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째 침대에만 누워있기 좀이 쑤셔 결국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 밖을 나섰다. 인간의 적응이라는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 저기 지구 반 바퀴 햇볕 쨍쨍한 나라에서 태워죽일듯이 나를 노려보던 햇빛도 선글라스 없이 볼 수 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말이야.. 이제는 집 밖을 나서자마자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이재환 다 죽었네 다 죽었어..
운동화를 바닥에 탁탁 치고 세발자국 뗐는데 주저 앉을 뻔 했다. 무릎에 손을 대고 호흡을 진정시켜야 했다. 괜히 주먹이 꾹 쥐여졌다.
아.. 씨발 의사 말에 노 엑썰사이징도 있었나.. 그것까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세발자국을 떼자 미친듯이 뛰어오는 심장과 터질듯이 부푼 것 같은 폐에 결국 열 발자국을 떼고 주저 앉아 버렸다. 자존심이라는거, 이럴때 굉장히 무서운 거다. 주저 앉아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억울해 미칠 것 같아 결국 아스팔트 도로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손가락 사이사이, 손등이 으깨지고 붉게 물들어가는 와중에도 뛰기는 커녕 걸을 수 조차 없는 심장과 폐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아.. 담배 피고 싶다..
하지만 와중에도 의사의 노 스모킹보다 차학연의 담배꺼 새끼야라는 말이 먼저 생각나서, 결국 담배는 꺼내지도 못하고 바닥만 붉게 물들였다.
몇만분의 일 확률같은거.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 왜 이렇게 일어나길 바라는건지. 붉게 물든 손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따각따각, 으깨진 손은 또다시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