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유부녀
w.희익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주로 나 혼자 떠들고 민윤기씨는 그저 밥만 푹푹 퍼먹었다. 처음에 긴장한듯 떨리는 손으로 밥을 퍼먹던 그가 놀랍다는듯 눈썹을 들어올리더니 순식간에 해치우는것이다. 생긴건 까다로운 미식가같이 생겼는데 의외로 내 음식과 입맛이 맞았나보다. 맛있냐는 내 질문에 대답은 안했지만 일단 그는 매우 만족한듯했다.
역시 학교 개학 첫날에 먹을것으로 친구와 친해지듯, 음식은 사람 관계에 좋은 효과를 주나보다. 전보다 덜 나를 거부하는 것이 높은 호감도를 받은것같다. 야호!
아 물론 밥먹는 도중에 내가 "우리 전형적인 신혼부부같지 않아요?"라고 한마디 했다가 민윤기씨의 떨떠름한 표정에 닥치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다시 서재에 들어가길래 얼른 차를 끓여서 따라 들어갔다. 문을 열고 머리만 내밀어 그를 바라보니 그는 한박자 늦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이번엔 발받침이 달려있는 소파에 앉아 무릎에 노트북을 두고 있었다.
"들어가도 돼요?"
내 말에 지난번 과자를 먹으며 그를 방해했던게 기억이 났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젓는 모습에 서둘러 문을 열어 쟁반을 보여줬다. 고급진 머그잔 하나만 올려져있는 모습을 본 그는 콧김을 뿜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노트북 타자를 타닥타닥 친다. 신나서 슬금슬금 들어가 작은 탁자에 쟁반을 올리고는 맞은편에 살며시 앉았다.
"문 닫아."
"넹."
단호한 그의 말에 최대한 살살 닫고는 다시 앉아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처음보는 그의 안경쓴 모습에 팔에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전에도 느꼈지만 턱선이 죽이시다. 연회장에서 보았는 그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흐흥,하고 웃어버렸다. 그러자 한쪽 눈썹을 들썩이더니 나를 삐딱하게 바라보신다. 어휴 그렇게 까칠하게 해도 츤데레인건 알고있어.
"하던일 하세요."
"…."
"근데 되게 잘생기셨네요."
너무 돌직구였나. 갑자기 사레가 걸렸는지 쿨럭거리는 민윤기씨다. 그냥 보다보니 잘생겼길래….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있으니 민윤기씨가 진정을 하더니 애써 모르는척 다시 타자를 탁탁 친다. 그러다 이내 다시 나를 보길래 내가 먼저 선수쳤다.
"나가라구요? 알겠어요. 쇼핑해야지~"
그리고 미련없이 후루룩 떠났다. 오주연언니 퇴원했다는데 놀러가야징.
어디가서 민사장 귀는 홍당무 귀라고 외쳐야겠다.
**
"그때 마침 민윤기씨가 똭!나타나서
안사람 데리러 왔습니다.
이랬다니까요? 그때 언니가 봤어야했는데."
"와, 그 사람이? 의외네."
"그때 올 좀 매력…있네? 싶었어요. 옷도 수트로 쫙 빼입어서 사람이 달라보이더라구요."
"음~"
"그리고 또 어제는 제가 개그쳤는데 받아줬어요. 이런적 처음이라 완전 감동."
"아 정말?"
"네. 아! 며칠전에는……"
시내 카페에 마주보고 앉아 언니에게 쌓아왔던 민윤기씨의 변화 썰을 힘껏 풀었다. 재밌다는듯 내 말을 다 들어주던 언니가 어딘가 흐뭇하게 웃었다. 아, 내 얼굴로 그런 늙은 표정은 다메…! 뭔가 민망해지는 기분에 입을 다물고는 음료를 쭉 들이켰다. 계속해서 나를 마치 엄마의 표정으로 바라보던 언니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넌 그 사람 어때?"
"예? 어, 어떻다뇨. 뭐 그냥 민윤기씨죠."
"그 사람은 너한테 점점 마음 여는거 같은데?"
"에이 민윤기씨 입장으로는 최여주가 아니라 오주연한테 그러는거죠. 게다가 언니 남편인데 제가 무슨.에이."
"…나는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걸 따지기엔 좀 그렇네."
"죄요? 무슨 죄요?"
내 물음에 언니는 그저 말없이 웃었다. 사정이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언니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거 같아 대충 넘어갔다. 어차피 만약에 다시 몸이 바뀐다면 알아봤자 무용지물이니까. 아 갑자기 씁쓸하네. 그 호화로운 집과, 백수같은 생활이 사라지면 서민 최여주는 또 돈버느라 허덕여야 하네. 그리고 민윤기씨 놀리는 재미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심심한 삶이 될까.
