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1억
BGM
"……."
의자가 더러워졌다며 아무 표정도 없이 말했던 게 생각났다. 한소희가 나를 보고 갔었으니까. 이 남자도 한소희에게 얘기를 듣고 보러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동물원도 아니고.. 노크까지 한 걸 보면 참 웃겼다. 여기가 내 방인 것처럼 느껴지잖아.
남자는 지하실을 둘러보는 듯 했다. 표정이 마치..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가 있을까- 하는 듯 했다. 왜 당신은 그런 표정인데.
당신 아버지가 한 짓이면 알고있어야지. 이런 곳이 있었을 거라 생각도 못했다는 듯 표정 짓지 마.
"……."
왜 왔냐고 말하고 싶었고, 아빠에게 소식이 들려오냐는 말도 하고싶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않았다.
나에게 냄새가 날까봐 뒷걸음질을 치다보면 남자가 둘러보다가 나를 보았다.
"……."
"…왜."
"……."
"왜 왔어요?"
경계하듯 벽에 기대어 서서는 남자를 바라보면, 남자가 한참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번엔 내 침대로 향했다.
표정은 가관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침대는 많이 더러웠으니까. 그리고 작게 있는 화장실은 세면대에서 물방울이 힘겹게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아무 말도 없는 남자가 짜증이 났다. 구경하러 온 거네.
"구경이라도 하러 온 건가."
난 이 사람에게 신경질적이다. 한 번도 누구에게 이렇게 짜증을 내 적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난 이 사람이 미울까.
"나갈 생각은 안 해봤어요?"
웃겼다. 지하실을 둘러봐서 고작 하는 첫마디가 저거야.
"저 문은 안에 안에서 안 열려요."
내 말에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내가 싫어서 그런 걸까 조금은 궁금했다.
그리고.. 저런 걸 물어보는 게 참 얄미웠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것 같고.. 기분이 별로야.
그래도 나 생각해서 위로 올라가게 해줬던 아줌마가 떠올라서 이 정적 속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그때 아줌마 일이요. 아줌마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유일하게 제 얼굴 보고 대화하는 분이 아줌마밖에 없어요. 딸 또래라 안쓰러워서 그러신 거거든요."
"……."
"다시는 위에 올라가지않을게요. 그때.. 처음 올라간 거였어요."
내 말을 개무시했다. 애원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런 표정도 없이 조용히 읊듯이 말했다.
내 말을 개무시하고선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내가 저런 쓰레기한테 구구절절 이렇게 말해봤자 뭐하겠어. 들리지도 않을 텐데.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울어댄다고 다 알아듣는 건 아닐 테니까. 그리고.. 날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 대접도 안 해주는 사람의 아들이잖아. 왜 대화를 하려고 한 거야. 바보야?
조금 지나서 또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침대에 앉아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그쪽을 보았고, 남자가 들어온다. 손에..
"……."
시계를 들고선 말이다. 내쪽으로 다가와 시계를 건네주는 남자는 무심하게 시계를 주고선 그냥 가버렸고 참 냉정해보였다. 그러면서도 정말로 왜 여기에 왔을까 그게 궁금했다.
구경하러 온 거라고 치자.. 이 시계는 왜? 강아지한테 장난감 주는 그런 개념인가. 그냥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침대에 앉아서 시계를 한참동안이나 보았다.
마음이 이상했다. 시계를 보고 이렇게 설레었던 적이 있었던가.
"…지금이 새벽이었구나."
그렇게 나는 남자가 준 시계를 의심 없이 손에 쥔 채로 눈을 감았다. 새벽 한시.. 잘난 첫째 도련님이 내게 온 시간이었다.
"형이랑 같이 출장갔으면 같이 한국에 왔어야지!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다! 엄마는 따로 와서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서 좋아. 우리 아들 미국은 어땠어?"
"그냥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죠."
"그렇지? 엄마는 미국에 한 번도 안 가봐서.."
"다음에 같이 가요. 엄마."
"그래 좋지. 우리 준혁이도 가는 거지?"
조용히 식사를 하던 준혁은 유독 말이 없었고, 불편해보였다. 어머니의 말에 준혁은 동생 태오와 어머니를 번갈아보다 말했다.
"저는 일 때문에 바빠서요. 태오랑 다녀오세요."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언제쯤 우리 가족은 다같이 놀러가본다니..?"
이 셋은 어색했다. 준혁의 친어머니가 아니었기에 어렸을 적부터 한 번도 쉽게 어머니라고 불렀던 적이 없었다. 반면 태오는 새어머니의 자식이라 집에서 제일 편하게 돌아다니는 존재였다.
"그래 형. 같이가면 얼마나 좋아."
"……."
"난 형이랑 친해지고싶은데."
