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이제 그만 좀 하자. 응?"
"..."
한숨을 푹 쉬곤, 그 하얗고 큰 손으로 턱을 괸 채 내게 애원하듯 말했다. 이번 달만 벌써 몇 번째야, 나랑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 했잖아. 아저씨와 약속을 시작한 지도 벌써 반 년이 다 되었다.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 반항심이 절정으로 오른 나에게는 지켜지지 않는 거짓 약속. 반항 가득한 눈빛으로 똑같이 턱을 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아저씨는 고개를 젓는다.
"큰 사고면 몰라."
"..."
"맨날 작은 사고만 내서 자꾸 찾아오고."
"..."
"너, 이런거 자꾸 쌓이면 결국엔 소년원 처리 돼."
"..가죠, 뭐."
"뭐? 김여주!"
키보드를 두드리던 아저씨의 손이 멈추고, 아저씨가 언성을 높였다. 순식간에 우리에게 몰린 시선. 그 시선들을 느낀 아저씨는 주변의 눈치를 보고는 나에게 속삭이듯 말을 한다. 너, 진짜 나한테 혼날래?
"이미 많이 혼났잖아요."
"나 화나면 되게 무섭거든?"
"화내봐요."
"..."
"무섭겠다."
나의 맹랑한 한 마디에 그대로 멍해진 아저씨가 답답한 듯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나에게 내린 시선, 짧은 교복치마와 연한 파스텔톤으로 염색된 분홍색 머리, 그리고 방금 전의 싸움으로 인해 생채기가 가득한 손은 경찰서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 날라리에요.' 를 상기시킬만 한 좋은 정답이었다. 민트색으로 염색된 머리를 빙글빙글 손으로 꼬았다. 경찰 아저씨가, 저렇게 얼굴 잘 생기면 불법인데.
"너, 염색 풀으라고 했지."
"왜요."
"아, 너네 학교 염색 안된다며!"
내 대답에 열을 받았는 지 아저씨가 또 한번 언성을 높였다.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일 것이다. 아저씨를 만난지 반 년이 흘렀어도 변한 것은 없으니까. 결국 포기한 표정으로 아저씨가 의자를 끌어당겨 나와 가까이 마주 앉았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경찰 아저씨의 시선이 나의 손으로 향했다. 잔뜩 생채기가 났다, 붉게 피도 물들었다.
"..그건 또 언제 나을래."
"..."
의자에서 일어난 아저씨는 그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가 선반에서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우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눈으로 아저씨의 모습을 쫓았다. 한숨을 쉬며 내 옆으로 온 아저씨는 한 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야."
"안 아플리가 있나."
조심스러운 손길로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아저씨의 손길에 이제는 익숙해져있었다. 얼굴도 맞아봤고, 어디 하나 안 맞아본 곳이 없었기에 아저씨는 경찰이자 내 전담 의사이기도 했다. 항상 나에게 약을 발라주는 아저씨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은 화난 표정이었나.
"이제 진짜 그만하자."
마지막 손가락에 밴드를 붙인 아저씨가 시선을 내리깔고 내게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을텐데, 왜 오늘은 쉽게 넘기지 못했을까. 무언가 콱 박히는 느낌에 아저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저씨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비어버린 밴드 껍데기를 가만히 만지던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나 이제 너 못 봐줘."
"..."
"너 사고 치고 여기 와도, 약 발라줄 사람 이제 없어."
"..."
"정신 차리고 공부 해."
"..."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야."
내 눈을 피한 채 아저씨는 그대로 일어나 구급상자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버렸다. 멍하니 그 잔상을 바라보던 내게 다른 경찰 아저씨는 이제 그만 들어가보아도 좋다고 했지만,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저씨의 이름이 올려져있는 그 책상 앞에서, 한참을.
*
"여주, 갔어요?"
"아직, 한 시간은 더 있을 것 같던데."
"…빨리 집 보내요!"
