 느낀 것처럼 가게 안은 정말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잘 꾸며져 있었다. 사탕 전문점이라는 문구가 알맞게 달달한 향이 매장 내에 맴도는게 방금 전까지 골을 쑤시게 한 고민들이 싹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는데, 한 쪽에 진열된 플라스틱 통이 보였다.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막대 사탕이 한가득 들어있더라. 아 또 쓸데없이 구매욕구가 불타오르네 이거. 플라스틱 통 하나를 집어 만지작거렸다.
“막대사탕이 금연에 좋다고 들었는데..”
그러던 중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을 자각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친, 나 뭐라고 한거야 방금. 금연이 왜 나와..(경악) 기겁하며 통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러곤 가게를 나가려 등을 돌렸는데, 이상하게도 걸음이 쉽사리 나가지가 않아 다시 몸을 돌렸다. ..진짜 민형이 하나 사줄까..?
“스트레스 받을 때 단 거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구.. 담배 대신..이거…아이씨..”
괜히 합리화 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중얼거리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통 하나를 도로 손에 쥐었다. 진심이든 아니든 칭찬도 해줬고, 한달동안 수업 잘..그래 잘...들어줬으니까..^^ 그래. 선생님이 학생한테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선물 하나 주는 건데 뭐 어때.
“이거 계산이요..”
금연 따위는 기대도 안하니까 그냥 버리지만 않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사탕이 든 통을 카운터에 올려놨다. 삑, 하고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에 앓는 소리가 조용히 입술을 비집고 나왔지만 웃기게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 정말, 내가 모순덩어리네 참.
약속이 있다며 여주의 점심 제안까지 거절한 재현은 태일이 일하는 카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얼마 전 여주가 몸을 덜덜 떨던 곳이었다. 재현은 그때 생각만 하면 화부터 났다. 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태일이 너무 미웠고, 싫었다. 재현이 일부러 점심까지 포기하며 카페까지 온 이유였고, 주제 넘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문을 여는 이유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안고 온 재현의 다짐은 확고했다. 어젯밤 여주와의 전화를 끊은 후 새벽까지 몸을 뒤척이다 내린 다짐이었다. 종소리와 함께 카페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 그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든 태일과 눈을 마주했다. 재현은 태일을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물론 태일 역시 바로 표정을 굳혔지만.
“…”
“..”
카운터엔 사람이 없었고, 그 덕에 재현은 기다림 없이 태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재현의 등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태일은 재현이 제게로 한 발짝 다가올 때 마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재현과 마주한 눈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흔들렸고,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코 앞까지 걸어 온 재현은 주문 대신 한마디 물음을 던졌다. 형, 점심시간 몇 시부터에요?
“…”
“..”
“…..열두시.”
옅게 숨을 고른 태일이 재현의 물음에 조심히 입을 열었다. 재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분 후면 열두시였다.
“기다릴게요.”
재현은 그런 한마디를 남기곤 등을 돌렸다. 무조건적으로 태일과 대화를 하겠다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등을 돌린 재현은 카운터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 참았던 깊은 숨을 터뜨렸다. 그동안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미친 짓을 해보려고 한다. 새벽에 한 다짐이 속을 꽤나 들끓게 만들었던 걸로 재현은 기억한다. 따지고 보면 그 다짐은 수백번 삼켜온 제 감정일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내뱉는 것이었고, 그만큼 중요했다. 재현은 감히 그 감정을 전해보기로 했다. 또 다시 여주를 울린 태일에게.
“잘..지냈어?”
“..저야 뭐.”
30분 정도 시간이 있다며 재현의 맞은 편에 앉은 태일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여주를 끌고 나갔을 때 이후로 처음 마주한 재현이었다. 괜히 물만 한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 재현이 저를 찾아온 이유라면 여주밖에 없다는 걸 태일은 잘 알고있다. 하지만 예전에 줄곧 그랬던 것처럼 저와 여주의 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해주러 온 건 아니였다. 그건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관계라는 것부터가 달라졌으니, 재현이 할 말도 분명 다를 거라 생각했다.
“할 말, 뭐야?”
잠시간 침묵이 흐르던 중 태일이 그 어색한 흐름을 끊었다.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후 또 한차례, 아무 말이 없었다. 재현은 잠시간 대답을 망설이다 테이블 밑에 놔둔 제 양 손으로 주먹을 쥐며 제 텁텁한 입으로 소리를 뱉었다. 김여주요, 형. 잔잔한 공기 위로 여주의 이름이 떨어지자 태일의 미간이 작게 좁혀졌다.
“..”
“아직 좋아하죠.”
재현이 이어서 뱉은 말은 태일을 아프게 찔렀고,
“그래서 다시 온 거 잖아요.”
목울대를 울렁이게 만들었다.
재현은 태일의 그 미묘한 반응을 잡았다. 주먹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아직까지 김여주를 좋아하는 문태일. 재현은 그 사실에 짜증이 났다. 여주가 서럽게 울 때 옆에 있어준 건 항상 저인데, 마지막에 여주를 품에 안는 건 왜 항상 태일일까. 고등학교 때도, 1년 전에도, 이틀 전에도 그랬다. 감정은 곪을대로 곪았고, 재현은 더이상 참고 삼킬게 없었다.
“저 형한테 두번은 안 뺏겨요.”
..김여주.
말을 마친 재현이 입술을 닫았다. 태일은 붉은끼가 도는 그것을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날 선 눈들이 허공에 맞물렸다. 그 뒤엉킴에 오차는 없었고, 회피 또한 없었다.
암호닉 |
맠둥이는망고 / 모찌 / 우재 / 오렌지 / 우재야 / 백도 / 예민보스 / 뽀로링 / 윤오빠 / 갈즙 / 빵재 / 복숭아모찌 / 정제육 / 맠내 / 숭아 / 채점마크 / 달탤 / 마크민형 / 김작곡 / 찌뽕 / 뚝딱이 / 도화 / 맠둥 / 꿀돼지 / 피터 / 션 / 자소서 / 뽀뽀 / 우리 재현이 / 문꼬리 / 8ㅁ8 / 바람개비 / 아치 / 초승달 / 담이 / 나유타 / 꽃길 / 뀨꺄 / 정재빵 / 갓재현 / ㅇㅈ / 설레임 / 윤오윤오 / 크림치즈빵 / 달빵 / 마끄리 / 마크라떼 / 맠리 / 크롱 / 머리끈 / 안돼 / 재현오빠 / 내달님 / 마시멜로 / 쏭쏭 / 뿡뿡이 모두 너무 감사드립니다^♡^ 혹시 빠지신 분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ㅠㅠ! |
다음 화 부터는 [정재현 이야기] 가 시작됩니다. 상하 두 편으로 생각 중인데 길어지면 상중하 세 편으로 늘려질 것 같아요ㅎ^ㅎ
오후에 8화 답글 달러 다시 오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읽어주셔서 한번 더 감사드려요!
혹시 유럽 여행 계획하고 계신 분들 있으세요? 있으시다면 소매치기 꼭꼭꼬옥꼭꼭 조심하시구 밤 늦게 지하철 타지 마세요ㅠㅠㅠㅠ
소매치기랑 지하철만 빼면 유럽은 너무 예쁜 곳입니다...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