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전 남친이 직장상사 04
"김민규."
"..."
"김민규 맞죠, 이름."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숨을 크게 한 번 쉬고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온다.
"그럼 김민규가 아니면 누굽니까."
"내가, 지금까지 팀장님 이름 모르고 있었잖아요."
"섭섭하네요."
"아, 진지하게 들어줘요 좀!"
"네, 그래서요."
"내가 스스로 기억해냈어요. 팀장님 이름."
자신과의 과거를 내가 조금이라도 기억했다고 하면 팀장님은 정말로 놀라면서 기뻐할 줄 알았는데 마냥 그런것도 아니였다. 분명 행복해하는 눈빛인데 어딘가 슬픔이 담겨있었다. 보고 있던 자료를 덮고 내게 다가온 팀장님은 고개를 숙이더니 그대로 날 꽉 안아왔다. 당황해서 밀어내려 하자 굉장히 세게 잡고 있어서 그러진 못했다. 사실 조금 더 힘을 줘서 밀어낼 수 있었는데, 내가 조금 더 안고 싶었던 것 일 수도 있다.
"고마워요."
"..뭐가요."
"기억해줘서."
"잊어버려서 미안해요."
마치 내 잘못이 아니라고 다독여주기라도 하듯 날 더 꽉 안아왔다. 물론 나는 그걸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앞으로 뭔가 더 기억나면 계속 나한테 말해줘요."
"..네."
나는 이 사람을, 그리고 이 사람에게 자꾸 관심이 생기는 날 위해서 빨리 기억을 되찾아야 했다.
-
내가 자리에 돌아오자 순영 씨는 무슨 팀장실로 그렇게 전투적으로 달려가냐고 찡찡거렸다. 다른 이야기로 둘러대려다가 문득 내가 언제까지 팀장님과 나의 관계를 순영 씨에게 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도 점심시간이였기에 점심을 먹으면서 순영 씨에게 내 사정을 다 말해주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순영씨."
"왜 그렇게 갔었냐니까요? 어?"
"배는 안 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 우리."
"그러죠."
밥 이야기를 하자마자 좋다면서 컴퓨터 화면을 끈다. 도대체 일도 잘 안 하면서 매사에 컴퓨터는 왜 그렇게 붙잡고 있는건지. 애써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엘레베이터에 타자 뒤에서 팀장님도 같이 따라서 탄다. 흘끔 쳐다보자 뭘 보냐는 듯 눈썹을 위로 슥 올렸다 내린다. 입 모양으로 '밥 먹으러 가요?' 라고 묻자 뭐라는지 모르겠다며 인상을 찌푸린다. 주변사람 눈치를 슬쩍 보고는 밥을 먹는 시늉을 해 보이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혼자?' 이번엔 고개를 젓는다. 누구랑 먹으러 가는 거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슬쩍 돌아 본 순영씨가 이게 뭐하는 거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ㅎ"
"ㅋ"
재밌는 사실을 안 것처럼 묘한 표정을 짓더니 엘레베이터 밖으로 쌩하니 나간다. 아씨.. 뭔가 거대한 걸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에 망연자실 했다. 그러자 팀장님이 날 빤히 보더니 엘레베이터에서 내린다. 괜찮다. 어차피 다 말하려고 가는 건데 뭐. 따라나가 순영 씨가 대체 어디로 갔나 둘러보는데 시야 멀리서 팀장님과 어느 여자가 함께 건물에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멍한 느낌에 발걸음을 뚝 멈췄다. 회사 동료일 수도 있지 뭐. 애써 신경을 끄려는데 자꾸 날 꽉 끌어안던 팀장님이 생각나고 여자와 함께 건물 밖을 나가던 모습이 아른거려서 신경을 끌 수가 없었다. 세상 여자는 나밖에 없는 것 처럼 말 하더니 뒤에선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었던건가..
"뭐해요."
"...아, 가죠."
"뭐 먹을건데요? 난 구내식당도 괜찮은데."
"그럼 그렇게 해요."
반쯤 정신이 나가있는 날 이상하게 보던 순영 씨는 이내 날 끌고 구내식당으로 끌고 갔다.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 없고 한적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애써 생각나는 그 둘의 모습을 잊어버리려 애쓰며 내 본래의 목적을 말하려 했다.
"저..순영 씨."
"네?"
"지금 제가 하는 얘기는, 절대로 제가 기억상실증에 걸렸거나 무슨 사고가 나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들어주세요."
