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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벽에 핸드폰을 하다가 우연히 화면 구석에 박혀있던 디데이 어플을 발견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들어가 봤는데……


인성이랑💕

653일


같이 찍었던 사진도 삭제하고, 번호도 지웠으면서

왜 디데이 어플을 깜빡해서 굳이 또 기억 속 어딘가에 쳐박혀 있던 김인성을 끄집어 내야 했을까.

잠이나 자자 싶어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끄고 돌아누웠다.



[SF9/김인성] 12학번 언론정보학과 김인성 09 | 인스티즈

SF9 김인성 빙의글

12학번 언론정보학과 김인성

09




신데렐라가 계모와 언니들로부터 도망쳐 왕자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던 것처럼,

나의 연애도 그렇게 무탈하고 오래 지속될 줄 알았지만

큰 오산이었다.


김인성이 졸업하던 날, 학사모에 가운을 입고 쭈뼛거리던 김인성을 도서관 앞에 세워두고 인생샷을 건져주겠다며 미친듯이 사진을 찍었던 그 해 겨울을 지나,

취업 준비를 하던 김인성이 닭강정을 사 와서 도서관에 있던 나를 불러냈었고, 봄밤의 경희랜드를 만끽하며 행복해했던 봄,

그리고 김인성의 상반기 공채 취뽀을 축하하며 함께 여름의 속초로 놀러갔던 기억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우리였지만 아무래도 직장인과 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 차이는 꽤나 힘들었다.


잘잘못을 끄집어 낼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굳이 그간의 우리를 요약하자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술자리와 인간 관계에 어울리던 김인성이

혼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날이 여러 번 반복되었고

그에 지친 내가 조금 과하게 반응한 탓에 언성이 높아지며 싸우는 날 또한 많아졌다.


헤어진 직후 나는 휴학을 했다.

이별 후유증은 결코 아니었고, 졸업과 취업을 위한 휴식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얼마 전 다시 복학했을 때는 어느 덧 그 시절의 김인성과 같은 막학기 복학생이 되어 있었다.

일주일에 몇 안 되는 학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명동 근처의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김인성의 회사가 이 근처였던가?


* * *


한창 아메리카노 15잔을 연속으로 만들고 진이 빠져 쉬고 있는데, 오지랖 넓은 동기에게 카톡이 왔다.


[오늘 언정인의 밤 와??]


너 같으면 가겠냐?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독심술이라도 썼는 지 연이어 카톡이 날아왔다.


[김인성 안 온대!]


안 온다고 하면 간다고 할 줄 알았냐?



정신을 차려보니 언정인의 밤 연회장이었다.

여기서라도 분명히 밝히지만, 난 정말 올 마음이 없었다.

다만, 오후 수업을 듣고 집에 가려던 차에 조교님께 붙잡혀서 그대로 끌려온 것이었다. 정말이라고!


조교님이 교수님들을 모시러 나가버려서 어색하게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멀리서 나를 발견한 동기가 (모르는 얼굴들임을 보아하니 코로나 학번으로 추정되는)후배들을 주렁주렁 달고 나타났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역시 회기동 의리녀~ 얘들아 여기는 그 유명하신 선배님이셔. 인사해~"


대체 뭐라고 날 소개했는지 벌써부터 후배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물론 그 와중에는 위아래로 날 스캔하는 아니꼬운 시선들도 있었지만.

나는 어금니를 꽉 물고 동기에게 속삭였다.


"드츠 느를 므르그 스그흔그느(대체 날 뭐라고 소개한거냐)"

"엉? 아~ 언정과 레전드남 김인성 엑스라고 소개했지! 너 최고 업적이잖아~"


얘는 오랜만에 만나도 눈치랑 오지랖도 말아먹었구나 싶었다.

고학번인 탓에 동기라고는 내 옆의 넌씨눈밖에 없었고, 일단 적당히 붙어다니다 도망가야겠다 싶었다.

후배들과 학교 생활 토크를 나누며 학번을 뛰어넘는 그의 친화력을 한참 구경하다가 적당히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에 튀기 위해 막 연회장을 나서던 참이었다.

방명록 앞에 앉아있던 후배 하나가 친한 척을 하며 나를 불러세웠다.

가벼운 근황 토크에, 내가 얘랑 원래 친했었나 생각중이었는데 역시나 꿍꿍이속이 있었다.


"근데 저 지금 장기자랑 무대 체크하러 가야하는데, 혹시 방명록 앞만 좀 지켜주실 수 있어요?"

"엉? 야, 나 급한 일 생겨서 가 봐야 해."

"아, 제발요. 어차피 교수님들이랑 선배님들 거의 다 오셔서 올 사람도 없어요! 걍 한 십 분만요! 아니아니, 한 오 분?"


그러더니 그대로 연회장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결국 의자에 앉았다.

그래, 뭐 5분이라는데. 그 정도야 이 선배가 함 지켜주고 있지 뭐.


앉아서 핸드폰을 하며 후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멀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 소린가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땐,

퇴근 후 바로 온 것인지 양복과 캐주얼 오피스룩으로 직장인 티를 팍팍 내고 있는 12학번 무리가 저희들끼리 떠들며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12학번인지 바로 알았냐고?

그 중심에 세미 정장 차림의 김인성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남자는 양복이라 그랬는가? 평소보다도 더 멋있게만 느껴졌다.


아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니지. 헤어지고 거의 10개월 만이었다.

분명 방명록 쓰러 이쪽으로 바로 올 텐데, 어쩌지?

머릿 속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들과 가까워 질 수록 일단 피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황급히 도망가려 하는데,

눈치 없는 선배 하나가 크게 내 이름을 부르며 날 멈춰 세웠다.