"아참,언니 제 가게는…"
"걱정마. 잘하고 있으니까. 예전부터 나도 한번 해보고싶었던거라, 재밌더라."
"완전 다행이다. 언니랑 저는 천생연분인가봐요. 서로 생활이 취향저격."
"어우, 난 여자랑은 천생연분하고 싶지 않다."
"젠장."
이제야 말하지만 나는 작은 카페를 준비중이였다. 자격증도 다 따고, 영업허가서도 받고, 오픈할 건물도 계약했는데…어쩌다 유부녀에 백수가 되버렸다.
언니는 이런생활 어떻게 버텼다니, 심심해서 몸에 사리가 날 지경이던데. 하지만 좋다. 키헹헹
"연회장에서 김비서 만났어?"
"아 맞아. 네, 언니말대로 후려치진 못하고 발 밟고 나왔어요. 그 양반만 아니였다면 그런 멘탈 털리는 개고생은 안했을텐데.(부들부들)"
"그래도 고마운 사람이야."
"롸?"
"가끔가다 나사 빠진 사람처럼 행동하긴 하는데, 결혼하기전엔 나 많이 챙겨줬어."
"앗, 가끔은 아닌것 같…아니 잠깐."
언니의 예상외의 말에 동공지진이 일어나는걸 느꼈다. 그러자 언니는 그저 베시시 웃을 뿐이다. 어, 뭐야. 이 분위기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둘이 뭐야.
"뭐야, 뭐야. 이거 핑크빛 이거 뭐야."
"옷사러가자며, 우리 백화점 가자. 나 예전부터 쇼핑하고싶었어."
내 말에 부정도 안하고 부끄러운 미소로 일어선다. 내 얼굴로 그런 수줍은 표정은 다메요.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야. 착잡한 기분으로 가방을 집어 따라 일어섰다. 거참 언니 되게 신비주의네. 속 다보이는 신비주의.
최여주의 삶으로서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백화점에 들어가 이리저리 신나게 구경했다. 나는 이런 명품 옷은 처음인데다가, 쇼핑은 오랜만이라 더욱 흥분했다. 언니 또한 본인 말로는 처음해보는 쇼핑이라니, 우린 물만난 물고기였다. 부잣집 딸내미라 항상 고급진 옷을 입을 언니일텐데, 내가 예전에 산 값싼 보세옷을 입고있는 언니를 보니 마음이 아파 눈에 띈 예쁜 원피스를 집어 올려 언니한테 대봤다. 옷이 날개라더니, 내 얼굴이 살아보이는군. 앗, 양심 어디갔지.
"언니 이건 어때요?"
"음, 괜찮네. 근데 좀 짧지 않아?"
"에이 언니 이게 짧으면 요즘 사람들은 다 빤쮸게요? 완전 예뻐. 제가 쏠게요, 물론 언니 카드지만…."
마음 먹은척 옷을 들어올려 가격표를 들쳐보고는 말없이 다시 옷걸이에 걸어놨다. 내 모습에 어리둥절하게 가격표를 들춰본 언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듯 물었다.
"왜? 뭐 문제 있어?"
"…언니 이거 너무 비싸요."
"어차피 내 카드잖아."
"앗 반박불가."
그래서 그냥 카드 긁었다. 언니한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카드 주인이 긁으라니 긁어야지 모. 초반엔 계속 쭈뼛거리다가 백화점 인수할 정도의 돈은 가지고 있다길래 마음놓고 긁어대기 시작했다. 양심상 최소한으로, 흐흐.
백화점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산 콘아이스크림을 각자 들고 쪽쪽 먹으며 거닐었다.
언니도 매우 기분 좋아보였고 나도 언니가 좋아보여 신났었다. 두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하, 여기서 만날껀 또 뭐야."
"…."
왜 두사람이 같이…김비서의 손에 가득 들린 쇼핑백을 보고 아,하고 이해가 갔다. 김비서는 가득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오조연씨는 나를 보고 표정이 썩어들어가더니 옆에 서있는 주연언니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물건을 평가하는듯한 눈빛이었다. 물론 오조연씨를 제외한 우리 셋은 그녀는 아웃오브안중이라 신경쓰지 않았다만. 슬쩍 언니의 눈치를 보니 큰 충격을 먹은듯 했다. 아차싶었다.
오조연씨는 나와 김비서를 번갈아보더니 김비서에게 가자,하고는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아가씨."
"뭐해, 빨리 안와?!"
"…."