그 말에 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았다. 이렇게 셋이서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준혁은 큰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리만큼 가족들과 가깝지않은 준혁을 태오는 이해를 못한다. 아버지는 워낙 엄하니 그럴 수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키워준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도 싫을까싶다.
그래도 태오는 형을 미워하지않았다. 그래도 형이니까.
잠시만- 하고 통화를 하러 룸에서 나간 어머니에 태오는 물 한모금 마시고선 준혁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도 나랑 형이 아버지를 닮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아."
"…무슨 뜻이야?"
"못되지는 않았잖아."
진심이라는 듯 미소를 띄우는 태오와, 그 말이 가소로운 듯 아무런 대답도 않는 준혁. 둘의 성격은 많이 달라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모두들 그랬다. 너희는 성격이 다르구나, 태오는 어머니를 닮고.. 준혁은 아버지를 닮았구나.
그래도 준혁은 태오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못된 건 알고있으니까. 아마 사람도 죽여봤을 거야 그 양반.
"앞으로 일주일은 더 집 비워야될 것 같아. 엄마 좀 잘 부탁할게."
"……."
"아,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긴가. 남한테 엄마 부탁하는 것처럼 들리겠다."
태오는 어머니가 착하다고 믿고있다. 준혁은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겉으론 웃어주고, 울어주고 착해보이지만 결국 지하실에 사람을 가둬놓고 방치했잖아.
태오는 대표 자리에 앉아서 뭘 생각하는 듯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걸 지켜보던 비서는 눈치를 보고있었고, 준혁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본다.
"저 이준혁 대표입니다."
-어~ 이대표가 웬일로 연락을 다 줬어?
"태진그룹 회장 일에 대해서 여쭤볼 게 있어서요."
준혁은 손에 무언갈 잔뜩 들고선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아까 했던 전화 내용을 떠올린다.
- 한회장 회사 부도나고, 사기 당해서 1조 이상은 날렸다지.. 사기 당한 것 때문에 돈 갚느라 돈은 하나도 없지.. 자네 아버지.. 아니 이회장한테 50억 빌려놓고 그걸 갖고 도망쳤대.
그러다 이회장한테 걸려서 몸이 성한 곳이 없다고 들었어. 그때 보니까 다리를 절던데.. 그렇게 서로 못죽던 와이프도 안 보이고.. 딸도 안 보이고.. 자네 아버지가.. 혹시.
"……."
하루종일 시계를 본 것 같았다. 시간 진짜 더럽게 안 간다. 아무래도 하는 게 없어서 그런 걸까.
침대에 앉아서 시계만 바라보다보면 벌써 밤 12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시간에 계단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 그 남자인가보다. 노크하는 사람은 그 남자 뿐이니까. 이번엔 또 왜 무슨 용건으로 오는지 그게 궁금했고, 짜증이 났다.
나에게 희소식을 건네줄 사람은 안 되어보였으니까.
"……?"
침대 옆으로 기다란 스탠드를 놓았고, 남자가 발걸음을 옮겨 문이 없는 화장실로 들어서 겨우 물방울만 뚝뚝 흘리는 수도꼭지를 돌려보더니만 공구통을 열어 고치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예요 지금?"
"……."
생각보다 빨리 고친 남자는 일어나 나를 보았다. 생각보다 가깝게 서있던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았던 남자는 나를 지나쳐 그대로 가버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남자는 다음 날 또 12시가 되어서 남자가 지하실로 왔다.
이번엔 깨끗한 씻을 것들과 수건을 갖다주었다. 그리고 난 한달하고 더 지나서야 제대로 씻어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12시가 조금 넘어서 남자는 또 지하실에 왔다.
큐브와 책들이었다. 나는 남자 덕분에 심심할 때마다 하지도 못하는 큐브를 만지작거렸고, 평소에 읽지도않던 책을 읽었다.
또 다음 날 남자는 비슷한 시간에 지하실에 찾아왔다.
디저트였다. 여태 한달 넘도록 먹어보지못했던 마카롱이었다. 그리고 달콤한 커피까지..
마음이 이상했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주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먹기가 싫었다. 아무렇지도않게 받아서 쓰고,먹고싶지가 않았다.
정말로 내가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있다는 걸 느꼈다. 가둬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너무 기분이 나빴다.
다음 날이 되어서 남자가 올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니나다를까 오늘도 남자는 12시가 넘어서 지하실에 찾아왔고.
나에게 옷을 건네주었다. 그럼 난 그 옷을 받아 던져버렸다.
"……."
"뭐하자는 거예요? 재밌어요? 내가 여기서 이러고있는 게. 놀리는 거예요 뭐예요? 내가 여기서 심심해서 죽어버리기라도 할까봐 그렇게 갑자기 챙겨주나. 하나도 안 고맙거든요. 난 그냥 여기서.."