"안 간대, 저 고집불통을 누가 말리냐."
―가 자신의 부탁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 여주를 확인하고 온 선배에게 울상을 지었다. 아, 쟤 진짜 저러면 안되는데.
"뭘 어쩌겠냐, 딱 봐도 너 좋아하는게 눈에 보이는데."
"…미치겠네."
"정 떼라, 얼른."
"……."
사무실 벽에 쭉 미끄러져 기대 앉은 ―가 제 손에 들려있는 전근신청서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 공부시키려고, 이렇게까지 한다. 진짜. 반 년전, 큰 사고를 쳐 처음으로 경찰서에서 만난 둘의 시간은 어느새 빠르게 흘러버렸다. 애매한 사고들만 들고 오는 여주를 바라보며,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약속도 수십 번. 그러나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 그 이유는 모두 ― 자신에게 있었다.
"―아저씨 어디갔어요?"
"오늘 휴가. 그건 그렇고 너, 사고 또 쳤어?"
"아저씨 보려면 사고 쳐야돼요."
"…뭐?"
"아저씨가 내 전담이거든요. 오늘 아저씨 휴가니까 그냥 갈게요. 빠이."
후배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어떻게 하다 경찰이 날라리 고딩에게 마음을 줘버린건지. 내가 호구지, 내가 호구새끼야! 다른 한 손으로 제 머리를 퍽퍽 치던 ―가 이제는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가 앉아있는 이 곳은 혼란 그 자체였다. 처음부터 걔랑 만나지 말았어야했어, 아니, 그냥 내가 경찰이 되는게 아니었는데, 아, 그냥 태어나지 말걸 그랬나.
"―. 애기 갔다."
"갔어요?!"
벌떡 일어난 ―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바로 제 책상을 쳐다보니 아이가 없다, 진짜 가버렸다. 텅 비어버린 그 앞자리를 보니 무언가 가슴에서 꽉 막히는 느낌이 들어 그 빈자리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가 전근신청서를 손에 들고 힘없이 걸어나왔다. 느린 걸음으로 제 의자에 앉은 ―가 방금까지만 해도 불량한 눈빛으로 앉아있는 여주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비행청소년 담당이었던 ―에게 언제나 1순위었던 그 아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온 그 아이를 위해 ―의 책상에는 언제나 여주가 좋아하던 과자들이 올려져있었다.
"이제 이 과자도 안녕이네."
―가 여주가 제일 좋아했던 과자를 하나 집어들었다.
"진짜 애기야."
"이런 거나 좋아하고."
"누가 애기인데요."
"!"
―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과자봉지를 떨어트렸다. 눈 앞에 보이는 건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여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벌떡 일어나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를 멈추게 한건 여주였다.
"잠깐 얘기 좀 해요."
*
"..왜."
"아저씨, 나 피하는 거에요?"
아저씨를 카페로 끌고 온 내가 제일 물은 것은, 날 피하냐는 질문이었다. 누가봐도 아저씨는 '일부러' 나를 피하고 있었다. 나와 한번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아저씨는,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던 복숭아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시곤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너 공부 하라고."
"나 공부 해요."
"너가 공부하면, 난 너랑 결혼한다."
"녹음 했어요."
"…야!"
"아저씨 보려고 경찰서 다시 간거 아니에요."
"그럼."
"우산 놓고 온거에요."
내 황당한 대답에 아저씨는 픽 웃어버렸다. 오늘 처음 본 아저씨의 웃음, 그 웃음이 꽉 막혀있던 내 마음 한 구석을 녹게 만드는 듯 했다. 내 대답 이후로 한참을 이어지지 않던 대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오지 마."
"..."
"사고도 치지 말고."
