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도 이 수업 들어요?”
“응? 응. 그렇게 됐네. 피자 맛있지?”
“…네.”
조가 짜여진 후 여주가 어안이 벙벙할 때 여주에게 다가온 건 다름아닌 정한이었다. 원우는 애초에 그 강의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한이 여주에게 점심으로 피자 어떠냐며 물었을 때 여주는 주변을 둘러보며 시은을 찾았지만 시은은 이미 상훈과 하하호호 이야기 중이었다. 덕분에 여주는 현재 정한과 학교 근처 피잣집에서 피자를 먹는 중.
“우리는 어떤 데이트도 다 가능하겠네.“
”네?“
”같이 사니까 얘기하기도 편하고.“
”..아 맞죠.“
”나 어필하고 있는 거야.“
”…앟ㅎ 뭐하러 그런.. 어차피 선배가 이기실텐데요.”
“그래?”
“네. 전원우선배는 오늘 나오지도 않았잖아요. 할 마음도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에?”
“확실한 게 좋잖아.”
내가 너한테 선택받지 못할 확률이, 영이었음 좋겠거든 난.
“엥, 저거 전원우 아님?”
“맞네? 저새끼 왜 저깄어? 오늘 성과사랑 오틴데.”
야! 너 여기서 뭐해?
피씨방을 들어선 순영과 승관. 늘 앉던 자리 근처에 원우가 앉아있는 걸 본 둘이 의아한듯 말했다. 그러자 순영이 원우의 어깨를 툭툭치며 물었다. 그러자 원우가 잠시 순영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화면에 집중하며 입을 열었다.
“왜.”
“너 여기서 뭐 하냐고. 오늘 성과 사랑 수업이잖아.“
”니가 멋대로 신청한 거? 아 깜빡하고 드랍 못했네.“
”미친. 그 경쟁률이 몇인데 드랍 얘기를.“
“됐어. 니가 대출하던가.”
”지랄.“
원우의 옆에 앉은 둘이 자연스레 게임에 참여하고, 시간이 꽤 흐르자 성과 사랑을 듣는 다른 친구가 순영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순영이 메시지를 읽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진짜 대출을 해야하나.”
“…갑자기?”
순영의 말에 옆에 앉은 승관이 물었다. 그러자 순영이 말이 없더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원우를 향해 말했다.
“너 꼬옥 그 수업 듣지마라? 엉?”
“…왜.”
“들어서 좋을 게 없는 것 같다. 너한테.”
“…뭔 말인데.”
“듣지말라면 듣지,”
“미친. 윤정한이랑 너랑 같은 조네?”
순영에게 메시지를 보낸 친구가 승관에게도 보냈는지, 느지막이 문자를 확인한 승관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순영의 미간이 확 구겨지고, 키보드 위에 올라가있던 원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원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승관이 마저 입을 열었다.
“김여주랑 너랑 윤정한이랑 셋이 같은 조래.”
“미친놈아! 내가 일부러 말 안 하고 있었는데!”
“왜! 뭐가! 윤정한이랑 같은 조라고 하면 더 안 나가겠지!”
“넌 아직 얘를 몰라서 그래 이 새끼야!”
이 새끼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데!
“아 저 잠깐 화장실 좀요.”
“응.”
피자 한 판을 다 비웠을 때 여주가 잠시 일어나고, 홀로 앉아있던 정한은 휴대폰에 밀린 메시지를 보다 울리는 여주의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웅. 우웅. 우웅. 짧게 여러번 울리는 휴대폰. 정한이 집어들었다.
“…허.”
‘데이트 해야된다며 나랑.‘
’언제할까‘
이번주 토요일 어때. 내일.
“…………”
무언가 답장을 하고싶은 듯 화면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려던 정한은 저만치 멀리서 여주가 나온 걸 보곤 폰을 제자리에 내려놨다.
“갈까요?”
“여주야.”
“네?”
“내일 데이트할까?”
“…내일이요? 갑자기 내일,”
“다음주면 과제 많이 나올 때라서. 미리 시간 날 때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아…그래요? 그럼 전 좋아요.“
”…좋아.“
가자.