"……."
"여기서..."
말이 안 나왔다. 말을 해도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남자는 여전히 나에게 할말이 없는 듯 보였다.
거봐 저 사람은 그냥 나를 구경하러 온 거야. 자신이 준 것들을 얼마나 잘 써먹나 그게 궁금했던 거야. 용기내서 화를 내었더니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가 내 말을 뒤로한 채 등돌려 가는 걸 본 나는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이 개새끼야! 너네.. 내가 나가면 다 신고할 거야!"
문이 닫히고 고요함만이 남았다.
수많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익숙한 얼굴이 준혁을 반겼다. 지금은 모두 잘 시간인데.. 아줌마가 보기좋게 미소를 띄운 채로 준혁에게 말했다.
"도련님도 밑에 혜 씨가 걱정이 됐나봐요. 나도 밥 챙겨주고 나오면.. 얼마나 눈에 밟히던지.."
"……."
"아, 참.. 혜 씨는 커피 안 마신대요."
"…아."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자주 챙겨드리고있어요."
아줌마는 여전히 보기좋게 미소를 띄운 채로 준혁을 바라보고있었고, 조금은 뻘쭘한 듯 어색하게 서있던 준혁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싶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아줌마는 준혁을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둘째 도련님은 왜 한 번도 지하실에 들르시질 않는지.."
"태오요?"
"…네."
"태오가 왜 지하실에 들러요."
"그야.."
"……."
"둘째 도련님이 혜 아가씨를 지하실에 넣었으니까요."
"태오가.. 그랬다고요?"
"…네? 네.. 모르..셨어요?"
"……."
당황한 듯 했다. 준혁이 충격에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있으면 아줌마도 덩달아 당황해서는 어쩔 줄 몰라한다.
아줌마를 지나쳐 간 준혁에 아줌마는 '이걸 어쩌지'하며 불안해한다.
처음으로 큐브를 다 맞춰보았다. 10시간을 넘게 붙잡고 있으니까 그래도 하네.. 평생을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색깔을 다 맞춘 큐브를 시시한 듯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선 시계를 보았다.
12시가 넘었다. 또 그 사람이 올 시간이다. 난 왜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얼마 지나지않아서 들리는 계단 밟는 소리와 노크 소리.. 끼익- 문 여는 소리까지 정확하게 그 사람이 오는 소리였다.
고갤 돌려 남자를 올려다보면, 남자는 이번에 따뜻한 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항상 할 일을 다 하면 바로 가던 남자가 내 앞에 서있다가 테이블에 앉아서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
"……."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무서웠어요."
"……."
"지금도 무섭고…"
"……."
"그래서 말인데.. 조금만 시간을 줄래요?"
"……."
"여기서 나가요. 그쪽이 잘못한 게 아니잖아."
"……."
"내가 도와줄게요."
"왜요?"
"……."
"왜 날 도와주는 건데요?"
"모르겠어요."
"……."
"나도 잘."
"……."
"차는 마시죠?"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위험한 걸 알면서도 구해주겠다고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물으니 모르겠다고했다. 그렇게 나와 이 남자는 서로 바라만 보았고, 한참을 그 어떤 대화도 오고가지않았다.
어제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나를 도와주겠다던 남자의 표정이 떠올라서 마음이 너무 이상했다.
하루종일 남자의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게 왜 이렇게 신경이 쓰였는지.. 고마워서였을까 아직도 미워서였을까.
남자가 올 시간이 다 되어가면 나도 모르게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 시간이 되면 남자가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남자는 내 앞에 있는 테이블을 걸쳐 앉아서는 처음으로 아무렇지도않게 내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어머니가 가족 넷이서 여행을 가자고 하더라구요. 나를 꼭 껴서 가고싶대."
"……."
"날 친아들로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으면서.."
"……."
"물론 나도 그 여자를 어머니라 생각한 적 없어요. 서로 알면서도 그렇게 지내야만 하니까 지내는 거야."
"왜.."
"……."
"왜 그걸 나한테.. 다 말하는 거예요?"
"그냥."
"……."
"그쪽한테는 말하고싶어서."
그렇게 남자는 처음으로 나에게 쌩뚱맞게 자신의 얘기를 꺼냈고
"저희 엄마 아빠는요.. 저보다 서로를 더 사랑해요. 그래서 가끔은 질투도 났어요."
"……."
"매일 나가면 서로만 찾고, 나는 두 번째야 항상.. 웃기죠."
나도 그를 따라 쌩뚱맞은 내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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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엔 뒤가 더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뒤를 쓸...ㄲ....ㅏ...ㄴ...ㅐ..가...?( 아련)