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과 승철은 앳된 얼굴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너희들은 황룡의 반신이니라. 스승의 말에 정한은 승철을, 승철은 정한을 바라보았다. 계집애같이 생긴게 무슨 황룡의 반신이라더냐. 승철은 속으로 생각했다만 정한은 그 모든 것을 알고는 웃었다. 계집애같이 생긴게 내 죄는 아니잖아. 승철은 정한이 싫었다.
“인주는 아주 귀중한 존재이지.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존재란 말이야. 제 0세대, 그 시초에 인주가 있었고, 그 후에는 한명도,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
“스승님, 인주가 뭡니까.”
승철의 질문에 스승은 승철을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인간이 그 자체로 여의주가 되어 힘을 발휘하는 존재란다. 승철은 가만히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인주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승철의 물음에 정한이 다정한 미소로 답했다. 죽여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승철은 다정하지만 살벌한 정한의 말에 스승을 향해 눈을 돌렸고 스승은 웃으며 정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황룡의 반신은 여의주를 몸 속에 가지고 있어야만 신수가 될 수 있다.”
“…”
“인주, 그 자체를 먹을 수는 없다. 인간, 살아있기 때문이지.”
“…허”
“인주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인주를 살려두어야 한다, 성인식을 치룬 후에 힘이 발휘되기 때문이지.”
“…스승님”
“그리고 성인이 된 인주의 피를 마시면,”
“…”
“너는 신수가 될 수 있다.”
종천지모(終天之慕)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사모의 정
제 03 장
“오늘은 여기까지.”
인주를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살해를 저질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먹은 승철은 그 뒤로 정한과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어찌 그리 잔혹한 일을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제 생각에는 정한이 미친 반신이 아닌가 싶었다. 몇일 후, 예상보다 일찍 끝난 황룡반신 수업에 정한은 손을 들었다.
“스승님, 여쭙고 싶은게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정한은 승철을 쓰윽 바라보았다. 뭐야. 얼마 전에 정한은 잠시 본가에 다녀와야 하는 일이 있다며 몇일 간을 밖에 나가있었다. 혼자 있던 시간이 심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 아니, 승철은 이제 그 시간에 심심했다고 인정한다 — 정한이 딱히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정한의 입가에 감춰진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가 궁금했다.
“인주가 수장일 수도 있나요?”
정한의 물음에 스승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인주는 수장일수도, 반신일수도 혹은 사령일수도 있단다. 정한은 그 대답에 고개를 숙이며 다시 물었다. 허나 수장을 죽일 수는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스승은 정한의 말에 답하였다. 죽이는 것이 왜 안된단 말이냐. 잔인한 말에 승철은 스승과 정한이 괴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찌 생명을 그리 가볍게 여기는 것일까. 그러한 승철의 마음을 정한이 읽었는지 승철을 한번 바라보고는 웃었다.
“성인이 된 수장의 피를 받아서 마신다면, 수장이 죽지 않고 살 수도 있나요?”
“다른 방법도 있지.”
승철은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인주가 다른 성별이라면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라.”
승철은 스승과 정한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
“권수장! 권수장!”
권순영이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었는데, 내가 방해한 것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순간 워후 그렇게 파란 발톱을 내세우면 나 무섭다고. 권순영은 왜 부르는데, 라며 물었고 나는 — 물론 권수장이 나보다 나이가 한살 더 많기는 하다만 — 이제 곧 성인식을 하게 되었다며 웃었다. 그 말에 권수장은 귀가 빨개져서는 성인시익? 하고 놀래서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응, 나 이제 곧 성인식이야! 이번에 어떤 옷을 입을까?”
“너 성인식 참여해?”
“왜, 내가 여자같지 않아?”
내 말에 멍하니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권순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넌 항상 나에게 여자였어. 그 말에 잠시 멍을 때리던 나는 권순영에게 같이 옷을 맞추러 가자고 했다. 무슨 여자 옷을 나랑 같이 맞추러 가? 권순영, 너도 알지만 부승관이나 최한솔, 그리고 윤정한의 눈썰미는 뭐다? 똥이다. 가장 좋은 눈썰미를 가진 사람은 누구다? 너다. 내 말에 납득이 된 것인지 권순영은 입으로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자연스럽게 내 뒤를 총총 쫓아왔다.
“어디가시나 수장님.”
권순영과 바삐 발을 놀리고 있는데 부승관이랑 최한솔이 갑자기 앞에 마법처럼 나타났다. 성인식 준비하러 간다. 내 말에 부승관은 지금 그래서 권수장이랑 같이 옷 맞추러 갑니까? 하고는 물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응, 가자 순영아. 하고 권순영을 부르곤 앞장을 섰다. 부승관과 최한솔에게 고개를 까딱, 하고선 나를 나서는 권순영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는데, 부승관은 입만 살았나보다.