“…뭐야. 이제 봤네 이걸..”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원우의 연락을 본 여주가 작게 중얼거렸다. 툭-, 휴대폰을 침대에 던진 여주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올려묶은 뒤 다시금 휴대폰을 집었다.
‘내일은 안 돼요. 다음주 토요일은 어떠세요?’
“…………”
여주가 카톡을 보내고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또 다른 카톡이 여주를 반겼다. 결국 휴대폰을 손에 든 채 거실로 나온 여주. 원우의 답장을 본 여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월요일에 만나서 다시 정해.‘
“…어이없네.”
“뭐가?”
“에? 아 아니에요. 화장실 쓰시게요?”
“먼저 쓸래?”
“괜찮아요 먼저 써요.”
“그래 그럼.”
정한이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고, 여주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아직 친구 추가도 되어있지 않은 원우와의 채팅창. 여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벌써 짜증이 밀려오네.
“여주야.”
“네?”
“어떤 데이트 하고싶어?“
”…아. 그런 건 생각 안 해봤는데.“
여주까지 씻고 나온 뒤 티비 앞에 앉아 예능 프로를 보는 중 정한이 여주를 향해 물었다. 딱히 생각 안 해봤다는 여주의 말에 정한은 웃으며 답했다.
”생각해봐. 네가 하고싶은 데이트를 해야지.“
”…원래 데이트 하면 영화 밥 카페…라던데. 그래요? 전 연애를 안 해봐서.“
”…보통 그렇지? 영화 안 보는 날엔 쇼핑몰 가거나, 아님 한강 같은 곳 가서 산책하거나.“
“음…”
“..왜? 그런 건 여주 스타일 아니야?”
“네. 전 사실..”
“…………”
“같이 공부하는 거?“
”…도서관에서?“
”도서관이든 카페든요. 그냥 공부하다가 눈 맞으면 설레고, 쪽지 주고받고, 점심 뭐먹을까? 이러고. 그런 게 전 부럽더라구요.“
“음-.”
“근데 우린 아직 카페 공부를 하기엔 서로를 모르니까…”
“왜? 난 카페 데이트도 좋은데.”
“그래도요. 좀 더 데이트 장소같은 곳으로 가요.“
”그럼 가고싶은 곳 있어?”
“보드게임카페 갈래요?”
“보드게임카페?”
“네.”
“근데 보드게임카페는 사람이 많아야 재밌는 거 많이 할 수 있지 않아?”
“아. 맞네. 아 그러면!”
제가 시은이네 커플을 부를게요!
“야.”
“왜.”
“너희오빠 승부욕 오진다.”
“…너희오빠라니. 선배한테 뭔 말이니.”
“뭐가? 넌 일단 정한선배랑 커플이야.”
“…그럼 넌 저 남자애랑 커플이고?”
“그럼?”
“지히랄….”
보드게임카페를 나온 두 커플. 헤어지기 전 시은은 여주에게 귓속말을 하다 손을 흔들곤 멀어졌다. 둘만 남은 순간 정한이 여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보드게임하면서 먹어가지고 배는 안고프지?”
“네. 보드게임 하기 전에도 밥을 먹어서.”
“그럼 케이크 사서 들어갈까?”
“케이크요?”
“응. 이따 저녁에 출출해질 수도 있으니까.”
“좋아요.”
“여주야.”
“네?”
“부탁 하고싶은 거 있어.”
“뭔데요?“
뭐냐는 물음과 함께 두 걸음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다. 빨간불을 바라보던 여주가 고개를 돌려 정한을 올려다봤다. 정한이 웃으며 여주를 바라보고, 여주가 고개를 기울였다. 여주는 별 말 없는 정한에 고개를 돌려 초록불로 바뀐 신호를 보고 한 걸음 내딛었다. 어 초록ㅂ, 여주가 말함과 동시에 정한이 여주의 손을 잡고 여주보다 앞서갔다. 여주가 잡힌 손을 바라보고 정한을 불렀다.
“어 저기,”
“이게 내 부탁이야.“
”에?“
”손 잡는 거.”
