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전 남친이 직장상사 01
"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신입사원 나봉이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좋은 대학에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밤낮 할 것 없이 코피 터져가며 공부를 하며 자신의 전부를 걸어 노력한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여 왔고 그래서 지금 이 위치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아직 올라갈 길은 한참이나 남았지만. 내 힘으로 해낸 첫 회사에 첫 취직이였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나이도, 누구에게 기대어 책임을 전가할 나이도 이제는 훌쩍 지나 어느새 28살이였다. 난 내가 평생 19살로 남아있을줄 알았다.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나서의 그 기쁘던 순간은 아직까지도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당연히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건 부모님이였고, 부모님은 내가 기뻐하는 모습에 더더욱 기뻐하셨다. 이제부터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다. 첫 출근 하루 전인 어제부터 인사멘트만 수십번 수백번,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르겠다. 자기 전까지도 열심히연습하다가 다시금 느껴진 긴장감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땐, 좋은 사람들이 날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몰라요 봉이씨! 이번에 수석 입사 하셨다면서요. "
" 아..하하, 네.. "
꼴에 나도 나름 수석입사였다. 피 터지게 공부한 보람이 또 여기서 느껴졌다. 쭈뼛쭈뼛 가만히 서있으며 어쩔 줄 모르는 나한테 한 명씩 악수를 건네왔다. 나는 서둘러 한 명씩 모두 악수를 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다들 정말 친절해서 다행이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가려 발걸음을 돌리는데 문득 빤한 시선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서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까부터 날 보고 있었던 것 같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스쳐가다 마주친 눈빛일 수도 있는데, 눈을 마주친 그 후에도 날 계속해서 빤히 바라보았다. 그 사람의 눈빛은 유독 차갑고 사나웠다. 꼭 나한테 악감정이라도 있는 사람 같은 그런.
언제까지 서로 바라만 볼 수 없는 마음에 인사라도 할까 싶어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이니 그 남자는 내 인사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팀장실로 쌩하니 들어가 버렸다. 사람 무안하게.. 어떻게 쌩하니 들어가버리냐. 팀장실로 들어가는 걸 보니 팀장인 것 같은데, 이 팀의 팀장으로 유추되는 사람은 성격이 매우 더러운 것 같다. 괜시리 머쓱해지는 기분에 뒷머리를 몇 번 만지고 내 자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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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대기업이라 그런가 회사 분위기가 일할 때만은 확실하게 긴장감있는 분위기로 잡혀있다. 어떻게 된 게 다들 한 마디도 없이 컴퓨터와 서류를 번갈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물론 이 곳에 처음 들어온 신입사원인 나만 빼고. 빵빵한 에어컨 바람에 괜히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직 내가 이 회사에 적응을 못해서 그런건가 싶어 일단 이 회사에 좀 익숙해져 보기로 했다. 일단 옆 사람과 좀 친해질까 싶어 살짝 바라보니 눈이 살짝 찢어진 나와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사원이 열심히 타자를 두들기고 있었다. 이 사람은 뭔가 살짝 사나워 보이고 열중하는 도중에 내가 건들면 화를 낼 것 같아 다시 내 컴퓨터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불쑥 옆으로 훅 들어온 얼굴에 놀라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 ...! "
" 안녕하세요. 절 열심히 훔쳐보시길래. "
" 아, 네.. 안녕하세요 "
" 나봉이 씨? 맞죠? "
" 네! "
" 전 권순영이에요. 아침은 먹고 왔어요? "
오, 젠틀맨이다. 참치샌드위치를 건네는 순영씨에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살짝 본 컴퓨터 화면은.. 컴퓨터 자판연습이 켜져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 열심히 타자 연습을 하고 계셨구나..
" 재밌어 보이시네요. "
" 응? "
" 타자연습이요. "
" ... "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멀뚱히 날 보던 순영씨는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보더니 후다닥 모니터를 꺼버렸다. 그 모습에 푸하하, 웃었다. 재밌는 사람이다. 삭막한 분위기 속에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 뭐.. 그렇잖아요. 회사에서는 뭘 해도 재밌는 거. "
" 네, 그렇죠 뭐. "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우리는 멀리서 다가오는 팀장님에 헙 하고는 얼른 일에 몰두하는 척을 하였다. 다행히도 우리쪽으로는 오지 않고 밖으로 나가신다. 순영씨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곧 점심시간이라며 힘내라는 말에 답해준 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적어도 외롭진 않겠다 싶었다. 떨어진 담요를 주워 좀 더 끌어와 덮었다. 한 여름인데도 꽤나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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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몸이 이상신호를 보낸 것이 폭발해버렸다. 입사 첫 날부터 나도 참 다사다난했다. 액땜하는 건가. 점점 열이 오르는 몸과 아파오는 머리에 나는 결국 잠깐 회사 건물 안에 작은 응급실로 오게 되었다. 이게 뭔 일이야 진짜. 개도 안 걸리는 여름감기라는 처방을 내려준 의사 선생님이 가시고는 정신이 멍했다. 일단 좀 살고보자는 마음으로 잠깐 누웠는데 스치듯 본 옆 침대에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 있어 다시 스르륵 일어났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아까 나와 눈이 마주쳤던 팀장님이다. 아까 잠깐 나오시더니 여기 누워계셨던 건가. 내가 알 상황은 아닌 것 같아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 감기에요? "
" 네.. 어, 팀장님 안 주무셨네요. "
" 저 아시네요, 아직 소개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
" 아, 아까 팀장실로 들어가는 걸 봐서. "
" 첫 출근인데, 몸 관리를 잘 해야지. 감기나 걸리고. "
나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에 굉장히 의외였다.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건가보다.
" 그러는 팀장님은 어디가 아프세요? "
" 저도 감기. "
몇 마디 나누고서는 할 말이 없어져서 멀뚱멀뚱 천장만 보는데 이내 다시 말을 걸어왔다.
" 모르는 척 하는거에요 지금? "
" 네? "
" 나 너 고등학교 때 남친이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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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와 여주의 이야기는 차차 풀어지지 않을까 싶은 8_8..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