아저씨는 여전히 내 얼굴은 보지 않은 채 말을 했다. 오늘은 모든게 의문이었다. 갑자기 아저씨가 나를 왜 피하는지, 비는 또 왜 갑자기 세차게 내리는지. 슬쩍 본 아저씨의 자리에 우산은 없었다. 만약 아저씨가 카페를 나가버린다면, 아저씨는 비를 맞고 경찰서로 갈 테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보면 내가 일방적으로 차이는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를 생각하는 나 조차 의문이었다.
"싫어요."
"왜."
"여기 올 일 없어지잖아요."
"나 내일부터 서에 없다니까?"
"..."
"그러니까 공부 해."
"나 때문이에요?"
"..."
"아저씨 가는거, 나 때문이에요?"
"..."
"누가 아저씨 잘랐어요? 나 때문에 아저씨 이제 일 하지 말래요?"
"아, 그런거 아니니까!"
한번도 큰 소리 낸적 없던 아저씨는 오늘 처음으로 내게 화를 냈다. 그런거 아니니까, 딴 생각하지말고 공부 해. 그리고 이제 경찰서 올 생각 하지말고.
"음료 값, 들어오면서 다 계산 해 놨으니까 그냥 가도 돼."
"..."
"…공부하면,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아저씨가 나간 카페 문이 닫혔다. 내 예상대로 아저씨는 그 세찬 비를 그대로 맞으며 빗 속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저씨를 쫓아 나간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묵묵히 비를 맞으며 주먹을 꽉 쥔채 걷고 있는 아저씨의 손을 뛰어가 잡았다. 차가운 비는 젖어들었고, 우산을 아저씨에게 씌우고,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것을 뚝뚝 떨어트리며,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 울음을 감추었다.
"아저씨."
"..."
"공부하면, 나 보러온다고 했죠."
"..."
"공부할게요."
"..."
"나 공부할테니까!"
"..."
"나 다시는 안 보겠다는 말, 절대 하지마요."
"그리고, 나 지금까지 치고박고 싸운거."
"..."
"다 아저씨 때문이었으니까, 나중에 아저씨가 책임져요."
"..."
"기다릴게요."
우산을 손에 어떻게 쥐어주고 도망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그 날 난 아주 독한 감기에 걸려 일주일동안 학교를 빠져야 했다.
*
아저씨와 헤어진 이후, 나는 한번도 경찰서를 가지도, 찾지도 않았다. 죽지 않을 만큼만 공부했다. 혹시나, 내가 정말 공부를 하면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언젠가 아저씨가 내게 주었던 자신의 명찰을 항상 가방 깊숙한 곳에 달아놓곤 언제나 독서실로 향했다. 독서실로 가는 길엔 아저씨가 근무하고 있었던 경찰서가 있었는데, 그 곳을 지나갈 때면 항상 차가운 비를 맞는 듯 했다.
졸업식이 되었다. 학교 앞엔 졸업식 플랜카드와 내가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플랜카드가 걸렸고, 나는 졸업식을 위해 학교 교문을 통과하며 어딘가에 서있을지도 모르는 아저씨의 얼굴을 몰래 눈으로 찾았다. 하지만 졸업식이 시작하고도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졸업식 행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나올 때도, 아저씨의 얼굴을 찾아 이리저리 헤메다 누군가와 부딪혀 졸업장을 떨어트렸을 때도, 아저씨는 찾아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은 아저씨였고, 그 다음은, 이렇게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공부한 내가 너무 바보같았다는 생각. 아무도 오지 않아 비어버린 내 손에, 떨어트린 졸업장을 주웠지만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었을까. 별로 좋지 않은 추억을 남겨준 학교는 내가 명문대에 합격하니 그제서야 나를 인정해주었다.
눈이 부슬부슬 떨어지는 교문으로 향했다. 졸업식의 안전을 위해 줄을 지어 세워져있는 경찰차들을 보며, 저기에 아저씨가 타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경찰차들을 지나가면서도 내 시선은 경찰차에 꽂혀져 있었는데, 내가 걷던 길이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였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던 거다.
"김여주!"
"!"