"..?"
"알겠죠?"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 한 것 같은데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과연 이 사람에게 말해도 되는 문젠가.. 싶었지만 될대로 대라 싶어서 지금까지 내가 팀장님과 겪은 일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
"..진짜요?"
"...네."
이야기를 다 해주고 나자 잠시 멍하게 있더니 수저를 탁 하고 놓는다. 그러더니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어떡하냐며 울어버린다. 수많은 반응을 예상해보았지만 이런 반응은 내 경우의 수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당황해서 손수건을 주자 눈가를 닦더니 심호흡을 한다. 안정이 되나 싶더니 또 다시 울음이 터져 왕 하고 울어버린다.
"그럼..지금 팀장님이랑 일어났던 일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거에요?"
"..네."
우리 팀장님 불쌍해서 어떡해 진짜.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눈물을 닦아냈다. 한참을 울다가 좀 안정이 되어 보이길래 왜 운 거냐고 묻자 너무 애절한 사랑이야기 같단다. 사랑은 무슨. 딱히 좋게 끝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잖아요. 자신이랑 사귀었던 사람이 아무 것도 기억 못 하고 있고."
"..."
"그 추억들을 혼자서만 기억한다는 사실을 느끼면... 아 진짜 너무 슬프다."
정작 그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기 혼자 더 슬퍼서 아주 난리다. 손수건이 하나 더 필요할 것 같아 휴지라도 건네주자 괜찮다며 심호흡을 한다. 그 모습을 보자 그래도 내 편이 되어주고 나에게 조언을 해 줄 사람이 한 명 생겼다는 게 든든했다.
"내가 이렇게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정말 맞는 걸까요?"
"아픈 기억일 수도 있다고도 했잖아요? 팀장님이."
"네."
"근데 난 그 아픈 기억을 마냥 피하기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
"그리고 어쩌면 그 기억을 다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팀장님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난 내 아픈 기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
점심시간을 거의 끝나갈 시간이라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있는데 팀장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 그 여자와 밥을 먹고 온 건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의심과 궁금증에 몰래 쳐다보자 팀장님이 날 정확하게 바라봤다. 헉 하고는 고개를 숙이는데 잠시 자길 좀 보자며 날 부른다. 보고서에 대한 내용이란다. 괜히 기대했던 나는 일 이야기가 나오자 맥이 확 빠졌다. 흐물흐물 거리는 발걸음으로 팀장실로 들어가자 양복 마이를 벗고 있던 팀장님과 마주쳤다.
"아 봉이 씨, 이 보고서에 들어간 자료 있잖아요."
"아.. 네."
그렇게 정말 업무적인 이야기만 나눴다.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아서 가만히 서 있었더니 무슨 할 말이 있냐고 물어왔다. 어느새 사적인 관계를 회사까지 끌고 와서 신경쓰고 기대하는 내가 어이없어서 아니라며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날 붙잡더니 잠시 자길 따라오란다. 괜히 좋아지는 기분에 웃음을 숨기기 힘들었다. 내가 보이고 있는 행동과 표정은 누군가 나한테 이 사람을 좋아하냐고 물어봐도 전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옥상에서 부는 바람은 꽤 찼다. 시려오는 팔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팀장님은 멍하게 하늘을 보더니 난간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져서 난간으로 걸어가는 팀장님을 따라갔다. 난간에 기대서 나한테 말을 걸려고 하는데 무의식 중에 팀장님의 손을 꽉 잡았다. 팀장님은 놀란 듯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 행동에 나도 조금 놀랐다.
"..왜 그래요?"
"뭔가.. 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
"혹시 과거에 이런 적 있었어요?"
"..."
"꼭 비슷한 일이 있었던 일 같아서."
-
♡ 여동생/쿱/쭉쭉빵빵/모찌/릴리/밍규/호신술/셀레나/순개/모시밍규/셉요정/문롱바/꼬솜/원우지훈/햄찡이/pp_qq/비소이/밍구리밍구리/순영바/세봉이/몬/비니비니/전주댁/수선화안녕/아기돼지/마요덮밥/호시몇분?/세맘/청포도 ♡
* 혹시라도 암호닉 빠진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 암호닉 신청은 댓글로 자유롭게 해주세요.
* 질문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모두 답해드립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물어봐주세요~
그래도 나름 여주가 빠르게 기억해주고 있습니다..(작가가 답답한 걸 못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