“…………”
“종강할 때까지 잡고싶을 땐 잡게 해줘.”
그 때까지 연인이잖아 우리.
“미친 이게 연상의 맛인가.”
“뭐래.”
“동갑은 친구같이 편하면서 재밌는 맛인데.. 뭔가 너의 썰을 들으니까 설레는데?”
“설레는 거고 뭐고, 돈 좀 비슷하게 내고싶어. 밥도 선배가 사고 케이크도 선배가 샀어. 난 커피밖에 못 샀고.”
“원래 그런 거야. 심지어 선배니까 더 그런 거고. 후배한테 얻어먹고 싶겠냐.”
월요일 오후. 공강시간에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둘의 대화 주제는 역시나 성과 사랑 수업이었다. 어제 보드게임카페에서 헤어지고 뭐 했냐는 시은의 질문에 여주가 답하자 시은은 설렌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시은이 물었다.
“솔직히 설렜지?”
“언제.”
“손 잡을 때.”
“…………”
“야 그 멘트에 그 비주얼이면 안 설레기도 쉽지 않다?”
“그치. 정한선배가 잘생기긴 했지?“
”그래서. 설렜다고?“
”음.“
쫌?
“아까 어디냐니까 너 여기 있다길래,”
커피 줄 겸?
정한이 테이블 위에 둘의 커피를 올려놓고 여주를 보며 웃었다. 그러자 시은이 커피를 보며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게 연상의 맛…”
“응?”
“아 아니, 아니 선배님 이거 하나는 제 건가요?”
“그럼-”
“허얼.. 감사합니다… 아니 벌써 여주 취향까지 간파하신 거예요? 아바라에 초코드리즐 추가…. 이거 알기 쉽지 않은데.”
“저번에 같이 카페 갔을 때 독특하게 먹길래 기억에 남더라고.”
“쏘 스윗… 선배님. 전 여주와 선배님의 관계를 무척! 응원합니다?”
“ㅋㅋㅋㅋㅋ고마웧ㅎㅎㅎ”
“저저 주책. 커피는 진짜 고마워요 선배. 전 드릴 게..”
“아 뭐 받자고 한 거 아니고, 밥 먹고 커피 사러 갈 것 같아서 사 온 거야. 바로 수업있지?”
“네.”
“그럼 이따,”
집에서 보자.
정한이 허리를 굽혀 속삭였다.
“피피티 잘 만들었더라?”
“네. 시키시는 게 별로 없는데 그거라도 잘 해야죠.”
“그래서.”
탁-.
“윤정한이랑은 벌써 데이트를 했고?”
남은 한 시간은 조별활동을 하라며 시간을 준 교수에 짧은 회의를 마친 원우와 여주였다. 원우가 노트북을 소리나게 덮으며 여주를 향해 말했고 여주는 당황한듯 잠시 눈을 꿈뻑거리다 제 짐을 정리하며 말했다.
“네 뭐.. 오티 때 안 오셨잖아요. 그래서 먼저 얘기해서 했는데요.”
“넌 그 수업을 도대체 왜 듣는 거야? 너 되게 바쁠텐데?“
”그러는 선배는 여유가 얼마나 있으시길래 그 수업을 들어요?“
”난 그럴 사정이 있었거든?“
”뭔 사정이요!“
”…됐고. 오늘은 어때.“
”…예? 아니 뭐가 그렇게 급,”
“급해 나.”
니 마음 돌려야 해서 나 되게 초조해 여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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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오랜만이죠…? 전 그 동안 많은 맴고생과…노동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앓다 이제 나타났네요. 최근들어 절 찾아주시는 분들의 댓글을 보고, 세때홍클에 달아주시는 댓글들도 읽고… 저도 세때홍클을 읽고 과거의 저에게 심심한 위로를 받고 그렇게 살아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지내고 계시죠? 부디 또 그렇지 못할 걸 알지만서도, 힘듦과 고통, 불행은 제가 다 껴안을 수 있었음 좋겠네요. 푹 쉬세요 여러분! 보고싶었어요 저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