횡단보도를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갔던 나를, 칭찬해야 하는지 혼내야 하는건지, 그렇게 몇 년만에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어떻게 왔어요."
"너 졸업식이니까."
"경찰차에 숨어있었어요?"
"아니, 너 태우고 맛있는거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
"너가 차에 치일 뻔 했잖아."
날 데리고 레스토랑에 데려온 아저씨는 날 보며 울상을 지었다. 원래는 짠, 하고 나타나서 날 울리곤 꽃다발을 전해주려고 했다던 아저씨의 계획. 하지만 얼빠진 듯한 내가 불안해 몰래 경찰차에서 내려 날 확인하다가,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날 보고 얼른 뛰어가 날 안아버렸다는 아저씨.
"나 공부했어요."
"봤어, 플랜카드."
아저씨가 포크에 고기를 하나 찍어 내 입에 먹여주며 웃었다. 잘했어, 진짜 잘했어.
"나 가고 나서, 사고는 안 친거지?"
"쳤어요."
"뭐?"
"문제집을 한 대 쳤죠."
야! 내게 또 한번 당했다는 듯 울상을 짓는 아저씨를 보며, 이제 정말 다시 시작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또 몇 년 전 밥 먹듯 불려갔던 경찰서에서 보았던 아저씨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이제는 그 모습을 경찰서가 아니라, 다른 좋은 곳에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너가 비 오던 날 나 잡았을 때."
"..."
"그 다음 날, 너네 학교에 몰래 갔었어."
"진짜?"
"그냥, 마지막으로 얼굴 보고 싶어서, 갔는데. 너가 학교에 안 왔다고 그래서-"
"감기 걸렸었어요."
"뭐?!"
"그 때 비를 하도 맞았더니, 감기 걸려서."
"... 그래서 난 너가 못된 생각이라도 한 줄 알고!"
"..."
"전근신청서, 안 냈단 말야."
"...뭐라고요?"
내가 몇 년동안 독서실을 가며 지나쳤던 그 경찰서에, 아저씨는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진이 다 빠져버린 나는 그만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말았고, 아저씨가 옆에 앉아 달래주는 동안 나는 한참을 울었다.
"미안, 내가 잘못 했어."
"..."
"아저씨가 잘못했어, 여주야. 응?"
"...말 걸지 마요."
레스토랑을 나와 어두워진 저녁 하늘 밑을 걸으며, 아저씨는 계속 쩔쩔 맸다. 너무 울어 내 코 끝은 빨개지고, 추운 날씨 때문에 볼도 빨개지고. 그런 모습이 웃겼는지 아저씨는 달래주면서도 한참을 웃고. 결국 우리 집에 다 올때까지 아저씨는 내게 계속 사과를 했다.
"너네 집 오랜만이다."
"..."
"옛날엔 경찰차 타고 왔는데, 지금은 걸어오네."
"걸어온 적 있었거든요."
"응?"
"그 때 아저씨가 경찰차 사고내서 몇 달동안 못 탔잖아요."
"아, 맞다."
"..."
"삐졌어?"
아저씨가 내 앞에 서서 씩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진짜, 경찰이 저렇게 잘 생기면 정말 불법인데. 낯설은 마음에 고개를 돌리니 아저씨가 그 고개를 따라온다. 있잖아, 여주야.
"아저씨가, 너 너무 오래기다렸다."
"..."
"근데 또 기다리려고."
"..."
"너 이제 대학생이잖아."
"..."
"음, 그러니까."
"..."
"아저씨가, 여주 경호원 해줄게."
"...아저씨 일은요."
"일도 하고, 내 새끼 경호원도 하고."
"..."
"여기까지 잘 와줘서 너무 고마워."
"내일, 아저씨가 데리러 올테니까. 우리 놀이공원 가자."
"..."
"졸업 축하해, 아가."
너누야, 생일 축하해 ♥
얼른 나아서 예쁘게 노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