“야! 최중관에게 뭐라해!”
“아 성인식 준비하러 간다고 말해!”
***
“어디 가십니까?”
갑작스러운 윤정한의 부름에 권순영은 중앙으로 소환되었고 나 홀로 잠시 나갔다 와야겠거니 싶어 길을 나서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발걸음을 잡았다. 아 전수장님 이십니까? 내 물음에 전원우 (내가 부르는 말로는 호랑이 시키) 수장이 성큼성큼 걸어 내 앞까지 온다. 밖에 나가면 안된다는 것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기 딴에는 나를 저지하겠다고 하는 말이겠거니와 나는 전수장이 무섭지 않다. 나와 동급인데 — 한 살 위인데 뭐가 무서워 — 내가 쫄 필요가 있나 싶어 헤실헤실 웃으며 답했다. 성인식 준비하러 갑니다. 내 말에 전수장은 뒤를 쓱 돌아보고는 말했다. 저도 같이 갑시다, 홍일.
“저잣거리에 나온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지 않습니ㄲ”
“편하게 말해, 여주야.”
“그래 정말 오랫만에 나와서 너무 행복해 죽을 것 같습니다, 수장님.”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린 것이 너무 오랫만이라. 나도 모르게 들떴나보다. 얼마 후면 나의 성인식이 진행이 되고, 나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내가 원하는 베필을 고를 수 있느니라. 그리고 성인이 되면 한번쯤은 부모를 만나게 해준다니, 어찌 내가 성인식을 기다리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뒤를 돌아보니 전원우가 없다.
*인기: 인간의 기운
“빨리 가지 마.”
“아, 놀래.”
갑자기 뒤에서 훅 들어온 전원우의 모습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리따운 색의 천들이 걸려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과일향이 풍겼다. 아가씨 왔어? 익숙하다는 듯이 말을 하는 주인장에게 성인식 옷 가지러 왔어요, 하고 말하자 커다란 상자를 내준다. 여기 아가씨, 아니아니, 우리 아기씨 옷이랑 장품들이랑 장구들 들어있어. 생각보다 큰 크기에 놀란 내가 가만히 상자를 내려다보니 전원우가 상자를 번쩍 들면서 말한다. 내가 오길 잘했네.
전원우가 대신 들어주니 편하네, 생각을 하면서 객사로 오는데 문득 인기척이 없다 느껴서 뒤를 돌아보니 전원우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내 물음에 전원우는 할 말이 있다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성인식 하면 반려를 찾을 수 있다는 거 알지?”
“응.”
“생각… 해 놓은 사람 있어?”
사실 생각해 놓은 사람은 없다. 내가 수장으로서 살아간다면 독신으로 살아갈 것이라 마음을 먹었기에 나는 홀로 살려고 했건만 — 만약 내가 이 객사를 빠져나가 일반인 신분으로 살 수가 없다면 말이다 — 전원우의 물음에 떠오른 사람은 둘, 아니 세명이었다.
우선 윤정한. 나와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오라버니이기에 어쩌면 내가 반려로 택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 아닐까. 두번째, 부승관. 나를 윤정한 그 다음으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내가 언제든지 기댈 수 있으니까. 다만 걸리는 것은 사령이라는 것과 같은 객사라는 것. 어쩌면 나 뿐만이 아니라 승관이에게도 좋지 않은 이야기가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권순영. 권수장도 나쁘지는 않다. 착하고 다정하고, 열심히 모든 일을 하고. 그 정도면 괜찮지.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어째 기분이 쌔한 것이 대답하지 않는 거가 좋겠다는 생각에 멍하니 전원우를 바라봤다.
“여주야, 생각해 놓은 사람 있어?”
전원우의 눈빛이 간절해서, 물기가 묻어나서, 나는 전원우에게 거짓말을 했다.
“응 있어. 윤정한이라고 있어.”
***
“넌 또… 아 너도 성인식 준비하는 구나?”
전원우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하고는 상자를 낑낑대며 객사 안으로 옮기려는데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김민규의 모습에 또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남 몰래 움직이는 것이 취미인가보다. 들어줄께. 내가 들고 있던 상자를 자신의 긴 꼬리로 들어올려 객사로 살포시 내려놓고는 내 팔을 꽉 잡아오는 김민규의 모습이 낯설었다. 얘가 이렇게 내 팔을 함부로 잡는 그런 애는 아닌데?
“들었어.”
“뭘?”
“본가에 내려갔다 온다며.”
“어디서 들었어?”
“…최중관이 그러더라. 윤중관님이 너에게 약조했ㄷ”
“뭐야, 헛소리야.”
