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이 녀석은 내 주위를 얼쩡대며 눈치보기에 바쁘다.
"꺼지라고 했어."
"아..형. 진짜, 왜 그렇게 날카로워요."
삐져도 단단히 삐졌네, 응?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는 네 목소리에 한번 핏줄이 빠직 하고 서는것 같다.
"삐지긴 누가 삐져....!"
결국 녀석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것도 나다.
그걸 또 순간 느끼고는 숨을 내쉬었다.
".....됐으니까 빨리 나가기나 해."
"이제 얼굴 볼 시간도 얼마 없을텐데, 형. 나좀 봐봐요."
내가 앉은 쇼파 옆에 털썩, 맘대로 앉아버린다.
넌 왜 그렇게 네맘대로야. 뭐든, 너는...
"........"
아무 말도 없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살짝 웃고만 있는 너는 쓸데없이 달달하기만 하다.
멀건 그 얼굴에 또 짜증이 솟는다.
왜 그렇게 날을 세워도 싫은 티를 못내.
"....뭘 봐."
"그냥. 피부 좋다 싶어서."
"애 취급 하지 마."
"애 취급이라니, 나는 그냥 너무 예뻐서 넋 놓고 본 거 뿐인데"
"기집애 취급도 하지 마."
"그런 적 없어. 형이 꼬여있어서 그래요."
눈이 휘어지도록 웃으며 내 볼을 쓰다듬는 네가 신기하다.
도무지 지칠줄도 모르고 나를 건드린다.
분명 화가 났었는데 도리어 내가 이상한 사람 같이 느껴지는 이 상황은 뭐지.
"저리가, 레게 징그러워."
"형도 레게 했으면서?"
"........"
"난 형이 레게머리 한것도 좋은데."
형은 역시 뭘 해도 간지가 나.
중얼중얼 거리는 입술이 바로 옆에서 움직인다.
"몬스터 때 버섯머리도 귀여웠고, 뭐 다 이뻤지.. 형은 아닌가봐요? 이거 그렇게 징그럽나?"
아니.
나도 다 좋아해.
"우리 소속사가, 참 모험적인건 다 나 시킨다니까? 파인애플 머리나 레깅스 같은거."
인물이 좋아서 그래, 그쵸?
정작 나는 아무 말도 안하는데, 자기혼자 이런저런 넉살좋은 말을 하며 나를 달랜다.
진짜야.
나도 네가 머리를 어떻게 하든 옷을 어떻게 입든 다 좋아.
"형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머리 하고 싶다. 언제 형한테 칭찬들어보나."
가끔보면 내 스스로가 진짜 답답하다.
사실, 화가 난 것도 녀석의 탓은 아니다.
어제 스케줄이 끝나고 피곤함이 덮쳐와 맥주 한캔을 땄는데, 괜히 센치해져서 녀석의 이름을 인터넷에 쳐봤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팬들이 찍은 영상들을 모아놓은 블로그에 들어가게 됐다.
'지호야~'
높고 부드러운 여성 팬의 목소리에 환한 미소를 띄고 돌아보는 녀석이 보였다.
팬들의 영상이 거진 그러하듯, 몇번이고 반복되는 영상과 그에 흘러나오는 달큰한 배경음악.
꽤나 유명한 영상인듯 했다.
그 영상 얘기를 꺼내며 신경질을 부리자 특유의 커다란 웃음을 터뜨린 녀석의 반응을 생각하면.
"형, 아직도 그거때문에 삐진거에요?"
"안삐졌다고 몇번 말해. 좀 가. 너 스케줄 없어?"
"아니이..그러지 말고 날 좀 보라구요. 형, 나 봐봐요, 응?"
끈질기게도 얼굴을 들이미는게 울컥한다.
나도 나 속좁은거 알아, 그래서 더 짜증나니까 좀 가...!
"뭐가 문제에요, 다 팬서비스인거 형이 더 잘 알면서?"
"........"
"나는 그런 목소리 별로에요."
어련하겠어.
너 잘못한거 없다니까.
"나는 형같은 목소리가 더 좋아."
섹시하고, 날카롭고, 귀엽고, 근데 카리스마도 있고. 짱좋아 진짜.
주저리주저리 붙여대는 네 말이 싫지 않은데도 손가락을 뻗어 코를 밀어냈다.
"좀 가, 알았으니까. 화 안났어."
"에이 진짜, 어?...매니저 형 전화왔다."
"....."
"라디오 갈시간 벌써 다됐나봐요."
"그럼 가."
가지 마.
"형, 나 진짜 화 난거 아니죠? 형. 진짜 내맘 알죠 진짜?"
"어, 알았다니까."
"진짜.."
슬쩍 내 팔을 끌어 볼에 툭, 입술을 맞대고는 잠시 중얼거린다.
"더 있고싶은데."
"....까불어. 됐으니까 가봐. 애들 기다려."
안갔으면 좋겠어.
"형, 문자할게요. 응? 알았죠? 폰 켜놔야돼?"
"응...."
몇번이나 내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애같은 뽀뽀를 연발한 네가 결국은 대기실을 나선다.
사실은 그 팬의 부름에 그런 환한 웃음으로 돌아본 너에게 화난게 아니었어.
'지호야~'
그때 돌아본 네 얼굴이 괜히 더 행복해보였던건,
그렇게 부드럽고 높고 나긋한 목소리로 널 부를 수 없는 내가 느끼는 자격지심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 여자보다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널 불러도 너는 훨씬 달콤한 표정을 하고서 날 볼거라는 걸 안다.
그래도, 이건 내 욕심이야.
나는 여자일수 없으니까, 얼굴도 모르는 그 팬이 그냥 유치하게 미운거야.
'우지호.'
'야, 우지호.'
'우지호!'
평소에 다정히 너의 이름을 불러주지도 못하는건 정말 답답하다.
특별히 자존심을 세우는건 아닌데, 너에겐 사소한것 하나하나가 그냥 어렵고 창피하다.
조용히 입을 연다.
"지호야."
텅 빈 대기실에 목소리가 울린다.
"지호야..."
너는 이미 나가고 없는 대기실.
아무도 오지 않는 이곳.
"지호야...."
너는 불러도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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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거좀 써줘
자급자족 벅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