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전 남친이 직장상사 03
어릴 때부터 나는 '어머니'라는 존재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그런 존재였다. 어머니의 말이 옳던 그르던 그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랐다. 그래야 아버지한테 매를 맞지 않으니까. 강압적이고 순종적이여만 하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이 생활이 갑자기 힘들고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한 아이를 만남으로써 내 생활을 바꾸고 싶었다. 그건 고등학교 2학년의 일이었다.
운동신경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 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나는 늘 옥상에서 축구를 하는 친구들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보고있자니 내 가방 속에 구겨져 있는 성적표가 떠올랐다. 불안했다. 또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나는 어느정도의 결과를 받아와야 칭찬 받을 수 있는걸까.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릴때의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애정결핍이 있었던 것 같다. 늘 불안해 하면서 살고, 부모의 칭찬 하나가 간절해 공부하고. 웃긴 사실에 눈물이 났다. 그냥 여기서 확 떨어져서 죽으면 이런 고민쯤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싶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행동은 쉽게 옮겨졌던 것 같다. 사실 이랬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제발 오늘은, 성공하길 바랐다.
아프더라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죽게 해주세요. 이게 내가 죽기 전에 신에게 하고싶은 말이었다. 그래도 생을 끝내는 것인데 더 떠올릴 사람은 없을까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그럴리 없겠지만 정말 아프지만 않게 해달라고. 최대한 빨리 죽게 해달라고. 18살의 나는 하늘에 그렇게 빌었다. 그렇게 한 발짝 내딛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내 손을 턱하니 잡아왔다. 놀라서 그대로 뒤를 돌아보니 한 여학생이 날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 놔 줘. "
" 못 놔. 놓으면 너 여기서 떨어질거잖아. "
" 놔 줘, 제발. "
제발 나 좀 죽게 해 줘. 손을 강하게 뿌리치자 또 다시 잡아왔다. 따지려는 마음에 난간에서 내려오자 그제서야 그 여학생은 내 손을 놓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서는 혼자 중얼거린다. 정말 다행이라, 그렇게 말했다. 모진 말을 하려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대로 주저앉아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봤다. 별 게 다 나를 방해하는구나. 멍한 나를 가만히 보던 여학생은 내게 샌드위치 하나를 건넸다.
" 이거 먹을래? 점심 안 먹었지? "
" ... "
" 맛있는 거야, 안에 참치 들어있어. 꽤 비싼거야 그거 "
" ... "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지 마. 난 너가 살아줬으면 좋겠어. "
그 말을 듣고선, 그 작은 샌드위치 하나를 받고선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정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여학생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내 사정까지 다 털어놓으면서. 짜증났을 수도 있을텐데 그 여학생은 내 말을 묵묵히 듣고는 등을 토닥여줬다. 그러다가 문득 내 이름이 궁금했는지 내 이름을 물어왔다.
" 넌 이름이 뭐야? "
" 김민규. "
" 난 나봉이야. "
" ..응. "
" 기억하고 있어. "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했던 너가 날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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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잠을 설치느라 늦잠을 자 버렸다. 내 머리만 수백번은 때린 것 같다. 제발 기억 좀 났으면 좋겠는데 아예 기억이 안 난다. 가슴 속이 울화통으로 꽉 차있는 느낌이다. 팀장님을 보면 괜히 울컥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또 막상 기억하려니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엘레베이터 안에서 멍하니 올라가는 층수만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 안으로 커다란 손이 슥 들어온다. 놀라서 옆을 바라보니 팀장님이 또 날 보고 웃고있었다.
" 좋은 아침, 어제 잘 들어갔어요? "
" 아, 네.. "
" 왜 이렇게 저기압이에요. "
왜겠어요, 그쪽 때문이죠. 계속해서 옆으로 붙어오는 팀장님에 어색하게 웃으며 옆으로 피하려 하는데 어깨를 딱 잡아버린다. 당황해서 푸드덕 거리자 혼자서 막 웃어댄다. 엘레베이터에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이러시면 어쩌자는 건지 정말.
" 아직도 나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떠올랐고? "
" 네, 아 근데 저 진짜 도저히 모르겠는데.. 대체 뭐에요? "
"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요. 그쪽이 잊어버려 놓고. "
그러게 말이에요 진짜. 저도 답답해 죽을 것 같아요. 한숨만 푹 쉬자 자기도 같이 한숨을 쉬더니 엘레베이터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리한다. 그 모습을 보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 근데 왜 그렇게까지 기억해내려는 거에요? "
" 네? "
" 그냥 전여친인 거였잖아요. 별로 좋은 기억이였던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까지 기억하게 해주려고 하는거에요?"
" 내가 미안한 게 많거든요. 그쪽한테. "
괜히 물어봤나 싶었다. 나한테 미안하다는 게 많다니, 더 복잡해지는 머리에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 그렇게 고생하면서까지 기억할 필요는 없어요. 다독이듯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괜시리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 나도 답답하네요."
" ... "
"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니까. "
" ... "
" 이러다 그쪽이 평생 기억 못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
" ... "
" 간단한 문제는 아닌가봐요. "
그렇게 말하곤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가는 팀장님의 뒷모습은 쓸쓸해보였다. 그 쓸쓸한 뒷모습을 보고 어렴풋이 다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람과의 일을 기억해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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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봉이씨! "
" 안녕하세요. 순영씨. "
순영씨는 인사를 하자마자 컴퓨터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는 굉장히 열심히였다. 또 타자연습? 하면서 슬쩍 화면을 봤더니 정말 일을 하고 있었다. 오, 왠일이지. 오늘은 정말 바쁜가보네. 나도 바쁘게 인사하는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서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았다. A4용지 하나와 볼펜 하나를 꺼내 책상 위로 올려두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팀장님과 나의 옛날 일을 떠올리는 거다. 내가 모든 걸 잊으려 노력했어도 경험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조금이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은 내 고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을 핵심키워드로 간단히 정해서 종이에 적어 보기로 했다. 떠오르는 대로 적자 공부, 내 친구였던 수정이, 내 학교 이름 등등 다 적는데 전혀 관련된 단어가 나오지 않자 볼펜을 치우고 그대로 엎드렸다. 어떻게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고 이렇게 싹 다 잊어버리냐.. 답답한 마음에 내 머리를 탓하자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어젯밤의 참치샌드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볼펜을 다시 가져와 종이 위에 무언갈 적었다.
'김민규'
이름을 적자마자 울컥하는 기분과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에 순영씨의 부름도 뒤로하고 팀장실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난 저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김민규'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저 사람의 이름이 만약 김민규가 맞다면, 나는 완전히 기억에서 잊어버리진 않은게 아닐까. 두 어번 노크를 하고는 대답도 듣지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 뭡니까. "
" 김민규. "
" ... "
" 김민규.. 맞죠,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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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직 3화인데 꽤 많은 것들이 나온 것 같은... 민규와 여주의 첫만남과 여주가 민규의 이름까지 기억해내는 것까지 나왔네요'ㅅ'
늘 많이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