나에게 말을 걸려던 김비서는 뒤에서 앙칼지게 쏘아대는 오조연씨에 의해 묵살됐다. 내 뒤쪽에 있을 오조연씨를 슬쩍 보던 김비서는 주연언니에게 슬쩍 목인사를 하고 나를 보며 씩 웃어보였다. 내가 아니라, 옆인데.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내 옆으로 지나간다.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한동안 가만히 서있던 우리는 언니가 아무렇지 않은척 웃으며 가자,라고 말해 자리를 벗어날수가 있었다. 입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이후로 어영부영 구경하다 언니가 정신이 없어보여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 언니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흐려 미안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옆을 보니 쇼윈도로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아닌 오주연 언니의 얼굴이 나를 주시한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떻게, 어쩌다, 하필 나와 언니가 이렇게 바뀌게 된건지. 아무한테 말하지도, 방법을 알아내지도 못하는 현상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집에 도착해 들어서자 웬일로 거실 창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있는 민윤기씨가 보였다. 새삼스럽게 넓은 집안을 둘러보자 더 기분이 내려앉았다.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가 문가에 쇼핑백을 대충 던져놓고 침대에 푹, 엎드렸다. 하필 주연언니가 마음이 있다고 말하고 얼마뒤에 만날건 뭐람. 호랑이는 왜 제말하면 나타나는걸까.
조심히 들어가라는 내 문자에 답장이 없는 주연언니에 괜시리 걱정돼 휴대폰 액정만 멍하니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손목도 그었다던 언니가 실수로 그었을리도 없고, 괜히 나쁜생각을 할까 크게 걱정이 되었다. 사실 몸이 바뀌고 언니를 처음 만났을때 언니의 표정은 공허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더 언니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봤던건데, 한창 좋아졌을때 일이 이렇게 터지니. 언니한테 미안했다.
똑똑.
잘못들었나 싶을정도로 작은 노크소리에, 말없이 방문을 바라보니 곧 살며시 문이 열리고 민윤기씨가 문틈앞에 서있었다.
"…밥, 먹었나 해서."
"…아뇨."
가라앉은 내 대답에 민윤기씨는 그의 습관인듯 뒷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돌리더니,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같이 먹을래?"
의외의 말에 눈을 크게 뜨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민윤기씨는 또 나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려와,하고는 문을 닫고 가버렸다. 괜히 간질거리는 가슴에 이불에다 얼굴을 묻었다. 언니한테는 염치없지만 그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건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다시 최여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생활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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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ㅎㅏ세요 희익입니다 어제 분명 일찍온다해놓고 엄청 늦게 새벽에 온 저를 매우 치세여.....철썩철썩.... 변명이지만 ㅈㅔ가 잠깐...은 아니고 좀 오래 밖에 나가야할 일이 생겨서...(구차) 그래서 이번편은 구독료 무료예요 제 작은 마음? 히힝 시작은 상큼하게 달콤하게 너에게 끌려 마지막은 좀 진지하게 해봤어요 헤헿헿 너무 전편에선 겁나 쾌활했다가 다음편에 급격히 진지해서 엏?뭐지;;?? 이렇게 읽었는데 다음편에서 갑자기 푸헤헹!이러면 뭔가 겁나 조울증같잖아여... 그래서 좀 조율을 해보려고 했어요.후후 이번편은 오주연씨를 바탕으로 여자주인공들의 속마음을 소재로 해봤어요. 엇 잠시만요! 분명 급격한 심경변화같은거 안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제가요?(모른척) 네 별로 안좋아해요. 근데 고구마 500개 먹은듯한 답답한 전개를 더 안좋아해요. 그래서 전 걍 다이렉트로 쑤와 쑤와 꽂아버릴겁니다. 사실 그래도 여주 마음 이해가자나요 여러분? 여자들이란 원래 뭔가 쟈갑고 안그럴거같은 남자가 의외의 친절을 배푼다던가,딱히 널위한건 아니야!이러면서 챙겨주면 마음이 가자나요? 게다가 잘생긴 남자가 그러는데 (의심미) 안넘어갈 여자는 없을거라 믿어요 네 여기까지 자기합리화였구요 많은 분들이 예지력이 높으시더라구요 네 오주연씨의 짝꿍은 김태형비서입니다 킥킥 어쩔수없어요 전 최여주를 민서방에게 넘기기로 결정했으니까요 좀 위기예요 요즘 새벽감성이 최고조라 제가 게다가 기분파예요...그래서 막 갑자기 쓸데없이 진지해지고 그럴수도 있....있...... 낮에 한번에 댓글 답글 달아드릴게요! 암호닉도 다음편에 한번에 쫘쫙 올릴게요.......일단 저에게 돌을 던지고 계세요. 사랑합니다 ㅎ_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