전원우에게 했던 거짓말이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라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것만 같은데, 김민규 너는 또 와서 뭔 말을 하는거야? 김민규의 팔을 뿌리치고는 객사로 걸어가려는데 보폭이 큰 — 그만큼 키도 큰 — 김민규는 금새 나를 따라와 나를 잡았다. 성인식 얼마 안남았는데 정했어? 전원우와 같은 물음.
“뭘?”
“반려 말이야.”
“어 정했어.”
너에게도 미안하지만 거짓말을 할께. 정했다는 내 말에 김민규는 내 팔을 쥔 손에 힘을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 누군지 말해줘. 김민규에게 나는 거짓말을 했다. 오늘 총 두번이나 다른 이를 속였다. 윤정한이라고 있어, 내가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 내 말에 너는 어쩌면 중앙으로 향해 윤중관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윤중관은 오늘 밤, 나를 호출하겠지 — 그런 장난 치면 안된다 혼내려 말이야.
“나는 생각하지도 않았나봐.”
“음, 맞아. 난 너가 무서워. 내가 생각했던 후보는 윤정한, 부승관 그리고 권순ㅇ…”
“내가 무서워? 난 너가 무서워.”
갑자기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김민규의 모습에 낯선 향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현무로 변하는 것은 아니겠지, 싶은 생각에 그저 가만히 김민규의 눈을 바라봤다.
“내가 왜 무서워하는지 알려줄까?”
“응 알려줘.”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김민규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가 없으면 이 세상의 태양이 사라지는 거잖아.”
***
“…윤중관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등불 아래에서 우아하게 붓을 놀리고 있는 정한에게 원우가 물었다. 알고 계셨느냐 말입니다, 중관님. 그런 원우를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정한은 미소를 지었다. 목적어를 이야기하지 않으시면 저는 어찌 답해야하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런 정한의 모습에 울컥한 원우가 이야기를 하려던 순간,
“윤중관님, 홍일의 반려가 되실겁니까.”
민규가 들어왔다.
정한은 지금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에 대해서 파악을 먼저 하려 했고, 어느새 자신이 관리해야하는 두 행정구역의 수장이 윤중관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인지 승철도 정한의 방을 찾았다. 원우는 민규에게 너도 들은거야? 라며 물었고 민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한을 바라봤다. 정한의 무슨 일인지 말씀해보시지오, 라는 말에 원우는 미소를 지었다.
“홍일의 성인식이 곧 열립니다.”
“제 성인식이기도 합니다, 전수장. 이 나라의 성인식이 얼마 후에 열리는 것입니다.”
민규의 말에 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일에게 반려를 정했냐 물었습니다.”
“뭐라던가요.”
정한은 관심이 없다는 듯이 흰 종이에 열심히 붓을 놀렸다.
“윤중관님을 반려로 맞이하겠다고 하던데,”
“…”
“중관님도 알고 계신 사실입니까.”
원우의 말이 끝나자 민규도, 승철도. 세 남자의 시선이 정한을 향했다. 그렇게 바라보시면 제가 뭐라 답을 해야 합니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정한의 모습에 원우가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민규가 따라나갔고, 승철은 멍하니 정한을 응시했다.
“나는 우리 애가 그렇게 말을 할 줄은 몰랐네.”
“…미친 놈아.”
“인주의 성인식이라니, 정말 재미있지 않니, 승철아?”
“…윤정한.”
“난 한번도 나를 반려로 맞이해달라 부탁한 적 없어.”
정한의 여유로운 모습에 승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만히 정한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은 그 아이가 고른거야. 정말 잔인하지.”
승철은 어렸을 적, 정한이 스승에게 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인주가 수장일 수도 있나요? 아뿔사 — 나는 이미 늦은 것이구나. 승철은 정한을 뒤로 하고 홍일의 객사로 향했다. 걸음을 바삐 움직이며 말이다.
“아아 정말 재미있어.”
정한이 승철, 원우 그리고 민규로 인해 열린 문을 닫으며 말했다.
“너무 쉽게 손에 잡혀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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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온다고 했는데 ㅠㅠㅠ 너무 늦었죠? ㅠㅠㅠㅠㅠ 죄송합니다ㅠㅠㅠㅠ 죄송해요ㅠㅠㅠㅠㅠㅠ
하.... 역시. 글잡은 어렵네요 ㅠㅠ 처음이라 죄송합니다 ㅠㅠㅠ
ㅠㅠㅠㅠㅠ여러분!!!! 3화가 왔어요!!!! 와아!!!!!!! 애들이 하나하나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죠? ㅠㅠㅠ 죄송합니다 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제가 예상했던 거와 다르게 약간은 느리긴 하다만! 그렇다고 빠르게 나가면 안될거 같고 ㅠㅠㅠ
너무 전개가 빠르다 싶으면 말해주세요!
@나의 사령이 되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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