"너 학생회야? 너가 여기 있을 줄은 진짜 1도 몰랐다!"

"……"

[SF9/김인성] 12학번 언론정보학과 김인성 09 | 인스티즈


고개를 들자 마주친 김인성, 그리고 아까 저희들끼리 떠들 땐 잔뜩 신나던 표정과 달리 착 가라앉은 그 표정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 깔았다.

그러자 낡은 내 운동화와 칙칙한 청바지, 무채색의 맨투맨이 눈에 들어왔다.

아, 하필이면 오늘 알바 갔다와서 제일 후진 차림인데, 왜 하필 이런 날이람.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선배들끼리 나에게 오랜만이라며 뭐라고 했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 방명록을 쓰고 들어가자 여전히 내 시선에, 멈춰서 있는 구두 앞코가 들어왔다.

살짝 고개를 들자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방명록을 쓰는 김인성이었다.


마치 나를 고문하기라도 하는 양, 아주 느리고 천천히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방명록에 적었다.

제발 좀 빨리 가 주라.

이름을 다 쓰고 나서 김인성은 고개를 들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냈어?"

"어, 어? 아~ 으응, 뭐……"

"이번이 막 학기인가 보네?"

"어, 응."

"오늘 못 오는 줄 알았어. 나야 뭐, 교수님들 추천도 받고 했었어서 얼굴 한 번 비춰야겠다 싶어서 온 거고…"

"나도 오늘 어쩌다 붙잡힌거라서…"

"그래, 그럼 온 김에 뒤풀이도 하고 가. 맛있는 거 먹고 가야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더니 제일 마지막으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뭐지? 왜 저렇게 멀쩡한거지? 우리 이렇게 쿨한 사이었나?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이별의 마지막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하도 그 당시에 싸우기만 하면 서로 헤어지자고 날이 선 말로 상처를 줬었기에 대체 언제가 헤어짐의 순간이었는 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엔 안 좋았던 것 같은데…


* * *


행사 내내 조교님과 학생회 후배들을 따라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물론 나와 내 동기 말고는 모두 졸업을 하고 취뽀까지 성공한 블링블링 선배들에게 허드렛일을 시킬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엉겁결에 잡혀 온 일꾼 2가 된 채 정신없이 흘러가다 보니 어느 새 행사가 끝나 버렸다.


고생했다며 공짜 술이라도 먹으라는 학생회 후배들에게 떠밀려 학교 근처 고깃집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물론 공짜 술과 고기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 김인성에게. 나는 이렇게나 멀쩡하다고.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 여기 앉아도 돼요?"


귀여운 새내기 화장과 차림을 한 여자 후배들이 조로록 나와 내 동기의 테이블에 얼굴을 비췄다.

자리에 앉자마자 역시나 모두의 화제는 나였다.


"12학번 김인성 선배님이랑 사귀셨어요?"


와 미친, 요즘 MZ감성 따라가기 정말 힘드네요.

언젠가 김인성을 짝사랑하던 시절, 과사에서 근로를 하던 여자 동기 하나가 대놓고 나와 김인성을 비교했던 기억이 떠올라 짐짓 불쾌해졌다.

마치 질문의 의도 자체가, 너 따위가 감히? 라는 뉘앙스가 느껴져서랄까.

기분이 불쾌해서 아무 말도 않고 있는데, 벌써 술이 몇 잔 들어간 동기가 오히려 신이 나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우리 학번 짬바야, 얘들아. 인성이 형이랑 얼마나 알콩달콩이었는데!"

"아, 하지 마라. 벌써 헤어진 게 언젠데 그래."


하필이면 근처에 앉은 12학번 테이블에서 김인성의 이름이 거론되자 흘끔흘끔 우리를 돌아보는 기분이 들었다.

동기를 자제시키는데 물리적으로 자꾸 밀리기 시작했다.


"내가 형이랑 얘랑 썸타던 시절부터 사귀고 깨질 때까지 모두 함께했지."

"우와, 얘기해 주세요!"

"진짜 너네는… 인성이 형이 졸업학점 채우고도 너땜에 계절 들은 거는 진짜 레전드였지."

"헐, 환승연애 같아요…!"


이래서 과씨씨는 하지 말라고 했던가.

흥미롭게 남의 연애사를 휘집어대는 모습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화를 내면 분명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만 같아서 꾸욱 참고 있다가,

결국 일이 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짐을 챙겨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어, 가는 거야?"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선배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 중에는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김인성도 있었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 한 채 나는 어색하게 한 쪽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인사했다.

역시 김인성은 다른 선배와 얘기 중이었고, 나는 그런 김인성을 슬쩍 훔쳐보고는 그대로 지나쳐 가 버렸다.


기분이 울렁거렸다.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땐 아무도 없었다.

나 지금 왜 돌아보고 있는 건데? 대체 뭘 기대한 건데?

너무 창피하고 짜증나고 복잡했다.


설마 김인성이 아까의 그 상황에서 구해주기라고 기대한거야?

아님 신경이 쓰여서라도 헤어진 여자친구 데려다 주겠다고 따라온 거를 기대했어?

이별이 참 별 거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뒤늦게 후폭풍이 와 버렸다.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기분에 잠식되어 버릴 것 같아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한숨만 연신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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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선생님 왜 헤어져잇는건대요.....🥲🥲🥲
2년 전
독자2
으흑흑 으흑흑
2년 전
독자3
ㅠㅠ선생님 기다렸습니다ㅠㅠ
1년 전
독자4
하 제발... 헤어지다뇨... 뉸물나요...
1년 전
독자5
턴댕님 더 주대요
1년 전
독자6
ㅈㅅㅎㄴㄷ..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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